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우리의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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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우리의 생명이다
  • 유미호
  • 승인 2017.04.02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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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카 설치에 대한 생태신학문서 출간

“케이블카 설치에 관한 생태 신학적 입장”을 담은 문서가 ‘산은 우리의 생명이다’라는 제목으로 마련되었습니다. 이 문서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생명윤리위원회와 기독교환경운동연대 부설 한국교회환경연구소가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를 둘러싸고 활동해온 강원지역 교회와 주민들의 활동에 기초하여 산의 신학적 의미를 재구성해보고 그것이 가진 소중함을 되돌아보자는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문서가 마련되던 중 설악산 케이블카는 다행히도 부결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문서는 산과 생태계의 생명에 대한 신학적 숙고와 성찰을 담고 있다는 데에서 여전히 그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장성과 그 긴장감을 잃지 않았습니다. 설악산에 이어 지리산국립공원 등지에서도 서른 개 이상의 케이블카 사업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상국립공원개발을 가능하게 할 동서남해안내륙개발 특별법과 백두대간 줄기를 제외한 산지규제완화로 대규모 관광개발을 추진하는 산악관광개발법 등이, 모든 인허가 과정을 무시하고 개발하도록 하는 규제프리존법이 20대 국회에 계류 중에 있습니다.

산은 어떤 방식으로도 가치 매길 수 없고 대가를 따질 수 없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입니다. 그 산이 지금 주어진 것에 만족할 줄 모르는 끝없는 탐욕과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교만에 의해 난개발업자들에게 거저 넘겨질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강줄기는 터무니없는 콘크리트 보에 가로막혀있고 산은 더 높은 곳을 구경해보겠다는 인간의 무지한 호기심과 그를 부추기는 건설 자본에 의해 속절없이 베이며 깎여나가고 있습니다. 우릴 끌어 안아주고 품어주던 강산이 강도 맞아 헐벗은 상태로 우리에게 의로운 시선을 바라고 있습니다.

1. 산은 선물입니다(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롬6:23)
2. 산을 보전하는 것은 정의를 실현하는 일입니다(정의에 굳게 서는 사람은 생명에 이릅니다, 잠11:19)
3. 산은 우리의 ‘강도 만난 이웃’입니다(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눅10:36)
4. 케이블카는 이웃의 생명을 짓밟고 오를 것입니다.

바라기는 이 문서가 바탕이 되어 그리스도인들이 벌거벗은 강산을 온전히 바라봄으로 지구의 숨통이 다시금 트이고, 다양한 생명체들의 잃었던 처소와 고향을 되찾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특별히 지금도 산지 개발의 현장 속에서 그를 지켜내기 위해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곳에 다소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며, 그리스도인들의 적극적인 기도와 방문, 일상에서의 실천을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반대’ 신학문서
- 산은 우리의 생명이다

▪상황 :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추진배경과 문제

설악산은 우리나라 최초의 천연보호구역(1965년)이자 UNESCO 생물권보전지역(1982년)입니다. 지정된 이후 20년 동안 다른 곳이 지정되지 않았을 정도로 독보적인 자연환경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 우수성은 관리부처가 경쟁적으로 국제적 보호지역으로 가치를 높이려 한 데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곳에 세 번의 파괴 시도가 있었습니다. 양양군 서면 오색리에서 설악산 끝청에 이르는 3.5km 구간에 약 460억(후에 587억으로 증가)의 예산을 들여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는 시도입니다. 1차 시도는 2012년 국립공원 케이블카 시범사업 선정 심의에서 부결되었습니다(6.26). “정상인 대청봉과 가깝고 국립공원특별보호구역 내 위치”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2013년 신청된 설악산 케이블카 2차 시범노선(오색-관모능선) 역시 재 부결되었습니다(9.25). “멸종 위기 종 산양 주요서식지, 친환경 보전대책 후퇴, 친환경 교통대책 미흡”이 주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강원도와 양양군은 포기하지 않고 3차 사업신청을 또 시도했습니다. 2015년 4월 29일 설악산 국립공원 케이블카 설치사업을 위해 환경부에 공원계획변경승인을 신청한 것입니다.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는 그 해 8월 28일 7개 부대조건을 전제로 심의 통과시켰습니다. 다행히 이 사업은 2016년 12월 문화재위원회가 문화재현상변경허가를 전원합의로 부결되었고, 현재 사업취소 관련 행정소송이 진행 중입니다.

