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보석 같은 인품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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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보석 같은 인품 만들어야
  • 김홍한
  • 승인 2017.11.16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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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한목사의 이야기 신학, 184호

이야기 신학 독자여러분 안녕하세요? 그동안 이야기 신학을 읽어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 어떤 때는 미친 듯이 썼고 어떤 때는 우울한 맘으로, 어떤 때는 화풀이로 썼고, 어떤 때는 참 힘들게 썼습니다.

나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적고 독서양도 적습니다. 사람들 속에서 생생한 삶의 이야기가 솟아나는데, 만남이 적으니 그것이 부족함을 절절히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들어 있는 책을 많이 접하지 못하고 있으니 역시 그러합니다.

다독 하는 것이 어려운 나는 주로 고전, 역사, 신화를 가까이 했습니다. 매일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지식들을 쫓다보면 한이 없을 것 같아서 그렇게 했습니다.

고전은 지식과 지혜가 농축되어 있기에 한꺼번에 많이 읽을 수 없습니다. 읽는 시간보다 소화시키는 시간이 훨씬 많이 들어갑니다. 홀로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고전 공부가 좋았습니다.

이제 <이야기 신학>을 그만 써야겠습니다. 제 사색이 벽을 만난 것 같기도 하고 열정이 식은 것 같기도 합니다.

내내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김홍한 올림

최근에 <노자> 81장을 나름대로 정리했습니다. 182, 183호에 이어 마지막 호를 <노자>로 마무리 합니다.

治大國若烹小鮮(치대국약팽소선) :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조리하는 것과 같다. -노자 60장 -

태양의 활동을 사람이 어찌할 수 있을까? 여름의 태양이 너무 뜨겁다고 좀 식힐 수 있는가? 겨울의 태양빛이 너무 약하다고 더 뜨겁게 할 수 있을까? 지구의 자전을 사람이 어찌할 수 있을까? 어찌할 수 없을뿐더러 혹 어찌할 수 있어서 어찌한다면 엄청난 재앙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작은 생선 조리하는 것에 비유한 것이 흥미롭다. 정치라는 것이 이렇게 평범한 일이라는 것을 비유로 말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면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쉽다는 말인가? 작은 생선 조리하는 것이 쉽다면 나라를 다스리는 것도 쉬울 것이요 그것이 어렵다면 역시 나라를 다스리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노자가 말하는 작은 생선을 조리하는 방법은 여유를 가지고 지켜보는 것이다.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고 하다가는 생선이 부서지고 만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도 그렇다. 조급하게 이런 저런 인위적인 것을 가하면 오히려 나라가 혼란해 질 것이라는 것이다.

작은 차를 운전하는 것이나 큰 차를 운전하는 것이나 큰 차이는 없다. 큰돈을 관리하는 것이나 작은 돈을 관리하는 것도 큰 차이는 없다. 단지 뒤에 붙는 “0”이 많을 뿐이다. 그것이 道다. 운전하는 방법으로 운전하고 회계하는 방식으로 회계하면 되는 것을 그것이 크다 하여 다른 방식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르려니 하고 다른 방법을 취하려 한다면 문제가 생긴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도 그렇다. 가정을 다스리는 것과 같다. 가문을 다스리는 것과 같다. 작은 고을 다스리는 것과 같다. 그것이 道다.

以道莅天下(이도리천하) : 도로써 세상을 다스리면
其鬼不神(기귀불신) : 귀신도 조화를 부리지 않는다.
-노자 60장 -

큰 것을 다스리고, 큰돈을 운영함에 道가 아닌 강력한 힘, 술수와 편법으로 한다면 그것이 사악함이다. 거짓이 끼어든다. 소위 귀신의 조화라는 것이 그것이다. 거짓은 틀림없이 사람을 상하게 한다. 나라를 위한다 하면서 사람을 죽인다. 다수를 위한다 하면서 소수를 억압한다. 전체를 돌본다 하면서 개인을 무시한다.

나라를 다스림에는 합리적으로 해야지 어떠한 신비한 술수로 다스릴 수는 없다. 합리적인 이치로 세상을 다스리면 신비적인 주의와 주장에 미혹되지 않는다.

