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하여
천양희
웃는 아침을 위하여
나팔꽃이 피면 안 되나
나팔꽃은 아침을 위하여
웃으면 안 되나
아침이 나팔꽃을 위하여
있으면 안 되나
아침에게는 나팔꽃도 희망이고
나팔꽃에게는 아침도
희망이니까
우리가 만났다 헤어지는 날에도
너를 위하여
내가 웃으면 안 되나
나를 위하여
너가 웃으면 안 되나
나에게는 너가 희망이고
너에게는 내가
희망이니까
보아라
우리는 우리의 희망이 필요하다.
시와 이야기가 있는 노트 하나
강원도 평창에 사는 길벗은
서로라는 의미에 매료되어 산다
그에겐 서로가 희망이고 구원이다
서로는 단순히 나와 너이다
아니 나와 너를 넘어선 그 무엇이다
하늘의 신비이다
나를 사랑하는 길에
너를 향한 진정한 사랑이 있고
너를 사랑하는 길에
나를 사랑하는 길이 있다
서로 사랑하는 길에서
나팔꽃은 피고 희망은 일어난다
우리의 일상은 의미로 가득차고
참사람으로 사는 길이 열린다
올 해는 나인 너를 위하여...
(0116. 가재울에서 지리산)

귀천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시와 이야기가 있는 노트 둘
동지이자 형이자 친구였던
박기백 목사가 귀천하였다
조문 다녀오면서 아파 울었다
사람이면 사람 냄새가 나야한다고
그는 사람이기를 고집하였다
목사이면 하늘의 뜻을 따라야지
자신의 길을 가면 안 된다며
하늘의 길을 고집스럽게 걸었다
그래서였을까
척박한 땅 대구는 행복했다
이제 그에게 인사를 해야겠다
충분히 아름다웠노라고
정말 고마웠다고...
동행이 되어 든든했다고....
(0115, 가재울에서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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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노래함
안도현
그대
마침내 해가 떠오릅니다
원산 청진 경포 울산 앞바다에
백두 한라 상상봉에
그대의 붉은 가슴이 보입니다
우리가 또 껴안고 살아가야 할
신천지가 보입니다
그대는 알고 있겠지요
검은 노동의 굴뚝 위에도
가투의 피흘림 위에도
쩌렁쩌렁 해가 떠오르는 까닭은
지난 밤이 너무 어두웠기 때문입니다
어둠으로 하여
우리의 싸움이 그토록 처절했기 때문입니다
새벽을 기다리기 전에 우리가
스스로 새벽을 향해 걸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대가 아침에 펼쳐드는
새 달력의 첫장 위에
먼 친구가 보내온 연하장 위에
뜨겁게 해가 떠오르는 까닭은
사랑은
끝도 없이 달아오른다는 뜻입니다
그대와 나의 숨결 하나하나가
이 세상을 이루고
이 세상을 이끌고 간다는 것을 알 때까지
우리들 사랑은
식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자신의 삶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또한
자신의 삶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조국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이 새 아침에 배웁니다
길가의 철조망 한 가닥으로부터
분단을 떠올리고
생활에 묻은 먼지 같은 가난에서도
통일로 가는 길을 찾는
그대
그대와 만나고 싶습니다
이제까지 싸움이
우리를 이렇게 키워왔듯이
피 터지는 사랑 없이는
좋은 세상에서 만날 수 없음을 믿습니다
사랑으로 하여
우리가
맑고 뜨거운 해로 떠오르는 날 옵니다
시와 이야기가 있는 노트 셋
매일 만나는 시가 나를 설레게 하지만
이 시는 나를 찾아와서는 더욱 떨리게 합니다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길이 있습니다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이 민족에게 통일보다 더 큰 길은 없습니다
더 시급하고 더 강열한 일도 없습니다
하지만 통일도 사랑 없이는 안 됩니다
사랑이 없이는 해도 떠오르게 할 수 없고
사랑이 없이는 새벽길에 나설 수도 없습니다
통일로 나아가는 길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우주로 가는 일을 찾을 수 있는 것도
한 사람을 지극히 사랑할 때 가능합니다
자신의 전부를 바쳐 사랑이 된 사람들
그 숨결들이 모여 평화의 세상을 지어갑니다
(0113, 가재울에서 지리산)

우리 땅의 사랑노래
김용택
내가 돌아서드래도
그대 부산히 달려옴같이
그대 돌아서드래도
내 달려가야 할
갈라설래야 갈라설 수 없는
우리는 갈라져서는
디딜 한 치의 땅도
누워 바라보며
온전하게 울
반 평의 하늘도 없는
굳게 디딘 발밑
우리 땅의 온몸 피 흘리는 사랑같이
우린 찢어질래야 찢어질 수 없는
한 몸뚱아리
우린 애초에
헤어진 땅이 아닙니다.
시와 이야기가 있는 노트 넷
갈라설래야 갈라설 수 없는
찢어질래야 찢어질 수 없는
한 몸뚱아리의 땅, 한반도
금강산 가는 길 막히고
화해협력의 길을 연 개성공단 폐쇄하고
원수처럼 등 돌리고 지내기를 26개월
얼어붙은 남북이 다시 만났다
미국도 적극 지지하고 나섰고
프란치스코 교황도 응원을 보내왔고
NCCK도 지지 성명을 냈다
형제까리 죽여야 하는 종교가 있다면
그 종교는 가짜다
자매끼리 헐뜯어야 하는 이념이 있다면
그 이념은 가짜다
아, 우리는 그간 가짜에게 놀아났다
정치도 종교도 사상도 가짜가
진짜 행세를 하는 기만의 땅에 살았다
이제 새로운 기운이 한반도를 감싼다
동아시아 평화를 넘어 인류의 평화를 부를
한반도의 통일은 정령 오고 있다
(0112, 가재울에서 지리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