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향기를 찾아 떠난 생태 숲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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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향기를 찾아 떠난 생태 숲 기행
  • 류기석
  • 승인 2009.10.14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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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응봉산 일연선재의 깨달음을 향한 귀연

요즘 복잡한 도시생활을 접고 전원으로 돌아가 하루라도 인간답게 살아보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무턱대고 농촌으로 내려 갈 수 있는 형편도 처지도 아닌 것이 작금의 우리들 현실이고 보면 건강한 육체와 정신, 영적인 행복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따로 있다는 것에 서글프다. 

   
▲ 원시적인 생태 숲 기행을 무사히 마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궁터를 걸어 내려왔습니다.

필자가 알기로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직업 중에 하나가 수많은 생명을 키우고 다루는 농부인데 이제는 농촌 어디를 가보아도 정직한 농부를 찾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해서 무작정 경제적인 고려를 하지 않고 예술적, 시적, 정서적, 철학적, 종교적인 사상에 붙잡혀 자본을 사그리 등지고 귀농만을 고집해서는 힘든 세상이다.

그러면 귀농을 뛰어넘는 대안은 무엇인가? 그것은 도시 문명적 욕심을 내려놓고 자연으로 자연스럽게 동참, 이미 그곳에 있었던 자연과 인간, 환경을 돌보며 자급자족으로 소박하게 하나 되는 삶을 짓는 것이다. 이것은 매일매일 감격 있는 생활로 일이 놀이가 되며, 숲에서 나는 온갖 진기한 천연의 먹거리들이 자원이 되며, 수행과 명상을 실천하는 삶인 것이다.

   
▲ 참얼, 참삶, 참먹거리를 위해 원시적 삶으로 귀연한 안일연님입니다.

귀농은 500평 정도로 기본이고, 자연으로 자연스럽게 동참하면서 틈만 있으면 수행과 명상으로 참얼, 참삶, 참먹거리를 추구하는 귀연(歸然)인이 있어 필자가 지금 그 새로운 가능성에 여러분들을 초대하고자 한다.

대대로 나랏일에 쓰이는 적송의 우두머리 격인 금강송(황장목)의 생산지로서 신선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다하여 발길을 옮겼다. 그 어느 여름보다 무덥고 긴긴 장마로 움츠려있었던 마음을 열고 솔향기 솔솔~ 피어나는 삼척의 숲길을 찾았다.

무릇 산맥으로 치자면 백두대간을 따라올 산맥이 없다. 대덕산 1,307M, 청옥산 1,404M, 두타산 1352M을 시발로 덕항산 1071M 아래 태백봉령들이 응봉산 1,270M을 만들고, 육백산 1,244M, 사금산 1,092M, 두리봉 1,070M 등 고산으로 둘러쌓인 마을이 신선들의 골짜기 마읍이다.

   
▲ 백두대간 응봉산 깊은 숲속마을 마읍리 전경입니다.

2007년 7월의 마지막인 31일 영동고속도로를 2시간동안 달려 강릉에 다다랐다. 강릉을 지나 동해와 삼척에서 마읍리로 가기 위해서는 근덕에서 동막 나들목으로 빠져 신흥사와 하마, 중마, 상마읍에 도착하는 길이 빠르고 편한 길이다. 천천히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 계곡과 능선들이 자연스러운 개천의 흐름을 따라 휘고 지고 돌아나가 어느덧 발길은 상마읍리 산주터에 머물렀다.    

마읍리는 세 개의 면이 험준한 산으로 둘러 쌓여 있고 오로지 북동쪽만이 틔어 있다. 유일한 입구인 그곳으로 육백산과 사금산의 물들이 마읍천을 이루고 합하여 흘러 동해로 빠져나간다. 오래전 국유림으로 지정, 보호, 육성하여 적송이 울창했던 곳이 공종2년(1865년) 경복궁을 중건하기 위한 진상된 금강송은 이곳이 원산지다. 한때는 일제가 10여 년간 영림소를 운영하면서 채벌하여 사찰을 지었다한다.

   
▲ 솔향기 나는 숲속에서 하룻밤을 묵어 갈 수 있는 황토방 일연선재입니다.

