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배치 반대 ! 한반도 평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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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배치 반대 ! 한반도 평화 !
  • 류기석
  • 승인 2017.04.28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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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교회 기도회열고, 원불교 단식 돌입

어제(27일) 저녁 7시30분 어둠 속 찬바람이 몰려오는 주미대사관 옆 KT빌딩 앞에서는 매주 목요일 고난의 현장에 찾아가서 함께 하며 위로하는 306번째 촛불교회 기도회가 30여명이 모인 가운데 조촐하게 진행되었다.

   

   

마침 전날(26일) 새벽 정부가 경찰 8000여 명을 투입해 경북 성주로 향하는 모든 도로를 봉쇄하고 주민들을 강제로 고립시킨 후, 주한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장비를 성주골프장에 반입했던 터라 광화문광장주변은 곳곳에 경찰병력을 배치 미 대사관 앞은 긴장감이 돌았다.

이날 새벽 성주 주민들은 '군사작전식' 사드 배치에 강력히 항의했고, 앞으로 투쟁 방향을 '사드 배치 반대'에서 '사드 철거'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날 새벽 원불교 신자들이 도로 가운데 앉아 농성을 벌였으나 경찰은 이들을 강제 해산 시켰고, 원불교 성주성지비상대책위원회는 27일 오후 4시부터 서울 광화문 미 대사관 앞에서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다.

   

한편 대구 시민단체들도 강하게 사드배치를 비판했고, 사드배치 반대를 위한 국민행동 등도 각각 집회를 열고 정부의 환경평가 등 적법한 절차 없이 군사작전을 벌이듯 진행된 성주의 사드배치를 강력하게 항의했다.

306번째 촛불교회, 사드배치 반대 및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기도회는 강남향린교회 안성용 집사의 인도로 시작됐고, 들꽃향린교회 문재호장로님의 기도와 원불교 교무님의 전날 있었던 사드배치에 대한 생생한 시대의 증언과 앞으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사무여한(死無餘恨)'의 정신으로 가장 비폭력적이고 가장 결사적인 방식을 통해 전쟁을 반대하고 사드 반입을 저지해 평화를 정착시키고자 단식 투쟁에 돌입한다.”는 비장한 각오를 전해 들었다.

   


이어 하늘 뜻 펴기 시간에는 에스겔 37장 1-14절을 가지고 “마른 뼈와 거룩한 숨”이라는 설교를 새민족교회 황남덕목사님이 전해주었다. 열악한 상황 속에서 진행된 촛불교회 기도회는 ‘사드 배치 반대 및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기도회’로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받으며 9시쯤 마쳤다.

   

   

2008년부터 진행됐던 촛불교회 정신은

1. 고난 받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위로하는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 받는 사람들의 외침을 들으십니다. 가슴에 맺힌 한을 울부짖는 소리는 기도보다 더 원초적인 하나님과의 소통입니다. 교회는 당연히 이러한 한을 가진 사람들과 소통하고 그들 가운데 함께 하시는 주님을 만나야 할 것입니다.
유신-군사독재로 이어오는 시기에 목요기도회가 고난 받는 사람들을 초청하여 증언을 듣는 예배였다면 촛불교회는 아픔의 현장에 찾아가서 가장 큰 아픔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소통하며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위로하는 예배를 중심으로 하는 교회입니다.

2. 한국교회 갱신을 위해 필수적인 교회입니다.
평신도와 목회자가 함께 하는 기독교적인 대안 공동체로서의 기능을 해 나갈 수 있는 새로운 연대의 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목회자가 자기 교회의 평신도들과 함께 현장에 나올 수 없다면 한국교회는 절대로 개혁되지 못합니다. 양심적인 목회자와 보수적인 평신도가 서로 긴장하는 한, 그 결과는 뻔합니다. 대부분은 목회자가 변질되거나 아주 드물게 목사가 그 교회로부터 쫒겨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약 공존한다면 서로가 불만족인 어정쩡한 타협의 시간을 연장할 따름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시간을 자신의 소신도 아닌 목회로,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닌 허송시간들로 채워 간다면 주님 앞에 무엇이라 변명할 것입니까?

