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야 할 예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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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야 할 예수의 길
  • 박철
  • 승인 2016.05.16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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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예수살기는 어떤 모임인가?

예배당을 가는 길을 아는 사람은 많지만 하느님께로 가는 길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께로 가는 길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그것이 곧 자기 자신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이 중대한 말씀 또한 그리 쉽게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존 라이트푸트(John Ligtfoot)는 히브리어 관용법을 관찰한 결과 이것을 “나는 참되고 살아 있는 길이다”라고 과감히 번역했다. 독일어 성경에 의하면 “나는 길이고 또한 목적이다. 왜냐하면 내 안에는 진리와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번역함으로써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성경 본문의 전후 문맥을 관찰해 보면 누구든지 쉽게 ‘길’에 관한 말씀이 중심을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진리와 생명은 앞에 있는 ‘길’을 묘사하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예수는 자신을 ‘길’이라는 것과 동일시하였다.
예수께서 길이라고 하셨을 때 이 길은 윤리적인, 도덕적인 의미의 원리나 체계이기보다는 예수 자신의 인간성과 인격과 삶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하늘 영광을 버리고 자신을 비워 인간의 모습으로 종이 되어 이 세상에 인간을 섬기러 왔고, 또 섬겼던 제자들 발을 몸소 씻어 주셨던 그 예수의 삶, 친구를 위해 목숨을 아낌없이 십자가에 던지고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자신을 희생하던 그 예수님의 농도 짙은 사랑과 인정, 이것이 바로 삶의 길이라는 의미다.

다음으로 예수의 길이라고 하는 것은 그의 가르침 교훈과 설교를 의미한다. 이웃 사랑과 하느님 사랑이 동전의 앞뒤와 같이 불가분(不可分)의 관계라는 것이다. 사회정의를 실현하지 않고서는 하느님을 예배한다고 하더라도 하느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는 가르침, 어린 소자에게 물 한 그릇 대접하는 것이 곧 하느님을 대접하는 것이라는 가르침, 그 교훈이 바로 우리 인간의 길이 되는 것이다.

구약성서에서 흔히 하느님의 율법을 가리켜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표현을 많이 했는데, 그 진정한 의미를 가르치고 재해석하고 재천명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인 것이다. 그래서 요한은 예수를 로고스(Logos)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 가르침은 단순한 도덕적인 교훈을 넘어서 인간을 해방하고 구원하는 복음의 가르침이요 교훈인 것이다. 십자가 사건은 그가 인간을 구원하는 진정한 길임을 보여 준다. 그리스도교는 영광과 승리 이전에 십자가의 길이고 십자가의 도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된 길이 되신다.
이 말은 예수의 길이 보편타당한 우주적인 길이 된다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길인 것이다. 참된 길이란 또한 ‘유일한’ 길임을 말한다. “나를 거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이르지 못한다”(요한 14:6)고 선언하셨다. 이 참된 길이란 또한 ‘새 길’을 뜻한다. 히브리서에서 예수는 새 길을 여셨다고 말한다. 세상이 알지 못하던 길을 예수께서 여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새 사람, 새로운 존재, 새 피조물, 새로운 삶, 새로운 세계,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으로 가는 길을 여신 것이다. 이 참된 길은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고, 영생으로 인도하고, 유한 존재에서 초월적인 존재로 이르는 유일한 새 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또한 살아 있는 길이다.
이 말은 예수의 길은 어떤 원칙이나 이념, 우상, 전설이나 신화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예수는 추상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2,000년 전뿐만 아니라 지금도 살아 계셔서 그분과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우리가 참된 길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생은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시고 지금도 역사하신다는 것이다. 그는 새로운 하늘, 새 땅을 향해 지금도 계속 행하고 있는 길이다.

성서적으로 보면 우리는 갈 길을 모르고 방황하는 양들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빛으로, 길로 오셔서 우리를 삶으로, 구원으로 인도하신다. “나는 길이다”라고 하신 그분 자신이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 나는 내 길을 가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묵묵히 그의 길을 가셨다. 그는 또 “각 사람은 자신에게 운명 지어진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마태 16:24)고 하시고 앞장서서 가셨다. 예수는 결코 남더러 가라고 해놓고 자기는 가지 않는 사람이 아니었다. 말 따로, 행동 따로의 사람이 아니었다. 예수는 어디까지나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였다. 결코 자기를 섬기라고 하지 않았다.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하여 하느님의 능력을 이용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자신을 부인하고, 아버지 하느님의 뜻에 자기의 뜻을 복종시켰다. 하느님 나라의 사역을 하시다가 십자가 위에서 비극적 인생을 마감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랬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불쌍히 여겨 일으켜 살리셨고, 그를 따르는 삶을 살기로 다짐하는 우리 모두에게 희망이 되신 분이시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고 구세주로 신앙하는 것이다. 예수를 따르는 삶 없이, 믿기만 한다는 것은 자기기만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예수살기는 어떤 모임인가?
우리는 예수의 부름을 받고, 그분에게 붙잡혀, 목사가 된 사람들이다. 제자의 길을 가기로 결단하고 예수와 더불어 고난 받는 십자가의 가시밭길을 가기로 자처한 사람들이다. 세상의 영광과 축복을 약속하는 이 땅의 수많은 대형교회들을 마다하고, 불러주지도 않겠지만 이 조그마하고 보잘것없는 이 교회를 섬기는 목사들이다. 비록 우리가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과 일치하는 삶을 살지는 못하지만, 이웃의 고통에 함께하며 그들 편에서 살려고 흉내라도 내려고 예수살기운동에 참여한 것이다.

우리는 예수를 믿기 위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따르기 위해서 믿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예수를 숭배하기 위해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따라 하느님 나라 사업에 투신하고자 예수를 따라 나선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 제자의 길이 결코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길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오히려 고뇌와 번민을 안겨주며, 위선을 더해주고 독선을 조장해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번씩 아편이나 진정제 주사를 놔주는 돌팔이 의사가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교회는 튼튼한 제도나 잘 짜여진 조직이 아니다. 권위 있는 교권과 위계질서도 아니다. 장엄한 성가나 웅변적 설교도 아니다. 그 어떤 치장이나 허례허식도 아니다. 입술로만 “주여 주여!” 불러대는 신앙도 아니다.

다만 우리는 예수께서 가신 길이 옳은 길이요.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는 사실을 알고, 비록 비틀거리고 넘어지면서, 의심하고 두려워하면서, 고민하고 자책하면서,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제자의 길을 걸어보겠다고 따라나선 사람들이다. 교회 공동체의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오직 한 가지이다. 곧 예수께서 몸소 가신 나눔과 섬김의 길에 우리가 얼마만큼 동참하는 삶을 사느냐이다. 오직 예수를 따르는 제자의 길에서 인생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분부를 따라, 길 자체이신 그분의 뒤를 따라 우리의 길을 가야 할 것이다.

끝으로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에 나오는 글 한 대목을 소개하고 싶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에서 도망칠 수 없다.
십자가를 피한다면
그 사람은 이미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밖으로 도망쳐도 거기에 십자가가 있고,
안으로 숨어도 거기에 십자가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위로 올라가도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고
밑으로 파고 들어가도 십자가가 있을 것이다.
박철 목사(좁은길교회. 부산예수살기 대표)

* 본 글은 예수살기 회보<창간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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