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깨어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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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깨어나십시오
  • 양재성
  • 승인 2017.11.13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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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참 목적은 무엇인가

깨어 있으십시오
마태복음 25장 1~13절

■ 입동
24절기 중 열아홉 번째 절기인 입동은 겨울을 앞두고 한 해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농가에서는 서리 피해를 막고 알이 꽉 찬 배추를 얻기 위해 배추 묶기에 들어가고, 서리에 약한 무는 뽑아 구덩이를 파고 저장하게 됩니다.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은 동면에 들 준비를 하고, 수확을 끝낸 들판에선 소들의 겨울먹이인 볏짚을 모읍니다. 입동이 되면 농부들도 바쁜 일손을 놓고 한숨 돌리게 됩니다.
저에게 입동은 외형적으로 자라던 자람을 멈추고 내면을 키우는 절기입니다. 혹독한 겨울은 외면적 세계에서는 치명적이지만 내면적 세계를 위해 오히려 좋은 기회를 줍니다. 겨울을 잘 살아내면 튼실한 제목으로 쓰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입동은 가을의 한 복판에서 시작된다고 우리 선조들은 보았습니다. 놀라운 지혜입니다. 가을은 겨울을 준비하는 계절인 셈입니다. 가을걷이를 통해 겨울을 잘 준비한 자들이 혹독한 겨울을 의미 있게 잘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겨울의 삶은 가을에 결정되는 셈입니다.

■ 고창석 선생
세월호 미수습자 9명 중 3년 만에 유해를 찾은 단원고 고창석 교사의 영결식이 11일 오전 목포신항에서 열렸습니다. 지난 5월 5일 세월호 침몰 해역에서 처음으로 유해 일부가 발견된 이후 긴 기다림 끝에 장례를 치르게 됐습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학생들이 있던 객실을 뛰어다니며 탈출을 돕다가 밖으로 빠져나지 못한 고 교사의 죽음을 안타까워한 제자들과 동료 교사들의 헌화가 잇따랐습니다. 참석자들은 소리 죽여 눈물을 흘리며 차가운 바닷속에서 돌아온 고인이 따뜻한 세상에서 영면하길 기원했습니다. 3년 넘게 마음을 졸여온 고 교사 부인은 "아이들한테 아빠를 못 찾아줄까봐 항상 두려웠는데 일부라도 유해를 수습하고 많은 도움으로 명예롭게 보내드려서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고 교사는 2014년 3월 단원고로 발령받은 지 한 달여 만에 참변을 당했습니다. 대학생 때 인명 구조 아르바이트를 했을 정도로 수영을 잘 했고 다른 학교 근무 시절에는 학교에 불이 나자 가장 먼저 소화기를 들고 뛰었던 고 교사는 세월호 참사 때도 학생들의 탈출을 도왔습니다. 고 교사는 참사 당일 아침 부인에게 '애들을 돌보느라 고생했다. 미안하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것을 끝으로 연락이 두절됐습니다. 미수습자 9명 중 단원고 남현철·박영인군, 양승진 교사, 권재근씨·혁규군 부자 등 5명이 아직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 세월호 제 2기 특별법
세월호 참사 206일 만인 2014년 11월 7일에 세월호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되었습니다. 하지만 정부와 새누리당의 방해로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막을 내렸습니다. 사실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들의 진상규명 요구는 단순한 것입니다.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안전사회 확립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왜 죽어야 했는지 알고 싶다는 것입니다. 유가족이면 누구나 요구할 수 있는 기본적인 일입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전 방위적으로 진상규명을 방해하였습니다. 그 방해한 이유도 알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유가족들은 애가 탑니다. 이제 3년 7개월에 접어들면서 세월호 진상규명을 약속한 촛불정권이 태어났고 오는 11월 24일 세월호 2기 특별법이 본회의에서 결정됩니다. 바라기는 반드시 특별법이 제정되어 하루 속히 진상규명이 밝혀지길 기도합니다.


어제 저녁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선 촛불문화제가 진행되었습니다. 세월호 합창단의 노래가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금관의 예수를 불렀습니다.

“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을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아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어디에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 무얼 찾아 헤메이나 저 눈 저 메마른 손길,,,,
아---거리여 외로운 거리여 거절당한 손길 들의 아 캄캄한 저 곤욕의 거리 어디에 있을까 천국은 어디에 죽음 저 편 푸름 숲에 아 거기에 있을 까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여기에 우리와 함께 오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정말 절실하고 비장했습니다. 그간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났습니다. 마치면서 나아가 그들을 위로했습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그 와중에도 이분들의 저항은 식을 줄을 모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희망이 남아 있습니다. 놀라운 은총입니다.

