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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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운명
  • 김홍한
  • 승인 2016.06.01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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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녕 대한민국의 잔치는 끝났는가?

김홍한목사의 이야기 신학(2016년 6월 1일 158호)

하갈의 눈물

창세기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여주인공이라면 하와, 사라, 하갈, 리브가, 다말, 라헬이라 할 수 있다. 이 중 나의 시선을 붙잡는 이가 있다면 하갈과 다말이다.


하갈은 이집트여인, 사라의 몸종으로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스마엘을 낳아 주었다. 그러나 하갈은 그의 아들과 함께 한없는 학대와 천대를 받고 결국은 버림받고 쫓겨난 비운의 여인이다. 사라가 하갈을 학대할 때 아브라함은 하갈을 조금도 보호해 주지 못하였다. 역시 사라가 하갈을 이스마엘과 함께 쫓아내고자 할 때도 아브라함은 아무소리도 못하고 그들을 쫓아내는데 동의하였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생각해 주시고 힘을 주시며 희망을 주셨다. 그리고 그들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셨다.

다말은 유다의 며느리다. 유다에게는 에르, 오난, 셀라 이렇게 세 아들이 있었는데 다말은 에르의 아내였다. 에르가 자식 없이 죽고 다말은 오난의 아내가 되었건만 오난도 죽었다. 다시 셀라의 아내가 되어야 하는데 아직 셀라가 어려서 그가 장성할 때 까지 친정에 가서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셀라가 장성하여도 유다는 다말을 부르지 아니하였다. 기다리다 못한 다말은 유다에게 접근하여 그의 아들을 낳았는데 쌍둥이를 낳았다. 그가 베레스와 제라이다. 베레스는 다윗의 조상이다. 다말은 베레스와 제라를 낳고 버림받는다.

하갈과 다말은 성서 속에서 너무나 중요한 인물이건만 버림받은 여인들이다. 아마도 그들이 이방여인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하갈과 다말의 이야기는 다른 형태로 계속된다. 에스라 9-10장의 이야기다.

예루살렘 성전건축을 마무리 한 다음 유대인들은 황당한 일들을 벌인다. 유대인들과 결혼한 이방 여인들과 그 아내들에게서 난 자식들을 내쫓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이방여인을 아내로 들인 것을 매우 역겨운 일로 여겼다. 그들의 거룩한 씨가 더럽혀 진 것으로 여겼다. 하나님께 대한 배신으로 여겼다. 이방인 아내와 그에게서 난 자식들을 쫓아내는 것을 반대한 소수가 있었지만 묵살 되었다. 이렇게 쫓아낸 가정이 120가정이 넘는다.

그냥 무작정 쫓아냈다. 그들은 어찌 되었을까? 자기 민족에게 돌아갔을까? 많은 이들은 돌아갔겠지만 더러는 차마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광야를 헤매다 지쳐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돌아간 이들은 자기 민족에게 환영받았을까? 그들이 데리고 간 자식들은 어찌되었을까? 여러 가지 상상을 해 보지만 그들은 아마도 멸시와 천대 속에 살던지 어쩌면 노예로 전락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유대인들에 대한 원망과 증오 속에 평생을 살다가 죽었을 것이다.

쫓겨난 이들만 비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쫓아내야 하는 이들도 그들 못지않게 괴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내색하지 못한다. 어느 누구에게도 항변하지 못한다. 신앙이라는 무시무시한 강요가 그들을 짓눌렀다. 그것은 폭력이다. 살인보다 더 큰 폭력이다. 신앙의 이름으로 행해진 광기다. 유감스럽게도 성경에는 이러한 광기가 곳곳에 숨어 있다. 유대인들에게서 쫓겨난 수많은 이방여인 아내들과 그의 자녀들에게서 하갈의 눈물을 본다.