大國者下流(대국자하류) : 큰 나라는 강의 하류
天下之交(천하지교) : 온 세상이 모여드는 곳
...
故大國以下小國(고대국이하소국) : 그러므로 큰 나라는 작은 나라 아래에 있음으로
則取小國(즉취소국) : 작은 나라를 얻고
小國以下大國(소국이하대국) : 작은 나라는 큰 나라를 향해 내려감으로
則取大國(즉취대국) : 큰 나라를 얻는다
...
- 노자 61장 -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대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작은 것이 모여서 큰 것이 되었는데 작은 것을 대적한다면 결코 큰 것을 유지할 수 없다.
큰 나라는 주인이 없다. 누구든지 차지하는 이가 주인이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대적하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다. 대적할 것이 아니라 들어가 주인이 되면 될 것이다.

오늘날 큰 나라는 미국, 중국, 러시아 등이다. 이러한 나라들은 다민족, 다문화 국가다. 어느 특정 민족이 주인행세 하려하다가는 다른 민족들이 크게 반발하여 국가는 해체될 수 있다. 그래서 다민족 국가들은 민족을 말하지 않는다. 애족을 말하지 않는다. 애국을 말한다.

큰 나라도 망할 수 있다. 큰 것이 권력이 되어 작은 나라 작은 민족들을 억누르게 될 때다. 큰 강은 작은 물들을 받아들여 큰 강이 된다. 역시 큰 나라도 그러하다. 그런데 작은 나라들을 소홀히 여기고 억압한다면 어찌 큰 나라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
작은 나라가 나라를 유지하는 길은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다. 힘으로 큰 나라에 대적한다면 고난을 면치 못한다. 혹 큰 나라를 굴복시키고 차지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오히려 큰 나라에 흡수되어 존재 자체가 소멸될 수 있다.

大小多少(대소다소) : 큰 것을 작은 것으로, 많은 것을 적은 것으로 - 노자 63장 -

새는 항아리에는 물을 담을 수 없다. 물이 조금씩 새도 결국은 모두 빠져 나가게 된다. 낭비하는 이의 모습이 이러하다. 작은 재물을 가볍게 여기기에 재물이 샌다. 가난을 면치 못한다.
큰 재물과 작은 재물을 모두 귀하게 여기는 이는 인색한이다.
큰 재물은 가볍게, 작은 재물은 귀하게 여겨야 한다. 큰 재물을 가볍게 여기기에 마땅히 투자할 곳에 투자할 수 있다. 작은 재물을 귀하게 여긴다는 것은 근검절약이다. 이러한 것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 성품인 것 같다.

報怨以德(보원이덕) : 원한을 덕으로 갚는다.
-노자 63장 -

노자는 “원한을 덕으로 갚으라.” 한다. 예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하셨다. 그런데 유가에는 그런 가르침이 없다. 어떤이가 공자께 물었다. “덕으로 원수를 갚으면 어떠합니까?(以德報怨, 何如?)” 공자 말씀하시기를 “그러면 덕은 무엇으로 갚을 것인가? 원수는 곧음(正義)로 갚아야 한다.(何以報德? 以直報怨, 以德報德)” 하셨다. -<논어> 憲問(헌문) 36장 -

以德報怨(덕으로서 원수를 갚는다)는 말은 달리 표현하면 ‘원수를 용서하라’는 말일 것인데 공자는 그 말을 거부한다. 마땅히 정의로서 죄 값을 치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죄의 대가를 묻지 않고 용서한다는 것은 正義롭지 못한 것이고 불합리한 것이다.

종교는 정의보다 사랑과 용서가 앞선다. 그래서 원수를 용서할 수 있고 사랑까지 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그것이 무슨 사랑이겠는가? 짐승도 자기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는 꼬리를 흔들며 반가워하니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짐승보다 나을 것도 별반 없다.
그러나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도 충분히 사랑할 수 없는데 어찌 원수를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말하는 용서라는 것은 대부분 보복할 힘이 없어서 체념하는 것이요 보복할 가치가 없어서 포기하는 것이요 보복하는 것 자체가 힘들어서 중단하는 것이다.
누가 누구를 용서한다는 것은 “죄를 묻지 않겠다.”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죄 값을 대신 치르겠다는 것이다. 죄에 대한 책임을 자신이 지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용서 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어렵고도 어려운 것이다. “용서한다.”는 말을 함부로 해서도 안 될 것이다.

