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사의 편지, 하나님의 신성과 인간의 겸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한 설교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의 신성은 나의 겸손에서 나타나며, 이것은 다음과 같이 예증될 수 있다. 주는 것은 하나님 특유의 속성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존재가 당신의 선물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을 때만 주실 수 있다.
그러므로 만일 내가 겸손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면, 나는 나의 겸손함에 의해 하나님을 주시는 분으로 만드는 것이다. 주는 것은 하나님의 본성이기 때문에 나는 단지 이미 하나님의 소유인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일 뿐이다.
이것이 마치 주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받을 사람을 찾아야만 하는 부자와도 같다. 왜냐하면 받는 사람이 없다면 그는 결코 주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만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분이 되려 한다면 먼저 받을 사람을 찾으셔야만 한다.
그러나 겸손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하나님의 선물을 받는 사람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만일 하나님께서 선물을 주심으로 당신의 신적 속성을 구현하려 하신다면, 하나님이 나의 겸손을 필요로 하는 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겸손을 떠나 하나님은 나에게 아무것도 주실 수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겸손이 없다면 나는 하나님의 선물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바로 이것이 겸손에 의해 하나님의 신성이 드러날 수 있다는 사실이 참인 이유이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과 선하심을 간구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할 필요가 있게끔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것을 간구하지 않고서도 받을 수 있게끔 되어야 한다.

수도사의 편지 2, 가장 힘 있는 기도와 가장 고귀한 행위에 관하여
놀라운 결과를 낳는 거의 전능에 가가운 가장 힘 잇는 기도와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행위는 순수한 마음에서 생겨난다. 마음이 순수하면 할수록 기도와 행위는 더욱 힘있고 더욱 고상하며 더욱 유용하고 더욱 찬양받을만 하며 더욱 완전하다. 순수한 마음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 순수한 마음이란 어떤 것인가? 순수한 마음은 얽매임이 없는 마음, 근심 걱정이 없는 마음, 구애받지 않는 마음, 어떤 일에나 자기의 뜻을 고집하지 않으며 자신을 부인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의 뜻에 자신을 내어 맡기는 마음이다. 어떤 일에든 너무 몰두하지 말라. 그러면 순수한 마음에 의해 많은 결과를 낳을 것이요 한 차원 높여질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몸의 지체들과 그 기능들, 곧 눈, 귀, 입, 마음 그리고 감각들이 이러한 목표를 지향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며, 우리의 기도와 관심이 향하고 있는 분, 곧 하나님과의 합일을 달성할 Ei까지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한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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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사 편지 3, 자기 의지로 가득찬 비헌신적인 사람들에 대하여
사람들은 말한다. “오, 선생이여! 하지만 저는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고 어떤 사람들이 지닌 헌신과 성스러운 평안을 갖고 싶습니다.” “나는 이 사람처럼 되거나 저 사람처럼 가난해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이곳에 있거나 저곳에 갈 수 없으면, 그리고 마침내 그렇게 할 수 없으면 절대로 안 돼! 나는 떠나야겠어 - 수도원이나 은둔처로 가야겠어!”
사실인즉 그 누구도 아닌 바로 그대들이 이 모든 잘못을 범하고 있다. 그것은 순전히 자기 의지다. 그대들이 이것을 깨닫든 그렇지 않든 모든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뜻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사람들은 저것을 추구하기 위해 이것-이런 장소, 이런 사람들, 이런 방법, 저런 목적, 저런 행위-을 떠난다. 그러나 방해가 된다고 해서 방법들이나 이들을 불평해서는 안 된다. 그대들이 방해를 받게 된다면 잘못된 것은 그대들 자신의 태도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먼저 자신에서 시작하라! 자기 자신을 망각하라! 먼저 자기 자신에서 떠나지 않으면 그대들이 그 무엇을 떠나게 되든 여전히 장애물들과 안식 없음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헛되어 평안을 찾는다. 평안을 구하되 그들은 외부 세계에서. 장소들, 사람들, 행위들 속에서, 가난과 겸손 속에서 어떠하든지 세상 속으로부터의 도피를 통해서, 가난과 겸손 속에서 구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평안은 구해지지 않는다. 그들은 잘못된 방향에서 찾고 있고 그들이 찾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들이 찾고 있는 것은 덜 찾게 된다. 그들은 마치 길을 잃은 사람처럼 나아간다. 멀리 가면 갈수록 그들은 더욱 방황하게 된다.
그러면 무엇이 이루어져야 하는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부인하는 것을 시작하게 하라. 그들은 그럼으로써 다른 모든 것을 부인하게 될 것이다. 정말이지 어떤 사람이 하나의 왕국과 심지어는 온 세상을 포기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이기적이라면 그는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지만 그가 자기 자신을 부인한다면 그가 무엇을 갖고 있든지, 그것이 부든 명예든 다른 어떤 것이든, 그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다.
성 베드로가 자신의 그물과 배만 버리면서도 “주여, 보옵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렸나이다”라고 한 말을 언급하면서 히에로니무스라 불리는 한 성인은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이 소유한 작은 것을 기꺼이 내버리는 것은, 그것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고 진정으로 바라는 모든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의지를 버리고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그 외의 다른 모든 것들을, 마치 그것들이 바로 그 자신의 완전한 소유였던 것인 양, 그리고 그가 그것들을 완전한 주권을 갖고 소유하고 있었던 것인 양 오나전하게 버리는 것이다.
이는 그대들은 그대들이 바라지 않는 것을 버리는 것이고, 버리되 하나님을 위하여 버리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가난한 자는 행복하다”고 하셨다. 곧 의지가 결여된 사람들이 더 나은 행복의 길이 있었다면 우리 주님은 그것을 틀림없이 말씀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만일 누가 나를 따라오려거든 먼저 자신을 부인하라”고 하셨던 것이다. 이것이 핵심이니 그대들은 자신을 경계하라. 자기가 기어들어 오는 것을 발견하면 그것을 거부하라. 그것이 가장 훌륭한 길인 까닭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