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않는 개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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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않는 개구리
  • 김홍한
  • 승인 2016.06.14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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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이 오시는 날 깨어날 것

언제부터인지 우물 안에 개구리들이 살고 있다. “첨벙” 누군가가 우물 안으로 들어왔다. 우물이 생기고 처음 들어온 손님이다. 어떻게 해서 우물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처음 들어온 개구리는 두려움에 주변을 본다. 어둡다. 어둠 속에서 무엇인가가 가까이 온다. 하나둘이 아니다. 더욱 두렵다. 조금씩 주변이 보이기 시작한다. 자신보다 훨씬 작은 개구리 7-8마리, 착해 보인다. 조금씩 두려움이 사라진다.

우물 안 개구리들은 친절하다. 우물 안 구석구석을 안내해 주고 먹을 것도 먼저 챙겨 준다. 저 위 환한 곳에서 왔다 하여 두려워한다.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이것저것 묻는다. 개구리들 중에는 질투하는 놈들도 있는 것 같은데 직접 대드는 녀석은 없다.

그래서 나도 그냥 모르는 척 한다. 어떤 녀석은 조직적으로 도전하려고 한다. 은밀하게 나에 대한 적대세력을 만들더니 어느 날 은근히 협박한다. 잘난 척하지 말라고, 그리고 여기를 떠나라고 그런데 상관없다. 그들이 하는 행동들이 참으로 가소롭다.

개구리는 행복했다. 밖의 세상에서는 항상 두려움에 떨어야 했는데 이곳은 그렇지 않다. 우선 뱀이 없다. 뱀이란 녀석은 정말 무섭다. 소리 없이 다가와 통째로 삼킨다. 주둥이 긴 새도 없다. 그놈은 뱀보다 더 무섭다. 개구리는 물론 뱀도 잡아먹는다. 자신보다 큰 개구리도 없다. 그 누구도 자신을 위협하지 않는다. 잠을 잘 때도 아무런 염려 없이 푹 잘 수 있다. 행복하다.

단 하나 조심할 것이 있다. 가끔 두레박이 내려온다. 어떤 때는 소리 없이 조용히, 또 어떤 때는 “풍덩” 큰 소리와 함께 내려온다. 이곳 개구리들은 그 두레박을 엄청나게 두려워한다. 엄청나게 크다. 그리고 엄청나게 큰 소리를 내면서 내려와서 물을 긷고는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올라간다.

나는 두레박을 안다. 그래서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부딪치지 않도록 조심할 뿐이다. 어느 날, 두어 마리의 개구리가 조용하게 찾아왔다. “하늘나라는 어떤 곳입니까?” “하늘나라?” 아! 저들은 내가 하늘나라에서 온줄 아는구나. 하긴 그렇다. 나는 하늘에서 왔다. 하늘나라 이야기를 몇 가지 해주었다. 매우 진지하게 듣는다.

믿어지면서도 안 믿어지고, 안 믿자니 너무 사실적이기에 혼동이 되나보다. 나무, 꽃, 나비, 무지개 등을 이야기 할 때는 호기심이 가득하다. 뱀 이야기는 저들에게 너무 충격적인가 보다. 공포에 질린 모습들이 불쌍하기까지 하다.

저들이 돌아가고 난 후 많은 생각을 했다. 뱀 이야기는 괜히 했나 싶다. 사실 나도 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뱀에 대한 이야기만 무수히 들었을 뿐이다. 딱 한 번 언뜻 뱀의 꼬리만 보았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 뱀의 꼬리인지 지금은 잘 모르겠다. 뱀의 얼굴을 똑바로 보고 살아남은 개구리가 있을까? 앞으로 뱀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겠다.

