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는...
상태바
'하나님 나라'는...
  • 김홍한
  • 승인 2017.07.08 11: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예수는 나라와 민족 말씀하지 않았다?

어느 날, 고려 17대 국왕 인종이 김부식에게 말했다.

“古記는 문자도 졸렬하고 빠진 사실도 많아 임금의 선정과 잘못, 신하의 충성과 사익이며 국가의 안정과 위태로움, 인민의 순종과 반항 등이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아 교훈을 남길 수가 없소. 마땅히 재주와 학문과 식견이 있는 인재를 찾아 일가견을 세운 역사책을 만들어 영원히 물려주어 해와 별처럼 빛나게 해야겠소.”

   

인종의 명을 받아 김부식은 삼국사기의 편찬에 착수, 1145년 삼국사기를 완성하여 인종에게 바쳤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最古의 역사기록이요 국가가 편찬한 正史이다. 그 임금에 그 신하다. 인종은 백성을 사랑하여 근검절약하고 선정을 베풀었으며 역사정신이 있는 임금이었다. 김부식은 그에 부응할 수 있는 학식과 경륜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삼국사기는 세계 어느 나라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는 역사서다. 역사기록의 정확성, 수려한 문체, 역사기록의 입장, 예리하고 객관적인 평가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삼국사기에 대한 평가는 호의적이 아니다. 특히 근대에 이르러 민족사학자 신채호선생의 비판은 호되다.

“조선 근세에 종교나 학술이나 정치나 풍속이나 사대주의의 노예가 됨은 무슨 사건에 원인하는 것인가?... 나는 한 마디 말로 회답하여 말하기를, 고려 인종13년 서경(평양)천도 운동, 즉 묘청이 김부식에 패함이 그 원인으로 생각한다..... 그 실상은 낭가(郎家)와 불교 양가 대 유교의 싸움이며, 국풍파대 한학파의 싸움이며, 독립당 대 사대당의 싸움이며, 진취 사상 대 보수 사상의 싸움이니, 묘청은 전자의 대표요 김부식은 후자의 대표였던 것이다. 묘청의 천도 운동에서 묘청 등이 패하고 김부식이 이겼으므로 조선사가 사대적, 보수적, 속박적 사상인 유교사상에 정복되고 말았다. 만약 김부식이 패하고 묘청이 이겼더라면, 조선사가 독립적, 진취적으로 진전하였을 것이니 이것이 어찌 일천년래 제일대사건이라 하지 아니하랴.”

엄혹한 식민지시대에 초라해질 대로 초라해진 우리민족의 기상을 살리고자 고군분투했던 신채호선생의 눈에 황제를 칭하고 연호를 정한 묘청은 참으로 귀감이 될 만한 인물이었고 그의 몰락은 안타깝기 그지없는 사건이었을 것이다.

신채호선생의 뜻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그의 지나친 민족의식이 우리나라 최고의 역사서의 가치를 반감시켰다. 오히려 신채호선생이 묘청의 난을 과대평가한 것은 당시의 시대 형편을 외면하고 일제강점기에 민족적 감정에 치우쳐 합리성을 상실한 것이라 생각한다.

1127년 김부식이 송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거기에서 그는 송나라가 망해가는 모습을 목도했다. 송나라(북송)의 휘종과 흠종은 금나라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적병을 군사로서 막아야 하는데 그들은 그럴 군사가 없었다. 도교적 신비주의에 흠뻑 젖어있던 휘종과 흠종, 그리고 대신들은 호언장담하는 도사 곽경 이라는 자에게 수도 경비를 맡겼다. 군사가 아니라 도술로서 적병을 막겠다는 것이었다. 결과는 비참했다. 송나라는 망하고 휘종과 흠종을 비롯한 왕족 470여명과 3천명의 대신들은 금나라에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다. 그나마 흠종의 동생 조구가 간신히 남으로 도망하여 남송을 세우게 된다.

송나라의 몰락을 현장에서 보고 돌아왔는데 고려의 형편은 어떠했던가? 송나라처럼 고려에도 풍수지리설과 도참설, 음양오행설 등의 신비사상이 유행하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묘청과 정지상, 백수한 등이었다. 그들은 합리적 근거가 없고 믿을 수도 없는 신비적인 주장으로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자고 주장하였다. 그곳에 궁궐을 짓고 천도하면 천하를 통일할 수 있고 금나라도 저절로 항복할 것이며, 그밖에 많은 나라가 와서 조공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자신들의 주장이 먹혀들지 않자 여러 가지 술수로 뜻을 관철하려 하였으나 그나마도 어려워지자 평양을 중심으로 난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신채호 선생은 묘청과 김부식의 대립을 “낭가(郎家)와 불교 양가 대 유교의 싸움이며, 국풍파대 한학파의 싸움이며, 독립당 대 사대당의 싸움이며, 진취 사상 대 보수 사상의 싸움”이라고 하였으나 실은 “신비주의대 합리주의”의 싸움이며 혼란한 시류에 부합하여 권력을 잡고자 하는 이들과 이를 저지하고자 하는 이들의 권력싸움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김부식을 사대주의자라 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당시 김부식이 금나라를 큰 나라로 섬겼을 리는 만무하다. 그러면 송나라를 큰 나라로 섬겼겠는가? 한심하고 또 한심한 모습으로 속절없이 무너지는 송나라를 큰 나라로 섬길 수는 없다. 이런 혼란한 시대에 나라의 기틀을 바로잡고 기상을 세우는 일이라는 역사의식에서 인종임금과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저술하게 된 것이다.

역사에 관심 있는 나는 요즈음 걱정거리가 하나 있다. 소위 재야사학자라 자처하는 이들 중에 민족우월주의에 경도되어 우리의 고대사를 지나치게 과장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고대사 주장의 사실여부에 관계없이 민족우월주의는 매우 위험하다. 힘이 없을 때는 민족주의이지만 그것은 힘이 생기면 제국주의로 돌변한다. “우리민족이 가장 우월하니 다른 민족들을 지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인류의 발전을 위하여 열등한 민족들은 멸종시켜야 한다.”고 할 수도 있다. 과거 독일민족주의가 그랬다. 혹 국내적으로 큰 어려움이 닥치면 그 희생양으로 국내에 있는 외국인들을 희생시킬 수도 있다. 일본민족주의가 그랬다.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들을 희생시켰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외국인 이주민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몇 세대가 지나면 그들은 그냥 우리가 된다. 그런데 민족주의가 강하면 강할수록 그들은 우리가 되지 못한다. 혹 사회적으로 큰 어려움이 닥치면 그들을 희생양 삼을 수도 있다. 소름끼치도록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수께서는 나라와 민족을 말씀하지 않았다.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셨다.

- 이야기 신학 163호(2016. 10. 16) 중에서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