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하느님으로 가득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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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하느님으로 가득하고
  • 양재성
  • 승인 2017.09.05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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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이야기 있는 노트, 9월 외

시와 이야기 있는 노트, 9월

홍수희

소국(小菊)을 안고 집으로 오네
꽃잎마다 숨어 있는 가을,
샛노란 그 입술에 얼굴 묻으면
담쟁이덩굴 옆에 서 계시던 하느님
그분의 옷자락도 보일 듯 하네

+++++++++++++++++++++++

참 곱고 아름다운 가을이
하느님과 놀고 있다
가을을 보고
가을을 듣고
가을을 만지고
가을을 걸어본다
어느새
가을은 하느님으로 가득하고
우린 그만 길을 잃었다

(0905, 가재울에서 지리산)

   

시와 이야기 있는 노트,  구월이 오면

안도현

그대
구월이 오면
구월의 강가에 나가
강물이 여물어 가는 소리를 듣는지요
뒤따르는 강물이
앞서가는 강물에게
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밀어주면
앞서가는 강물이 알았다는 듯
한 번 더 몸을 뒤척이며
물결로 출렁
걸음을 옮기는 것을
그때 강둑 위로
지아비가 끌고 지어미가 미는 손수레가
저무는 인간의 마을을 향해
가는 것을

그대
구월의 강가에서 생각하는지요
강물이 저희끼리만
속삭이며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젖은 손이 닿는 곳마다
골고루 숨결을 나누어주는 것을
그리하여 들꽃들이 피어나
가을이 아름다워지고
우리 사랑도
강물처럼 익어가는 것을

그대
사랑이란
어찌 우리 둘만의 사랑이겠는지요
그대가 바라보는 강물이
구월 들판을 금빛으로 만들고 가듯이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사람과 더불어 몸을 부비며
우리도
모르는 남에게 남겨줄
그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을
구월이 오면
구월의 강가에 나가
우리가 따뜻한 피로 흐르는
강물이 되어
세상을 적셔야 하는 것을

++++++++++++++++++++

한 방울의 물,
그 작은 물이 내를 이루고 강을 지어
마침내 바다에 이른다

강물은 언제나 바다를 향한다
그 지향을 한 번도 멈추지 않는다
강물은 흐르면서
자신에 기댄 것들을 살린다

나는 어디로 흐르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적시고 있는가

오늘도 하늘은 눈부시게 푸르고
하늘을 담은 강물도 푸르다
푸른 강물을 보러 강가에 가면
강물은 말없이 그저 환하게 웃는다

(0904, 가재울에서 지리산)

   

시와 이야기 있는 노트, 가을 하늘

윤이현

토옥
튀겨 보고 싶은,

주욱
그어 보고 싶은,

와아
외쳐 보고 싶은,

푸웅덩
뛰어들고 싶은,

그러나
머언, 먼 가을 하늘.

+++++++++++++++++

완연한 가을이다
잠시 모든 것을 잊고
가을에 풍덩 빠지고 싶다

영금달인 9월
가장 아름다운 열매는
하늘이다
저 푸른 하늘이다

자꾸만 하늘을 쳐다본다
마음엔 하늘이 생겨난다
마침내 우린 하늘이 된다

(0902, 가재울에서 지리산)


시와 이야기 있는 노트, 별 같은

이병철

우리 곁에는 별 같은 이들이 산다
빛을 감추고 함께 어울러 있어
쉬 드려나진 않지만
때로는 스쳐 지나며 문득 마주친 그 눈빛에서
또는 누군가를 향한 살폿한 그 미소 속에서
외로운 이를 위해 낮은 목소리로 부르는 그 노래 속에서
오른 손 모르게 내밀어 가만히 잡아주는 따스한 그 손길에서
길섶 들꽃 앞에 쪼그려 앉아 놀라워라 하는 그 감탄 속에서
잠시 머물다 간 자리에도
오래도록 남아 있는 맑은 그 향기 속에서
한 순간 별똥별처럼 환히 빛나는 이들을 본다
비 내리는 밤에도
어둠 그 위로 초롱하게 빛나는 별들이 있어
이승의 고단한 몸 깊게 잠들 수 있는 것처럼
감추어진 모습 속에서도
빛나는 별과 같은 이들이 우리 곁에 있어
날마다 저녁노을이 그토록 가슴 젖게 하는 걸까
내 곁의 지금 이 사람이
별 같은 그 이일지도 몰라
어쩌면 우리 모두 별의 사람들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가 깃든 이 땅을
초록별이라고 부르는 것일지도

+++++++++++++++++++++

별 고을 성주에 들면
별이 된다 평화의 별이 된다
별 고을 소성리에 들면
성자가 된다 평화의 꽃이 된다

매일 아침마다 소성리에선
아침 기도회가 진행된다.
한반도와 인류의 평화를 위한
기도가 올려진다

누구도 혼자가 아님을
아니 혼자 일수 없음을 알게 되면
하늘은 천지간에 가득하다

소성리엔 135일째 현장을 지키는
강형구꽃이 있고 백창욱꽃이 있다
그들을 보면 그 먼길이 오히려 가깝다

모두가 모두에게 별이 되는 날
초록별은 더욱 환해질게다
세상은 더 평화로워질게다

(0831. 소성리에서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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