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대하여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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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대하여 한마디...
  • 김홍한
  • 승인 2017.03.23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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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뜻’이라는 말을 오늘날은 국민의 뜻 혹은 여론이라는 말로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이 여론은 조작된다. 여론이라는 것은 개개인의 의견들이 모아지고 종합되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선전선동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언론은 여론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의도대로 여론을 만들어 간다.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뜻을 언론을 통하여 여론화한다. 경제인도 마찬가지다. 대중이 필요한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먼저 만들어서 대중에게 필요하고 좋은 것이라고 선전한다. 여론의 주체는 개개인이 아니라 언론이다. 언론을 장악할 수 있는 사람들의 의도에 따라서 여론은 만들어진다.

언론은 여론을 만드는 권력이다. 그래서 언론을 장악하기 위한 투쟁은 치열하다. 언론을 장악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때로는 무력으로 때로는 금력으로 때로는 전문지식으로, 때로는 인맥으로 한다.
언론은 언론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누구나 말을 하고 누구나 여론을 형성할 수 있다. 그러나 언론인들은 자신들의 말을 많은 이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매체를 가지고 있다는 면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권력자이다.

언론이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언론인도 총칼 앞에는 무력하다. 언론인들도 먹고 살아야 하니 금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무력과 금력에 철저히 종속되어 있다면 더 이상 언론은 권력이 아니다. 그러니 언론은 항상 권력과의 팽팽한 긴장 가운데서 그 힘을 유지할 수 있고 그럴 때 존재의미가 있다.

언론인에게 사실이 중요할까 해석이중요할까? 해석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전제가 있다.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한에서이다. 어떠한 사건에 대해서 극우 논조이건 극좌 논조이건 그것은 용납될 수 있다. 그러나 명백한 객관적 사실을 왜곡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범죄행위로 용납할 수 없다.

어느 사회에서든 언론은 그 사회의 한 가운데 있다. 때로는 가장 추한 모습이었고, 때로는 진실을 지키는 보루의 역할도 했다. 먹고살기 위해서 공갈과 협박을 일삼기도 했고 권력을 얻기 위해서 권력자에게 아부하기도 하였다. 총칼에 의하여 쫓겨나기도 하였다. 특정인, 특정집단을 위하여 전력투구하기도 하고 그 반대도 하였다. 의도적으로 진실을 감추기도 하고 왜곡시키기도 하였다. 특정 사실을 과장하고 축소하기도 하였다. 정말 실수로 오보를 내보내기도 하였다. 의도적으로 혹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특정인, 특정집단에 큰 피해를 주기도 했으며 역시 큰 이익을 주기도 하였다.

어느 사회, 어느 집단에게도 같은 현상이지만 모두가 의로운 것도 아니고 모두가 타락한 것도 아니다. 언론도 마찬가지 이다. 어떤 이는 무지막지하게 타락했고 어떤 이는 올곧은 이도 있었다. 타락했건 올곧았건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적당히 타협하였다. 그리고 그 기준이 때와 장소, 사람에 따라서 利가 되기도 하고 義가 되기도 하였다.

일제 강점기, 조선의 지식인들은 정계, 재계, 관계에 진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인재들은 언론과 문학에 몰려 있었다. 해방과 함께 우리나라의 언론은 자유를 찾았다. 그러나 좌파언론에게는 자유가 없었다. 미 군정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유당 때 우리나라 언론인들은 월급이 없었다. (이후 오래 동안, 지금도 상당수의 언론인들이 월급이 없다.) 당시 언론인들은 대부분 먹고살기 위해서 부정과 부패가 있는 곳은 물론 어디든지 찾아가서 공갈과 협박을 일삼는 하이에나 같았고 비굴한 아첨을 일삼는 간신배와 같았다. 당시 유일하게 자유당정권에 도전했던 언론이라면 천주교계열의 경향신문이었는데 폐간과 복간을 거듭했다.