당초 이 사업은 시도조차 불가능했었습니다. 설악산엔 ‘국립공원, 백두대간보호구역,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천연보호구역, 생물권보전지역’이라는 다섯 가지의 법정 보호 장치가 있습니다. 환경부가 1,2차 사업을 반려시킨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런데 3차 때는 ‘사업반려조건’이 ‘조건부 승인’으로 바뀝니다. ‘환경영향평가서’가 거짓 조작되었던 것입니다. 원주지방환경청은 조작 사실이 밝혀진 후에도 사업을 반려하지 않고 계속 보완 협의하였는데, 이는 정권-재벌-언론-공안마피아(검찰, 경찰, 국정원, 재판부)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강원도와 양양군은 대통령이 강원도에서 첫 지자체 업무보고를 한 후 ‘오색삭도추진단’을 설립하고 정부는 물론 전경련과 긴밀히 협의에 들어갑니다. 그러다가 2015년 4월 29일 3차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신청서를 제출합니다. 청와대는 방문 직후 환경부에 “오색로프웨이(케이블카) 사업(국립공원 내 로프웨이 시법사업 추가 선정절차)을 서두르라”고 지시하였습니다. 2014년 6월 8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자연공원 내 케이블카(설악산 케이블카), 산지, 초지 내에 ‘승마장 건립’을 신고제로 전환하는 내용을 포함한 산지관광개발을 정책 제안하였습니다. 그리고 2014년 10월 30일 대통령은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설악산에 케이블카 사업도 조기에 추진이 됐으면 한다”며 “환경부에서도 다 준비가 돼 있는데 좀 빨리 시작됐으면 한다”고 당부합니다. 발언 전 2014년 9월 11일 ~ 2015년 1월 27일에 걸쳐 네 차례의 비밀회의가 있었습니다. 이 회의에서 문화재현상변경(문화재청), 산지전용허가(산림청), 환경영향평가(환경부) 등 인허가 관련한 행정적 절차를 사업자가 아닌 중앙정부가 체계적으로 컨설팅을 해준 것입니다. 4차 비밀 TF회의가 끝난 다음날인 2015년 1월 28일 문화체육부 차관이 설악산케이블카 건설을 포함한 중점관광계획을 발표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양양군은 국립공원위원회의 심의를 통과시키기 위해서 ‘경제 활성화’를 강조합니다. 그리고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의 경제성보고서를 조작하여 제출합니다. 그리고 환경부는 그를 묵인합니다. 2015년 8월 28일 환경부 차관이 위원장으로 있는 국립공원위원회는 국방부. 해수부 등의 관련 없는 위원들이 참여한 가운데 7가지 부대조건을 걸고 사업을 승인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언론은 정부와 지방정부의 사업에 대해 적극 찬성입장 의견을 보도했습니다. 비판적인 칼럼 기고자는 데스크에서 배제되었습니다. 언론의 비판적 기능은 가장 중요한 고객인 전경련 산하 기업들과 지방정부의 광고수익과 특혜로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언론의 목숨 줄은 독자가 아니라 재벌과 정부가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언론은 정권과 재벌의 동조자이자 권력자였습니다.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 반대운동은 어쨌든 일단 끝났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은 아닙니다. 이 사업에 이어 지리산국립공원 등지에서 33개의 케이블카 사업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해상국립공원개발을 가능하게 할 동서남해안내륙개발 특별법과 백두대간 줄기를 제외한 산지규제완화로 대규모 관광개발을 추진하는 산악관광개발법 등이, 모든 인허가 과정을 무시하고 개발하도록 하는 규제프리존법이 20대 국회에 계류 중입니다.

검찰과 경찰, 국정원, 사법부로 연결된 공안마피아는 반대하는 이들을 징역형과 벌금형으로 탄압합니다. 정부와 재벌의 편에서 공권력을 행사합니다. 강원도청과 원주지방환경청, 양양군청 등에서 벌어진 기자회견과 농성으로 30여 명이 벌금형과 징역형을 구형 받거나 선고받았고, 재판 중입니다. 권력의 영향을 받는 사법부의 선한 판결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사업은 지방정부인 강원도와 양양군을 포함한 정권 – 재벌 – 언론 - 공안마피아의 연결고리 안에서 이해해야 정확히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반대 싸움은 산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지만 자본과 정권에 대한 싸움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설악산 케이블카, 강원도 골프장, 삼척 핵발전소 문제를 풀기 위해서 강원생명평화기도회가 300여 차례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는 이유입니다.

▪성찰 : 산은 우리의 생명입니다

1. 산은 선물입니다.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롬6:23).

