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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이 비록 그릇은 작았지만
도덕성 요구가 실효성을 거두도록
2017년 05월 30일 (화) 09:49:11 김태희 dasanforum@naver.com

올해가 「경세유표」저술 200주년이다. 다산 정약용은 「경세유표」에서 군주를 중심으로 한 일원적 관료체제 정비안을 제시하고 있다. 공공성과 효율성을 높이고자 한 것이었다. 그 밖에 많은 분량을 할애한 제도 개혁안(考績法, 田制, 賦貢制 등)은 ‘용인(用人)’과 ‘이재(理財)’의 둘로 압축할 수 있다.

‘용인’과 ‘이재’는 각각 「상서」에 나온 ‘지인(知人)’, ‘안민(安民)’과 통한다. 첫째, 인재를 잘 알아보고 잘 평가하여 인사를 공정하게 하는 것이다. 둘째, 경제를 잘 운용하여 민부(民富)를 늘리고 수취체제를 개선하여 부담을 줄여서 민생을 편안케 하는 것이다. 현대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포숙이 알아준 관중, 큰 공을 이루다

조선 후기에 도덕만을 내세워 민생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농후했다. 지나친 도덕 강조가 공허한 허위의식으로 전락한 면도 있었다. 실학자들은 그런 역사를 반성하여, 이재를 강조했다. 민생이 넉넉해야 도덕적 사회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때 많이 거론된 인물이 바로 관중(중국 춘추시대 인물)이다. 그가 말한 “곳간이 차야 예절을 알고, 의식이 넉넉해야 영욕을 안다”는 문구가 줄곧 인용되었다.

정약용도 관중을 이재에 능한 인물로 평가했는데, 관중 자신이 지인 내지 용인의 사례로 꼽힌다. 관중은 포숙아의 추천으로 제 환공에게 발탁되어 제나라가 패업을 달성하는 데 결정적 구실을 했다. 공자는 관중의 그릇이 작았다고 하면서도 그의 공로를 매우 크게 인정하였다. 관중은 유가에서 문제적 인물이었다.

「사기열전」에 따르면, 관중은 인간적으로 썩 좋은 평가를 하기 어렵다. 그가 포숙과 장사를 할 때 이익을 더 차지하곤 했다. 포숙의 일을 더 곤란하게 만들기도 했다. 세 번 벼슬길에 나가서 번번이 쫓겨났다. 세 번 전쟁에 나가 번번이 달아났다. 모시던 주군이 패사했는데 생사를 함께하지 않고, 구차하게 목숨을 건졌다.

그런데도 포숙은 관중이 가난해서 그랬다, 시운이 나빠서 그랬다, 노모가 있어서 그랬다, 사적인 의리보다 천하의 공명(功名)을 더 생각해서 그랬다 등으로 두둔했다. 포숙은 관중이 불초하다고 보기는커녕 크게 쓰일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마침내 관중은 제나라 재상이 되어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관중은 말했다. “나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이다.” 사마천은 말했다. “천하 사람들은 관중의 현명함을 칭찬하지 않고, 오히려 인재를 알아보는[知人] 포숙의 뛰어남을 칭찬했다.”

문재인 정권이 출범한 후 대통령의 인기가 아이돌 수준이다. 탈권위적 행태가 호평을 받았다. 지난 정권의 권위적 행태와의 대비 효과가 컸다. 측근 배제의 인사도 신선했다. 탕평 인사도 통합을 위한 노력으로 평가되었다. 그동안 자격·능력과 무관한 측근·보은 인사, 지역 편중 인사에 실망과 불만이 컸었다.

이러한 쾌조의 스타트는 국민의 마음을 얻기에 충분했다. 다만 아직 초기일 뿐이다. 민생부문에서 실질적 성과를 체험하지 못하면 국민들의 지지가 약해질 것이다. 또한 개혁과제를 잘 수행하지 못하면 안팎의 반발과 실망을 낳을 것이다. 이러한 것을 제대로 하려면 역시 인사가 중요하다.

도덕성 요구가 실효성을 거두도록

그런데 인사와 관련해 최근 곤혹스런 상황이 발생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 인사 5원칙을 공약한 바 있었다. 부패하더라도 능력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이 한때 있었지만, 그것은 요행을 바라는 것이었다. 국민의 도덕성 요구는 더욱 강해졌고, 인사기준 천명은 이를 반영한 것이라 환영할 만하다. 다만 실정법 위반이 곧바로 도덕성 판단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공직자에게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은 왜인가? 개인적 차원의 도덕군자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공직을 수행하려면 공(公)의식이 필요하고, 일정 수준의 도덕성이 없다면 그런 공의식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공공성과 도덕성을 각성한 국민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하지만 도덕성 요구가 오십보백보식의 흠집내기와 무차별적 정쟁거리로 전락한다면 본래 취지를 살리기 어렵다. 또한 도덕성에 관해 결벽증도 독선도 바람직하지 않다.

차제에 자격 판단의 객관적 기준을 합리적으로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공직자로서의 자질 검토는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저울질해야 한다는 게 필자의 소견이다. 향후 개혁을 추진할 때도 마찬가지다. 객관적 원칙도 중요하지만 구체적 타당성을 기하는 실질적 판단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좋은 동기만으론 부족하고 현실적 결과를 헤아려야 한다.

지난 26일(금요일) 강진에서 「경세유표」저술 20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대회(“다산 정약용, 강진에서 새로운 나라를 설계하다”, 강진다산실학연구원·다산연구소 공동주최)가 있었다. 강진 군민과 함께했던 학술대회는 고무적이었다. 「경세유표」 저술동기인 ‘신아구방(新我舊邦, 우리의 낡은 나라를 새롭게 하자)’에, 새로 막 출범한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오버랩되었기 때문이다. 어려운 때 국정을 담당하게 된 새 정부가 궁극적으로 성공해서, 임기를 마쳤을 때 국민의 종합적 평가가 높기를 기대해본다.

글쓴이 / 김태희

· 다산연구소 소장

· 저서
〈정약용, 슈퍼 히어로가 되다〉 (2016)
〈정조의 통합정치에 관한 연구〉 (2012)
〈다산, 조선의 새 길을 열다〉 (공저, 2011)
〈왜 광해군은 억울해했을까?〉 (2011) )

* 다산포럼은 새마갈노에 동시게재합니다. 컬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이 글에 대한 의견을 주실 분은 dasanforum@naver.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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