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방식의 신앙 실천한 두 사람
상태바
서로 다른 방식의 신앙 실천한 두 사람
  • 박철
  • 승인 2016.07.15 08: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기려 박사와 함석헌 선생이야기

요즘 날씨가 더워서 책이 손에 잘 잡히지 않는데 그러다가 찾아서 읽게 된 책이 <장기려 그 사람>이란 책입니다. 장기려 박사가 떠난 지 2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를 기리는 모임이 서울에서, 부산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은 그의 삶이 얼마나 위대했는가를 보여주는 한 예가 아닐 수 없습니다.

   
▲ 장기려 박사

그 책엔 보면 장기려 박사의 친구인 소설가 이광수 선생이 그의 소설 ‘사랑’의 주인공 캐릭터를 완성할 때 장기려 박사를 향해 “자네 천사지?”라고 했더니, 신앙심이 좋았던 장기려 박사는 자신을 천사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너무도 황송스러워 “얘끼 이 사람아, 나 같은 죄인이 감히 천사라니 당치도 않다네”하고 대답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이광수 선생이 말하기를 “아니면 바보지”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슴을 찡하게 하는 이야기가 아니겠습니까?

그 책에 장기려 박사에 대해 수많은 에피소드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를 소개하면 장기려 박사가 병원장으로 재직할 때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경남 어느 농촌에 살고 있던 아낙네가 중병에 걸려 장 박사가 있는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몇 차례 수술 끝에 겨우 원기를 찾아 건강해져 갔으나 산더미 같은 수술비를 지불할 능력이 없는 이 여인은 밤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한번은 용기를 내어 병원장실을 찾았습니다.

“원장님! 죽을뻔한 환자를 이렇게 보살펴 주시고 생명을 구해 주셨는데 불행히도 저는 가난한 농부의 아내라 수술비를 낼 형편이 못 됩니다. 퇴원을 할 수도 없고 여기서 살 수도 없으니 이 처지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여인이 이렇게 하소연을 했더니 장 박사는 “가까이 다가오라”고 하면서 그의 손목을 잡고 나즈막한 목소리로 함께 기도를 드린 후에 “언제 기회를 봐서 환자복을 갈아입고 병원을 도망치라”고 했답니다. 이 여인은 이러한 장 박사의 배려로 퇴원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 함석헌 선생

그는 ‘예수 잘 믿는 진짜 바보’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남북 적십자사 회담의 성공적인 결과로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어느 언론인이 그를 찾아가 “선생님께서는 왜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태연스럽게도 “내가 먼저 신청하면 나보다 더 급히 만나야 할 다른 사람들의 기회를 빼앗기 때문”이라고 했다니 장 박사야말로 ‘사랑의 천사’요 ‘예수 그리스도의 화신(化身)’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장기려 박사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는 한도 끝도 없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감명 깊은 것은 그가 생전에 제일 존경했던 사람이 함석헌 선생이었다는 것입니다. 함석헌 선생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라는 책을 쓴 분이고 씨알사상으로 많이 알려지신 분이지요. 그리고 군부독재시절에는 하얀 두루마리기를 입으시고 데모 현장마다 나타나셔서 “행동하지 않는 지성은 죽은 지성”이라고 하시면서 지식인의 현실참여를 온몸으로 보여주신 분이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생전에 장기려 박사가 함석헌 선생을 제일 존경하는 분으로 꼽았고 함석헌 선생도 제일 흠모하고 존경하는 분을 장기려 박사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한분은 대단히 보수적인 신앙관을 가지신 분이었고, 또 한 분은 대단히 진보적인 신앙관을 가지신 분이셨습니다.

두 분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신앙을 실천한 것입니다. 이것은 누가 옳고 그르고 차이도 아니고 누가 더 훌륭하고 아니고의 차이도 아닌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이 서로 달랐지만 그것을 서로 인정하고 존중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점에 대해서 대단히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장기려 박사는 후학들에게 늘 했던 말대로, 그는 그가 죽은 후 ‘의사’란 말보다도 ‘주님을 섬기다 간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했던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 장기려 박사와 함석헌 선생이 산책하는 모습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고요히 잠든 그의 묘석에는 그의 유언대로 ‘주님을 섬기다 간 사람’이란 아홉 자의 한글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 사랑과 섬김, 그리고 희생의 정신으로 이웃을 위하여 사는 것이 곧 국가와 민족과 이웃을 위해 사는 삶이요, 동시에 나 자신을 위한 삶이 된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준 장기려 박사였습니다.

-지난 2013년 4월에는 장기려 박사를 기념하는 <더 나눔센터>가 부산 동구 초량동에서 문을 열었다. 부산역 뒤편의 중앙공원 근처에 자리 잡은 이 기념관에 가면 장기려 박사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가 상영되고 그가 평소에 사용하던 청진기 및 의사 가운 등을 볼 수 있다.

박철 목사(좁은길교회. 시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