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대체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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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대체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 박철
  • 승인 2016.09.18 16: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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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대한 존재 확인은 모든 인간들이 삶의 근본적인 물음이다

나는 건망증이 심해 이런저런 실수를 많이 한다. 건망증으로 인한 실수담 이야기는 꽤 오래 갈 것 같다. 처음에는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고민하면 할수록 건망증 증세가 심해진다. 그렇다고 머리가 아주 깡통은 아니다. 지금도 집중하면 성경 반 장 정도는 하루에 암기한다. 며칠 못가서 그렇지.

   

그런데 중요한 것은 결정적일 때 생각이 안 나는 것이다. 조금 전까지 멀쩡히 다 생각이 났는데, 특히 설교를 하거나 기도하는 중에 생각이 안 난다. 사람이 죽어서 장례식을 인도하는데, 죽은 사람 이름이 기억 안 날 때가 있다. 예배를 인도하다 옆 사람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참 난감하다.

그러니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그래서 생각을 바꾸었다. 지금은 건망증을 내 친구쯤으로 알고 지낸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한결 마음에 편하다. 그리고 사람들이 내가 건망증으로 실수했던 이야기를 하면 재밌게 들어준다. 내가 건망증에 대해 학문적인 조예가 깊은 것은 아니지만, 생생하고 다양한 경험을 갖고 있으므로, 건망증에 관한한 한 가닥 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건망증으로 크게 실수한 이야기는 잊어먹지 않고 다 기억한다는 것이다. 이것조차 다 잊어먹어야 건망증의 달인(達人)이 될 수 있을 텐데, 아직까지 그 경지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건망증이 지독한 바보가 있었다. 정도가 어찌나 심한지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어제 저녁에 벗어 놓은 자기 옷이 어디 있는지 찾는 일로 골머리를 앓곤 했다. 그러니 등교시간을 지키기도 힘들었고, 밤이 돼서도 다음 날 일어날 걱정에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바보의 머릿속에 문득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바로 ‘메모’였다.

그는 먼저 종이와 펜을 준비한 다음 저녁이 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날이 어두워지고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자 옷을 하나하나 벗으면서 그 옷가지 별로 이름과 놓아둔 장소를 메모해 두었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그는 먼저 첫 번째 메모지를 찾아 읽었다.

거기에는 바지라고 쓰여 있었고, 바지는 마침 제자리에 놓여 있었다. 그는 얼른 바지를 입고 나서 다시 메모지를 읽었다. 다음은 셔츠였다. 셔츠 역시 제자리에 있었다. 그는 셔츠를 걸쳐 입고 다음 메모지를 찾았으며, 모자도 마찬가지로 제자리에 있었다. 그는 잽싸게 그것을 머리에 눌러썼다. 넥타이, 양말, 손수건도 모두 그런 식이었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그 바보는 자신이 고안해 낸 방법에 대해 무척 대견스러워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뒤이어 매우 불길한 느낌이 엄습해 왔다. ‘그러면 나는 어디에 있는 거지? 옷가지를 비롯한 다른 모든 것들은 모두 찾을 수 있었지만 자기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그것을 적어 놓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끝내 그 스스로를 찾지 못했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수천 가지의 얼굴을 하고 있는 나라는 관념을 전부 지워 버리고 마음을 넘어선 존재, 개체라는 감각을 넘어서 스스로 빛을 발하는 존재, 그것이 바로 나이다.

   
나는 가끔 묵상을 하면서, 그 건망증이 심한 바보가 내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다른 건 다 잊어먹어도 나를 잊어버려서는 안 되는데 하는 그런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나에 대한 존재의 확인은 모든 인간들이 삶의 근본적인 물음이다. 그 물음에 과연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므로 끊임없이 나 자신을 찾아야 하는 여행을 하는 것이다. 나는 가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내가 가야할 길을 더욱 진력(進力)하고 정진하라고 하느님이 건망증이라는 선물을 주신 게 아닌가 하고….

박철 목사(좁은길교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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