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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만족도 왜 이리 낮을까?
종교, 헬사회 만족도 높이는 역할 하나?
2017년 11월 23일 (목) 14:06:09 김달성 kdalsung@hanmail.net

한국의 경제규모는 세계 10위권이다. 그러나 최근 통계에 의하면 삶의 만족도는 OECD국가들 중 최하위다. 왜 그럴까?

다각도에서 여러 이유를 밝힐 수 있을 거다. 가령, 마음의 문제를 거론하는 경우가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물질적 조건을 만끽하지 못하는 어느 개인의 마음이나 정신에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일리가 있다. 부분적으로 맞다.

삶의 만족도가 아주 낮은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문제에 있다고 본다. 그 관계의 성격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경제규모가 상당히 높은 한국사회 내부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 성격이 삶의 만족도를 최하위로 떨어트리는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판단이다.

우리 사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성격이 어떤가? 그 성격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자산과 소득 불평등구조다. 자산의 경우 토지만 봐도 상위 1%가 전국 토지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소득은 최상위 10% 계층이 전체 소득의 절반( 48.5% 2015년)을 가져간다. 이에 비해 소득 하위 50% 계층의 소득 비중은 겨우 4.5%밖에 안 된다.그리고 2천만 임금노동자 가운데 절반이 월 200만원을 못 받는다.

한국 국민은 세계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한다. 연간 노동시간이 무려 2,069시간이나 된다(2016년 기준). 그러니까 대다수 국민은 일벌들처럼 부지런히 피땀 흘려 일하지만 그 열매를 독차지하는 자들은 따로 있다는 사실이다. 소수가 다수의 노동 열매를 독차지하는 구조 아래서 삶의 만족도가 결코 높게 나올 수 없다. 이 구조는 부지런히 땀 흘려 일할수록 일한 대다수는 그 열매로부터 더욱 소외되는 현실이다. 내가 일해 맺은 열매가 오히려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구조다. 갈수록 박탈당하는 대다수의 삶의 불행지수는 높아지게 되어 있다. 극심한 착취구조로 맺어진 사람과 사람 사이 , 그 구조로 돌아가는 사회는 그야말로 '헬사회'다. 사람들 사이에 사랑과 정의가 흐르는 '헤븐사회'와 상극인 사회. 우리 사회가 이런 사회가 되기까지 과정은 결코 공정하지 않았다!

   

종교백화점 같은 한국은 종교 인구가 꽤 많다. 한국 종교들은 헬사회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만족도를 높여주는 역할을 얼마나 하나?

대개의 종교는 변죽만 울리지 않는가? 삶의 만족도를 떨어트리는 핵심문제는 애써 외면한 채 시선을 엉뚱한 곳에 두고 있지 않은가? 내세천당이나 피안의 극락으로 대중을 호도하지 않는가? 그러면서 기복적인 미신에 사로잡혀 있지 않은가? 개인의 부귀영화를 신비적인 방법으로 얻고자 열심히 기도하지 않는가? 소수 부자들 편에 서서 그들을 대변하는 일을 사명으로 알고 열심히 일하지 않는가? 열심히 땀 흘려 일하지만 제 열매를 빼앗겨 우는 사람들을 순치시키기 위한 노예도덕을 부지런히 가르치지 않는가? 가난과 불행은 네 탓이라며 훈계하지 않는가? 마음의 힐링이나 받으라며 혹세무민하지 않는가?

성경이 처음부터 끝까지 집요하게 관심 갖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문제다. 가정, 직장, 사회, 국가, 세계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성격이 어떠하냐에 집중적 관심을 갖는다. 매일 소를 잡아먹든 나물을 먹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성격이다.

성경의 뿌리인 출애굽사건에서 하나님의 눈길은 우선 파라오 체제 아래서 착취당하는 노예들에게 갔다. 사랑이신 하나님의 관심은 온통 노예들을 그 착취구조에서 탈출시키는 데 있었다. 모세를 일꾼으로 불러 시킨 일은 파라오의 착취체제를 혁파하고 자유롭고 평등한 사랑의 공동체사회-가나안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었다.

하나님나라운동을 하신 예수는 출애굽사건을 완성하시는 분이다. 그 사건의 정신을 지구촌 전체에 확대, 발전, 심화시키는 일을 예수의 성령은 지금도 하신다. 새 날을 열망하는 일꾼들을 불러 세우시면서. 자신의 삶의 자리 특히 일터에서 착취관계를 깨도록 추동하시면서. 빼앗겨온 제몫을 찾아 누리며 나누는 삶을 살도록 감동하시면서.

김달성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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