군데군데 잘 지어진 농촌주택들 사이로 마을회관과 정보화마을사무실이 눈에 들어오고, 물이 돌아나가는 주지리로 부터 중들, 섬말, 큰말, 봉촌, 옛날 관리들이 묵었다는 원터, 황금장표를 지키던 관리들이 살았던 산주터까지 이어지고, 이곳에서 두리봉으로 오르면 신서들 계곡을 만나고, 임도로 돌아돌아 30리쯤 오르면 궁터가 나옵니다. 신선들이 살았다는 마을은 이곳에서도 한 시간쯤을 걸어 올라야 만날 수 있다니 신선들이 살아가는 마을은 좀처럼 인간 세상에 그 모습을 나타내려하지 않는 모양이다.

   
▲ 천태종의 중창조 상월 대조사가 태어났던 곳에 귀틀집이 지어졌습니다.

백두대간의 원시림이 그대로 살아있는 곳, 화전민과 심마니들의 고향, 깊은 산을 떠돌며 귀틀집(통나무를 얼기설기 쌓아지은 흙집)과 투방집(통나무와 흙으로 지은집)짖고 굴피로 너와를 얹어 생활했다. 산에 불을 지르고 감자, 옥수수, 콩, 밀, 약초, 산나물 등의 먹거리로 연명했던 그들에게는 병이라는 것은 찾아 볼 수도 없었단다.

   
▲ 점심식사로 나온 천연의 음료와 감자, 옥수수, 토마토, 오디 그리고 누군가가 선물한 메론입니다. 함께 자리한 분들은 좌로부터 자연의학연구가 이규원님, 역사문화연구가 이병화님, 일연선재 안일연님입니다.

오전 11시쯤 산주터 일연선재에 도착하니 주인장 부부는 근덕면으로 출타 중이었다. 하는 수 없이 주인 없는 일연선재의 지킴이가 되어 무더위를 식히고 40분쯤 있으니 안일연(59세)님과 김화선(49세)님이 도착했다. 서둘러 효소차를 내오시고 이어 점심상으로 옥수수, 감자, 토마토, 오디 등을 푸짐히 차려주어 맛있게 먹었다.

황토방에서 두런두런 나누었던 이야기는 삼척에 대해서다. 먼저 문화연구가 이병화님께서는옛날 동해안의 최대항구는 삼척항이었다는데 과연 그럴까? 로 말문을 여셨다. 곧이어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말씀하셨다. “대륙동부 산동성의 교주시가 옛 척주(삼척)으로 그 옆에 위치한 청도시가 옛 경흥도호부(강릉)였다.”고 했다. 

   
▲ 곰취가 튼튼하게 자라고 있는 집 앞, 귀농지는 500평 항암 약초를 키우는 텃밭이 전부랍니다.

허나 지금은 그 역사마저 우리의 역사책에서 자취를 감추어 버려 찾을래야 찾아볼 수 없어 아쉽다. 산동성에서 죽서루는 바닷가에 웅장하게 자리하고 있다고 설명하시면서 왜 삼척이냐에 대한 질문에는 “삼면이 높은 산으로 이루어진 곳으로 유일하게 한 면만이 바다와 인접했던 곳을 삼척이라고 불렀다.”고 했다.

이어 안일연님께서는 두리봉은 영험함을 간직하고 있기에 보는 측면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고 했다. 하시는 일은 부인께서는 된장과 간장 그리고 발효음료 담그시고, 본인은 능이와 송이 장뇌삼, 약초원 등을 관리하며 귀연인으로서 자연과 함께 즐겁게 사신다고 했다. 

   
▲ 아무도 찾지 않는 원시속 신서들 계곡 선녀탕으로 살짝이 초대되어 올 여름 피서다운 피서를 보내고 돌아왔습니다.

오후에는 암 환자를 위한 약초공원이 만들어 지고 있는 신서들 계곡 선녀탕에서 무더위를 식혔다. 그리고 천태종의 중창조 상월(上月) 대조사가 태어났다는 너와집을 들러보고, 문의재에 올라 하마읍, 중마읍, 상마읍을 한눈에 내려다보고는 응봉산, 육백산, 사금산, 삼태봉과 두리봉의 정기를 두루 호흡하고는 광대한 숲이 주는 향기에 취해 돌아왔다.

저녁상은 토종닭을 잡아준다기에 극구사양하고 대신 신선한 야채와 돼지고기를 먹기로 했다. 7월의 마지막 밤 서늘한 불경골과 신서들의 청아한 공기를 마시며 깊은 밤을 맞았다. 다음날 새벽5시부터 아침 밥상을 물리고는 사륜화물차를 타고는 육백산을 가로질러 숲의 강이 흐르는 깊은 산속으로 구불구불 찾아 들어갔다.

