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이후와 연한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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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이후와 연한 순
  • 김달성
  • 승인 2016.11.27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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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마음의 촛불을 켜야 한다

박근혜-최순실이 주도한 국기문란 사건으로 촉발된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국에서 마치 활화산처럼 분노를 터트리며 저항한다. 연일 광장 여기저기서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급기야 지난 11월 12일(토)엔 서울 광화문에만 100만 명, 19일(토)에는 전국 여기저기서 또 100만 명의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대통령의 즉각적인 퇴진과 집권당의 해체를 촉구했다. 네 주 째 박근혜 지지율(5%)은 바닥을 기고 있다. 이미 식물정부가 되었다. 야당들은 손을 잡고 시민들의 운동에 부응하여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며 특검법을 통과시켰다. 아울러 대통령 탄핵을 준비하고 있다. 어제 검찰은 이번 국기문란 사건의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박근혜를 주범으로 지목했다.

   

이게 나라냐!

몇 주째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여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점을 느꼈다. 가령, 6월 항쟁(1987년)과 달랐다. 그 때는 시위가 좀 거칠면서(최루탄, 화염병이 난무하는) 대통령 직선제 쟁취에 몰두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집회 규모가 더 클 뿐 아니라 초, 중, 고등학생들은 물론 유모차를 끄는 엄마나 장애인들도 참여하는 평화로운 집회다. 또 하나의 큰 특징은 비장함보다는 축제 같은 분위기에 있다. 단지 절망에 찬 분노만이 아니라 무엇인가 희망 어린 낯빛들이 역력하다. "이게 나라냐!"며 많은 시민들이 탄식하지만, 그 구호 속에는 새 나라를 세우려는 의지나 열망이 깃들어 있다.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도 뜨거웠지만 그 때는 이명박 정권 초기로서 이미 들어선 정부의 정책 변화를 촉구하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이번 시민행동은 정권 말기에 그 정권퇴진과 아울러 새 정권과 사회를 세우려는 열망을 품고 있다. 단순히 인물 바꾸기나 정권 교체만이 아니라 그 너머까지 보려는 눈빛들이 뚜렷하다.

"이게 나라냐!"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본다. 첫째는 대한민국의 추악한 민낯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많은 국민이 속속들이 썩은 사회의 구조적인 적폐를 직시하고 있다. 특히 정경유착(재벌과 정권의 유착)이나 국가의 사유화라는 몰골을 본다. 둘째는 낡고 썩은 나라를 청산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는 의지와 열망이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많은 시민들은 사회의 부분적인 수정이 아니라 대대적인 변혁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단순히 어느 사람이나 일부 집단의 교체 정도가 아니라 사회의 전반적인 구조적 개혁을 희구한다. 많은 사람들은 한국을 중병에 걸린 상태로 진단했다. 따라서 이제 대수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근본적인 체질 개선까지.