1960년 4월 혁명이후 잠시 동안 이지만 언론은 무한한 자유를 누렸다. 그러나 그 자유는 언론인이 투쟁하여 얻은 값진 자유가 아닌 학생들에 의하여 거저 얻은 자유였기에 자유가 아닌 방종이었다. 당시 언론은 무책임하고 대안 없는 비판과 비난으로 일관했다. 자유당정권은 경찰로 인하여 망했다면 장면내각은 언론으로 인하여 망했다는 말이 공공연했다.

1961년 2월 민족일보가 창간되었다. 민족의 진로를 가리키는 신문, 부정부패를 고발하는 신문, 근로대중의 권익을 옹호하는 신문, 양단된 조국의 비애를 호소하는 신문, “우리는 소수의 이익이 아니라 다수의 이익을 위해 봉사 한다”고 하면서 모처럼 신문다운 신문이 창간 되는듯 하였으나 잇따라 발생한 5·16 군사 쿠데타 세력은 민족일보를 용인할 수 없었다. 사장 조용수는 32세의 젊은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후 박정희의 최대 정적으로 등장한 장준하가 언론인다운 언론인으로 거침없이 진실을 밝혔으나 1975년 4월 의문사 하였다.

1972년 10월 유신독재시대가 시작되면서 언론은 공식적으로 자유를 잃었다. 견디다 못한 뜻있는 기자들이 1974년 10월 동아일보를 중심으로 자유언론 투쟁을 벌인 것이 우리나라 언론의 기상이었다.

1980년 신군부 또한 언론을 그냥 두지 않았다. 5.31일 700명의 기자들을 해직시키고 신문사들을 통폐합하였다. 그리고 11월에는 방송사들도 통폐합시켰다. 비교적 공정한 보도를 하던 기독교방송은 아예 보도기능을 박탈해 버렸다.

1987년 6월 항쟁의 승리는 언론의 숨통을 트이게 했다. 1988년 5월에는 신문다운 신문으로 한겨레신문이 창간되었다.

언론이 언론다운 것은 외부의 영향과는 관계가 없다. 언제든지 외부의 압력은 있었다. 그 압력의 형태만 다를 뿐이다. 꼭 총과 칼의 협박만이 압력은 아니다. 사주에 의한 인사조치도 압력이고 두둑한 촌지도 큰 압력이다. 학연, 지연, 혈연관계도 압력이다. 언론인 자신의 무지와 독선과 편견은 무엇보다도 큰 장애물이다. 더욱 큰 장애요소는 언론인의 권력욕이다.

오늘날 우리는 정보화시대를 살고 있다. 정부와 언론사들에 의하여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정보에서 이제는 누구나 말할 수 있고 글 쓸 수 있는 쌍방향 통신의 시대를 살고 있다. 꽁꽁 숨겨져 있던 비밀도 누구인지 모르는 한 두 사람에 의해서 전국, 아니 전 세계로 순식간에 퍼져 나갈 수 있다. 언론인들의 정보독점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여론을 만드는 주체가 언론에서 네티즌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보화의 시대에 언론이 제 역할을 하고 또 살아남으려면 권력의식을 버려야 한다. 국민을 계몽하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국민들을 우매한 대중으로 보고 섣부를 선전 선동으로 몰아가려다가는 큰코다친다. 정보화 시대에는 국민 모두가 기자이고 언론인이다.

오늘날, 힘 있는 정치인중 상당수가 언론인 출신인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언론인 출신이 정치인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정치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법조인, 경제인, 농민, 회사원, 종교인, 군인, 학생.....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정치다. 그러나 지금 종교인이 정치에 뜻을 둔다면 그의 종교행위는 결코 종교행위일 수 없다. 지금 군인이 정치에 뜻을 둔다면 매우 위험하다. 또한 언론인이 정치에 뜻을 둔다면 그의 언론활동은 왜곡될 수 밖에 없다. 정치를 할 때 하더라도 적어도 지금 종교인은, 지금 법조인은, 지금 군인은, 지금 언론인은 정치권력에 뜻을 두어서는 안 된다. 지금 그의 직업이 왜곡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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