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 애원성, 신의 목소리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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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 애원성, 신의 목소리 들으며
  • 박철
  • 승인 2016.09.10 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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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앞 애절한 기도는 인간 내면 깊고 낮은 목소리

‘그 이름을 물에 쓴 자, 이곳에 영면(永眠)하다.’라는 자신의 묘비명을 남겨 놓았던 존 키츠(John Keats)는 아름다움은 영원한 기쁨 /그 사랑스러움은 끝이 없나니 /그것은 결코 무(無)로 돌아가지 않고 /우리를 위해 고요한 나무 그늘 휴식처… 라고 노래했다.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이 세상에 살다가 어느 날 훌쩍 예고도 없이 떠나가지만, 그가 전 생애를 통해서 진실로 추구했던 진리가 있다면 이보다 더 아름다운 건 없을 것이다.

   

어떤 형태로 무엇을 그가 이 세상에 남겼든 간에 온갖 회의와 고뇌, 방황을 통해서도 죽음에 이르는 그 순간까지 진실로 그가 찾아 얻고자 했던 진리가 있었다면, 이보다 더 아름다운 것을 없을 것이다. 이러한 아름다운이야말로 이 세상에 기쁨과 생명, 사랑을 안겨 주는 위안이요, 이 세상을 구원으로 이끄는 힘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고 했다. 작다는 것 자체로써 아름다운 것은 결코 아니지만 우리의 삶 한가운데 숨어 있는 신비와 침묵 속에 감추어져 있는 진리는 요란스럽게 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눈에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보인다. 땅 속에 묻힌 보석들이 지상에 그 흔적만을 드러내듯이 ‘작은 것이란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요, 초월의 세계로 향하여 빛과 생명의 흐름이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에 작은 것은 아름다울 수 있다.

하느님 앞에 간절한 마음으로 드리는 애절한 기도는 인간 내면의 가장 깊고 심오한 존재의 밑바닥에서 울리는 가장 낮은 목소리이다. 그러나 이 애원성(哀願聲)이야말로 어둠 속에 잠든 삼라만상을 첫새벽의 여명(黎明)이 되살려 내듯, 하느님의 무한하신 자비를 나의 내면에 생명의 빛으로 쏟아 붓는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목소리가 아닐 수 없다.

한 알의 작은 씨앗이 어두운 땅 밑에서 움터나듯, 밀가루 반죽 속에서 녹아 밀가루 반죽을 부풀어 오르게 하는 누룩같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과 믿음이 이와 같아야 하다는 예수는 말씀하셨다. 과정이야 어찌되었건 간에 성급히 결과만을 유일한 목적가치로 추구하는 이 사회 속에서 ‘겨자씨의 신비’를 이 땅에 증거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이요, 바로 이것이 복음 선포라고 나는 생각한다.

   

모든 폭력을 제거한 용서와 사랑의 일치 속에서만이 악의 고리가 끊어질 것이고, 가장 무력해 보이고 어리석어 보이는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우리의 생애를 통해서 배우고 깨닫고 행동하는 곳에서만이 우리는 장차 도래할 하느님의 나라를 ‘지금 이 자리’에서 체험하게 될 것이다.

가장 작은 가능성으로 보이는 주님의 말씀이 우리 믿음의 텃밭에 떨어질 때, 성실함과 인내로써 하느님의 자비에 온전히 자기 자신을 내어 맡기는 바로 그 순간, 그것에서 하느님의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가 열리고 바로 그곳은 영원을 향한 빛과 생명의 흐름이 시작되는 곳이 될 것이다.

“지극히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은 큰 일에도 충실하며 지극히 작은 일에 부정직한 사람은 큰 일에도 부정직할 것이다.”(누가 16,10)

나는 30년 목회를 하면서 내가 붙들어온 삶의 표지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였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무슨 고리타분한 소리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가끔 사진기를 들고 자연으로 나가서 내가 대하는 피사체에 나는 ‘작은 것을 소중하게 보는 마음’을 담으려고 한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스쳐지나가는 바람 한 점이 나에겐 다 의미가 있다. 자연은 화려하게 자신을 꾸미지 않는다. 자연은 아무런 가식도 필요치 않는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아끼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목숨을 보존하며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요한 12,25) ‘나는 죽어도 너는 살아야 한다’는 예수의 가르침을 위반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언제까지 이 나라가 힘 있는 나라의 꼭두각시 노릇을 할 것인가? 그런 비굴하고 굴욕적인 처신에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

‘작은 자’와 ‘가난한 자’를 외면하고 ‘큰 자’와 ‘부자’를 선호한다. 진정 기독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이 땅에서 전쟁을 걷어내고 평화를 일구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은 것을 소중하게 보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교회에서 말하는 ‘공부’라는 것이 무엇을 지칭하고 있는지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가을이 깊어져 간다. 하늘은 무한히 푸른빛으로 깊어지고 싱그러운 황금빛, 투명한 햇살 속에 산하(山河)의 얼굴은 씻은 듯 새롭다. 시인 김현승은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라고 노래했다. 기도하는 사람, 그는 눈부신 가을 햇살 속에 드러나는 투명한 산하와 같이 그 내면에 자신의 실재성을 예리한 눈으로 보는 사람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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