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향린, 정말 향기가 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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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향린, 정말 향기가 나는 곳
  • 김경호
  • 승인 2017.12.21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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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참여와 주인의식이 높은 교회

고별설교 3

우리가 함께 모여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그러므로 자신이 꿈꾸는 교회가 어떤 것인지를 늘 함께 나눌 필요가 있다. 우리가 그 꿈을 함께 나눌 때 우리의 삶은 그리스도의 몸이 된다. 그 때 우리 각자의 삶이 예수의 삶의 연장이 되며 우리들 모두가 참교회의 지체가 될 수 있다. 저는 교회가 늘 자기 갱신을 해 나가는 공동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교회는 “예수는 그리스도시다”는 개인의 고백을 토대로 한 공동체이다. 그러나 새로운 교회는 “예수 사건이 일어나는 실천” 위에 세워져야 한다. 오늘의 예수사건을 만들어가고 혹은 그 안에서 경험하며 자기를 넓혀가야 한다. 자기 에고에만 갇히고, 생각에 갇히고, 이데올로기에 갇혀서 살게 아니라. 함께 공동의 꿈을 꾸고 그 꿈을 오늘을 ‘삶’으로 풀어낼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공동의 몸으로 살아간다. 나 혼자서는 이룰 수 없는 꿈, 마음은 있으되 혼자하기에 벅차 엄두를 못내는 일을 함께 나누며, 함께 이루고 살아갈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공동의 몸(쉬스 소모스, 엡 3:6)으로 살아갈 수 있다.

또한 저는 교회가 세상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교회가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 즉 자기 조직이나 소유, 자기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의 숫자를 목표로 삼거나, 그것을 힘의 근원으로 삼기 위해 존재하면 교회는 교회로서의 가치를 상실한다. 교회 스스로 자기 완결적인 목표로 삼을 때 그 교회는 이미 예수와 상관없게 된다. 교회가 그 모인 울타리 안의 청중만을 위해 존재하고 자신만을 위해 봉사한다면, 아무리 복음화와 전도를 외쳐도 그 교회는 소멸될 수밖에 없다.

복음은 Good News다. 뉴스는 명제가 아니라, 철학적 전제가 아니라 ‘사건’이다. 사건이 되지 않으면 뉴스가 되지 못한다. 예수 당시에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소식이 복음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천년 전 소식을 똑 같이 반복하는 것이 어찌 뉴스가 되겠는가? 예수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복음이 되게 하려면 오늘 우리들의 삶으로 Good News 한 자락이 되어야 한다. 당시에 명제만으로 오롯이 존재하기 보다는 크건 작건 사건을 경험하고 만들어가는 그래서 좋은 소식을 세상에 알리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작년에 한 교회가 우리교회와 합하자는 제안이 왔다. 그 교회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훌륭한 역사를 가진 교회이고 잠재력이 있는 교회였다. 무엇보다도 30-40억 정도를 호가하는 교회당이 있었다. 그래서 양쪽 장로님이 여러차례 회동하였다. 저는 “향린공동체에 속해서 향린 공동체가 연대한 선교와 목회에 계속 참여할 수 있어야 된다”는 딱 한가지 조건을 냈다. 그 교회는 우리교회가 임기제를 하는 것을 알고 두 교회가 합하면 새 교회가 되는 것이니 제가 담임목사를 계속하는 조건을 냈다. 저는 교회 갱신하자며 스스로 세운 규칙을 자신의 임기에 말기에 수정하는 편법을 할 수 없다며 저보다 훨씬 훌륭한 목사님을 청빙하겠다고 했다. 거절이 된 셈이다. 그 쪽도 향린공동체의 선교를 부담스러워 해서 결렬되었다. 우리교회가 지하의 임대 예배당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날려 버린 셈이다. 그러나 저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교회는 그 울타리 안에 모인 사람의 숫자나 재산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와 사랑과 평화가 지켜지는 곳이어야 한다.

