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 숲 길에서 삶을 노래하다
상태바
무주 숲 길에서 삶을 노래하다
  • 류기석
  • 승인 2016.05.18 12: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낙엽송 숲길에서 찾은 평온과 적상산 일출장관

요즘 걷기가 대세인가 보다. 갑자기 걷기 열풍이 확산되더니 요즘 제주 올레길은 물론 전국의 둘레 길과 숲 길이 북새통을 이룬다. 그만큼 숲이 자리한 길은 사람들의 심신을 자유롭게 할 뿐아니라, 영혼까지 맑게 한다.

   

   

아름다운 마을 길과 숲 길을 걸으며 힐링과 리셋을 하는 걷기라면, 당연코 산티아고 길을 로망으로 삼는다.  산티아고 순례 길은 누가 먼저 가는가를 겨루는 곳이 아닌 각자의 힘에 맞게 걸어서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누구나 승리자가 되는 그런 길이라고 한다.

그저 길을 걷는다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둔다는 것, 걷는다는 행위로 나와 자연은 물론 내 속을 관통하는 시간의 흐름을 천천히 음히할 수 있다는 말에 새삼 소중함을 느낀다. 피에르 쌍소는 '걷는 것만으로도 풍경을 변주할 수 있다"고 했다. 이제 제 길은 각자가 알아서 걸어가도록 해보자.

   

   

지난 5월 6일과 7일 1박2일 동안 다섯 부부, 열 명이 전북무주 적상산아래 초리(넝굴)마을로 즐겁고 신나는 여행을 떠났다. 첫째날 오전일정에 이어 오후일정은 각자가 준비한 쑥떡을 포함, 간식과 함께 조금전 산길에서 채취한 나물로 전을 붙여 오찬과 쉼을 갖고는 아무도 찾지 않는 숲이자 어떤 봄의 색채에도 뒤지지 않는 낙엽송 숲 길이 자리한 오두막골 청량한 계곡으로 향했다.

덕유산 갈미봉, 대봉, 투구봉의 천명한 기운으로 둘러져 걷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이곳은 한 낮의 하늘이 푸르다 못해 시리다. 아무도 찾지 않아 너무도 고요한 숲길을 조금 걸어 들어가니 연녹색 옷으로 잘 차려입은 낙엽송 숲 길이 도열하고, 우렁찬 계곡의 물소리가 일행을 반긴다.

   

우연히 인테넷에서 조지 기싱(Geoge Robert Gissing)의 <헨리 라이크로프트 수상록>에 적혀진 ‘봄날 아침마다 낙엽송 숲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있어 적어본다.

‘지금의 낙엽송보다 더 아름다운 색채는 이 지상에 없다.’ ‘낙엽송은 비할 데 없는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순간이 있다. 봄마다 그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란 글인데 기싱은 다시 다음과 같은 말도 했다. 

‘이곳에서 나는 날마다 한가로이 산책을 나가 낙엽송을 바라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이것을 즐기는 데 필요한 마음의 평정까지 누리고 있는데, 바로 이보다 더 경이로운 일이 세상에 있을 수 있을까?’

   

봄바람은 살랑대고 햇살은 따숩고, 공기는 맑고 깨끗해 폐부로 파고드는 봄 길 여행 중, 다섯 부부는 저마다 낙엽송이 주는 평온을 선물로 받았으리라 생각된다. 천연의 숲 속 폭포가 있는 계곡가에 둘러앉아 망중한(忙中閑)을 즐기다가 돌아오는 길에는 행복한 부부만들기와 함께 추억을 나누고자 사진을 찍었다. '세상에서 어느 봄 길이 이처럼 아름다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둘째 날 새벽5시 적상산(1,034m)으로 향하는 길은 비교적 편하다. 산정호수(해발 800m)를 만들면서 적상산 정상까지 도로를 낸 덕분으로 구불구불 울창한 숲 길이지만 쾌적하게 적상산에 올랐다.

일단 적상호수 전망대에 차를 세우고는  찬란한 일출을 맞이했다. 날씨가 차고, 바람이 심하게 부는 통에 능선 아래 무주호와 적상호수의 물안개는 만나지 못했다. 이어 안국사로 발길을 돌렸다. 화창한 아침햇살이 극락전으로부터 영원한 생명과 광명을 받아 온누리를 서서히 밝힌다.

   

천년고찰 안국사의 극락전은 본전으로 무량수전이라고도 하는데 의미는 세상사람들의 평화와 행복을 위하는 곳이 극락이라는 것이다. 지붕형태는 다포계 양식의 맞배지붕으로 정면과 옆면이 각각 3칸이며, 붉은 단풍 빛깔처럼 아름다운 단청에 관한 설화와 함께 그 흔적이 전해지고 있다.

'인욕바라밀' 즉, 학이 단청을 하다가 날아갔다는 이야기가 전하는데 그래서인지 안국사 극락전의 뒤편 한쪽에는 딱 하루거리에 해당하는 분량의 목재가 단청이 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나뭇결을 드러내고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내가 살아가는 동안 이땅이 하늘나라임을 알고 좀더 구별된 삶으로 살아야 됨을 깨닫는다. 

   

적상산은 여인네의 붉은 치마를 닮았다 하여 이름도 ‘붉을 적(赤)’에 ‘치마 상(裳)’이다. 사실 인근 덕유산에 가려져 그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제법 숨겨진 비경이 많은 곳이란다.

더욱이 온전하게 보존된 적상산성을 따라 걷는 숲길은 일품이고, 적상산은 가을 경치를 알아주지만 5월이면 노란 꽃을 피우는 피나물 군락지도 장관이란다. 이곳 적상산성(赤裳山城) 안에는 안국사가 있는데 1,000m가 넘는 천혜의 요새중의 요새로 임진왜란 이후 적상산 사고를 설치하여 우리나라 국사를 지켜온 유서 깊은 사적지다.

   

적상산사고(赤裳山史庫)로 이야기 할 것 같으면 북방에 위치한 묘향산사고(妙香山史庫)를 만주에서 일어난 후금과의 관계가 악화되자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의견이 있어 임진왜란이 끝난 뒤 실록을 정리·편찬하여 5부를 완성하고, 춘추관·마니산·태백산·묘향산(적상산)·오대산에 각 1부씩 보관했다고 한다.

'DAUM 백과사전'을 살펴보면 1610년(광해군 2) 무주군에 있던 적상산성을 수리하고 1614년 실록전을 건립해 1633년(인조 11)까지 묘향산사고의 실록을 모두 옮겼다. 1643년에는 사고를 지키고 산성수비를 강화하기 위해 산성 안에 수호사찰로 호국사를 창건했다. 1872년(고종 9) 실록전과 선원각을 개수했으며, 조선 말기까지 실록이 완전히 보관되어 있었다. 1910년 일제에 의해 적상산실록은 창덕궁 장서각으로 이관되었다. 8·15해방 후 실록도난사건이 발생하여 여러 권이 없어졌고, 나머지도 6·25전쟁으로 분실되었다. 산성에 있던 실록전 등의 건물도 언제 어떻게 없어졌는지 알 수 없으며, 다만 선원각만 근처의 안국사에 남아 있다.<계속>

   

   
적상산 적상호수 전망대 포스터사진, 봄철 해맑이 장관

   
적상산 적상호수 전망대 포스터사진, 가을 단풍철 장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