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겔 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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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유미호는 기독교환경운동연대 부설 한국교회환경연구소 연구실장 |
올해 한국교회가 함께 지킨 환경주일의 주제성구입니다. 주제어는 ‘치유와 회복, 창조세계에 주시는 은총’입니다. 교회들마다 하나님의 성전으로부터 흘러내린 생명의 물을 묵상하면서 지구 곳곳에서 생명들이 되살아나게 하는 기도를 올렸을 것입니다. 고통 중에 신음하며 하나님의 자녀를 기다리는 피조물들을 위해서 ‘참 좋은’ 세상으로의 회복을 위한 다짐의 시간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와 다짐이 지속되려면 하나님이 좋다 하신 동산 지구를 더 깊숙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비록 ‘이미’ 고통 중에 수많은 생명이 죽어갔지만 ‘아직’ 하나님의 창조를 느끼게 하는 ‘참 좋은’ 하늘과 땅과 물과 벗들을. ‘지구’라는 이름의 ‘하나님의 성소’에서 흐르는 물을 통해 탐욕을 씻어낼 수 있어야 고통 중에 있는 수많은 생명 앞에 하나님의 자녀로 당당히 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삶의 지속성을 위한 경계선을 찾는 일이 급선무일 것입니다. 경계선은 ‘우리가 지구에서부터 뽑아 쓸 수 있는 자원의 양의 한계이자 기후변화의 한계점’입니다. 우리는 그 경계 안에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설사 넘을 수 있다고 해도 넘어서는 안 될 ‘한계선’입니다. 넘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이고 오만입니다.
알다시피 우리는 이미 지구 생태계 용량을 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1980년에 포화상태가 되었고, 2015년에 1.5배를 초과하였습니다. 2030년이면 2배에 달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이제라도 경계선에 대한 신앙적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그 안에서만 사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강제할 수는 없겠지만 합의를 통해 자발적 실천을 해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피조물들을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하나님의 자녀로서 앞장서서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지금껏 우리가 탐욕스럽게 누려온 것은, 현재 고통 받고 있는 가난한 자들, 미래세대, 그리고 자연에게 진 빚입니다. 그 빚을 탕감 받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당하게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때로 우리가 경계선을 넘게 되면, 타인을 질타하기보다 나부터 돌아보면서 내 안의 ‘수치심’을 드러내며 삶을 온전히 바로 세워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위험이 일상화된 시대, 그럼에도 위험 자체를 느끼지 못하는 시대, 위험을 느끼더라도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여기며 무감각해있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비록 환경주일(예장통합과 기장 등은 6월 첫째 주일, 감리교는 6월 둘째 주일)은 지났지만 6월 한 달을 환경의 달로 삼아 하나님의 창조를 흠뻑 느낄 수 있는 곳에 나아가 우리 삶을 깊이 성찰하며, 지속가능한 삶과 지구를 위한 경계선을 세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경계선은 자신만의 필요를 누리는 이로 돌아서게 하는 기준점이 되어 줄 것입니다.
창조 은총에 감사하며 삶의 경계선을 세우는 이들을 통해 머지않은 미래에 하나님 보시기 ‘참 좋은’ 세상이 다시 되살아나게 되길 희망합니다.
* 글쓴이 유미호는 기독교환경운동연대 부설 한국교회환경연구소 연구실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