圖難於其易(도난어기이) : 어려운 일은 쉽게
爲大於其細(위대어기세) : 큰일은 작게
天下難事(천하난사) : 천하에 어려운 일도
必作於易(필작어이) : 반드시 쉬운 일에서 시작되고
天下大事(천하대사) : 천하에 큰일도
必作於細(필작어세) : 반드시 작은 일에서 시작된다.
-노자 63장 -

명의 편작이 蔡(채)나라 桓公(환공)을 만났다. 편작은 환공에게 병이 있음을 알고 치료하기를 권했다. 그러나 환공은 그 말을 무시했다. 편작은 거듭 거듭 환공의 병치료를 권했다. 그러나 여전히 환공은 그 말을 무시했다. 편작이 네 번째 환공을 만났을 때 편작은 아무 말 없이 그 자리를 물러났다. 환공이 사람을 보내 그 까닭을 물으니 편작이 말했다. “병이 피부에 있는 동안에는 탕약과 고약으로 고칠 수 있습니다. 병이 혈맥에 있을 때는 침이나 뜸으로 고칠 수 있습니다. 장과 위에 침투했다면 탕약으로 고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병이 골수에 미치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환공의 병이 골수에 들어 고칠 수 없습니다.”
닷새 뒤 환후는 병으로 쓰러졌다. 황급히 사람을 보내 편작을 찾았으나 이미 떠난 뒤였다. 환후는 얼마 되지 않아 죽었다.

편작에게는 두 형이 있었는데 그들도 의사였다. 위나라 왕이 편작에게 누가 가장 뛰어난 의사인가를 물으니 편작이 대답했다. 큰형이 가장 뛰어난 의사입니다. 형은 환자의 병이 발병하기 전에 그 징조를 알고 원인을 제거하게 하니 병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환자는 자기의 병이 치료된 줄도 모릅니다. 둘째 형은 병의 초기에 병을 치료해 줍니다. 그러니 환자는 자신의 가벼운 병을 치료해 준 줄로 압니다. 저는 환자의 병이 깊어진 후에야 탕약을 쓰고 살을 째고, 뼈를 깎아 치료하니 환자는 제가 큰 병을 고쳐준 줄 압니다.

吾言甚易知(오언심이지) : 내 말은 알기도 그지없이 쉽고
甚易行(심이행) : 실행하기도 그지없이 쉬운데
天下莫能知(천하막능지) : 세상 사람들 도무지 알지도 못하고
莫能行(막능행) : 실행하지도 못한다.
- 노자 70장 -

진리는 쉽다. 진리를 깨달은 이의 말도 쉽다. 알고 말하기에 쉽다. 진리는 결코 숨겨져 있지 않다. 온 세상에 밝히 드러나 있다. 흔하고 흔한 책이 성경이요, 불경이요, 사서삼경이요, 노자, 장자 등의 고전이다. 이렇게 밝히 드러나 있고 쉽고 쉬워도 대중은 알아듣지 못한다. 그래서 진리는 “알려진 비밀”이다.

진리를 전한다고 하면서 그 말이 어렵다면 필경 저도 모르는 말을 지껄이는 것이다. 저도 모르는 말을 지껄이기에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한다.
쉬운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데 듣는 이가 어렵다면 듣는 이가 무엇엔가 크게 미혹되어서다. 온통 관심이 땅의 것에 있으니 하늘나라 복음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쇠귀에 경 읽기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누구든지 마음에 의심을 품지 않고 자기가 말한 대로 되리라고 믿기만 하면 이 산더러 '번쩍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 하더라도 그대로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잘 들어 두어라. 너희가 기도하며 구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았다고 믿기만 하면 그대로 다 될 것이다. 너희가 일어서서 기도할 때에 어떤 사람과 서로 등진 일이 생각나거든 그를 용서하여라. 그래야만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실 것이다."
(막11:23-25)

