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그대는 어떤 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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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대는 어떤 문인가?
  • 박철
  • 승인 2016.08.06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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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자연과 이웃의 소통(疏通)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牧民心書)는 백성들을 다스리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마땅히 지녀야 할 매우 중요한 교훈을 주는 고전이다. 흔히 백성들 위에 군림하여 그들을 억압하고 수탈하고 행패를 부리는 일을 상습적으로 일삼았던 악덕 관리들에게는 하나의 좌표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예수께서도 목민심서와 매우 흡사한 교훈을 남기셨다. 양의 우리의 문으로 들어가는 자가 참 목자라고 말씀하셨다. "문으로 들어간다"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인간의 너무도 손쉬운 일상적 관습인데 그것이 무슨 그리 대수로운 일이겠는가?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런 것이 아니다. 정말로 그렇게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문으로 들어가고 나오고 하는 일이 과연 쉬운 일인가?

문으로 들어간다는 말은 인생의 정로(正路)를 걷는다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좀 더디더라도, 좀 수고가 되더라도 바른 길을 찾아서 바른 방법으로 떳떳하게 살아가는 자를 의미한다. 정로를 걷지 않는 자라면 어떤 사람인가? 그들은 아마도 담을 뛰어 넘거나 울타리의 구멍을 뚫고 드나드는 사람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질서를 거슬러서 새치기를 한다거나 하는 그러한 방법으로 사는 자를 가리킴이 아니겠는가?

나의 유년시절, 어머니는 가을걷이가 끝나면 덕지덕지 해진 창호지를 뜯어내고 풀을 쑤어 창호지를 붙이고 거기에다 코스모스 꽃잎이나 예쁜 나뭇잎을 붙인다. 그리고 문 밑에는 조그만 유리를 달아 유리 구멍을 만든다. 참 신기하다. 그 작은 구멍으로 밖을 내다본다. 안과 밖의 경계가 그 조그만 유리 구멍 사이로 나누어진다. 그 구멍으로 비가 오는 것도 보고, 눈이 오는 것도 보고, 사람 지나가는 것도 본다. 이따금 생쥐가 지나가는 것도 본다. 소쿠리로 참새를 잡을 때도 그 구멍으로 내다본다. 동무들이 찾아와 놀자고 소리치는 것도 본다.

나는 가끔 나의 유년시절, 들창문의 그 작은 유리구멍을 생각해본다. 그 좁은 구멍을 통해 일찍이 예수께서는 천국에 가는 길은 좁은 문, 좁은 길이라 했으니, 더 이상 큰 욕심 부리지 말고 나를 다스리고 내 마음의 창문으로 사물이나 세상을 볼 수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창문을 열고 밖을 조망(眺望)하면, 또 다른 세계와의 마주침을 느낄 수 있다. 창문은 단순히 열고 닫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안과 밖을 원활하게 소통하게 해주는 새로운 세상으로의 통로이다. 창문의 네 틀이 90도 각을 이루어 마주하면 사각은 입 '구(口)' 자가 된다. 문은 입이다. 입이 부실하면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도 없고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다. 문의 기능만큼 문의 상징성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 나는 나와 자연, 나와 이웃, 나와 사물의 소통(疏通)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마음의 넓고 견고한 창문이 나에게 있는가?

강원도 정선에서 목회할 때이다. 강원도 집들은 다 야트막하다. 집집마다 문이 다 여닫이인데 문 높이가 내 키보다 훨씬 낮다. 내가 건망증이 심하다보니 그 사실을 잊어버릴 때가 많다. 교우들 집이나 동네 이웃집이나 들어가면서 내 이마가 문틀에 박치기를 한다. 별이 번쩍번쩍 한다. 손으로 아픈 이마를 만지면서, 내가 다음에는 절대로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 다짐을 한다. 그러나 그 집에서 나오면서 문틀에 또 박치기를 한다. 이마가 성할 날이 없었다. 작은 문을 제대로 통과하기 위해서는 고개를 숙여야 한다. 심지어 다락문 같은 데는 기어서 들어가야 한다. 나는 이 사실을 잘 알면서도 잊어버리고, 또 박치기를 했다. 그래서 나의 아버지가 나를 '미련곰탱이'라고 부르셨던 걸까?

요령부득하면, 이마만 찧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다친다. 문이 주는 화두는 '내가 낮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낮아져야 한다. 그것을 기독교에서는 '겸손'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또 그 반대가 '교만'이다. 자기 가진 것이 많다고 하여 교만을 떨면 마음은 추해지고 만다. 자기가 잘났다고 아무리 큰 소리를 쳐도 겸손할 줄 모르면, 그 사람은 아직 인생의 철이 나지 않은 사람이다.

   

그러나 자기를 낮추고 겸손에 처할 줄 아는 사람은 이미 삶의 깊이를 갖춘 사람이다. 내가 높아지려고 하다가 다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내가 낮아져서 결코 손해 보는 일은 없다. 내가 낮아질 수 있다면, 그 어떤 세상의 문도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다. 결국 길과 문은 연결되어 있다. 누구든지 자기가 가야할 길이 있고 통과해야 할 문이 있다. 그러나 고개를 빳빳하게 치켜들고서는 그 길을 제대로 갈 수 없고, 또 그 문을 안전하게 통과할 수 없다. 낮아져야 한다. 끊임없이….

박철 목사(좁은길교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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