“ 이제부턴 우리의 길을 가겠습니다. 안전하고 평화로운 세상은 국가나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깨어 있는 국민이 직접 나서야 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 직접 행동하겠습니다.” 이것은 3년 전 세월호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나온 선언입니다. 사회 변혁의 종속 변수였던 유족들이 변혁의 상수가 되기로 선언한 것입니다. 이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그와 함께 하는 국민이 역사의 주체로 선다는 선언입니다. 놀라운 자각입니다. 이 자각은 로마제국에 저항했던 예수의 자각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 전태일 열사
1970년 박정희 독재가 기승을 부릴 때, 아주 작은 노동자 한 사람이 역사의 중심에 서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 열사의 분신사건입니다. 초등학교 중퇴, 평화시장에서 재봉사로 일하던 전태일은 혹사당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삶을 위해 노동법을 공부하고 관계기관에 처우개선을 호소했지만 관과 경찰, 기업이 내밀한 거래를 통해 한통속이 되어있기에 정상적인 방법으로 노동조건을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분신을 강행합니다. 그 결기는 그의 일기에 적힌 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결기에서 2000년 전 저 팔레스틴의 민중들을 해방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의 얼굴이 회상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행복했던 예수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다란 윤동주의 십자가란 시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간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생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 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바치마
너희들은 내 마음의 고향이로다

이 시는 분신 3개월 전인 1970년 8월 9일 일기에 적고 있습니다. 이 시는 그의 분신의 의미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의 분신은 패배주의적 결단이 아닙니다. 새로운 미래를 열기위한 모든 생명이 자유롭고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열고자 하는 예수적 결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당일 그는 교회에서 기도하고 결행을 굳힙니다. 그의 분신이 신앙적 결단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공무원들의 주 노동시간이 45시간인데 반해 노동자들은 98시간을 일했다고 합니다. 하루 14시간 노동을 하면서도 사람이 아닌 기계 취급을 받으며 살고 있는 여공들의 비참한 삶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절벽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단합니다. 내 한 몸 죽어 노동자들이 사람답게 살 수만 있다면 그리하겠다는 것이 그의 결단이었습니다. 그 결기가 그의 마지막 유언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엄마, 내가 죽어서 캄캄한 세상에 좁쌀만한 구멍이라도 뚫리면, 그걸 보고 학생하고 노동자하고 같이 끝까지 싸워서 구멍을 조금씩 넓혀야 해요. 그 연약한 노동자들이 자기 할 일을, 자기 권리를 찾을 수 있는 길을 엄마가 만들어야 해요. 노동자도 인간이예요.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예요. 엄마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아주세요.”

■ 전태일의 자각
순수한 청년 전태일은 어린 나이에 재봉사로 일하는 십대 여공들이 사람이 아닌 기계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근로기준법을 공부하게 됩니다. 노동조건의 개선이 안 되면 노동자들은 산업화의 희생제물이 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습니다. 실재 수많은 노동자들이 사업현장에서 죽어갔습니다. 결국 전태일은 노동법 투쟁을 시작하였고 노동청과 관련 구청, 심지어는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지만 번번이 거절당합니다. 결국 그런 방식으로 이 문제를 풀 수 없음을 알게 된 전태일은 기독교 신앙에서 배운 예수의 십자가에 고무됩니다. 결국 자기 한 몸 바쳐 노동자들의 삶이 바뀔 수 있다면 그리하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지난한 싸움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그 길에 나섭니다. 1970년 11월 13일 1시 30분, 전태일은 근로기준법과 함께 자기 몸에 불을 지릅니다. 아무짝에도 필요없는 근로기준법을 화형시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이는 대대적이고 전면적인 투쟁의 신호였습니다. 전태일의 분신으로 한국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이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전국에서 노동운동이 가열차게 일어납니다. 세계 인권기구들도 관심을 가지고 한국의 노동운동을 지원하게 됩니다. 산업화와 독재에 잠자고 있었던 지식인들이 나서기 시작하고 정치권도 요동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한 노동자의 자각은 노동자들의 자각으로 이어졌고 이는 또한 학생들을 거리로 나서게 하였으며 문화예술인, 법조인, 언론인, 종교인 등 지성인들과 정치권의 자각으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우리사회의 거대한 변화로 이어졌습니다. 이는 노동혁명을 통해 정치혁명으로 나아가게 하였습니다.