성경은 이렇게 이방여인들에게 한없는 하갈의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을 정당화 한다는 말인가? 결코 그럴 수 없다. 그것은 유대인들 중에서 극우 민족주의자들의 행태이다. 그 반대의 말씀도 있다. 이사야서의 기록은 전혀 다른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야훼께로 개종한 외국인은 ‘야훼께서 나를 당신의 백성에게서 제명시키리라’고 걱정하지 말라. 외국인들도 야훼에게로 개종하여 나를 섬기고, 야훼라는 이름을 사랑하여 나의 종이 되어 안식일을 속되지 않게 지키고 나의 계약을 지키기만 하면, 나는 그들을 나의 거룩한 산에 불러다가 나의 기도처에서 기쁜 나날을 보내게 하리라. 그들이 나의 제단에 바치는 번제물과 희생제물을 내가 즐겨 받으리라. 나의 집은 뭇 백성이 모여 기도하는 집이라 불리리라.”
- 이사야 56:3~7 -

에스라서는 유대민족이라는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기록된 것이다. 이집트, 시리아, 아시리아, 바빌론 등 숫한 나라와 민족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르는 와중에 북이스라엘은 멸망하고 남유다는 계속하여 다른 민족에게 시달리다가 결국 왕을 비롯하여 온 백성이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다. 에스라서는 그 원인을 이방인들과 그들의 종교로 인한 민족정체성의 상실에서 보았다.
반면 이사야서는 민족을 뛰어넘어 온 인류를 본다. 장차 도래할 하나님 나라에서는 사자와 어린양이 함께 뛰놀고, 어린아이가 독사굴에 손을 넣어도 물리지 않는 세상, 모든 민족들이 하나님 앞에서 한 형제가 되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꾼다.

신약시대에 이르러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다.

유대인 못지않게 우리는 민족의식이 강하다. 또한 종교적 열정도 누구 못지않게 강하다. 그것을 조심해야 한다. 편협한 민족주의와 성숙하지 못한 종교적 열정은 언제라도 무시무시한 광기를 부릴 수 있으니 말이다.

오늘날 우리나라 남성의 10%가 국제결혼을 한다. 시골 초등학교의 경우에는 혼혈아동 수가 더 많은 곳도 있을 정도다. 그런데 만일 우리나라에서 잘못된 민족주의가 극성을 부리면서 에스라서 에서처럼 외국인 아내와 그에게서 난 자녀들을 추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튀어나온다면 불행한 일이다. 혹 극심한 사회혼란이 발생한다면 그런 일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다문화사회로 진입한 우리나라가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할 일이다.

나라의 운명

1910년 조선이 망했다. 역사를 공부하면서 국가의 흥망성쇠의 원인을 분석해 보는 것은 흥미 있는 일이다. 고구려는 어떻게 망했는가? 백제의 멸망원인은 무엇인가? 신라는? 고려는?

고구려는 무력의 나라다. 정복전쟁으로 나라를 키우고 나라를 유지했다. 그리고 전쟁에 패해서 멸망했다.

백제는 세련된 외교의 나라다. 북에는 고구려, 서에는 중국, 동에는 신라, 남쪽 바다를 통해서 일본이 있다. 그 한 가운데 백제가 있었다. 백제는 주변 나라들과의 세력 균형 속에 그 역할을 했는데 그 힘의 균형이 급격히 무너지면서 백제도 망했다. 나라가 힘이 없어서 망한 것이 아니고 내란으로 망한 것도 아니기에 아쉬움이 많다. 그래서 백제가 망하고는 부흥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신라는 어떻게 망했는가? 늙어서 망했다. 1,000년 역사를 거치면서 충분히 늙었다. 고구려와 백제의 멸망은 아직 힘이 있는 상태에서 망했기에 아쉬움이 남지만 신라는 늙어서 망했기에 아쉬움이 없었다. 그래서 부흥운동도 없었다.

고려의 멸망은 백성이 없어서 망했다. 나라의 기초는 백성이다. 그런데 고려는 백성은 없고 귀족과 노예뿐이었다. 귀족들이 백성의 대부분을 노예로 만들었다. 노예에게는 국가가 없다. 국가는 노예를 보호해 주지 않는다. 의무도 부여하지 않는다. 노예라는 재산을 소유하는 이가 귀족이고 그들에게 의무를 부여하는 이는 주인이다. 노예에게는 주인만 있을 뿐이다. 귀족들은 나라가 위기에 처해도 자신의 노예들을 국가를 위해서 내놓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들을 지키는데 노예들을 활용했다. 나라가 몽골의 침략을 당했을 때도 그랬다. 최씨 무신정권은 자신들의 사병들을 자신들만을 지키는데 활용했을 뿐 나라를 구하는 데에는 내놓지 않았다. 고려는 이렇게 귀족과 노예라는 극심한 양극화의 사회였다. 후기 들어 그것이 더욱 심화되면서 고려는 국가를 유지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망했다.