3. 촛불교회는 고난에 현장에 서는 교회입니다.
한국교회는 다 조직 교회의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조직은 건물과 재산을 요구하고 이를 위해 더 큰 조직을 요구합니다. 한국교회는 자체의 성장을 위해 못할 일이 없는 이상한 조직이 되어버렸습니다. 이것은 처음교회의 설립 정신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교회는 본래 야훼신앙과 예수신앙의 출발의 자리였던 현장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최초의 천막성전은 이스라엘 민족이 이동하는 대로 따라 움직이는 현장 중심의 성전이었고, 야훼의 법궤는 전쟁과 민족의 아픔이 있는 현장으로 이동해 다니는 하나님의 현존의 상징이었습니다. 초대교회의 출발점 역시 “예수와 민중이 만나는 현장”(안병무)이라고 하였습니다. 교회가 이 현장성을 회복하지 못하고 단지 조직된 교회로 자신들의 안락한 예배 공간 안에서만 머물러 있다면 이들은 하나님 없는 예배와 우상의 교회를 섬기는 것입니다. 교회는 역사와 민중의 고통의 현장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러 들판으로 현장으로 나가야 합니다.

   

4. 촛불교회는 진정한 교육의 현장입니다.
평신도들을 이론으로 교육한다면 뛰어난 선생이 필요하고 그것이 원활하게 잘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교육된 성원을 현장으로 접근시키는 것은 또 다른 결단이 요구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난 현장에 직접 세우는 촛불교회는 바로 감동이 있는 산교육의 현장이 될 수 있습니다. 자연스런 말씀의 체험과 교육과 예배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진정한 교회입니다.

5. 촛불교회는 민주적인 공동체입니다.
촛불교회는 특정한 담임목사나 대표에 의해서 운영되는 체제가 아니고 공동목회의 장, 목사나 평신도 모두가 공동으로 책임지고 공동으로 대표하는 형태가 되어야 합니다. 목회자들이나 평신도가 함께 가르치고 함께 배우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굳이 교회의 정치 형태로 말한다면 회중교회 형태가 될 것입니다.

6. 매주 모임이 가능하기에 조직 유지가 용이합니다.
‘단체’로서의 기독인 공동체가 가지는 한계점은 명백합니다. 얼마나 자주 모일 수 있겠는가? 행사치레로 한 달에 한두 번 모이는 것도 비상한 마음으로 임해야 가능하겠지만 그 이상 모이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다릅니다. 오랜 교회의 전통이 한 주일에 한번 모이는 것은 몸에 배어있습니다. 별도의 모임을 협의하고 계획하고 연락해서 모이는 과정을 간략하게 하고 매주 가장 고통받는 현장을 찾아 선정하는 일 만이 필요합니다. 그 현장에서 받는 영적 감흥은 거기까지 찾아가는 수고에 몇 십배의 열매로 화답할 것입니다.

7. 촛불정국의 열매를 촛불교회로 맺읍시다!
촛불교회가 이루어진다면 이는 우리의 선교역사상 가장 성서적인 교회가 설립되는 것입니다. 이번 촛불투쟁을 통해서 이미 ‘촛불교회’는 중요한 심볼이 되어 있습니다. 함께 참여한 단위들이 힘을 합하면 가능합니다. 라인을 통한 촛불교회를 운영하고 동시에 각 교회나 단체가 참여하여 주중 예배를 대신한 연합예배로 현장을 찾아가는 성서적 예배를 복원할 수 있습니다. 촛불교회는 매주 현장을 찾아 재미있게 운영될 수 있으며 특별한 현장이 없을 때, 또 한 달에 한번 씩은 정기 실내 예배를 통하여 구성원 간의 친교와 나눔, 영적 성장을 꾀하는 시간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촛불교회의 전국적인 확대도 이미 전국 조직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단위들이 밑걸음이 되어 뜻을 같이 하는 제반 기독인들을 연대하는 형태로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이는 새로운 형태의 연합교회운동이 될 것입니다. 사건의 현장이 꼭 수도권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촛불교회의 전국화는 필수적입니다. 사건의 현장에 모두가 내려갈 수는 없지만 해당지역 촛불교회와 연대하고 기도함으로 전국적인 연대와 참여를 강화해 나갈 수 있습니다.

위와 같이 우리는 촛불교회 설립을 제안하고 이에 공동제안자로 참여할 것을 약속합니다.

2008.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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