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및 성 소수자에 대한 나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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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및 성 소수자에 대한 나의 입장
  • 박철
  • 승인 2016.06.11 22:58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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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숙제는 열심히 사랑하다 죽고 싶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는 수십년 동안 들고 일어서왔고, 커밍아웃하고, 부모님께 말하고, 부모님은 자식이 어쨌든 그들의 자식을 사랑하고, 약자를 괴롭히고 비난하는 것들을 견뎌내면서 꿋꿋이 자기 자신을 믿어온 수백만 명의 사람들의 용기에서 나온 셀 수 없이 많은 작은 행동들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천천히 전국의 사람들이 사랑은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만든 것입니다. 이는 너무나 비범한 업적입니다. 또한 평범한 사람이 비범한 일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의 근거이기도 합니다. 바비 케네디가 말한, 작은 행동들이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조약돌처럼 잔물결을 일으켜 희망의 폭포가 되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셀 수 없는, 종종 무명의 영웅들은 우리의 고마움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그들은 매우 자랑스러울 겁니다. 미국도 매우 자랑스러울 겁니다. 감사합니다." -오바마 연설-

   

오늘 오후 서울광장서 대규모 동성애 행사 '퀴어축제‘가 열렸다. 이에 대해 보수기독교에선 맞불집회를 열고 사탄 마귀 운운하며 저주에 저주를 퍼부었다고 한다. 나도 50대 직전까진 동성애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가졌었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 방학 때, 대학진학을 위해서 서울에 올라와 독서실에 지내면서 학원을 다니던 시절, 삼류 영화관에 갔다고 어떤 아저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던 경험이 강하게 작용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누가 동성애나 성적 소수자를 두둔하는 이야기라도 할라치면 버럭 소리부터 질러댈 정도였다.

그런데 50대에 진입하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하나는 그동안 내가 성경이라는 덫에 교리적인 감옥에 너무 갇혀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치 하느님 이야기라면 내가 전문가라도 되는 양 독점하려는 도그마에 빠져있었다. 일종의 집착이고 강박이었다. 예수님 시대 바리새인같이 육신의 눈은 멀쩡한데 역사와 사물을 그리고 자연과 사람을 제대로 볼 줄 모르는 소경이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잘 본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바로 내가 그 꼴이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내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는 것처럼 그 집착과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른 하나 그동안 나는 하느님을 성경이라는 텍스트로만 이해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성경이라는 텍스트로 다 담을 수가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가끔 산이나 숲에 들어가면 그 찬란한 빛과 나무, 풀, 돌멩이 그 다양함에 성찬을 금할 수 없다. 발에 밟히는 돌멩이 하나의 역사가 수십만 수백만 년도 더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돌멩이 하나에서도 하느님의 현존을 느낀다. 무한하신 하느님을 유한한 인간이 쓴 성서로 다 표현할 수 없기에 하느님은 성서너머로 존재하신다고 믿는다. 나는 그런 차원에서 하느님의 다양성을, 성의 개방성을 이해하려고 한다.

예수님은 늘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의 친구가 되어주셨다. 모든 종교적 규례와 편견과도 맞서 싸우셨으며, 오직 하늘 아버지의 뜻과 사람의 행복을 추구하며 사신 분이다. 하여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고 옥죄는 성서의 모든 기록은 오늘날 인류가 도달한 과학과 이성의 빛 아래 검증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바른 기독교 신앙을 추구하는 신도라면, 성서의 문구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성서의 구절을 절대화하는 성서우상으로부터 벗어나고, 성서무오설이라는 비합리적인 교리로부터도 벗어나야 한다. 성서의 특정 구절이 뭐라고 말하건 보편 상식에 어긋나면 성서 구절이 아니라 상식과 합리를 따라야 한다. 성소수자에 대한 성서의 기록도 오늘날에는 재해석되어야 마땅하다.

두 주 전, 나는 페이스북에 일테면 <나의 신학적 신앙적인 입장>에 대해 15가지로 정리를 해서 발표했다. 일종의 커밍아웃이다. 그중에 하나가 “나는 동성애와 성적 소수자를 하느님의 자녀로 그리고 형제자매로 받아들이며 그들의 모임이나 축제를 지지한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내가 동성애와 성 소수자들을 지지한다고 해서 누가 나를 욕하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선택한 것이므로 욕을 먹어도 할 수 없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이 미천함으로 신학적인 논쟁이나 토론을 할 만한 수준은 못 된다는 것이다. 앞으로 나의 숙제는 열심히 사랑하다가 죽고 싶다는 것이다. 그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 박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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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kddlsgP 2016-06-15 13:28:28
나는 동성애자도 이성애자도 아닌 독신의 삶을 살아왔다. 그래서일까? 나는 동성애에 대해서 공감을 하지 못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래서일가? 동성애를 지지하는 만큼, 동성애를 싫어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의 정서도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든다. 왜 자신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성향을 공감을 받으려 하면서 싫어하는 사람들의 성향은 잘못되었다고 하는가? 싫은 것을 강요받음도 옳지 않다.

강형구 2016-06-13 21:45:11
모르는 상황에서는 앞으로도 계속 이런 일들이 계속될 수 있겠지요.
그래서 나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적극 반대합니다.

강형구 2016-06-13 21:42:50
저도 군에서 휴가나와서 데이트하다 애인(지금의 안해)을 배웅하고나서 종로3가에서 막차를 놓치고 난감해할 때 누군가 숙소를 마련해주겠다더니 성추행을 해 와서 기겁을 하고 빠져나와 노량진까지 걸어갔던 기억이 있어서 성소수자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게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동성애가 선택적인 기호가 아니라 타고난 본성이라는 주장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지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심한 사회에서 누가 성소수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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