대전 유성구에는 이팝나무가 많다. 해마다 5월 초면 이팝나무가 활짝 꽃을 피운다. 이팝나무는 그 꽃이 꼭 쌀밥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팝”은 “이밥”이 변형된 말이다. “이밥”은 이씨, 즉 이성계가 준 밥이라는 말이다. 고려 말 대부분 노예가 된 백성들에게 쌀밥은 그림의 떡이었다. 그런데 이성계가 왕이 된 후 비로서 쌀밥을 먹을 수 있었다.
반면 “성계육”이란 말이 있다. 돼지고기를 성계육이라 했다. 돼지고기를 칼로 다지면서 사람들은 이성계에 대한 원한을 풀었다. 돼지고기를 성계육이라 했던 이들은 아마도 고려의 귀족들이나 그에 버금가는 이들이었을 것이다.

조선이 망한 이유, 당쟁일 수도 있고 세도정치일 수도 있지만 나름으로 생각하는 것이 조선도 신라와 같이 충분히 늙어서 망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쉬움도 없다. 일제로부터 독립운동을 한 이들도 조선왕조를 회복하자고 한 이들이 거의 없었다. 1945년 해방이 되었을 때 어느 누구도 조선왕조를 재건하자고 하는 이가 없었다.

그래도 억지로 조선이 망한 동기를 들라면 나는 그것이 과거시험제도가 무너지면서라고 생각한다. 과거시험제도는 고려 광종 때 중국으로부터 도입된 이후 중요한 인재 등용문이었다. 많은 문제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훌륭한 제도였다. 전 세계적으로 중국과 우리나라만이 시험이라는 객관적인 제도를 통해서 인재를 등용했다. 과거시험은 비교적 공정했고 과거시험을 통해서 평민들은 신분상승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조선 후기에 들어 과거시험이 지극히 타락했다. 시험장에서의 부정행위는 말할 것도 없고 시험도 보기 전에 합격자가 정해졌다. 공공연히 대리시험이 치러졌다. 과거시험장을 亂場(난장)이라 하는데 엄숙해야할 시험장이 부정부패로 소란하기 이를데 없고 썩은 내가 진동하니 과거시험장이 혼란한 장소의 대명사가 되었다. “난장판”이라는 말이 거기에서 나왔다. 관리의 등용문이요 양반으로 신분상승하는 기회요 뭇사람들에게서 존경을 받는 학자가 되는 과거시험이 이렇게 타락했으니 모든 것이 타락한 것이다. 亂場(난장)이 난장판이 되면서 조선은 이미 망한 나라가 되었다.

조선은 선비의 나라, 양반과 선비는 구별해야 한다. 양반은 귀족을 말하지만 선비는 올곧은 지성인이다. 선비의 나라 조선이 망하고 일제의 지배를 받으면서 무너진 선비정신을 일본의 무사정신이 대신하였다. 선비정신과 무사정신은 무엇이 다를까? 선비정신은 옳음을 따른다. 비록 王命 이라 하더라도 그 명령이 옳은지 그른지를 따져서 옳을 때 순종한다. 그러나 무사정신은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다. 주군의 명령이라면 그 명령이 비록 옳지 않다 하더라도 따르는 것이 무사의 미덕이다.

대한민국의 현재는 어떠한가? 안타깝게도 해방된 조국의 권력을 친일파들이 장악했다. 그들은 무사정신을 흠모하는 이들이었다. 게다가 일본인보다 더 무사정신이 투철한 일본군 출신 박정희가 권력을 장악한 이후는 정말이지 무사의 나라가 되었다. 그것도 제대로 된 무사정신이 아니라 타락한 무사정신으로서의 야쿠자정신(조직폭력배문화)이다. 군, 공무원, 기업, 교육계, 경찰 등 우리사회 구석구석까지 야쿠자 문화가 스며들어있다.