산은 생명입니다. 따라서 산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선물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산 앞에서, 대가를 바라는 어떤 시도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더욱이 산은 단지 생명이 아니라 풍성한 생명이며, 생명을 잉태하는 생명입니다. 선물로 주어진 생명의 풍성함 앞에서, 우리는 고개를 숙여 존경하며, 고개를 들어 찬탄할 수 있을 뿐입니다. 생명을 잉태하는 생명 앞에서, 우리는 신의 자비와 사랑을 묵상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산 앞에서 시장놀음을 논하지 마십시오. 돈놀이를 해보겠다고 들이대지 마십시오. 산은 대가를 따져서는 안 되는 곳입니다. 시장판이 될 수 없는 곳입니다. 장사꾼들이 중장비를 몰고 와서 시장으로 꾸밀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러나 금융자본과 결탁한 재벌들은 돈으로 정권의 힘을 사고, 언론의 눈과 귀를 사고, 사법부가 발행하는 면죄부를 사더니, 이제는 산에서 장사를 하겠다고 합니다. 생명을 팔아서 돈 잔치를 하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산 앞에서 뿌려대는 돈은 어디에서 나온 것입니까?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부당하게 착취하고, 시민들의 세금을 뻔뻔하게 도둑질해서 모은 돈이 아닙니까? 그들의 돈은 노동자들과 시민들의 생명을 팔아서 모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인간의 생명을 빼앗아서 모은 돈으로 이제는 산의 생명을 빼앗겠다고 합니다. 재벌들은 돈을 매개로 인간의 생명과 산의 생명을 모두 착취하려고 하는 셈입니다. 그러고는 참담하게도 산의 생명을 팔아서 대가를 챙기려고 합니다.
분명하게 다시 한 번 말합니다. 산은 누구의 대가도 요구할 수 없는 선물입니다.

2. 산을 보전하는 것은 정의를 실현하는 일입니다.
“정의에 굳게 서는 사람은 생명에 이릅니다”(잠11:19).

한국사회는 민중과 시민들이 생명을 바쳐 희생함으로써 정치적 민주화를 이룩하였습니다. 이들의 희생은 한국사회가 정의로 통치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희망에 다름 아닙니다. 일찍이 이스라엘의 통치자였던 솔로몬도 이미 알고 있었듯, 정의롭게 사는 사람들이 거두는 열매는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정의로운 사회에서는 생명을 풍요로 이끄는 제도와 정책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민중과 시민들이 바친 생명으로 인해 생명이 되살아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요11:16)고 외치는 도마의 부름에 따라나선 사람들입니다. 예수와 함께 죽음으로써 예수와 함께 생명을 살렸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국사회 민중과 시민들의 정의를 향한 열망은 통치권자들의 탐욕에 의해 훼손되었습니다. 정권은 재벌과 결탁해서 사회 곳곳이 온통 시장이 되도록 조장하고 도왔으며, 재벌들과 공모하여 노동자들의 노동을 착취하고 시민들의 혈세를 도둑질했습니다. 그 결과는 자살률 세계 1위를 자랑하는 죽음의 사회입니다. 한국의 정권은 민중과 시민들의 생명을 팔아서 죽음의 사회를 만들고, 재벌들과 함께 돈과 권력을 나누었습니다.

이들의 탐욕스러운 결탁은 인간의 생명을 넘어 다른 생명체들에게까지 마수를 뻗고 있습니다. 그들의 탐욕이 산을 타고 오르고 있습니다. 산의 생명을 죽여서 돈과 권력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정권에게 생명을 살리시는 하나님의 정의가 탄압받고 있습니다. 산을 죽이는 권력은 불의한 힘입니다. 재벌들의 뒤를 봐주는 권력이 우리의 생명 탯줄인 산의 생명을 훼손하는 일에 앞장섬으로써 죽음의 세력이 한반도 산하 곳곳에서 위용을 떨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제 정치적 민주화를 이끌었던 민중과 시민들의 사회정의를 향한 열망은 죽음의 위협 앞에서 호소하고 있는 산 앞에 다시 서야 합니다. 사회정의에서 생명정의로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재벌과 결탁한 정권의 불의에 맞서 산을 보전하고 지켜내야 합니다. 산을 보전하는 것은 생명을 살리는 일이며,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3. 산은 우리의 ‘강도 만난 이웃’입니다.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눅10:36)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자비를 베푼 자”(눅10:37)였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누가 ‘자비를 베푼 자’입니까? 한반도 전체의 65%를 차지하는 산은 우리의 생명을 지키는 중요한 탯줄입니다. 강의 발원지이자 지구의 숨통이며, 다양한 생명체들의 집이고 고향입니다. 산은 생명을 지키고 풍성하게 자라게 함으로써 우리 인간을 비롯한 많은 생명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있습니다. 우리가 ‘강도당한 자’처럼 생존이 경각에 달릴 때마다, 산은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는 참된 이웃이었습니다.

