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 너 아직도 쓸쓸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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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너 아직도 쓸쓸하냐?
  • 박철
  • 승인 2016.07.07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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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기쁨과 의미로 충만

요즘 나이가 들어가는 증상인가?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다. 좀 쓸쓸하다고 할까? 십수년 전 이아무개 목사님이 “지금도 쓸쓸하냐”라는 책을 세상에 내놓은 적이 있었다. 이아무개 목사님은 그 책을 세상에 내놓고 많이 부끄럽다고 하셨다. 그런데 내게 “박철! 너 아직도 쓸쓸하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네”하고 대답할 참이다.

   
▲ 2011년 10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앞에서.

아침 조깅을 다녀와서 아무 생각없이 물끄러미 책상에 앉아서 차를 한 잔 마시면서도 쓸쓸하고, 바로크시대 음악을 들으면서도 쓸쓸하고,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면서도 쓸쓸하다. 언제적 감상이 한꺼번에 몰려온 것인가. 쓸쓸하고 사무치게 그립다. 크게 소리 내어 웃어본 적이 언제였던가. 그러다보니 말수도 적어졌다. 나는 쓸쓸하다는 감정이 꼭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사람이 조금 쓸쓸해야 삶이 더욱 절실해지고 깊어진다고 생각한다. 쓸쓸함은 꼭 그리움을 동반한다.

5년 전 이맘 때,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니의 빈자리(不在)가 엄청 크게 느껴진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지금도 속이 아리다 못해 쓰리다. 어머니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한다. 나의 어머니는 지난 10년 동안 반신불수로 문밖출입을 못하셨다. 새장에 갇힌 새처럼 늘 집에서만 지내셨다. 그 누구보다 활달하셨던 분이 얼마나 갑갑하셨을까.

나는 참 못난 목사에 못난 아들이다. 어머니의 우물 같이 깊은 마음을 한 번도 깊이 헤아려보지 못했고, 다정다감하게 대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못난 아들을 대견스럽게 보아주셨다. 요즘도 마음이 헛헛해지면 돌아가시기 전에 휴대폰에 저장된 어머니의 육성(肉聲)을 듣는다. 내 생의 절반은 사라져버린 심정이라고 할까.

   
▲ 2015년 7월. 러시아 순야센 고향마을 들판에서.

사람이 살고 죽는 것에 대해 장담할 것이 없지만, 나는 내 생의 마지막에 가장 절실하고 절박한 기도를 하느님께 바치고 가고 싶다. 고통의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하느님 앞에 더욱 절실해질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당하셨던 고통을 나도 느껴 보고 싶고, 그리고 아프고 힘든 만큼 처절하게 몸부림치고 싶다. 나는 죽음을 동반한 고통을 충분히 느끼고, 마무리하고 내 가족들에게도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서 초연하게 하느님께 귀의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남기고 죽고 싶다.(well-dying) 우리 어머니가 그러셨던 것처럼.

나는 3년 전 10년을 섬기던 교회를 나왔다. 어디에도 걸리적거릴 것 없이 자유하고 싶었다.  이제 귀가 순하게 된다는 이순(耳順)이 지났으니 바람처럼 자유하고 싶고 물처럼 순하게 살고 싶다. 지난 30년동안 제도화된 교회에 갇혀서 내 의지와 상관도 없이 굴러가는 거대한 흐름 앞에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그걸 탓할 수는 없으나, 할 말은 많다.

매일 아침 가까운 봉우리산에 오른다. 숲에 나를 들이는 시간만큼 행복한 시간은 없다. 비단같이 부드러운 숲길을 걷는다. 두 손으로 나무 십자가를 쥐고 서너 걸음 걸을 때마다 예수기도를 암송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이시여, 저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그렇게 두어 시간 예수기도를 바치며 걷다보면 나무들, 풀들, 새들, 공기, 햇빛, 바람은 나를 위해 존재해 있는 것 같고 하느님께 기도하고 찬양을 올리고 있는 듯 느껴진다. 그리고 어느새 내 안에 잠재된 혼란함, 갈등과 분노는 모두 사라지고 평화와 기쁨이 솟구쳐 나온다. 그러면 시시때때로 그분께서 응답해주시고 영감을 주신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내 삶은 전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기쁨과 의미로 충만하다.

   
▲ 2016년 6월. 아내 회갑날 두 아들과 함께 집에서.

오늘 아침, 천둥번개에 소낙비까지 창문이 곧 박살날 것처럼 심하게 흔들거린다. 사는 게 다 그렇지 않은가. 어디 부침(浮沈)이 없는 인생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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