며칠이 지났다. 한쪽 구석에 개구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전에 찾아왔던 개구리 중 한 마리가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열심히 말한다. 귀 기울여 들어보니 내가 들려준 하늘나라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내가 한 것보다 훨씬 실감나게 한다. 그리고 매우 과장되게 한다. 특히 뱀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너무 실감나고 아주 구체적이다. 그런데 깜짝 놀랄 이야기가 들린다. 그런 무시무시한 뱀을 내가 때려잡았단다. 나는 얼굴이 화끈거려 더 이상 있을 수 없었다. 부끄러움과 두려움에 얼른 그 자리를 피했다.

어느 날, 몇 마리의 개구리가 은밀하게 찾아왔다. “어떻게 하면 하늘나라에 갈 수 있습니까?” 무슨 결심을 한 모양이다. 나에게 자신들을 하늘나라로 데려가 달란다. 나와 함께 가면 뱀도 이길 수 있는 줄 아는 모양이다. 단순한 제안이나 부탁이 아니다. 반은 협박이다.

그 중에 한 녀석은 제법 예리하다. 내가 자기들과 다를 바가 없는 개구리임을 아는 눈치이다. 나도 뱀을 잘 모르고 뱀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것임을 아는 듯하다. 다만 말을 안 할 뿐이다. 나는 내 비밀을 아는 그 녀석이 한편 두렵지만 한편으론 오히려 그녀석이 매우 친근하다. 그녀석이 있기 때문에 나는 외롭지 않다.

나는 그 녀석에게 말했다. “너는 내 친구다” 그 말에 모두들 의아해 했다. 어느 날 나는 개구리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너희들 중에 하늘나라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있다. 관심은 있으되 감히 올라가지는 못하는구나. 나는 간다. 서둘러 나갈 것이다. 너희들에게 하늘나라는 단순한 호기심거리지만 나에게는 고향이다. 거기에 아버지가 있다. 형제들이 있다. 친구들이 있다. 사실 하늘나라는 나만의 고향은 아니다. 너희들도 사실은 거기에서 왔다. 내가 나가서 너희들이 살만한 좋은 곳을 마련하면 다시 오겠다. 와서 너희들을 데려 가겠다.”

그 후로 우물 안 개구리 사회에는 큰 소동이 일어났다. 가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는 개구리들과 극히 소수이기는 하지만 따라나서겠다는 개구리들이 있다. 다시 온다고 했으니 믿고 기다리자는 개구리들도 있다. 이 우물에서 어떻게 나갈까? 그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여러 가지로 궁리했건만 뾰족한 수가 없다. 우물 벽은 너무 높고 미끄러웠다. 유일한 방법은 두레박을 타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위험하다. 저 두레박은 사람들이 내려 보내는 것이니 두레박을 탔다가는 틀림없이 사람들에게 발각될 것이다. 나 하나 발각되어 죽는 것은 두렵지 않다. 그러나 나로 인하여 우물 안 모든 개구리들아 피해를 입을 수 있다. 그것이 걱정이다.

사람들은 자기들 영역에 다른 것들이 접근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자기들이 먹는 물속에 개구리가 산다는 것을 저들은 참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우물 안 개구리들을 전멸시킬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것이다. 나는 참으로 많이 고민했다.

여러 날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도무지 먹을 수가 없다. 여러 날 잠도 자지 못했다. 몸은 나날이 야위어갔다. 비록 몸은 야위어도 정신은 더욱 바짝 긴장한다. 전혀 피곤치도 않고 힘에 부치지도 않는다. 깊은 생각을 하던 중 현기증이 났다. 하늘이 뒤집히는 듯했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어렴풋이 하늘나라가 보인다. 내가 꼭 가야 할 하늘나라다. 하늘나라는 꽃이 만발하다. 먹을 것도 많다. 내가 좋아하는 잠자리가 하늘 가득 날아다닌다. 그런데 갑자기 그 많은 잠자리들이 뱀이 되어 달려든다. 깜짝 놀라 일어났다. 어딘지 모르겠다. 온통 칠흑 같은 어둠이다. 주변을 더듬었다. 벽이다. 힘껏 밀었다. 벽이 무너지며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밖에 있던 개구리들이 소스라쳐 놀란다.