   
▲ 2년 과정으로 진행한 들꽃향린 성서학당 오늘 요한계시록 강의로 종강하다. 15명이 수료하고, 4명이 개근, 2명이 정근상을 받고 훈훈한 종강파티로 마무리 함

고별설교 4(최종)

교우들께 몇 가지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먼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여러분 모두가 함께 새로운 개념의 빛나는 교회의 역사를 쓰길 바란다. 역사란, 우리 모두의 발자취다. 하루, 일주일, 한 달. 공동체가 먼지 같이 작은 움직임을 하더라도 그것을 꾸준히 해나가고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면 그것은 새로운 발자취가 된다. 들꽃향린이 정말 깨어있는 공동체가 되는 건, 들꽃의 작은 꽃 한송이가 되는 것은 한명 한명의 깨어남과 성장, 그리고 무엇보다 실천에 달려있다.

들꽃향린교회는 어느 교회보다도 평신도 참여와 주인의식이 높은 교회다. 모든 것을 다 여러분들이 알아서 하는 교회 시스템이 아주 잘 작동된다. 어떤 회의 무슨 모임이 진행되는지 담임목사와 상관없이 운영위원장 중심으로 진행된다. 회의의 소집권, 사회권 모든 것을 평신도 대표인 운영위원장이 하고 있다. 이런 전통-목회자 중심이 아니고 평신도 중심의 교회전통을 잘 지켜가길 바란다. 이 말은 담임목사가 바뀌는 것은 큰 변수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떤 씨앗이 심어져도 잘 자라는 좋은 토양이 되길 바란다. 좋은 토양은 어떤 씨앗이라도 다 품어내고 싹을 틔울 수 있다. 들꽃향린은 그런 좋은 땅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두로의 바닷가에서 서로 무릎꿇고 기도하는 이들처럼 저도 오늘 여러분 앞에 무릎을 꿇고 간절히 부탁드린다. 여러분들께서 들꽃향린을 아름답게 지켜주시길 바란다. 혹 그동안 머뭇거리며 뒤에서 지켜보신 교우들이 계시다면 주인답게 손발을 걷고 나서주기를 부탁드린다.

들꽃향린은 여러분들께서 잘 지켜주시면 저도 저 자신을 잘 지켜 나갈 것이다. 어느 장로님 한 분이 그러시더라. “목사님은 이미지가 너무 세서 교회가 모시기에는 많이 부담스러울 것이다” 솔직히 맞다. 게다가 나이도 어중간하다. 그렇다고 저의 이런 목회방향을 바꾸거나 늦추고 싶지는 않다. 말리는 예루살렘 행을 감행한 바울을 이해할 수 있겠다. 어쩌면 노욕이고 고집일지 모르겠지만, 저는 내 걸음과 미래를 하나님 앞에 둔다. 그것은 평생 제 몫이 아니었고 오직 하나님의 몫이었다.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는 분명했지만 내가 어느 자리에 있을 것인가는 별로 의지를 가진 적이 없다. 저는 하나님이 주시는 내일을, 그리고 오늘 하루를 그저 살아갈 뿐이다. 나이기 드니 오히려 머뭇거리거나 움찔 거릴 여유가 없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 한다. 우리가 꿈꾸던 것들은 매우 의미 있는 그림이었고 그것들은 이미 우리 앞에 나타난 실상이고 보이는 증거로 나타날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서로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자. 그래서 각자 자기의 길과 역할을 통해 서로 주의 뜻이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

청용 영화상 시상식에 배우 최희서가 한 소감이 귀에 번쩍 들어왔다. 박열과 함께 죽음의 길을 택한 후미코가 한 말이다. “단순히 움직인다고 해서 사는 것이 아니다. 내 의지를 따라 살아간다면 그것이 비록 죽음을 향할지라도 그 삶은 부정이 아니다. 오히려 긍정일 것이다” 여기서 내 의지를 따라 살아간다는 말을 오늘 제목처럼 ‘주의 뜻이 이루어진다면’ 으로 바꾸면 그것이 오늘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바울의 고백이고 그 길을 따르고자하는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될 것이다.

다시 한번 부족한 저에게 과분한 사랑을 준 교우들에게 더없이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오직 사랑만이, 우리가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유일한 길이며, 몸을 움직인 실천만이 우리가 그것을 경험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잊지 말자. 들꽃향린이 걸어가는 모든 길을 위해 어디에 있든 기도하겠다. 사랑과 신뢰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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