   
▲ 새벽 5시부터 해발 1,000미터를 향해 솔향기가 가득한 원시림 속으로 생태 숲 기행을 떠났습니다.

골짜기 마다 계곡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 때문인지 양팔에는 닭살이 삐쭉삐쭉 돋았다. 궁터입구 작은 계곡 옆에 차를 세워두고는 가져온 물통에 신선한 물을 한 가득씩 담고는 산행을 시작했다. 궁터에는 천주교 수행공동체가 들어와 살고 있었고, 이 마을에서 태어난 젊은이가 목공예를 하면서 살고 있었다.

가파른 숲길을 한 시간 쯤 걸어 들어가니 원시적인 숲길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해발 800미터 이상의 숲에는 소나무와 잣나무 외에 참나무 등 활엽수가 대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저마다 천연의 지팡이를 하나씩 만들어 산행을 한지 한 시간 반가량이 되었을 때 두리봉과 삼태봉 사이에 있는 해발 950미터의 큰 구미에 도착했다.

   
▲ 원시적으로 가난한 삶을 이어간 화전민들의 삶터입니다.

깊은 산속에는 20년 전까지만 해도 15가구가 자급자족을 이루며 생태적으로 살았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고, 지금은 사람들 대신 당귀들과 물푸레들만이 오가는 이들을 반긴다. 원시적인 숲속을 터전으로 살았을 화전민들과 수행자들의 역사를 그대로 남겨두고는 천천히 수도자의 터를 거슬러 보고는 왔던 길을 되돌려 12시쯤 내려왔다.

안일연님께서는 순흥안씨로 경남 하동군에 있는 지리산 쌍계사 밑에서 태어나 자라셨다고 했다. 젊어서는 인도와 네팔의 산과 들을 따라 명상과 수행을 했으며, 26세 때는 깨달음에 대한 동경이 일어났었고, 40대까지는 직장을 다니면서도 틈만 나면 거듭 인도와 네팔여행 했단다. 그때는 돈이 없어도 인도와 네팔을 쉽게 여행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부인은 명상과 수행 중에 만나 고수와 초보로 뜻이 맞아 결혼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했다. 슬하에 딸이 하나 있는데 이곳 마을에서 나고 자라 초등학교만을 마치고 혼자서 공부를 했다고 한다. 새벽3시에 일어나 오전12시까지 공부와 명상 그리고 수행을 번갈아하면서 오후시간에는 농사일을 도왔다고 했다.

   
▲ 일연선재의 안주인 김선화님께서는 우리의 전통토장(양념장.쌈장)을 고증하였습니다.

목적의식이 뚜렷했던 딸은 집중력을 키우기 위해 명상과 선, 요가 등을 하면서 자신에 맞는 명상방법을 터득하고 자신에게 맞는 공부를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작년 수능에 응시를 해서 좋은 성적을 거뒀음에도 올해다시 서울대 철학과를 목표로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삼척중에서도 응봉산 남쪽은 화강암지대라 물이 좋고, 텅스텐을 이용하기 위한 주석광산이 많았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일반채소는 먹지 않고 산속에서 난 약초로 섭생을 하는데 에너지가 손상되지 아니한 야생의 온전한 기운은 모든 생명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했다.

요즘 젊은 귀농자에 대해 물으니 “귀농인은 농촌에 적응하기 힘들다. 그러나 자연이 좋아서 농촌에 오는 사람은 귀농에 성공할 수 있다.”고 귀 뜸했다. 안정적 농촌마을의 안착을 위해서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살겠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며, 무엇보다도 욕심을 부리지 않고 순리대로 살면 좋은 농토를 마련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하셨다.

   
▲ 숲속에는 땅을 파서 낙엽을 덮고, 솔가지로 지붕을 올린다는 멧 돼지들의 겨울 안식처가 있습니다.

귀농이 아닌 귀연12년차인 안일연님은 “농촌을 투자의 대상이다.”라고 이야기하시면서 귀농자들이 최초 농지를 사서 농지전용만을 받고 비싼 값에 되파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셨다. 진정한 귀농은 농촌사람들과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는 순간이며, 그래야만 성공적인 정착을 이룰 수 있다고 하셨다.

