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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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 박철
  • 승인 2016.06.12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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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는 가난하게 살아야겠다’

살아있는 것은 아름답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살아있는 것은 /아름답다. /모든 들꽃과 꽃잎들과 진흙 속에 숨어사는 /것들이라고 할지라도, /그것들은 살아있기 때문에 아름답고 신비하다. /바람도 없는 어느 한 여름날, /하늘을 가리우는 숲 그늘에 앉아 보라. /누구든지 나무들의 깊은 숨소리와 함께 /무수한 초록잎들이 쉬지 않고 소곤거리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이미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이 순간에, /서 있거나 움직이거나 상관없이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오직 하나,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 / 그것들은 무엇이나 눈물겹게 아름답다. / -양성우 <살아있는 것은 아름답다>-

1980년 중반, 나는 지금의 아내를 만난 결혼을 하고 신혼살림을 시작했습니다. 그 시절 나는 문익환 계훈제 백기완 선생등이 조직한 민통련(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에 회원으로 가입해 민통련에서 운영하는 민족학교에 1기생으로 들어가 일테면 '진보적 세계관'이라는 세례를 받게 됩니다. 피가 뜨겁게 끓어올랐습니다.

매일 술에 떡이 되어 새벽에 들어오곤 했습니다. 아내와 결혼할 때는 두어군데 잡지에서 받은 문학상 경력을 믿고 글쟁이 노릇을 해서 먹여 살리겠다고 큰소리 쳤는데, 그것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것도 아니면 시민운동가가 되던가, 아니면 정치에 입문을 하던가 해야 할 텐데, 그건 더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 내외가 세 들어 살던 2층 집, 한 칸짜리 방 천정에 양성우, 신경림, 백석, 박노해, 이시영, 김남주 시인의 시를 사인펜으로 미농지에 베껴 덕지덕지 붙여 놓고 매일 소리내어 낭송하곤 했습니다. 그중에 양성우 시인의 시는 불안으로 가득한 실업자인 내게 큰 위로를 주었습니다.

그의 시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에서 살아있음이 던져주는 경이로움 앞에서, 가장 작은 곳에 있는, 가장 여리고 여린 것들 사이에 숨어 있는. 그 위대한 힘 앞에서 어렴풋이 ‘아, 나는 가난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양성우 시인의 시를 오랜만에 만나니 오래 헤어졌던 친구를 다시 만난 것처럼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그리고 1980년 중반, 위험천만한 철 계단을 조심스럽게 올라야만 했던 2층 신혼 단칸방, 막막하고 쓸쓸했던 그 시절이 생각납니다. 참으로 오래된 기억입니다. 오래된 기억은 다 아름답다고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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