예수님이 사랑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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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사랑한 사람들
  • 김홍한
  • 승인 2018.03.27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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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받는 이들과 함께 하는 부활절 연합예배

대전에서 “고난 받는 이들과 함께 하는 부활절 연합예배”를 한다.


오래 전 어떤 이와 대화 도중 노동자들의 파업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노동자 편에서 이야기를 비치자 그는 발끈 하면서 파업 노동자들의 횡포, 불법, 비상식, 비인간적인 것을 나열하면서 열을 올린다. 사업주의 형편과 처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만 생각하는 야차 같은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 공감하는 바가 있다. 정말 우리 사회에서는 종종 그러한 것을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독교는 노동자 편에 서야 한다. 그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예수님이 사랑한 사람들

사람으로서는 공평한 사랑을 할 수가 없다. 하나님도 할 수 없다. 하나님은 편애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의인을 향하지 않는다. 물론 악인을 향하지도 않는다. 하나님은 당신께서 사랑하고픈 사람만 사랑하신다.
불공평하게 사랑하기로는 예수님도 마찬가지다.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극도로 미워하셨다. 반면 대표적인 압제자라 할 수 있는 로마군인들에게도 관대하시고, 대표적인 착취자라 할 수 있는 세리들에게도 관대하셨다. 창녀들에게도 관대하셨다.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도 관대하셨다. 그들을 책망하거나 비난하시는 말씀이 성경에는 거의 없다. 오히려 그들을 위로하고 칭찬하시는 말씀들뿐이다.

도대체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의 기준이 무엇일까? 그분의 사랑 기준은 결코 선악에 있지 않다. 믿음에도 있지 않다. 그 분의 사랑은 언제나 약자를 향하신다.

약자에도 종류가 있다. 정치적 약자가 있고 경제적 약자가 있고 신체적 약자가 있고 종교적 약자가 있다. 종이나 노예들, 가난한 사람들, 병자들, 소경이나 귀머거리 같은 정치, 경제, 신체적인 약자들에 대한 배려에는 누구나 공감하는 바가 있다. 문제는 종교적 약자들에 관한 것이다.

누가복음 19장 에는 돈 많은 세관장 자케오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께서는 자케오 에게도 구원을 선포하셨다. 자케오는 세관장이니 정치적으로 강자다. 돈이 많으니 경제적으로도 강자다. 비록 키가 작았지만 나무위에 올라갈 수 있는 건장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약자다. 종교적 약자다. 의인이라 자처하는 유대인들에게 사정없이 죄인으로 매도되는 종교적 약자, 그래서 예수님은 자케오 편을 들어 주셨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도 있다. 죄인임에 틀림없다. 그녀가 부자인지 어떤지는 관계없다. 그녀가 모든 사람들에게 죄인취급 당한다는 그것 하나로 그녀는 약자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간음녀의 편을 들어 주셨다.

로마군대 백부장을 크게 칭찬하고 그의 청을 들어 주셨다. 식민지 백성들에게 점령군 장교라니 결코 약자가 아니다. 조선 땅에 주둔한 일본헌병대 장교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신체적으로 그는 강자다. 그러나 그도 역시 유대인들로부터 사정없이 죄인으로 매도되는 종교적 약자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백부장의 편을 들어 주셨다.

사마리아 사람들 중에도 권력자가 있고 부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과 관계없이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그들은 죄인 취급을 당하는 종교적 약자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들 편을 들어 주셨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사안에 따라서 옳고 그름이 뒤바뀐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 뒤바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에게 유익하면 선으로 여기고 나에게 해가 된다면 악으로 여긴다. 선과 악의 판단이 이러하니 오히려 선악을 판단하지 않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내가 생각이 어리고 신앙이 어렸을 때는 나름대로 선과 악을 구별하려 하였다.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그것이 헷갈린다.

예수님께는 선과 악이 없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아래 있는데 어찌 악이 있을 수 있겠는가? 예수님은 선악을 구별치 않으셨다.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이는 언제나 약자였다. 그러니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이는 옳은 자 편에 설려고 하지 마시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고 하지 마시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나는 옳다” 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 교만이다. 바로 그러한 사람들이 간음한 여인에게 거침없이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들이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말고 약자 편에 서야 한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다.

강자와 약자가 갈등관계에 있을 때 약자가 오히려 옳지 못한 경우도 많이 있다. 강자들만의 횡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약자들의 파렴치한 횡포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자 편에 서는 것이 예수님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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