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하느님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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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하느님을 만난다
  • 박철
  • 승인 2016.10.0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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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나에게 '더욱 겸손하게' 살 것을 가르쳐


길을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터덜거리며 걸어간 길 끝에
멀리서 밝혀져 오는 불빛의 따뜻함을
막무가내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 맞잡을 손이 있다는 것이
인간에 대한 얼마나 새로운 발견인지
산속에서 밤을 맞아본 사람은 알리라
그 산에 갇힌 작은 지붕들이
거대한 산줄기보다
얼마나 큰 힘으로 어깨를 감싸주는지
먼 곳의 불빛은
나그네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갈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나희덕 詩. <산속에서>

   

산은 인간의 마지막 삶의 터이다. 자연이 망가지면 인류도 망한다. 산이 좋기 때문에 사람들은 산에 오른다. 산이 좋지 않아도, 산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산에 오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극히 적을 것이다. 산은 아름답다. 그 선이 아름답고 그 모습이 아름다우며 그 색깔이 아름답다. 산에서는 신록과 꽃과 단풍, 그리고 억새밭이 아름답다. 산의 숲과 개울이 아름다우며 지저기는 새소리도 아름답게 들린다. 안개와 구름과 어울리는 산이 아름답고 산에서 보는 해돋이와 석양이 또한 아름답다. 하얗게 눈을 이고 있는 산도 아름답다.

산은 철마다 구석구석 모두 아름답다. 산은 변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다. 물은 변하지만 산은 변하지 않는다. 산은 높이 솟아 줄기차게 뻗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변하지 않고 장중하며 영원한 산에 비하면 인간의 고뇌와 번민은 하찮은 것이다. 산은 생명의 근원이 되고 넉넉하다. 산은 생명의 근원인 물을 공급하고 산소를 만들어 낸다. 산은 높고 변하지 말아야 하며, 물은 고여 있지 않고 변해야 한다. 그래서 산이 높아야 물이 흐르고 맑다. 산에는 나무가 있고 짐승이 있으며, 나물과 약초와 열매가 있고 꽃이 있다. 그리고 인간에게 안식과 만족과 건강을 주는 아름다움이 있다.

산은 자연이며 태초로부터 인류의 보금자리이다. 문명은 자연스럽지 아니하고 비인간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 산은 문명으로부터 인간과 자연을 지키는 보루(堡壘)이다. 산은 너그럽고 잘 견디며 말이 없고 모든 것을 감싼다. 비바람과 눈보라가 호되게 후려쳐도 묵묵히 견디고, 눈이 내려도 마다하지 않고 뒤집어 쓴 채 치우려 하지 않는다. 산은 그이 자락에 있는 개울과 숲과 논밭과 마을 감싸 안고 있다. 사람들은 못된 짓들을 하고 산을 해쳐도 사람들을 쫒아내지 않는다. 사람들은 산을 버리고 떠날 뿐이다.

   

산은 우뚝하고 장(壯)하며 끊임없이 이어진 모습과 기상으로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안을 준다. 산이 사람에게 주는 계시나 교훈을 참으로 크고 많다. 산은 무겁고 흔들리지 않으며 변하지 않는 의리를 배워야 한다.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현명한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仁者樂山, 賢者樂水)"라는 말도 산의 흔들리지 않은 묵직한 속성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산의 인내와 침묵을 사람들은 배워야 한다. 산은 언제나 말이 없다. 산은 인간의 한계를 깨닫게 한다. 문명사회에서는 인간의 능력이 한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비행기로 하늘을 날고, 자동차로 빨리 달리며, 추위와 더위를 마음대로 조절하고, 몸의 병도 약과 수술로 고친다. 그러나 대자연인 산에서는 문명은 활용하기 어려우며 자연스러운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능력은 한이 없다는 착각에서 깨어나야 한다. 가파른 산비탈을 달려 오를 수 없고, 더위나 추위 그리고 걷는 것도 자기 능력과 체력을 감당해야 하며, 배가 고프고 병이 나도 자기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 산에서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분명해 진다. 인간은 능력의 한계를 분명히 알고 겸손해 져야 한다. 산의 고스락에 서서 성취의 기쁨과 만족을 얻고 조망(眺望)의 즐거움과 활기의 기(氣)를 얻으려면 어려움을 이겨내고 가파른 비탈을 오르는 등 노력이 있어야 한다. 산에 오르면 멀리 볼 수 있고 부분이 아닌 전부를 볼 수 있다. 높은 곳에 멀리 내다보고 부분이 아닌 전부를 살피는 인생이 되도록 산을 우리들에게 가르친다.

산의 등성이나 고스락에 오르면 내가 지나온 골짜기와 산등의 길이 되돌아보아진다. 이처럼 사람들은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고 반성할 줄 알아야 한다. 산은 올라가면 반드시 내려와야 한다. 정상에 서면 한없이 좋아도 정상에서 살 수는 없다. 적당한 시기에 정상을 떠날 줄도 알아야 한다. 높은 산을 오를 때도 처음부터 오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조금 내려가는 경우도 있다. 또 북쪽이 있는 산에 오른다 해서 줄곧 북쪽으로만 가는 것은 아니다. 가다보면 남쪽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전진하다가도 잠시 후퇴하기도 하며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산은 우리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산을 오르면서 알 수 있는 것은 산의 정상까지의 긴 여정이 마치 우리네 인생과 흡사함을 알게 한다. 초입의 편편하고 넓은 길을 걸을 때는 어릴 때 부모의 품 안에 온갖 사랑과 보호를 받을 때처럼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마지막 산의 정상을 향한 걸음은 가장 가파른 험준한 길로 때론 무섭고, 때론 한 발짝도 더 디딜 수 없게 힘들어, 도중하차하고 싶은 마음이 들곤 하지만 그 정상에는 무엇이 있을 것만 같아서 마지막 온 힘을 다하여 정상에 오르면 산의 정상에는 허무하게도 아무 것도 없다. 있는 것이라고는 황량한 바람뿐. 그저 개안(開眼)이 되는 것처럼 보여 지는 산의 전모에서 희미한 인생의 의미와 나 자신과 하느님을 다시 보게 됨을 느낀다.

그래서 삶이란 결과나 성취보다 과정이 중요함을 다시 한 번 알게 된다. 온 힘을 빼고 올라봐야 정상에서 날 기다리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허무한 바람뿐…. 하느님께서 기다리고 계셨다가 '너 빨리 올라왔으니 잘했다'하고 상주시는 일도 없다. 빨리 오르면 그다음은 내려갈 길만 남아 있을 뿐이다.

하여, 삶의 보람이나 인생의 의미란 내 곁에 있는 인간다운 것들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면서 자신의 생활을 발전시켜 나가는 길뿐이다. 살아가면서 내 자신 정말 덧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면서 나에게 주어진 인생이 나한테 달려 있다는 생각은 서서히 없어진다. 단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이 불완전의 극치인 인간이 자신의 미래에 대해 무엇을 기대하고 희망할 수 있을 것인가? 모든 것을 주님께 의탁하는 길밖에는….

   

산은 이처럼 사람들에게 너그럽고 넉넉한 마음을 갖도록 일깨워 준다.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품에 감싸 안도록 타일러 주고 있다. 산은 이처럼 많은 계시와 영감을 준다. 시나브로 가을 한복판, 눈을 감으면 산이 어른거린다. 늘 마음에 산을 품고 산다. 내 마음에 있는 산은 나에게 '더욱 겸손하게' 살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내가 산에 오르면서 깨닫게 되는 가장 큰 삶의 화두이다.

박철 목사(좁은길교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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