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꾸라지 용 되는 것이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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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꾸라지 용 되는 것이 역사
  • 김홍한
  • 승인 2016.11.06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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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들의 이야기

나의 부모님 고향이 지금의 대전 대덕연구단지이다. 그 곳이 연구단지로 개발되기 전에는 전형적인 농촌마을 이었다. 1970년대 그곳에는 전기가 공급되지 않았다. 큰아버지 댁은 그런대로 나무기둥이 번듯하고 마루도 넓고 마당도 넓었지만 둘째 큰아버지 댁은 참으로 초라하여 움막 수준이었다. 발로 힘껏 차면 집이 무너질 것 같았다. 그곳에 사촌형제들이 살고 있었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어머니의 사촌형제들도 살고 있었다.


사촌형님들의 유일한 벗은 아이 손바닥만한 트랜지스터라디오였다. 라디오 뒤에는 라디오 보다 세 곱절 정도 큰 건전지가 달려 있었다. 그들은 그 라디오를 통해서 세상의 배우고 있었다. 그 라디오는 어서 빨리 그곳을 탈출하라고 유혹하는 듯 했다. 간신히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농사일을 거들고 있는 사촌형님과 누나들은 도무지 소망이 없는 삶을 사는 듯 했다. 그들은 어떻게든 기회만 되면 라디오의 유혹대로 시골마을을 탈출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들은 탈출했다.

그들이 기껏 탈출한 곳이 가까운 대전이다. 나보다 12살 연상의 형님은 여관의 심부름꾼으로 일했다. 그 직업을 사람들은 “조바”라고 불렀다. 8살 연상의 누님은 나의 부모님 소개로 부잣집에 식모로 들어갔다. 공교롭게도 그 집 아들이 나와 초등학교 같은 반 이었다. 어느 날 학교를 파하고 학교를 나서는데 비가 많이 왔다. 저 쪽에 그 누님이 우산을 들고 서 있었다. 반가웠다. 그런데 누님이 가져온 우산은 내 친구를 위한 우산이었다. 나를 발견하고는 어쩔 줄 몰라 하는 누님이 안쓰러워서 나는 못 본 척 비를 맞고 달렸다.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는데 못들은 척 달렸다. 아들 삼형제 중에 둘째인 나는 누나도 없고 여동생도 없어서 누나가 있는 친구들이 참 부러웠는데, 그리고 그 누님은 나에게 참 친절했는데, 나는 그 누님의 형편과 처지를 이해하면서도 그 상황이 상처가 되었다. 그 때 그 일이 지금도 생생하다.

4살 연상의 형님은 양화점에 취직해서 구두 일을 배웠다. 견습공이라 월급 없이 일만한 모양이다. 그것이 불만이라 그 형님은 주인과 크게 다투고는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 형님은 그런 일이 두 어 번 더 있었다. 그러자 주변에서 착실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따돌림 당하는 듯 했다. 얼마 후 그 형님은 자살을 했다.

나의 어머니는 7남매 중 둘째이신데 아래로 세 동생은 성이 다른 동생들이었다. 외할머니가 개가하셔서 낳은 형제들이다. 그나마 새 할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셔서 외할머니는 또 과부가 되셨다. 한동안 외할머니는 우리 집에 사셨는데 막내삼촌도 우리 집에서 함께 살면서 대전 중앙시장 내 단무지공장에 출근을 하였다. 얼마 후에는 그 집에 들어가 살면서 공장 일을 하였다. 공교롭게도 그 집 막내아들과 내가 또 초등학교 같은 학년으로 같은 반 이기도하였다. 그런데 그 녀석이 아저씨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이 듣기 싫었다.

나의 어머니를 무척 따르는 어머니의 5촌 조카가 있었다. 착하지만 약간 푼수기가 있었다. 나보다 1살 연상이었다. 자주 우리 집에 놀러 오곤 했는데 공장에 다녔다. 무슨 공장에 다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얼마 후 학교를 가려고 버스를 타는데 만났다. 공장을 그만두고 시내버스 안내양이 되어있었다. 나의 버스비를 받지 않으려 하였다. 그리고 무척 부끄러워하였다. 그도 고등학생의 나이의 소녀였다. 그런 그가 “오라이”와 “스톱”을 외친다. 아침 등교 시 시내버스는 초만원이다. 버스 문을 닫지도 못하고 연약한 소녀의 몸으로 버티면서 차가 달린다. 지금도 그녀의 그때 모습이 기억에 선명하다.

그분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 식모살이 한 누님은 충북 보은에 사는 노총각과 결혼하여 또 시골아낙이 되었다. 자식을 여럿 두었는데 모두 장성하여 출가했다. 막내외삼촌은 오랫동안 단무지 공장에서 일하다가 직장을 옮겨 작은 공장에 취직, 그 공장의 공장장으로 정년퇴임 하였다. 아들 둘을 두었는데 둘 다 총명하여 큰 아들은 젊은 나이에 판사가 되고 얼마 전 유력한 집안의 딸과 결혼했다. 둘째 아들은 모 대기업의 사원이 되었다. 버스 안내양을 하던 이는 부부가 방앗간을 하고 있는데 둘 다 근면하고 성실하여 알부자가 되었다는 소식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이즈음에서 나는 역사를 논한다. 수년전 중국여행을 다녀왔다. 중국은 龍의 나라, 곳곳에 용 그림, 용형상이 참 많았다. 용이 되고자 하는 것이 중국인의 소망이기에 용 그림이 그토록 많은 모양이다. 용은 성인의 상징이다. 그런데 용은 새끼를 낳지 않는다. 미꾸라지가 용 되고 뱀이 용 된다. 미처 용이 되지 못한 것이 이무기 이다. 용은 바다에서 나지 않는다. 황하강과 양자강 같은 큰 강에서 나지도 않는다. 조그만 물웅덩이인 연못에서 나고 개천에서 난다. 오래전에 방인근 이라는 분이 책을 냈는데 책 제목이 <미꾸라지 용 되는 것이 역사 아니더냐?> 이다. 그래 맞는 말이다. 그래야 한다. 그것이 역사다.

공돌이, 공순이, 여차장, 식모였던 이들, 세상은 그들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역사 이야기는 모두 잘난 사람들 이야기, 크고 굉장한 사건들만 이야기 한다. 그러나 저들의 이야기를 모르는 역사는 역사가 아니다.

세상의 미꾸라지들이여 네가 있는 연못, 네가 있는 개천에서 힘껏 차고 올라 용이 되어라. 그리고 역사를 만들어라. 혹 누가 너의 천한 출생을 조롱하거든 부끄러워하지 말고 너의 천함을 당당히 드러내라. 孔子는 그의 아비와 어미가 野合하여 그를 낳았고, 孟子는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에게서 자랐으며, 예수는 의붓아버지에게서 자랐다. 석가는 성주인 아비를 거부하고 스스로 고아가 되었다. 김구선생은 상놈의 한이 뼈에 사무쳐 동학교도가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누가 감히 그 분들을 천하다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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