맞다. 지금 한국은 중병에 걸려 있다. 어찌 보면 북한 못지않은 중병이다. 수령주의에 입각한 왕조국가, 3대째 세습을 한 북한에 버금가는 큰 병에 걸린 게 한국이다. 우리의 병은 몸의 어느 한 부분만 걸린 게 아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기관마다 세포마다 장기간에 걸쳐 생긴 깊은 고질병이다. 이 병을 고치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나. 무슨 방법이 있나. 수술을 어떻게 하고 무슨 약을 써야 하는가. 깊은 병에 걸린 한국에서 태어나 그 속에서 병든 교육을 받고 자란 우리에게 치유의 지혜와 능력은 있는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큰 수술이 필요하다. 시급하다. 집중적으로 칼을 대야 할 곳은 구조적인 변혁이다. 그 변혁 가운데 우리가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은 불평등구조의 변혁이다. 이것 없이는 백약이 무효하고 그 어떤 처치도 소용이 없다. 우리는 삼겹살을 불판에 구워 먹다가 불판을 종종 갈아준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신선한 고기를 올려놓고 정성껏 구워도 맛난 고기를 먹을 수가 없다. 지금 한국사회는 판을 갈아야 할 때다.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한국의 불평등 정도는 OECD국가들 가운데 선두를 차지한다. 최고 불평등한 국가 미국을 바싹 뒤좇고 있다. 이 구조는 지난 1960년대부터 오랫동안 누적된 결과물이다. 특히 IMF(1997) 이후 신자유주의(말기적인 악성 자본주의) 정책을 적극 추진하면서 심화되었다. 이 불평등 현상은 갈수록 악화되며 고착화 되고 있다. 부나 가난이 대물림되는 소위 세습자본주의적 성격을 갖는다. 2004~2014년까지 한국의 경제 성장률은 74%였다. 하지만 그 기간 노동자들의 임금은 그 절반밖에 오르지 않았다. 자영업자들의 이익은 오히려 18%나 줄었다. 정부의 수입도 거의 제자리다. 결국 성장의 열매를 기업 특히 소수 재벌들이 독식한 것이다. 현재 재벌 100대 기업은 고용은 고작 4%만 하면서 일 년 나라 전체 이익의 60%를 차지한다. 지금 대기업들이 쌓아놓은 돈(사내유보금)은 1,000조가 넘고 가계부채는 1,500조나 된다. 대기업 임원의 시급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시급보다 수 백 배 혹은 천 배가 넘기도 한다. 이러니 갈수록 소비는 줄고 내수경기는 둔화된다. 낙수효과? 여기서 그런 거 없다. 갈수록 양극화 현상은 깊어간다. 부익부빈익빈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극심한 양극화 구조, 1:99구조는 시간이 흐를수록 나라를 사지가 마비된 사람처럼 만들어버린다.

한국사회의 불평등구조는 삼겹줄로 되어 있다. 콘크리트 같은 3중 구조다. 첫째는 대기업(300명 이상)과 중소기업 사이의 불평등구조다. 나라 전체 노동자의 20%만 고용하는 대기업들이 중소기업들을 착취한다.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은 대기업 노동자의 절반 정도다. 둘째는 소위 원청기업과 하청기업 사이의 불평등 구조다. 여기서도 원청은 하청을 철저히 착취한다. 하청기업의 노동자는 원청기업 노동자 임금의 절반 정도밖에 못 받는다. 셋째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불평등구조다. 전체 노동자(2천만) 가운데 약 절반이 비정규직이고, 그들의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같은 작업장에서 똑같은 일을 해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임금은 반 토막이다. 이러한 야만적인 3중의 착취구조에다가 덧붙일 불평등구조가 또 있다. 남녀 임금격차다. 우리나라 남녀 임금격차는 OECD국가들 가운데 1위다. 평균적으로 여자가 남자보다 36.7% 덜 받는다. 한국 여성의 교육수준은 세계 상위권인데 노동시장에서의 지위는 최하위다.

앞에서 살펴본 불평등 착취구조는 원천적인 분배의 문제를 낳는다. 재분배 문제 이전에 이 문제가 심각하다. 다시 말해 구조적이고 조직적인 착취의 문제, 불공정한 과정을 통해 이뤄지는 불의한 분배 문제가 매우 크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원천적인 분배의 문제 위에 자산불평등의 문제가 겹치면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더욱 고조된다. 2010~2013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자산(부동산, 금융) 상위 10%가 보유한 자산은 나라 전체 자산의 66%나 된다. 반면에 하위 50%가 보유한 자산은 고작 1.7%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양극화되다 못해 이제는 부와 가난이 대물림되는 세습자본주의사회다. 자본주의의 끝을 보여준다. 1:99 ‘헬조선사회’라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지옥은 저 멀리가 아니라 바로 여기에 있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며 사는 삶을 원천적으로 방해하는 사회가 곧 지옥이다.

이번 국기문란 사건은 무엇인가? 이 사건은 1:99 정글사회에서 1%가 국정을 엽기적으로 농단한 사건이다. 국가를 사유화한 사건이다. 그런데 그 1%의 핵심세력은 역시 재벌들이다. 삼성공화국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그건 결코 빈말이 아니다. 이번 사건에서 겉으로 보면 재벌들이 삥을 뜯긴 거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속으로는 재벌들이 주도권을 쥐고 권력을 요리한 것이다. 재벌들은 정권에 갖다 바친 몇 백억보다 수십, 수백 배의 이득을 이미 챙겼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국가를 좌지우지하는 세력은 재벌이다. 세계에서 재벌경제체제를 가진 나라는 우리뿐이다. 북한에서 수령 밑에 당이 있고, 당 아래에 인민이 있듯이, 여기는 재벌 밑에 제도권 정당들, 검찰, 관료집단, 족벌언론 등이 있고, 그 아래 국민이 있다. 주요 야당들도 재벌의 손 안에 있다고 본다.

