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고 소박한 삶, 비움의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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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고 소박한 삶, 비움의 영성
  • 박철
  • 승인 2016.07.18 0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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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함을 느끼지 못하거나 아름답다고 생각되지 않는 물건은 집안에 두지 말라."
-윌리엄 모리스 William Morris

버리며 살아야 될 것이 어디 물건뿐이겠는가. 우리의 내면과 삶의 방식을 돌아보면 쓸데없는 군더더기가 켜켜이 쌓여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한 개인의 삶만 그런 것이 아니다. 새 천년을 맞은 지구공동체도 청산하지 못한 역사의 잔재와 지난 세기의 문명이 안겨준 폐해를 껴안은 채 몸살을 앓고 있다. 쓸모없는 것들을 비워내고 새롭게 출발하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갈수록 고단하고 질 낮은 삶을 살게 될 것이고 결국은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때를 맞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IPCC(세계기상학자협의기구)의 보고나 2003도에 보고된 미국 국방성 비밀보고서에 의하면 향후 100년 동안에 지구평균 기온이 최대 섭씨 5.8도까지 상승할 수 있으며 해수면은 최대 90센티미터까지 올라갈 것으로 보고 있다. 불과 20여년 전후로 기상이변이 속출하여 폭풍해일로 저지대의 도시들이 물에 잠기고 유럽 일부 지역은 시베리아와 같은 기후로 바뀌어서 식량부족으로 인한 기아와 전쟁이 잦아질 것이라는 끔직한 전망도 나와 있다. 이런 상황은 지난 20세기 동안 인류가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하여 급격한 경제성장과 광범위한 개발에 몰두해온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지금이라도 에너지 전환과 삶의 방식의 전환이 시급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미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들은 고갈 상태에 이른 석유를 차지하기 위해 침략과 전쟁에 몰두하고 있으며 각 개인들조차 그런 세계경제와 정치현실의 희생양이 되고 있으면서도 새로운 삶을 추구하려는 꿈조차 꾸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제 우리는 변화되어야 한다. 성경에 보면 "모든 피조물이 함께 탄식하고 함께 고통받으며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말씀이 있다. 이제 역사는 자신을 살찌우고 생존의 안전지대에 가장 빨리 도달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인간이 아니라 만물이 탄식하는 소리를 들으며 만물을 회복시키기 위해 자신을 비워내는 인간을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일이나 주장이나 구호가 조금 다른 것이 아니라 자신을 철저히 여윈 사람. 자기 비움에 이른 사람. 그리하여 생명의 섬세한 떨림에도 자기 존재가 함께 떠는 영혼의 사람. 그 사람됨의 준비가 먼저 필요할 것이다. '자기 비움'은 참신한 삶의 첫걸음이다. 자기를 비워낸 자의 삶은 거룩했다.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자기 목숨까지 비워냄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렸다. 수운 최제우는 자신을 비워냈을 때 상전에게 맞고 있는 종을 보면서 한울님이 맞고 있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모세는 자신이 온전히 비워졌을 때 땅이 하늘처럼 거룩하게 보여서 발에서 신을 벗었다고 한다.

예전에 지율 스님은 천성산 터널공사 때 산이 우는소리를 들었고 굴착기가 산을 뚫을 때 자기 몸이 그렇게 뚫리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고 한다. 이들은 그렇게 자기를 비움으로써 만물을 품을 수 있었다. 무슨 운동을 하기 전에, 무슨 구호나 주장을 외치기 전에 이와 같이 '자기 비움'의 영성이 먼저 준비되어야 한다. 비워진 만큼 참 생명으로 채워지는 것이고 버린 만큼 참된 것을 얻는 것이다.

   

그렇게 비워진 영혼은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지향하게 되는 것 같다. 도시화, 기계화, 자동화가 급격히 이루어지고 과도한 생산과 광적인 소비에 집착했던 20세기에 그와는 정반대의 길을 열어간 사람들의 삶은 참으로 소박하고 단순하고 아름다웠다.

자신의 고향 켄터키 시골마을로 내려가 지역운동을 했던 웬델 베리(Wendell Berry)는 농사를 짓는 농부로, 20세기의 문명을 깊이 반성하는 글을 펴내는 시인이며 소설가로, 지역 운동가로 활동했는데 "내가 글을 쓰는 동안 자연을 약탈하는 일에 연루된다면 양심상 어떻게 자연 파괴에 반대하는 글을 쓰겠는가?" 하면서 전기 불빛이 필요 없는 낮에 글을 썼고 해가 멈추면 모든 일을 내려놓았다고 한다.

화폐경제, 제도경제에 의존해 있는 도시문명을 떠나 초로의 나이에 버몬트의 버려진 숲으로 들어가 새로운 삶을 시도한 스콧 니어링(Scott Nearing)의 삶은 감동을 넘어 충격적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사람은 물론 짐승을 노예로 착취하는 것을 반대하여 아내와 함께 직접 집을 지었다.

산의 암벽을 집의 한쪽 벽으로 이용하는 방법으로 자연친화적인 집을 짓고 자급자족을 위해 농사를 지었으며 꼭 필요한 만큼만 생산하기 위해 노동시간을 반으로 줄이고 남은 시간은 느긋하게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여행을 하고, 벗들을 만나 대화하는 단순한 삶을 살았다. 적게 일하고도 독립된 경제를 꾸리기 위해 중독성이 있는 기호식품까지도 끊을 정도로 극히 검소하고 절약적인 삶을 살았다.

남의 생명을 약탈하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 육식을 포기하고 평생에 채식을 했으며 죽기 몇 주일 전에는 음식을 입에 대지 않고 조용히 명상을 하던 중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매우 효율적인 삶이다.

단순하고 소박한 삶은 감상적인 주제가 아니다. 그것은 왜곡되지 않은 인간의 본성에 가장 어울리는 삶의 방식이며 쓸데없는 군더더기를 떨쳐낸 가장 이상적인 삶이다. 위의 사람들과 궤를 같이하는 데이빗 소로우나 윌리엄 코퍼스웨이트, 얼마 전에 돌아가신 전우익, 권정생 선생과 같은 분들이 철두철미 살아내려 한 삶이 단순하고 소박한 삶이었다. 그들은 자본과 착취가 판을 치는 20세기의 병적 구조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참신하게 삶을 살아낼 수 있었다. 새로운 길을 찾았던 그들의 삶 자체가 이제 우리에게 길이 되고 있다.

   

넘치는 물질과 고도의 기술로 이룩한 하이테크(High-Tech)의 시대가 인간의 삶을 진정으로 풍요롭게 할 수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새 옷감을 헌 옷감에 꿰매는 자는 새 옷을 입을 수 없다. 비움의 영성을 준비하자. 그리고 자연으로 돌아가, 지극히 검소하고 단순한 삶을 살아가며, 하늘과 땅과 사람을 깊이 있고 소박하게 만나며 살아가자. 하이테크를 넘어 하이터치(High-Touch)의 삶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비워내며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살아갈 때 진정으로 풍요로운 삶이 열려지게 될 것이다.

글쓴이 박철 목사님은 좁은길교회를 인도하시는 시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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