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시원은 그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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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시원은 그리움이다
  • 양재성
  • 승인 2017.07.05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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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이야기 있는 노트, 묵상 외

시와 이야기 있는 노트 하나, 묵상

고정희

잔설이 분분한 겨울 아침에
출근버스에 기대앉아
그대 계신 쪽이거니 시선을 보내면
언제나
적막한 산천이 거기 놓여 있습니다
고향처럼 머나먼 곳을 향하여
차는 달리고 또 달립니다
나와 엇갈리는 수십 개의 들길이
무심하라 무심하라 고함치기도 하고
차와 엇갈리는 수만 가닥 바람이
떠나라 떠나거라 떠나거라....
차창에 하얀 성에를 끼웁니다
나는 가까스로 성에를 긁어내고 다시
당신 오는 쪽이거니 가슴을 열면
언제나 거기
끝모를 쓸쓸함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운무에 가리운 나지막한 야산들이
희미한 햇빛에 습기 말리는 아침,
무막한 슬픔으로 비어 있는
저 들판이
내게 오는 당신 마음 같아서
나는 왠지 눈물이 납니다.


++++++++++++++++++++++++

사랑의 시원은 그리움이다
전 생을 걸고 찾아나서는 그리움이다
누구보다 신을 사랑한 시인은
그리움에 끌려 신을 찾아나선다
그렇게 온 몸으로 기다린 사랑을
그는 만났을까, 나는
아직도 그리움에 자주 먼 산을 보는데
(7월 5일, 지리산)

시와 이야기 있는 노트 둘, 그대의 향기

홍 수 희

나무를 보면
알 것도 같네

네 마음의 상처가
나를 편안하게
하는 그 이유

네 영혼의 흉터가
너를 향기롭게
하는 그 이유

생채기가
많은 나무일수록
뉘 기댈 그 품이
넉넉하듯이

생채기가
오래된 나무일수록
뉘 쉬어갈 그늘이
짙어지듯이

산다는 것이
너와 나의 상처를
부비며 만져주며
걸어가는 일

네 마음의
참 오래된 흉터여,

오늘은 나에게
별빛이 되라!


++++++++++++++++++++++

시인은 삶이 상처를
부비고 만져주는 일이란다
큰 상처로 아픈 곳이
그 사람의 중심이며
고통과 눈물이 있는 곳이
우주의 중심이다

그 고통에 깊이
공감하는 일이 참 삶이며
고통에 손잡는 일이 영성이다
그 고통의 한가운데엔
늘 하늘의 향기가 있다
그렇게 고통은
하늘을 만나는 성소이며
다른 고통을 치유하는 품이다

고난 받는 종이
이 시대를 구원하는 이유이다
(7월 4일, 가재울에서 지리산)

   

시와 이야기 있는 노트 셋, 장맛비

노민환

마지막 장맛비가
새벽부터 성큼성큼 들어와
울고 있다
마른 장마는 오랫동안
목마름에 허기진 내 집에 된더위만
몽땅 몰아넣고
얄밉게 엉뚱한 곳에 줄곧 눈물 뿌리더니
이제야 마당에서
풍물패처럼 잔치를 벌인 채
단체로 잔디에 퍼질러 앉아
퍽퍽 목놓아 운다

담장 밖 철 이른 코스모스는
진분홍 꽃잎 머리에 매달고 아까부터
빗속에서 누굴 애타게 기다리는지
목 길게 빼고 골목 내다보며 청승맞게 서 있고
울타리 가득 키를 키워온 옥수수는
몇 겹 포대기로
여물어 가는 알갱이 꽁꽁 동여매고
지금 장맛비에 젖은 수염 비틀어
바닥에 툭툭 물기 하나씩 털어내고 있다


++++++++++++++++++++++++

하늘의 은총처럼 장맛비가 내린다
오랜만에 듣는 굵은 빗소리가 반갑다
애타게 기다리던 비가 내린다
천둥번개를 동반하고 오는 비가 고맙다
타들어가던 대지는 신이 났고
비틀거리던 나무는 기운을 차린다
어느 새 내 마음도 뛰쳐나가 춤을 춘다
비는 마음을 타고 들어와 영혼을 깨운다
이렇게 비는 하늘과 땅, 사람을 이어준다
비야 고맙다 정말 고맙다
(7월 3일, 가재울에서 지리산)

   

시와 이야기 있는 노트 넷, 어떤 하루

천양희

건설 중인 빌딩 꼭대기에
둥지를 튼 송골매 두 마리가 새끼를 낳아
다른 곳으로 날아갈 때까지
공사를 중단했다는 이야기가 몇 년 전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서 들려와
나를 감동시키더니
우리는 언제 저렇게 아름답게
살 수 있을까 궁금해지더니
며칠 전 신문을 보고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처럼
놀랐느니
아파트 공사장에
까치 한 마리가 새끼를 낳아
다른 곳으로 날아갈 때까지
공사를 중단했다는 이야기가
멜버른이 아닌 우리나라 서울에서 들려와
나를 감동시키느니
이것이 사랑하며 얻는 길이거니
득도의 길이거니
아름다움과 자비는 어디에서나 자랄 수 있는 것

나, 오늘 무우전(無憂殿)에 들고 말았네.

☆★☆★☆★☆★☆★☆★☆★☆★

오스트리아에서는 일어날법한 일인데
서울에서 일어났다니 믿기지 않는다

정말 따뜻하고 희망적인 모습이다
이제야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나보다

한 해의 절반을 넘긴 7월의 첫날이다
이렇듯 남은 절반이 따뜻하길 빈다

한미정상들이 뜨겁게 만나고 있다
한미관계도 얼른 제자리를 찾아 가고
북미, 남북관계도 제자리를 찾길 빈다
(7월 1일, 가재울에서 지리산)

시와 이야기 있는 노트 다섯, 풍경 소리

최새연

추녀 끝에
물고기 한 마리

죽었을까?
살았을까?

바람이 살짝 건드려 봅니다

땡그랑 땡그랑

물고기는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며
맑고 고운 소리를 냈습니다

땡그랑 땡그랑

죽은 물고기를
바람이 살려 놓고 갔습니다


++++++++++++++++++++++

죽었던 것을 살리는 바람
살아 있는 것들을
더욱 생동감 넘치게 하는 바람
바람은 그저 제 길을 갔을 뿐인데
제 일을 랬을 뿐인데....

제 길을 가는 사람들
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들 세상을 푸르게 한다
평화를 짓고 생명을 불어 넣는다

저 멀리 미국에서 한미정상들이 만나
죽은 한반도를 살릴 수 있을까
평화의 바람을 만들 수 있을까

오늘따라 풍경소리가 깊다
(6월 30일, 가재울에서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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