예수의 말씀이 황당하다. 정말 믿기만 하면 모든 것이 가능한가?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저 산을 바다에 빠뜨릴 수 있단 말인가? 기도하며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미 받았다고 믿기만 하면 그대로 다 되는 것인가? 예수의 말씀은 그러하지만 예수를 믿는 이들도 말 그대로가 아니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이미 알고 있다. 너무도 분명한 사실을 예수께서는 너무도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시고 있다. 무엇인가 크게 잘못되었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근본적으로 가치관이 다르고 사고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하늘나라 가치관과 영원이라는 시간관을 가지시고 말씀하시는데 사람들은 세상이라는 공간과 지금이라는 시간 속에서 그 말씀을 듣기 때문이다.
“구하라 받을 것이다”는 것은 하늘나라를 주시겠다는 것이고 이미 주셨다는 것이다. 하늘나라의 가치관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다. 더 바랄 것도 없다. 이미 완전하다. 안 되는 일도 없다. 하나님의 뜻이 그대로 내 안에 드러나는데 안 되는 일이 있겠는가?
우리는 비록 세상 속에 살지만 어렴풋이나마 하늘나라의 가치관을 알고 있다. 그래서 예수의 황당한 말씀을 거짓이라 외면하지 않고 희망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知不知上(지불지상) : 자신의 무지를 아는 것이 첫째다.
不知知病(불지지병) : 알지 못하면서도 안다고 하는 것은 병이다.
夫唯病病(부유병병) : 병을 병으로 알 때만
是以不病(시이불병) : 병이 되지 않는다.
聖人不病(성인불병) : 성인은 병이 없다.
以其病病(이기병병) : 병을 병으로 알기 때문에
是以不病(시이불병) : 그래서 병이 없다.
- 노자 71장 -

詩篇 기자와 잠언 기자는 말하기를
“야훼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원” 이라고 하였다.
소크라테스는 델포이 신전에 쓰여 있는 글귀를 자신의 철학으로 삼아 말하기를 “너 자신을 알라” 고 하였다.
孔子는 “아는 것을 안다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다”고 했다. “사람을 아는 것이 아는 것”이라고 하였다.
朱子는 “사물을 궁구해서 안다”고 하였다.
陽明은 “자신을 궁구해서 안다”고 하였다.
釋迦는 “無를 아는 것이 아는 것이다”고 했다.
칸트는 “物自體는 모른다”고 했다.
헤겔은 “인간은 絶對精神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인간도 정신이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는 “눈에 보이는 것만을 전부로 아는 科學은 迷信이다” 고 하였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고 하였다. 다른 것은 몰라도 내가 존재한다는 것 그것만은 분명하다는 뜻이다.

내가 누구인가?
세상을 알고, 사람을 알고, 사물을 알기에는 배울 것이 너무 많다. 지식을 통해서 알려면 인생이 너무 짧다. 어느 정도 상식을 갖추었으면 자신을 알아야 한다. 나를 어떻게 알까? 소크라테스는 “(아무것도 모르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지만 그러면 너무 허망하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기필코 알아야겠다.
나 자신을 궁구할수록 나 자신이 너무 크기도 하고 너무 작기도 하며 너무 다양하기도 하다. 크다고 하면 온 우주보다 크고 작다고 하면 먼지보다도 작다. 내가 아무리 크더라도, 내가 아무리 작더라도, 내가 아무리 다양하더라도 알고자 하면 알 수 있어야 한다. 알고자 하지 않아서 알지 못하는 것이지 알고자 한다면 모를 리 없는 것이 나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나를 어찌 알까?
소인배들은 남의 눈을 통해서 나를 보고자 한다.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 그래서 명함 가득 자신의 경력을 나열한다. 쓸데없는 모임에 수없이 기웃거린다. 어린아이들은 왕따 당하는 것을 죽을 것 같이 힘들어 한다.
좀 난 사람은 선생님을 통해서 나를 알고자 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 배우면 선생님을 넘어 스스로 공부해야지 언제까지나 스승의 그늘에 있을 수 없다. 아무리 훌륭한 선생님도 3년이면 더 배울 것이 없다. 졸업해야 한다.

하나님을 알고 자신을 아는 일은 그가 누구냐 와 관계없이 평생을 해야 할 일이다. 제왕도 해야 하고, 장사치도 해야 하고, 백정도 해야 한다. 젊은이도 해야 하고 늙은이도 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해야 한다. 죽는 순간까지도 해야 한다. 그것이 祈禱다. 그것이 參禪이고 그것이 學問이고 그것이 修身이다. 그래서 최고의 보석 같은 인품으로 만들어야 한다. 남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다. 하나님의 칭찬을 받기 위함도 아니다. 그냥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대기업 상품 보다는 중소기업 상품을 이용합시다.
대형유통회사 보다는 동네 가게를 이용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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