하지만 재벌과 정권은 산의 자비를 탐욕스런 폭력으로 갚아왔습니다. 산을 통째로 잘라내고 나무를 베어내며, 4대강 물을 가두어 썩게 했습니다. 이들은 우리 이웃 산의 자비를 배은망덕으로 갚음으로써 산의 생명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이웃이 있다면, 그들의 불의에 눈 감고 귀를 막으며 그들의 탐욕을 윤기 나게 포장하여 큰소리로 선전하는 언론과, 솜방망이 처벌과 덮어주기 수사로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공안마피아일 것입니다. 이들은 우리의 산이 아파하며 죽음의 위협에 시달릴 때 그 아픔을 외면하였고 그 소리를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오늘날 누가 ‘강도당한 자’입니까? 고통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자가 누구입니까? 생명이 경각에 달려 아우성치는 자가 누구입니까? 재벌과 정권의 폭력 앞에서 위기에 처한 한반도의 산이 아닙니까? 언론과 공안마피아의 외면 속에서 신음과 외침이 삭제당한 산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누가 우리 산의 이웃입니까? 누가 우리 산의 훼손과 파괴를 자기 몸의 훼손과 파괴로 여겨 억울해 합니까? 누가 생명을 회복하도록 돕습니까? 산은 ‘강도만난 자’인 우리 생명의 이웃이 되어주는데, 이제 누가 산속으로 비집고 들어가 함께 어울리겠습니까? 한반도의 산은 우리에게 충분히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그들의 자비가 우리의 자비를 기다립니다.

4. 케이블카는 이웃의 생명을 짓밟고 오를 것입니다.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사업은 재벌, 정권, 언론, 공안마피아의 부패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기점으로 관광 상품으로 내놓아 수익을 올리겠다’는 발상에 기초한 이 사업은 수익 이상도 이하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이 사업의 수익은 건설 단계에서 발생할 수는 있어도 건설 이후 관광운영에서 발생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이 사업이 건설하는 과정에 관련된 사람들의 이익에만 기여하지, 강원도민이나 대한민국 시민 일반의 이익에는 기여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뜻합니다. 오히려 이 사업은 공적 이익을 담보로 재벌과 그 부역자들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사업입니다. 사업의 향후 적자를 공적 자금으로 메꿈으로써 공적 이익을 재벌과 부역자들의 사적 이익으로 전환시키려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나아가 이 사업은 설악산의 생태환경을 복원 불가능하게 훼손하는 폭력적 개발 사업입니다. 이 개발 사업으로 인해 가장 큰 위험에 처하게 될 산양은 멸종위기 1급으로 지정된 보호종입니다. 오색 케이블카를 설치하려 했던 지역은 산양의 서식지로 이 개발 사업을 강행했을 경우 산양의 서식지가 파괴되어 이들의 생명을 더 이상 보장할 수 없게 되었을 것입니다. 땅이 파헤쳐지고 나무가 잘려나갔을 것이며, 그런 식으로 자연을 훼손하고 숱한 생명을 죽음으로 내몰았을 것입니다. 케이블카가 한 번 순환할 때마다, 이 순환을 담보로 ‘돈’이 교환될 때마다, 설악산은 ‘강도당한 자’가 되어 신음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렇듯 수많은 생명이 의지하고 있는 산에 설치되는 케이블카 사업은 가난과 불평등을 심화하고 생명과 생명의 보금자리인 생태환경을 훼손하며 파괴하는 일입니다.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사업에서 보았듯 사회적 문제와 생명의 문제가 결합된 탐욕과 불의의 논리가 그대로 드러나는 사업들입니다. 이 논리 속에서는 산양을 비롯한 무수한 생명들이 소외와 배제의 극단에 몰려 죽음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들의 생명을 담보로 소수의 부유한 자들은 자신들의 부를 더 쌓아올리고, 이를 바탕으로 힘을 과시할 것입니다. 이들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산등성이를 타고 오를 케이블카는 우리와 우리 이웃의 생명을 짓밟으며 산에 오르게 될 것입니다.


이후로도 계속될 케이블카 사업 등 산지개발을 예의주시하면서, 우리는 재벌과 정권의 탐욕을 막아야 합니다. 언론과 공안마피아의 불의를 심판해야 합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하나님의 자비는, 우리가 이 케이블카를 막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산이 우리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적용 : 산 지킴이들의 실천 강령

1. 설악산 등에 건설되는 케이블카 건설 문제를 공유합니다.
2. 산을 선물로 받은 생명이 풍성함을 누릴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3. 산을 모든 생명이 골고루 누리게 함으로 이웃 사랑을 실천합니다.
4. 내가 살고 있는 곳에 있는 자연보전지역을 찾아 주변에 알리고 함께 돌봅니다.
5. 산과 함께 신음하며 매주 드리는 강원 생명평화 기도회에 참여합니다.

2017. 2. 8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생명⋅윤리위원회
기독교환경운동연대 부설 한국교회환경연구소

* 예식 : ‘우리의 생명, 신음하는 산과 함께 드리는 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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