4년 전 재벌을 정점으로 한 수구세력은 마름으로 잘 부려 먹으려고 박근혜 정권을 주도적으로 옹립했다. 그동안 요리하며 잘 부려먹었는데 최순실이 낀 박 정권이 잡범처럼 파렴치하게 노는 바람에 그만 큰 사고가 터진 것이다. 더 이상 쉬쉬하다가는 기득권세력 전체의 위기를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판단으로 박근혜 게이트를 재벌들 쪽이 기획하고 터트린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재벌을 정점으로 한 지배 세력은 자신의 마름 역할을 충실히 할 새 정권을 재창출하기 위해 이미 분주하게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유통기간이 다 된 부류는 제거하면서 재기를 꿈꾸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태산 같은 돈과 넘치는 인력과 막대한 정보력을 쥐고 있다.국정원,검찰,국회,재벌언론,학계,종교계 등에 재벌들이 돈을 뿌리며 구축한 세력은 결코 허약하지 않다. 수십 년간 국정을 농단하며 국가를 사유화한 노하우가 풍부하다. 재벌을 중심으로 한 불평등한 사회, 돈이 왕 노릇하는 불의한 사회를 지속시키기 위한 뱀 같은 지혜와 악어 같은 힘이 그들에게 넘친다. 그들은 4.19 때나 5.18 때나 무력으로 학생. 시민들을 죽이고 권력을 찬탈한 역사를 갖고 있다. 또한 6월 항쟁 때는 여우같은 지혜로 민의를 분열시키며 ,사실상 군사정권을 연장시킨 노련한 전력을 갖고 있다. 그들 앞에 촛불은 미약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너무나도 여리게만 보인다.

연한 순 같은 예수 , 여린 촛불

예수 시대 이스라엘도 1:99 사회라 할만하다. 당시 이스라엘의 일반 백성은 2중적인 착취와 억압으로 극심한 고통을 당했다. 소수 로마제국의 식민지배 세력과 이스라엘 지배계층(정치, 경제, 종교 등)은 국정을 농단하고 국가를 사유화하며 백성의 고혈을 빨아 먹었다.특히 로마에 빌붙은 종교권력가들은 백성을 억압하며 우민화하는 이념(종교적 포장을 한)을 만들어 널리 퍼트리는 역할을 능동적으로 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수구 기득권 세력과 짝한 주류 한국교회의 모습과 흡사하다. 아무튼 예수 시대의 지배계층은 이스라엘 농민이나 어부들이 거둔 수확물의 70~80%를 수탈(착취)했다. 그 시대에 태생부터 가난했던 예수께서는 하나님나라 운동을 하셨다.30세 쯤 그 운동을 시작하면서 예수께서 처음 선언하신 말씀이 있다. 그것은 사회구조의 근원적인 변혁을 지향한다. 불의한 세상의 판을 가는 게 목적이다.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을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누가복음 4:18-19)

위 구절에서 '주님의 은총의 해'라는 말을 주목하자. 이는 소위 희년禧年(Year of Jubilee) 을 말한다. 희년법은 출애굽한 노예들의 가나안정착시대부터 내려오는 것으로서 본격적이고 지속적인 사회개혁정신을 지니고 있다.(레위기 25장, 출애굽기 23장) 희년은 50년마다 한번 씩 맞이하는 해로서 그 해에는 크게 3가지를 실천해야 한다. 첫째, 모든 노예나 종들을 아무 조건 없이 풀어줄 것. 둘째, 모든 토지는 본래의 주인에게 되돌려 줄 것. 셋째, 모든 농지는 쉬게 할 것. 예수께서 실천하신 하나님나라 운동의 목적은 바로 이 희년정신의 구현이었던 것이다. 그 실천을 위해 예수님은 주로 갈릴리 지역에서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았다. 동고동락했다. 진리를 말씀하시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셨다. 그러나 그 사랑은 대상에 따라 표현방식이 달랐다. 당대 1%에 속한 사람( 1%에 부역하는 사람도)에게 주는 사랑과 소외된 사람에게 베푸는 사랑은 큰 차이가 있었다. 가령 예수께서는 가난한 사람에게는 자존감을 높이고, 가진 자에게는 혹독한 비판과 회개를 촉구하는 사랑을 베푸셨다.