어린아이가 자라다 보면 자기의 두 발로 서게 된다. 비로소 “정신”이 든 것이다. 아무리 천하장사라 할지라도 “정신”이 없으면 두 발로 곧게 설 수 없다. 이스라엘 민족이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홀로 서지를 못하고 이집트사람에게 종살이 했다. 이러한 히브리인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정신이 들었다. 그래서 이집트의 노예살이 보다 더 불안함에도 불구하고 광야로 나섰다. 이것이 출애굽이다.

“정신”의 우리말이 “얼”이다. 정신 나간 사람을 우리말로는 “얼간이”라 한다. 정신이 드러난 곳이 “얼굴”이다. “얼” 빠진 민족이 “얼”을 차려야 바로 설 수 있다.

대한민국은 얼빠진 나라, 얼빠진 지도자, 얼빠진 백성이다. 내 나라의 먹거리 자급률이 25%도 안 된다. 이런 나라는 없다. 에너지의 대부분을 수입해서 쓰고 있다. 이런 나라도 없다. 내 나라의 군 지휘권을 외국에 저당 잡혔다. 이건 나라가 아니다. 그러면서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라고 하니 얼빠진 나라가 아닐 수 없다.

이야기 신학 138호에서 “대한민국의 전성기는 끝났다.”고 했다. 인구가 감소한다. 한 해에 100만 명 정도 출생하던 것이 2000년대 들어서는 50만 이하로 줄었다. 젊은이들이 아기를 낳지 않는다. 아기를 낳아서 키울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외국인 이주자들이 그 공백을 상당부분 보충할 것이니 불행 중 다행이라 할 것이다. 나는 이것을 다행이라 생각하는데 많은 이들이 우려를 한다. 앞글에서 유대인들이 이방인 아내와 그에게서 난 자식들을 추방했던 것과 그 근본 정서가 비슷하다.

인구감소와는 별개로 또 하나의 망조가 보이기 시작한다. 국가의 기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세월호 사건과 메르스 사태 등을 보면서 그것을 확인했다. 국가의 사악함과 무능함에 분노를 넘어서 가슴이 무너지는 절망감이 몰려온다.

아! 그러면 오늘날 대한민국의 살 길은 없는가?“ 먼저 정신이 들어야 한다. 새롭게 찾을 것 없이 이미 있는 것들이다. 3.1정신이요, 4.19정신이요, 5.18정신이요, 6.15정신이다. 3.1은 평화와 독립정신이다. 4.19는 민주주의정신이요 5.18은 민주와 민중이다. 6.15는 평화와 통일이다. 이것을 살려내면 이 나라가 설 수 있고 이것을 살려내지 못하면 이 나라는 망한다.

나라가 새로워지고 국운융성의 때를 맞이하는 것, 우리에게는 너무 확실하고 너무 절실한 방법이 있다. 통일이다. 통일하면 정말 이 나라는 새로워져 세계 속에 우뚝 서서 세계를 이끄는 나라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도 그것을 잘 안다. 그래서 “통일 대박”을 말하지 않았던가?

알긴 아는데 거꾸로 간다. 알면서도 거꾸로 가니 더욱 안타깝다. 통일의 불씨인 개성공단을 폐쇄했다. 매일 매일의 뉴스는 상당부분 북한관련 뉴스인데 그 내용이 근거 없는 추측성 기사가 대부분이고 그 논조가 모두 반 통일적이다. 평화와 통일은 고사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남.북 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자 애를 쓰는 것이 분명하다. “통일 할 수 없다”, “통일해서는 안 된다”고 열심히 국민들을 세뇌시키고 있는 듯하다. 아! 희망은 있으되 그 희망이 흐릿하다. 정녕 대한민국의 잔치는 끝났는가?

노자 읽기(3장)

不尙賢(불상현) : 훌륭하다는 사람 떠받들지 말라
使民不爭(사민불쟁) : 사람들 사이에 다투는 일 없어질 것이다

세상은 잘난 사람들이 높임 받는다. 그런데 소위 잘났다는 자들은 경쟁에서 승리한 자들이다. 억압하는 자들이고 군림하는 자들이다. 경쟁이라는 것은 사회를 발전시키는 힘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동시에 사회를 험악하고 잔인하게 한다. 경쟁은 사람의 우열을 가르고 우열은 순위로 나뉘어 평등이 깨어지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사회로 몰아간다. 노자가 잘난 사람을 높이지 말라는 것은 잘난 것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로 인한 계급분화를 거부하는 것이다.