■ 열 처녀의 비유
하늘나라는 예수의 관심사입니다. 세상과는 다른 차원의 나라입니다. 하늘나라는 지구와 상관없이 저 우주 어느 곳에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늘나라는 세상의 경영원칙과는 다른 원칙으로 존립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입니다. 피안의 세계가 아니고 바로 현실 속에서 세워지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통치한다는 말은 고난 받는 민중들의 의해 만들어지는 나라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지금 이 사회적 구조 안에서 세워야할 해방과 자유의 나라입니다. 그러기에 하늘나라는 정치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로마 제국이 갈릴리의 청년 예수를 두려워했던 것은 자신들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하늘나라는 이와 같다고 하시면서 비유를 통해 설명하십니다. 등잔에 불을 밝히고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와 같다는 것입니다. 열 처녀는 신부는 아닙니다. 신랑을 마중 나가 신부에게로 안내하는 처녀들로 그 소임이 막중합니다. 신랑이 더디 오니 기다리던 처녀들이 다 졸았습니다. 밤이 늦어‘신랑이다’란 소리에 깨어나 보니 어리석은 다섯 처녀의 등잔엔 불이 꺼져가고 있었습니다. 당황한 다섯 처녀는 옆에 있는 슬기로운 처녀에게 기름을 꾸어달라고 하지만 자신들이 사용할 기름 밖에 없다며, 사다 쓰라고 하기에 사러 갔다 오니, 그 사이에 신랑이 왔고 잔칫집 문은 닫혀 들어갈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 끝에 예수님은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 깨어 있으십시오
예수님의 비유 중엔 깨어 있으란 말이 참 많이 등장합니다.
하루는 주인이 종들에게 여러 일을 맡기고 기약 없이 먼 길을 떠났습니다. 나중에 주인이 왔을 때 누가 주인에게 칭찬을 듣겠냐는 것입니다. 주인이 맡긴 일에 열심을 내고 있는 자가 주인에게 인정을 받을 것입니다. 결국 주인의 일에 깨어 있는 자가 하늘나라에 합당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도둑에 대한 비유에서도 언제 도둑이 올지 모르니 깨어 있으랍니다. 주님의 나라는 도둑 같이 임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마지막 십자가 결행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같이 기도하자고 할 때 제자들은 자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자지 말고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예수님의 열 처녀의 비유는 무엇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등잔은 무엇이고 기름은 무엇입니까? 등잔은 형식이고 기름은 내용입니다. 형식과 내용이 어우러진 삶이 깨어 있는 삶입니다. 형식적인 믿음. 형식적인 기도, 형식적인 실천의 전문가는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가식과 외식을 싫어하셨고 혹독하게 비판하셨습니다.

어제 광화문 세월호 문화제에서 유가족 대표의 발언이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촛불정권이 태어났지만 아직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며 이번 특조위 2기 출범도 안심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유족들은 그 어떤 것도 믿을 수 없다며 다만 진실의 힘을 믿는다고 진실을 거부하는 모든 세력과는 맞서 싸우겠다고 결기를 보였습니다. 결국 진실이라는 등불을 밝히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 하는 유가족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이 거룩해 보였습니다. 이분들이 이렇게 놀라운 역사를 만드는 것은 미안하고 송구한 일이지만 이 민족에게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참으로 뻔뻔하다 못해 몰상식합니다. 가식과 외식으로 가득합니다. 형식은 있으나 내용은 없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모양은 있는데 신앙의 능력은 없습니다. 복음의 내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가 덩치는 큰데 사회진보에 걸림돌이 되는 이유입니다. 신앙으로 내면을 채우십시오. 진심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말씀을 모시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십시오.

하지만 오늘도 한국교회의 최악의 뉴스가 올라왔습니다.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에 한국 초대형 교회 중 하나인 명성교회가 부자세습을 완성합니다. 오늘 명성교회에선 저녁 예배에서 김삼환 목사의 아들 김하나 목사가 당회장으로 취임하게 됩니다. 끝내는 이렇게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정말 슬프고 안타깝습니다.

전쟁광 무기장사 트럼프 미국대통령이 1박2일 일정으로 다녀갔습니다. 충분히 겁주고 수십조원의 무기를 팔고 갔습니다. 다행이 막말은 하지 않아 다행이지만 고도의 계산된 행동을 하고 갔습니다. 문재인도 얻을 것은 얻었다며 안심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곪아터지는 것은 국민들입니다.
우린 전쟁반대 한반도의 평화란 깃발을 들고 삼보일배를 진행하였습니다. 세 걸음 걸어 시멘트 바닥에 절을 하고 세 걸음 가서 또 엎으려 절을 하는 삼보일배는 가장 고단위의 기도방식으로 지극한 정성이 담긴 기도입니다. 한반도에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 한 걸음 한 절을 올렸습니다. 문규현신부, 조헌정목사, 강해윤교무, 시대의 큰 어른들이 땅을 기며 기도를 올렸습니다. 젊은 경찰들이 막아 더 이상 가지 못하였지만 기도의 정성을 이어졌습니다. 촛불이 만든 정부도 이전 정부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중심을 두겠다고 사람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하고는 해 놓고는 큰 어르신들을 이렇게 대접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지요? 많이 화가 났습니다.
하지만 이분들은 평화의 등불에 기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가재울 녹색교회 교우 여러분,
이제 깨어나십시오. 내가 불러야 할 노래가 무엇인지를 살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생각하십시오. 내 인생의 참 목적이 무엇인지를 물으십시오. 그리고 그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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