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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 즈음의 축복
일흔 즈음, 또 한 해가 간다
2017년 12월 26일 (화) 09:50:39 이수호 president1109@hanmail.net

내 나이 내년이면 일흔, 언제나 젊은 교사인 줄만 알았는데 어언 고래희가 돼버렸다. 하루 가고 한 달 쌓이고 봄 여름 가을 겨울 여러 계절이 겹치고 겹쳐 그리 됐을 텐데, 문득 돌아보니 어느 날 갑자기인 듯 나는 노인이었다. 당혹스럽고 혼란스럽고 안타까웠다. 그래서 돌아보기로 했다.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다시 추스르기로 했다. 새로운 다짐으로 나를 더욱 긴장시키고 단련해서 다시 칼날 위에 세우고 싶었다. 내가 살아 온 지난 세월, 내가 받았던 사랑과 누렸던 영광에 내가 답하지 않고 갚지 않는다면, 나는 염치없는 놈에 비겁자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바꾸려고 애썼던 우리의 삶이, 아직도 질곡과 고통 속에 있음을 인정하고, 그 개선을 위해 지금도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음을 확인하는, 아픈 통과의례의 노년식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나에게 끊임없이 속삭인다. 좋은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말고 부디 지쳐서 넘어져서도 안 된다. 반드시 그 날은 오리니, 네가 부지런히 살고 최선을 다하고 있느냐?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어느 날 갑자기 어깨가 아프고 팔을 뒤로 젖힐 수가 없어, 내가 뭘 잘 못했지 후회와 반성이 먹구름처럼 몰려오는데, “제발 몸 관리 좀 해요. 운동도 좀 하고 아프면 병원도 얼른 가요.” 아내의 살가운 잔소리가 두려워 아닌 척 더듬거리며 윗옷을 입다가, “악!”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와 들통이 나고 말았다.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던 아내가 피식 웃으며 “당신 50견 아냐? 주책이야. 나이가 몇인데 이제야 그걸 해!” 불쌍하다는 건지 대견하다는 건지 알 수 없는 묘한 웃음을 날리는 표정이, 그렇게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어서, 오랜만에 내가 뭔가 칭찬 받을 일을 했나 스스로 위로하며 아픈 팔을 내리며 생각해 보았다. 집회나 시위, 농성장으로 삭발로 단식으로, 회의로 교육으로 강연으로, 도발이로 감옥으로... 정말 말 그대로 눈코 뜰 사이 없어, 50견인지 60견인지 그런 게 있는 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살아온 세월들이 무슨 의미였나, 되돌아보는 어느 날.

어차피 나는 꼰대다. 꼰대의 어원은 몇 가지 설이 있으나 기본 요건이 교사이거나 늙은이 인데, 나는 둘 다 해당 된다. 학생들이 스스로 잘난 체하는 선생을 지들끼리 꼰대라고 부르곤 하는데, 나는 꼰대교사였음이 분명하다. 또 고집 센 늙은이를 젊은이들이 꼰대라 부르는데, 한 고집 없는 노인네를 보질 못했으니 나도 꼰대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꼰대질이다. 자기의 지식이나 판단을 일반화하여 그것이 절대적인 것인 양 다른 사람에게 주입하거나 강요하는 행태인데, 중요한 건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하거나 알면서도 물러서거나 고치지 않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하면 엄청 자존심 상하거나 기분이 나빠서 견디지를 못한다. 가만 보면 꼰대는 현상이고 꼰대질은 의지가 담긴 좋지 않은 행태인데, 젊은 사람도 꼰대질하는 사람이 제법 있다. 나도 이제 어쩔 수 없는 꼰대지만 꼰대질은 하지 말아야지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오히려 어차피 살 꼰대의 삶을 어떻게 멋지게 살까 생각해 본다.

참 고마운 일이다. 또 한 해가 가고 이렇게 갑자기 창밖에 바람 불고 눈발이 흩날리는데도, 내 마음 일렁이지 않고 오히려 편안해지고, 날리는 눈송이 하나하나 마다 그리운 얼굴들 떠오르고, 스쳐간 인연 따라 따뜻한 사연 되살아나고, 혼자 차 한 잔 마시며 신학철 선생 누렁소처럼 지그시 눈 감고 되새김질해도 쓸쓸하지 않고, 그 눈 분분히 날려 온 세상 하얘지고, 저 하늘로 난 가뭇한 길 눈 속에 묻혀가도 외롭지 않은 것은, 일흔 즈음의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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