내가 죽은 줄 알고 무덤에 묻었단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찾아왔다. 내가 “너는 내 친구다”라고 했던 그 녀석이다. 반가웠다.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녀석이 말했다. “선생님, 나가십시오. 선생님의 뜻대로 하십시오. 주저하지 마십시오.” 역시 친구답다. 내가 제대로 보았다. 다른 녀석들 같으면 울고불고 가지 말라고 했을 텐데 이 녀석은 나가란다. 이 녀석의 입을 통해서 바깥세상이 나를 부르는 것 같다.

“너에게 이곳을 맡긴다. 내가 올 때까지 다른 개구리를 들을 잘 돌보아라. 네가 죽기 전에 기필코 오리라.” 날짜를 잡았다. 며칠 있으면 인간들의 명절이다. 그 때가 되면 두레박이 자주 내려온다. 드디어 때가 왔다. 모두들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두레박을 기다렸다.

다른 개구리들이 그토록 두려워하여 접근조차 못하는 두레박을 나는 타고 올라간다. 이것 하나 만으로도 나는 영웅이다. 두레박이 내려온다. 주저 없이 올라탔다. 두레박 가장자리에 앉아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개구리들이 불쌍하다.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아래의 개구리들은 위를 올려 본다. 동그랗고 환한 하늘로 올라가는 나의 모습은 환상적일 것이다. 신비 그 자체일 것이다.

두레박이 올라가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탁 트인 세상의 풀내음이 온몸으로 밀려온다.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물을 길어 올린 처녀아이의 비명 소리이다. 내가 무서워서 지른 비명이 아니다. 개구리가 우물 안에 있었다는 것에 놀란 것이다. 나는 정신없이 뛰었다. 바깥세상의 경치를 바라볼 여유가 없다. 냄새 맡을 여유도 없다. 그냥 뛰었다. 맨 처음 내 발에 닿는 촉감은 풀이 아니다. 흙도 아니다. 딱딱한 돌바닥이다. 돌바닥의 충격이 온 몸에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전달되었다. 정신을 잃을 뻔했다. 무의식 속에 뛰었다.

풀이다. 풀 속에 닿았다. 좀 더 뛰었다. 그리고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얼마 후 정신이 들었다. 온 몸이 쑤시고 아팠다. 두리번거렸다. 우물이 보였다. 주변에 여러 사람이 웅성거린다. 아마도 우물 속 개구리들을 어떻게 제거할까를 이야기하는 모양이다.

나는 우물 속 개구리들을 이끌고 가야 할 안전한 낙원을 구해야 한다. 그것이 내 사명이다. 사명이 있으면 아프지 않다. 죽을 수도 없다. 나는 신천지를 찾아서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다. 뱀도 여럿 만났다. 뱀의 얼굴도 똑바로 보았다. 정말 무서웠지만 “나는 절대로 죽을 수 없다”는 각오로 뱀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뱀이 피해 갔다.

드디어 찾았다. 참 좋은 곳을 찾았다. 이제는 우물 속 개구리들을 이끌고 나오면 된다. 얼마나 안전하게 탈출하느냐가 문제이다. 목숨을 건 탈출일 것이다. 그래도 해야 한다. 우물가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우물은 있는데 우물에는 두꺼운 콘크리트 뚜껑이 덮여 있다. 그 안에서는 ‘윙~윙’ 모터 소리만 들린다. 조금 떨어진 곳에 수도꼭지가 여럿 있는 곳에서 사람들이 물을 받는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우물 속으로 들어갈 틈이 없다.

“우물 속 개구리들은 어찌되었을까? 아직 살아있을까? 살아있다면 빛 한줄기 없는 우물 속에서 어찌 살까? 아직도 날 기다리고 있을까? ‘다시 온다’는 내 약속을 아직도 믿고 기다리고 있을까?”

