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기억해야 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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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기억해야 할 사람들
  • 김홍한
  • 승인 2016.06.11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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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약하고 비겁한 지식인들 용기 냈다

6월, 기억해야 할 사람들 광주의 피로 권좌에 오른 전두환의 7년 임기가 끝나간다. 민주화 세력은 이번에야 말로 독재를 끝내고 민주주의를 수립해야 한다는 역사적 요청에 부응하기 위하여 점점 더 민주화 투쟁의 강도를 더해 갔다.

   

그 중의 하나가 1986년 10월 28일 건국대학교에 전국 26개 대학 2,000여명의 학생들이 모여 반외세 반독재 시위를 벌였다. 이에 대하여 독재정권은 이틀 후인 10월 30일 북한의 금강산댐의 위험을 대대적으로 발표하여 그동안 수없이 써먹어 왔던 전쟁위험의 카드를 또 사용하였다.

사상 유례가 없는 대규모 사기극을 펼치면서 국민을 협박하고, 그것을 빌미로 건국대학교에서의 시위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는 정권을 연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함에 처해있는 독재 권력과 이번이 민주화의 좋은 기회라고 판단한 민주진영의 양보할 수 없는 싸움이었다.

독재정권은 지속적으로 금강산댐의 위협을 과장 하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시국을 조성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사건이 발생하였으니 바로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이었다. 고문치사사건은 사실 당시로서는 엄청난 사건은 아니었다.

그동안 박종철군 처럼 비명에 죽어간 이가 하나 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만 다른 것은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이 매우 높아져서 어떻게 해서든지 독재를 끝장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던 시기에 그 사건이 일어난 것이었다.

이번에는 비교적 기회주의적이고 나약한 전문 지식인들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박종철의 부검의(剖檢醫)였던 중앙대학교부속 용산병원 내과전문의 오연상(吳演相)씨가 박종철 군의 죽음이'고문치사일 가능성이 높다'는 증언을 한 것이다.

그리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 8과장 황적준(黃迪駿)씨의 부검소견서가 '외상 없음'으로 조작되었다는 증언이 뒤따랐다. 역시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끈질기게 추적하고 보도한 언론이 있었다. 이들이 이렇게 용기를 내어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민주세력은 박종철 군의 죽음을 계기로 크게 힘을 모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집요하게 요구하였다. 그러나 역시 독재 권력도 절대로 물러설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연세대학교 학생 이한열군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사경을 헤매게 되었다.

이제 이한열군의 중상을 더 이상 시대가 용납하지 않았다. 그가 최루탄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것을 그의 친구 이종창군이 부축하고 있는 모습이 로이터 통신 정태권 기자의 카메라에 잡혔다. 그리고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하면서 그것을 신문에 게재한 중앙일보 이창성 사진부장이 있었다.

지식인들은 나약하고 비겁하다고 했던가? 그러나 나약하고 비겁한 지식인들이 용기를 냈다. 오연상, 황적준, 정태권, 이창성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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