예수님의 손엔 무기가 없었다. 당대 세계 최강의 로마 권력자들 그리고 이스라엘 지배자들 앞에 선 예수는 한낱 '연한 순筍' (이사야 53:2)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늠름한 풍채도, 멋진 모습도 그에게는 없었다. 눈길을 끌만한 볼품도 없었다. 그저 하나의 흙수저일 뿐이었다. 결국 힘깨나 쓰는 자들은 서로 손을 잡고 그 연한 순을 꺾어버렸다. 눈에 거슬리는 예수를 가볍게 잡아 죽였다. 십자가에 못 박아 공개 처형했다. 십자가는 정치범을 처형하는 로마 방식이었다. 유대 종교 권력자들은 예수를 돌로 쳐서 죽일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무에 달아 죽여야 ,예수는 저주 받은 자라는 선전을 할 수 있기에 그들은 꾀를 모아 굳이 십자가 처형을 하도록 했다.

그러나 예수는 다시 살아나셨다. 부활은 하나님께서 예수가 '옳았음'을 만천하에 밝힌 대사건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부활하신 예수를 당신의 보좌 우편에 앉히셨다.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는 것은 그가 역사의 고삐를 쥔 분이라는 의미다. 그는 역사 속에 성령으로 내주하시어 역사를 견인하시며 추동하신다. 하나님나라 운동이 이제 온누리에서 지속적으로 전개되도록 활동하신다. 예수의 영을 충만히 모신 사람들 -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하나님나라의 본을 보인 적이 있다. 역사서인 사도행전 2장,4장은 반복적으로 그 본이 된 공동체를 소개한다. 그 공동체의 특징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나누는 '데 있다. 이는 희년정신이 구현된 모습이다. 하나님나라운동은 그런 공동체가 지구촌 전체로 확산되는 날을 향해 쉼 없이 전진한다. 그 날은 하나님을 마음을 다 해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은총이 넘치는 시대다.

오늘날 촛불을 든 사람들 속에 예수의 성령은 임재하시고 활동하신다. 백만 촛불이 원하는 것은 단지 인물이나 정권 교체만이 아니다. 촛불시민은 친일반민족행위자들에게 뿌리를 둔 수구세력을 역사 저편으로 밀어낼 뿐만 아니라 불평등한 사회의 구조적인 변혁까지 이루어야 한다. 주류 한국교회는 그 수구세력의 한 축이다. 연한 순 같은 촛불들은 마침내 해내고 말 것이다. 이제까지 수없이 꺾였지만 촛불은 다시 살아나곤 했다. 십만, 백만 촛불은 더 이상 여린 촛불이 아니다. 그것은 횃불이고 들불이다. 자유로운 시민들이 저마다 자신의 몫을 당당히 누리며 한데 어우러져 사는 새 세상을 여는 원동력이다. 불같은 성령께서는 지금 광장에서 촛불시민들과 함께 하시고 있다. 그들 가운데서 행동하신다.

촛불이 들불이 되려면 광장에서만 켜서는 안 된다. 지속적이고 거대한 들불이 되려면 시민들은 각자 촛불을 골방에서도 켜야 한다. 거기서 저마다 마음의 촛불을 늘 켜야 한다. 마음의 어두움을 몰아내는 빛을 마음 중심에 항상 모시고 살아야 한다. 성령께서는 이 일을 위해서도 쉬지 않고 일하신다. 

* 글쓴이 김달성은 평안교회 목사이며, 주일 오후엔 '말씀나눔 토크'모임을 인도하고 있다( 매주일 오후 3시, 종로 기독교회관 2층 민들레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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