나는 그곳을 떠나지 못한다. 나는 아프지 않다. 아니 아플 수 없다. 죽지 않는다. 아니 죽을 수 없다. 꼭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개구리, 죽지 않는 개구리이다. 나는 내 나이가 몇인지 모른다. 세는 것도 잊었다. 언잰가는 돌아가리라 꼭 돌아가리라. 가서 저들을 구해 내리라. 그 때까지 나는 죽지 않는다.

* * * 그분이 떠났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갔다. 그 분이 떠날 때 하늘에서는 무시무시한 소리가 들렸다. 검은 물체들이 무수히 그림자를 드리웠었다. 그리고는 한참의 적막이 흘렀다. 두레박이 내려왔다. 전에 본 것보다 몇 곱절 더 크다. 그분이 가기 전에 말씀한 대로이다. 재앙이 임한 것이다. 우물물을 무시무시하게 휘 젖고는 물을 퍼 올린다.

다시 내려와서는 역시 무시무시하게 휘저으며 물을 퍼 올린다. 물이 줄어든다. 거의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물이 줄어들었다. 그동안 개구리들은 그분이 지명한 개구리의 지시하는 대로 꼭꼭 숨었다. 몇 마리의 개구리가 무섭게 휘저으며 퍼 올리는 두레박에 쓸려 올라갔다. 물이 다시 차올랐다. 우물은 예전의 모습을 회복했다.

그러나 더욱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났다. 하늘이 사라진 것이다. 큰 소리를 내면서 하늘이 점점 줄어들더니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어둠이 계속된다. 빛 대신에 “윙~윙” 하는 소리가 우물 속을 꽉 채웠다. 이제는 두레박도 내려오지 않는다. 시간이 멈추었다. 우물 속은 온통 밤이다. “윙~윙”소리가 날 때는 그 소리에 묻혀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개구리들은 그 소리에 익숙해졌다. 그 소리가 멈추자 너무 조용하다. 가끔 우물 벽 어딘가에 맺혀있던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우물 안의 적막을 깬다. 어둡고 긴 밤이 지속된다. 그러나 아무리 어둡고 긴 밤이 지속되어도 개구리들에게는 희망이 있다. 그분이 다시 오신다는 희망이다.

어제 늙은 개구리 하나가 죽었다. 벌써 개구리 여러 마리가 죽었다. 얼마 전에는 그분이 지명한 개구리도 죽었다. 죽는 순간까지도 그분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렸는데 그분은 끝내 오시지 않았다. 그가 유언을 남겼다. 자기는 잠을 잔다고 했다.

그분이 오시는 날 깨어날 것이라 했다. 개구리들은 모두 그 개구리의 말을 믿는다. 어제 죽는 늙은 개구리도 똑같은 말을 했다. 자기는 잠을 잔다고, 그리고 그분이 오시는 날 깨어날 것이라고. 우물 안 개구리들은 결코 죽지 않는다. 기다림이 있기에 죽을 수 없다. 깊은 잠을 잘 뿐이다. 오늘 또 한 마리의 개구리가 깊은 잠을 잔다. - 끝 - -

이 글은 김홍한저, <꿈꾸는 하나님 나라>, 한울, 2007년 3월. 의 서문으로 사용한 글입니다. 

여러해 전에 이 글을 썼습니다. 미친 듯이 썼습니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혈압이 오르고 숨이 가빠지는 가운데 썼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에 이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다듬는데 3년이 걸렸습니다. 이 글은 내가 참 아끼는 글임에도 불구하고 내놓기가 주저되는 글입니다. 오해의 소지가 많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어떤 이는 신랄한 비난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글이 실려 있는 저의 책 <꿈꾸는 하나님 나라>의 판매량이 저조하여 알려지지 않은 것이 그나마 비난을 줄였습니다. 독자들은 확대해석 하지 마시고 그냥 우화로 받아들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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