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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하나님나라 운동
모순과 불의 타파할 근본적인 일이란
2017년 11월 18일 (토) 12:09:44 백창욱 baek0808@hanmail.net

3년전 오늘 쓴 글이다. 최대한 역사예수 사람입장에서 그가 어떤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나라 운동에 뛰어들었을까를 생각한 글이다. 글이 괜찮아서 다시한번 공유한다.

예수의 문제의식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그의 삶의 자리에서 살펴보자. 예수는 목수였다. 날품팔이 노동자였을까, 아니면 십장이었을까, 아니면 하도급 공사를 따내는 오야지였을까. 마태 20장에 나오는 포도원 품꾼비유나 복음서에 나오는 여러 서민적인 비유 등을 볼 때, 예수는 날품팔이 노동자였을 것이다. 그러나 십장이든 오야지든 상관없다.

예수는 어떤 현장에서 일했을까? 예나 지금이나 건설사나 건설노동자가 가장 많이 일할 거리는 관급공사이다. 그 당시 관급공사는 어떤 것일까? 그리스로마의 종교생활문화양식을 따라 하는 건축물이 가장 많았다. 예를 들면 황제에게 바치는 신전건축, 데카폴리스같은 신도시개발, 원형경기장이나 극장같은 오락유흥시설 등이다. 또는 로마의 경제체제에 장단맞춰서, 예루살렘 귀족들이 떼돈을 벌려는 욕심으로 이스라엘 땅 전역에서 벌이는 사업성 건축도 성행했을 것이다. 또 부재지주들이 자기 농지확장이나 수출용 특정작물 재배를 위해 벌이는 개간 사업 등이다.

이런 개발사업이나 대형건축물이 들어서는 자리는 대개 사람이 사는 마을이다. 건축물의 용도가 사람들 접근성이 좋아야 하는 것이므로 사람들이 밀집한 곳에 짓기 마련이다.

이미 사람이 살고 있는 터가 사업부지가 됐으니 그 다음 수순은 어떻게 될까? 이 권세자들은 살던 사람을 강제로 내쫓고 저항하는 사람들은 잡아가두고 심지어 죽이면서 폭력으로 그들 사업을 진행했을 것이 틀림없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국책사업이니 기간산업이니 하는 구실로, 공권력을 동원하여 살던 사람들을 범법자로 내몰고, 그들이 하고 싶은 사업을 벌였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이런 개발사업을 현장에서 실현하는 당사자는 노동자들이다. 비계기술자든 목수든 데모도든 그들 노동자들의 손발을 통해 이루어진다.

예수는 바로 그런 현장을 오랜 세월 좇아다녔다. 자신의 생업이므로. 처음에는 생업에 종사하는 수준이었지만, 계속 여러 현장을 옮겨 다니면서 자신의 노동이 이루는 결과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당신이 일하는 현장에서 민중이 어떻게 재산을 빼앗기는지, 어떻게 살던 땅에서 쫓겨나는지, 어떻게 회당 중심으로 살다가 떠돌이 백성으로 전락하는지를 생생히 목격했다. 민중이 벌거벗김 당하는 현장을 무수히 경험하면서 예수의 문제의식은 깊어갔다. 게다가 그분의 자의식은 온통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자의식으로 채워져 있지 않은가.

그 결과 결론에 도달했다. 더 이상 계속 목수노동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자신의 노동이 민중을 수탈하는 노동임을 자각했다. 이는 권력자들만 배불리는 일에 불과하다. 여지껏 먹고 살기 위해 귀닫고 눈감고 일해 왔지만,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사는 것은 의미없고, 부질없음을 결단했다. 드디어 예수는 노동을 작파하고 이 모든 모순과 불의를 타파할 근본적인 일에 뛰어들었다. 그것이 하나님나라 운동이다. 그가 운동에 나서면서 첫 일성으로 '회개하라'고 외친 것은 이 모든 사회구조의 폐단과 그 속에 묻혀 있는 수많은 개인들의 삶의 자리에 대해 번민한 끝에 나온 처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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