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와 예수
빌립보서 2장 5~11절, 마가복음 15장 20~39절

▪ 참된 기도
전직 대통력이 또 구속 수감되었습니다. 불행한 나라 슬픈 민족입니다. 하지만 못된 부정을 하고도 장수하거나 권좌에 앉이 있는 나라들은 우리를 부러워하고 있으니 모를 일입니다. 그에게 적시한 죄만도 18가지나 됩니다. 뇌물수수, 횡령, 국고유용, 직권남용, 사익추구. 차명보유, 사찰 등, 드러난 것만 입증되어도 중형을 면치 못하게 되었습니다. 노태우, 전두환, 박근혜에 이어 전직 대통령으로는 네 번째 구속입니다. MB는 구속 직전 자필 편지를 페이스북에 공개했습니다. 편지엔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물론 국민에게 사과도 없었습니다. 정치보복이라며 성토하더니 정치보복이란 말도 뺐습니다. 언젠가는 자신의 결백이 밝혀질 것처럼 예견하고 있었고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위해 기도한단 말입니까? 국민 앞에 석고대죄해도 모자라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많은 잘 못을 저질러 놓고도 자신은 결백하다니요, 이것은 정신병자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말입니다. 이로 보아 왜곡된 신앙의 결과가 얼마나 위험한 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잘 못된 기도는 사람을 괴물로 만들고 참된 기도는 연약한 인간을 성인으로 만듭니다. 기도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시인 최영희는 자신의 시 <기도>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나를 바꾸는 것 / 물들고 오염된 나를 씻어 / 진실한 마음으로 맑히는 것
마음을 비우고 허공처럼 넓혀 / 겸허하고 낮은 자세로 / 나를 내리는 것이다
기도한다는 것은
지혜로워지는 것 / 우주의 에너지를 내 안에 담아 / 잠자던 본성이 밝아지는 것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받아들여 / 진리와 함께 충만해지며 / 평온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기도한다는 것은
나누어주는 것 / 바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 의지를 키워 힘을 얻는 것
너와 나를 허물어 자비를 베풀며 / 세상과 더불어 하나 되고자 /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기도한다는 것은
큰 뜻을 세우는 것 / 참회하고 원력을 굳건히 하여 / 다 같이 행복한 세계로 가는 것
남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고 / 남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어
하나의 꽃으로 피어나는 것이다
▪ 돈과 하나님
MB는 어떤 하나님을 믿기에 이토록 뻔뻔한 것입니까? 그에게서는 일말의 부끄러움과 송구함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단 한 번이라도 기독교의 하나님을 믿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는 오직 돈을 신으로 믿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그러지 않고서야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에겐 하나님의 마음인 예수의 마음도 최소한의 인간의 마음도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단언하셨습니다. 그러니 기독교인으로 살겠다는 것은 돈을 섬기는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삶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돈 중심의 삶에서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삶에로 바꾸는 것입니다.
MB는 지금까지의 삶을 들여다보면 오직 돈을 위해 살아왔음을 볼 수 있습니다. 멀리가지 않고 대통령 재임시절만 따져도 그렇습니다. 4대강 사업으로 대규모 수중 생태계를 괴멸시켰고 주변 환경을 초토화시켰습니다. 4대강 개발 사업을 고등학교 동문들과 고향 사람들로 배당했고 대기업에 분배하는 과정에서 담합이 이루어지고 엄청난 비자금이 만들어 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경인 운하도 마찬가지입니다. 업주나 참가한 공무원들까지도 왜 이런 일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투정 댈 정도였습니다. 제주 강정해군기지는 어떻습니까? MB가 기지 주변에 많은 땅을 사들인 것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지건설을 강행한 것이 당신의 돈벌이 때문이라니 놀랍지 않습니까? 제트기 계약 가격도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합의하였습니다. 캐나다 석유 채굴회사 매입 등 놀라운 일이 많아 일일이 따지기도 어렵습니다. 이렇게 대외비라며 밝히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국고를 손실한 것이 천문학적인 돈입니다. 그 돈의 상당부분이 싱가포르 돈 저수지에 채워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그는 구속되어 몇 년 살고 나오면 대대손손 잘 살게 될 테니 아무 문제없다고 생각한 사람입니다. 그의 구속을 보면서 돈만을 추구한 삶의 결과가 이렇게 귀결된다는 자명한 이치를 알게 해주었습니다. 그의 구속을 보면서 그의 구속을 위해 목숨을 걸고 10년을 추적했던 주진우 기자가 한 말이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MB가 감옥에 가서, 제발 돈을 그만 믿고 정말 예수를 믿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그가 구속될 때 그의 재임기간 참모진들 40여명이 모여 있던데 면면을 보니 이 사람들도 다 공범자들 아닙니까? 다 구속되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 햇빛으로 충분해요!