농촌사람들과 함께 한마음으로 생활하고 어려운 밭일도 함께하면 자연히 똥과 오줌을 같이 받아내는 가까운 생활공동체가 된다고 하면서 그들의 삶속에 나를 녹이라고 하셨다. 하물며 못 배우고 무식한 동물들도 인간이 먼저 해하지 않으면 덤비지 않는데 하물며 농촌에 살고 있는 이웃들이 열심히 살고자하는 귀농자들을 돕지 않겠느냐는 반문도 놓치지 않았다.

관행농업은 소득을 만들기 위해 행해지기 때문에 비료와 농약, 제초제 등이 남발되어 농지는 청태가 낀 채 죽어간다. 이의 회복을 위해 눈비가 와서 여러 차례 씻겨야 한다면서 회복기간은 50년 정도는 되어서야 정상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유기농업은 하우스 재배와 숙영재배가 문제임을 지적하시며, 주위가 숲이면 좋다고 하셨다. 식물자체가 건강하면 병이 없다고도 했다.

   
▲ 이른 봄 얼레지 1만평 군락지를 시작으로 생태식물원이 펼쳐진다는 숲속입니다.

자연농업에 대한 물음에는 우선 “첫째, 토종종자라야 하며, 둘째, 토질은 부엽토와 같이 썩여있어야 하며, 셋째, 자연과 동일한 조건으로 자라나야 한다. 넷째, 파종은 밀식하지 않음을 강조했다. 다섯째, 식물의 환경을 자연과 같은 동일한 조건을 만들고 가꾸면 좋다.”고 덧붙이셨다.

그러면서 “자연에는 흐름이 있다. 그곳에 내가 들어가서 함께 해야 한다.”라면서 귀농의 시대가 지나갔음을 역설하셨다. 그러면서 “이제는 새로운 방향으로 되돌리는 귀연운동이 있어야 한다.”라며 농촌이 더 이상 도시인들의 도피처나 피난처가 아님을 말씀하셨다. 농촌도 자본을 가지고 투자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면서 자신이 현재 이곳에 투자해놓은 15년산 황기만 보더라도 한 뿌리에 30만 원 정도라고 하셨다.

강원도 삼척시 노곡면 마읍리 전체가 50가구로 마을공동의 가시오가피특화마을로 연간 10억 정도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고 했다. 허나 이제는 가시오가피가 사양길로 접어들고 있음을 직시하셨다. 그러면서 현재의 농민은 돈을 벌기 위한 존재로서 힘 있는 농민만이 살아  남을 수 있음을 내비치셨다.

   
▲ 저 멀리 궁터 넘어에 있는 두리봉과 삼태봉 사이 해발 1,000미터 구오동에 오르니 생태 숲 명상센터로 알맞았습니다.

“이 깊고 깊은 산골에 정착한지도 12년째로 경제는 1년에 3천만원 이상의 수입이 된다.”고 하셨다. 자신은 능이와 표고, 송이 등과 장뇌삼과 산나물과 항암약초 등을 돌보고, 부인께서는 장 담그기와 발효농사로 수입을 보태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명상을 통한 마음공부는 하루 1시간 새벽에 드린다고 하셨다. 항상 살아가는 매순간의 생활이 수도 수행이 되도록 말이다. 그리고 성실한 삶의 언저리에는 항상 자신에게 산지식을 심어준 86세의 심마니 노인이 있음에 감사하고 있었다.

“농촌에서는 일정한 자본이 있어야 하며 의식이 있는 도시의 젊은 사람들이 돌아와야 한다.”면서 농촌활성화에 관심을 기울이셨다. 그리고 농촌마을의 공무원들도 이제는 바뀌어야 함도 당연시 했다. “공무원들이 자기 일이 많아진다고 하여 농민들의 일을 돕지 않는다면 크나큰 우를 범하는 것.”이라고 일침을 가하셨다.

7월말에서 8월초까지 도시생활의 일상을 물리고 원시생태가 그대로 간직된 응봉산 깊은 골짜기의 솔향기를 찾아 떠났던 생태 숲 기행은 벌써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왔다. 8월 1일 한낮의 태양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오후2시쯤 일연선재에서 작별을 고하고는 청정한 마읍천을 끼고 돌아 나와 동막을 거쳐 7번국도로 근덕면으로 나왔다. 강원도에 왔으니 기념으로 옥수수를 한 자루씩을 근덕농협에서 담고는 백두대간 응봉산 숲속 신서들에서 원시적 삶과 깨달음을 향해 정진하는 일연선재에 좋은 일 있기를 기원했다. 

   
▲ 깊은 산속에서 심마니들이 먹던 옛토장을 복원 발효시키고 있는 항아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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