不貴難得之貨(불귀난득지화) : 얻기 어려운 물건을 귀히 여기지 말라

보물이라는 것은 희귀성에 기초한다. 금이 귀한 것은 얻기 어려워서다. 귀한 것과 중요한 것은 구별해야 한다. 흔하고 흔한 것이 흙이고 물이고 공기이다. 생명은 거기에서 나온다. 소위 귀하다는 것에서는 생명이 나오지 않는다. 그것으로 생명을 유지할 수도 없다. 세상의 고귀한 보물일수록 생명과는 무관한 것들이다. 토마스 모어는 <유토피아>에서 말하기를

“유토피아에서는 노예들의 무거운 족쇄를 금으로, 묶는 사슬을 금으로, 파렴치한 행위자에게 금 귀고리, 금반지, 금사슬을 두르고 금 머리띠를 씌운다. 그들은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금은을 경멸의 대상으로 삼는다. 보석은 아이들의 장난감, 크게 되면 내던진다. 유토피아에서는 귀한 생필품은 진흙으로 아주 정교하게 그러나 요강 등 대중이 이용하고 천한 용도에 금은을 사용한다.”

금이 이렇게 천대를 받는다면 노예의 목에 걸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서 금을 생산하지는 않을 것이다.

不見可欲(불견가욕) : 탐날 만한 것 보이지 마라
使民心不亂(사민심불란) : 사람의 마음 산란해지지 않을 것이다

周易 雷水解卦(뇌수해궤) 육삼효 효사에 慢藏誨盜(만장회도) 冶容誨淫(야용회음) 이라는 말이 있다. 감추는 것을 게을리 하면 도둑을 가르치는 것이고 얼굴을 예쁘게 꾸미면 음란한 마음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장사하는 데도 道가 있다. 장사하는 이는 일반적으로 좋은 물건을 진열하고 사람을 유혹한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고급가구점에서는 정말 고급가구는 깊이 감추어 놓고는 꼭 찾는 이 에게만 보여준다. 보통의 사람이 너무 고급가구를 보면 그 가구에 반하여 자신의 경제수준으로 살 수 있는 가구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결국 그는 –노자의 말대로- 마음이 산란해져서 가구를 사지 못하고 돌아간다. 그러니 이익을 추구하는 장사꾼의 얄팍한 장사수단에도 不見可欲(불견가욕) 해야 使民心不亂(사민심불란)하여야 물건을 팔 수 있다. 장사꾼의 道도 이러한데 하물며 건강한 사회를 이루는 데는 더더욱 그러하지 않겠는가? 마땅히 사치풍조를 억제하고 근검과 절약을 장려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천박한 자본주의 가치관에 물들어 “소비가 미덕이다”는 식의 경제관은 인간의 한없는 욕망을 자극한다. 만족을 모르는 소비, 상대적 우월감과 소외감, 자원과 에너지의 낭비, 쓰레기의 양산, 이로 인한 환경파괴 등으로 큰 재앙을 불러오지 않을 수 없다.

虛其心(허기심) : 마음은 비우고
實其腹(실기복) : 배는 튼튼하게 하며
弱其志(약기지) : 뜻은 약하게 하고
强其骨(강기골) : 뼈는 튼튼하게 한다

마음을 비우라는 것은 욕심을 버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노자가 버리라는 욕심은 금욕주의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금욕주의는 물욕과 명예욕은 물론 식욕과 성욕등의 자연적인 욕구까지도 억제하는 것이지만 노자는 그렇지 않다. 헛된 욕심은 버리고 실질적인 욕구는 채우라는 것이다. 인위적인 욕구를 버리고 자연적인 욕구를 채우라는 것이다.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 지배하고자 하는 마음은 비우고 억지로 세운 인위적인 뜻도 약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자연적인 배와 뼈는 튼튼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기업 상품 보다는 중소기업 상품을 이용합시다.
대형유통회사 보다는 동네 가게를 이용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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