지난 화요일, 불의 날을 맞아 전국YWCA연합회는 핵 없는 세상을 염원하는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탈핵행진을 진행하였습니다. Y는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이후 매주 화요일마다 탈핵기도회 및 캠페인을 진행하였고 이날이 200차를 맞는 뜻 깊은 날이었습니다. 환경재단 최열 이사장도 참여하였고 독일 내 2000개 지역그룹과 585,000명의 회원을 보유한 독일 최대 환경단체인 BUND의 부회장인 리챠드 메그너씨도 행사에 참여하였습니다. 물론 저도 참여하였습니다.
독일 정부는 후쿠시마 사태 이후 제일 먼저 탈핵을 선언하고 7개의 핵발전소를 폐쇄조치하였고 나머지 9개도 2022년까지 폐쇄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렇게 결정되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메그너씨는 소개하였습니다. 독일 국민들은 30여 년 전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사고의 악몽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고 그들은 감각적으로 탈핵운동으로 움직였답니다. 10만 명이 베를린 정부청사에 모였고 핵발전소 중단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습니다. 아울러 핵발전 관련 기업들에 저항했고 그로 인해 기업의 로비도 현격히 줄었고 지속가능한 에너지 개발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강화되면서 정부는 핵발전소 폐쇄결정을 내렸다고 하였습니다.
감리교회가 <햇빛으로 충분해요! 창조세계의 창문을 답시다.>라는 슬로건으로 새로운 과업을 시작했습니다. 이 시대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임을 확신하고 예수의 마음으로 이 일에 동참합시다. 교회와 교도들 가정의 지붕마다 태양광 발전소를 세우는 햇빛발전소협동조합 창립이 그것입니다. 이 일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보전하고 환경선교를 활성화시킬 것입니다. 아울러 감리교회의 이미지를 전환하여 선교환경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햇빛으로 충분합니다. 창조세계의 창문인 햇빛발전소 설치로 지구위기와 교회위기를 극복하는 운동에 적극 참여합시다.
▪ 예수의 마음과 하나님의 응답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꼭 품고 살아가야할 것이 있는데 그것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의 마음을 꼭 품고 살아가라고 당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그리하여야 합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본체로 하나님과 같은 분이셨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시고 종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종은 절대 복종의 의무를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예수의 마음이란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하는 마음입니다. 완전한 인간이 되어 완전히 하나님께 복종하셨습니다. 일명 십자가의 삶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에 온전히 순종함으로 종으로 살아간 예수를 가장 높여 만유의 주님이 되게 하셨습니다. 모든 이들의 무릎을 예수에게 꿇게 하셨습니다. 완벽한 반전입니다. 이와 같은 일을 그리스도인에게도 하십니다. 그런 방식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현존을 회복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이 어디로 흐르고 있는지를 살펴야합니다. 낮은 곳으로 가장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물이 가장 낮은 곳을 향하여 흐르듯 하나님의 마음도 아픔이 있는 곳, 상처가 깊은 곳으로 흐릅니다. 지극히 작은이들에게로 흐릅니다. 우리가 우리 가운데 지극히 작은 자들과 함께 해야 하는 것은 그들 속에 하나님이 임재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곳에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어디서나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역시 지극히 낮은 곳입니다.
▪ 예수의 복종과 죽음
오늘 성서일과는 마가복음 15장의 말씀입니다. 예수는 신문을 받으시고 조롱을 당하시며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가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사건입니다. 부활하신 것보다 더 놀라운 복음입니다. 예수는 부활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죽기 위해 오셨습니다. 부활을 위해 죽은 것이 아니라 죽었기 때문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가 죽으셨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다 버렸다는 말씀입니다. 사랑입니다. 사랑을 위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보십시오. 전능하심을 버리고 십자가의 무력함을, 하늘 보좌를 버리고 죽음의 무덤을, 죄 없는 아들을 버리고 죄로 얼룩진 우리를 취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은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말씀과 같은 뜻입니다. 왜 우리를 이토록 사랑하십니까?
