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떠난 들꽃여인 동네 이장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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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떠난 들꽃여인 동네 이장 되다
  • 류기석
  • 승인 2017.04.19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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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천국 양평 산귀래별서를 찾아서

겨울 내내 잎사귀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에다가 물기가 없어 죽었다고 생각했던 산수유며 개나리, 목련, 진달래, 벚, 봉숭아, 살구, 자두나무까지 일제히 꽃을 피우는 계절이 왔다.

이뿐인가 단단한 땅속에서 세찬 눈보라와 비바람을 이겨내고 생명을 유지해온 여리고 가는 초록의 생명들이 여기저기서 소생하는 마법을 부리는 부활의 4월 봄이다.

   

땅속을 뚫고 올라온 들꽃들은 작년에 살아왔던 틀을 깨고 다시금 새 틀을 만들어 살아내는 신비롭고 고귀한 부활의 삶을 연출한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 주위를 보면 다양하고 풍성한 생명들이 사람들의 탐욕과 무지로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현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생태철학자 한스 요나스는 “인간의 이기로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어머니를 죽이는 패륜과 같다”고 했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개발은 환경을 파괴하는 차원이 아니라 보존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 아름다운 봄날 누구에게는 기쁨인 반면 누구에게는 힘들고 슬픈 봄날임을 기억하면서 예수께서 부활 후 첫째 날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돌아가라고 하신 의미를 되새겨본다. 이는 이방인의 땅, 어둠의 땅 갈릴리에서 힘없고 돈 없는 그래서 멸시와 천대, 아픔과 괴로움으로 소외당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곳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동식물들로 더불어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살라고 하신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어느 따스한 봄날 우리부부는 양평 산귀래별서라는 식물원도 아닌 들꽃정원을 찾아가다가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목왕1리 초입에 엄청난 경사도의 산허리를 파헤쳐 전원주택지를 조성하는 흉측한 모습을 봐야 하는 고충을 겪게 됐다. 

그곳을 지나면서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강이 보이는 산과 풍광이 좋은 곳의 산은 모조리 파헤쳐 전원주택지를 조성하려고 애를 쓰는 무지함, 천박한 돈벌이와 전시행정, 하나뿐인 풍경마저도 상품으로 이용하려는 물신주의 등 인간의 추악한 욕망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했다. 

우리가 잠깐 동안 빌려 쓰고 돌려줘야 할 소중한 자연과 그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지역과 공동체 삶까지도 분명 파괴했을 욕망의 현장을 넘어서니 내가 찾았던 박수주(72세)님의 산귀래별서가 있었다. ‘산귀래’는 망개떡에 사용되는 청미래 덩굴의 옛말이며, 산으로 돌아간다는 뜻이고, ‘별서’는 별장을 겸한 농막의 옛 이름으로 중국에서는 요즘도 아파트 이름으로 사용하기도 한단다.

   

목왕2리 양지바른 한적한 골짜기 전체가 야생화들로 아우성이다. 이곳 입구에 강열하게 핀 노오란 삼척양지꽃으로부터 벌써 피고 진 다양한 수선화, 금낭화, 아마릴리스, 다원종인 튜울립과 덤으로 얻은 벚꽃 숲 풍경까지 인상적이었다.

바람소리와 새소리뿐인 조용한 사골집의 돌담과 좀 떨어진 곳에 돌집 그리고 중앙에 커다랗고 둥그런 잔디정원에 담긴 깊은 이야기로 봄날 가는 줄 모르고 봄 풍경을 마음속에 담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곳은 10년 전 야생화의 천국 산귀래 별서 식물원으로 운영될 때 방문하려고 했던 곳인데 이제서야 찾았던 것이다. 양평 우체국을 잠시 다녀오신 박수주님은 시골 할머니 모습보다는 곱고 단아한 들꽃여인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산귀래는 박수주님이 지난 94년부터 2만2천여 평의 부지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 조성한 개인 식물원이다. 이곳에 일반 식물원과는 차별화된 복수초, 노루귀, 구절초, 금낭화, 개불알꽃, 피나물, 매발톱 등 야생화만을 심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야생화들은 꽃이 지면 잡초처럼 변하게 되고, 다음해가 될 때까지 휑하게 되니 식물원으로서의 역할이 부족하여 힘들었다고 한다. 사람의 뜻대로 자연을 가꾸기가 힘들다는 교훈을 가슴깊이 느꼈던 것이다.

30년 이상을 들꽃과 함께한 손마디를 보여주시는데 굵어지고 휘어져 지금껏 꽃과 식물을 어떻게 가꾸었는지 능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작년부터는 목왕2리 이장으로 수고하고 계신 박수주님은 사실 유명 수필가라고 한다.

   

산과 들과 바람을 노래해 온 그가 올해로 10회째 수필 분야에 ‘산귀래 문학상’을 제정해 매년 중견 수필가와 신인 수필가에게 상도 재정하여 준다니 좋은 마음이 엿보인다.

그녀는 마흔 살 이전에 양평 목왕리 일대에 목장을 할 계획으로 땅을 마련, 야생화를 하나둘 가꾸면서 파란만장한 여생을 보낸 것 같다. 지금은 1,800여평의 부지에서 들꽃정원을 돌보며 와인, 도자기, 천연염색에 이어 바느질에까지 배움의 여정에 여념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지금껏 말 못할 사연들도 여럿 마음 한 켠에 가지고 계시다는 것도 차를 나누며 알게 되었다. 산귀래별서의 늦은 오후가 찾아오고서야 담소를 마치고 일어섰다.

그런데 박수주님은 들꽃들이 있는 정원으로 또 나가신다. 한시도 쉬지 않고 자연을 벗 삼아 일을 해온 그의 뒷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다음번에 방문할 때는 함께 풀을 메자고 하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양수리를 지나면서 저마다 새로운 부활의 봄을 맞아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 알기보다는 예수살기로 매일매일 참 행복을 누리며 살아야함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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