예수께서 죽으셨다는 말씀은 우리도 죽으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행세하려는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을 필요가 있고 성공과 출세를 위해 헐떡이는 거친 숨을 멈출 필요가 있고 나눌 줄 모르는 탐욕과 온갖 죄와 욕망을 무덤에 묻을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가 조롱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은 우리에게도 십자가 사건이 일어나야 할 사건입니다. 죽지 않으면 다시 살 수 없습니다. 예수와 함께 죽은 자는 예수와 함께 부활합니다. 죽는 것이 예수의 소명이듯이 죽는 것은 예수를 따르는 우리 모두의 소명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 십자가 처형
십자가 처형은 보는 사람들에게 수치심과 공포심을 유발해 감히 로마제국에 맞서겠다는 생각조차 갖지 못하게 하기 위해 고안된 처형 수단입니다. 예수의 죄목이 “유대인의 왕”라고 적시한 것은 예수가 정치범으로 제거 당했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의 십자가에 처형될 때 그를 따르던 모든 자들이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였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군중들도 유대 지도자도 정치가들도 예수를 버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끝까지 따라나선 사람들은 시몬 베드로 대신에 구레네 시몬이었습니다. 두 명의 강도가 예수의 좌우에 달려 예수의 죽음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예수의 운명을 지켜본 것도 제자가 아닌 여인들이었습니다. 그의 죽음을 보고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고백한 것도 제자들이 아니고 로마의 백부장이었습니다.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한 사람도 제자들이 아니고 산헤드린의 의원인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었습니다. 예수가 큰 소리로 절규하고 운명하실 때 성전의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이는 지성소와 성소의 경계를 허문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하며 예수가 옳았다는 것은 인증하는 것입니다. 이는 제사장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지성소에서부터 성전체제의 몰락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사건입니다. 결국 예수의 죽음은 성전체제의 몰락의 신호탄입니다.
결국 예수의 십자가는 실패가 아니라 세상의 가치관과 타협하지 않음으로써 맞게 된 운명적 결론입니다. 그러니 우린 십자가의 고통에 의미를 둘 것이 아니고 십자가가 담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운명적 저항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제자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눈에 실패로 끝난 것처럼 보였던 예수의 삶이 실상은 새로운 역사의 시작임을 알리는 전주곡이었음을 깨닫게 될 때, 십자가는 끝이 아니라 제자도의 완성이 됩니다. 예수의 죽음은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 죽음의 한가운데서 예수는 갈릴리로 간다고 말씀하십니다. 갈릴리는 예수운동이 시작된 곳입니다. 거기에서 다시 하나님 나라 운동을 시작한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우리가 따를 차례입니다.
▪ 교회의 참회문
이명박 전직 대통령은 종교적으로 말하면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교회의 장로입니다. 그렇다면 전직 대통령 이명박 장로와 같은 신앙인을 길러낸 교회는 오늘의 사태에 대하여 아무런 책임이 없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도 작금의 사태에 대하여 엄중한 책임이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그동안 하나님의 축복을 공공성의 차원이나 존재론적 변화의 측면에서 가르치지 않고 개인적 출세나 물질적 소유의 확대와 동일시하도록 가르쳐 왔습니다. 또한 한국교회는 공의 사유화(公의 私有化)가 곧 악이라는 예언자적 선포에 귀를 닫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한국교회는 전직 대통령 이명박 장로와 같은 신앙인이 출현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와 같은 신앙인들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이에 한국교회는 오늘의 불행한 사태에 대하여 교회의 책임을 절감하며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한국 사회 앞에서 사죄해야 합니다. 또한 한국교회는 이제부터라도 신앙과 신학의 공공성 회복을 다짐해야 합니다.
인간의 모든 불의와 모순과 왜곡을 자신의 책임으로 짊어지고 고난과 죽음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리는 2018년 사순절을 보내며 전직 대통령 이명박 장로의 구속 사태에 직면한 한국교회 또한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따라 오늘의 사태에 엄중한 책임을 느끼며 자성과 회개의 길로 나설 것을 촉구합니다. 적절한 시기에 개혁성향의 통합측 목회자들의 입장이 나왔습니다. 다행한 일입니다.
▪ 초대하기
우린 그간 주님의 고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사순절을 걸어왔습니다. 수난의 순례는 이제 마지막 수난주간으로 이어집니다. 우린 이 시대의 고난 받는 이들의 아픔을 기억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우리 주변엔 여전히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노숙자들, 해고 노동자들, 성폭력 피해자들, 억울한 사람들 등, 십자가는 묻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의 십자가는 무엇이며 어디에 있느냐고? 지금 이 땅의 권력자들에게 저항하고 있느냐고? 권력자들이 당신의 삶을 두려워하고 있느냐고? 만일 어떤 권력자도 우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고난 받는 이들과 얼마나 친밀감이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아울러 십자가는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자본에 대한 맹신은 하나님 신앙을 붕괴시키고 사회의 괴물을 만들고 있습니다. MB는 구속되었지만 우리 안에 있는 MB가 그대로 상존하는 한 우리도 언젠가는 돈만 추구하는 괴물이 되어 사회적 암 덩어리가 될지 모릅니다.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께서 걸어가신 길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당신의 전부를 버리고 하나님에게 순명하셨던 예수는 하나님의 뜻의 완전한 실현만이 자신은 물론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제 후로는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일에 걸림돌이 없게 하십시오.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주님을 배반하거나 버리고 도망가는 제자들의 비겁함에 빠지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동함으로 십자가를 완성하십시오. 그저 생각 없이 살지 말고 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십시오. 우린 모두 십자가의 길 위에 서 있습니다. 예수를 본 받아 자신을 부인하고 겸손히 주님의 뜻을 따르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가없으신 은총이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