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다”고 대답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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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다”고 대답하더라.
  • 김홍한
  • 승인 2016.01.07 1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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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Mythos” 아니고 “Logos”라는 것

“죽고 싶다”고 대답하더라.

살인죄 못지않게 큰 죄가 죽음을 거부하는 죄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는 죽은 이를 살려냈다. 명계를 다스리는 하데스가 크게 반발하여 그의 목숨을 요구하였고 제우스는 그를 벼락으로 죽였다. 시시포스는 자신의 생명을 거두러 온 저승사자를 결박함으로 자신도 죽지 않고 남도 죽지 않게 했다. 역시 명계는 큰 혼란에 빠졌다. 전쟁의 신 아레스가 저승사자를 결박에서 풀어줄 때 까지 세상에는 죽는 이가 없었다. 시시포스는 저승사자에게 끌려가기 전에 아내에게 시체를 묻지도 말고 장례를 치르지도 말라고 간곡히 당부했다. 저승에 간 시시포스는 장례를 치르지 않는 아내를 벌준다는 명분으로 다시금 이승으로 돌아와 오랫동안 살다가 저승으로 갔다. 죽음을 속이고 죽음을 거부한 죄 값으로 그는 산 정상으로 바위를 굴려 올린다. 정상에 오른 바위는 다시금 굴러 내리고 시시포스는 다시 그것을 굴려 올린다. 그 일은 영원히 계속된다.


오늘날 의학에 불만이 있다. 의술은 크게 발달했는데 그에 비례해서 죽음에 대한 철학은 발달하지 못했다. 병 치유는 당연하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죽지 않게 하려한다는 것이 문제다. 마땅히 보내야 할 사람도 보내지 않고 생명을 연장시키고 있으니 문제다.

오늘날 종교에도 불만이 있다. 종교야 말로 죽음과 친숙해야 하는데 영생을 말하고 천국을 말하면서도 죽음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살려주실 것이라고 한다. 종교인 자신의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께서 살려주실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이 더러 있다. 도대체 평생 무엇을 공부하고 무엇을 깨닫고 무엇을 설교했기에 죽음에 대한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가?

죽어서는 안 되는 이가 죽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도무지 죽음과는 관계가 없는 세월호의 어린 생명들이 죽었다. 늙은이들이 죽었더라면 그렇게 안타깝지 않았을 것을 죽어서는 안 되는 이들이 죽었기에 너무 안타깝다.
그에 못지않게 안타까운 것은 죽어야 할 이가 죽지 못하는 것이다. 죽음보다 더 큰 고통에 있으면서도 죽지 못하는 이들이다.

아폴론의 사랑을 받은 시빌레는 소원을 하나 들어주겠다는 아폴론에게 모래를 한웅큼 집어 들고는 모래알 수만큼 살게 해 달라고 했다. 아폴론은 시빌레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 시빌레는 늙고 또 늙었다. 그런데 죽지를 않는다. 살았으되 산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얼마를 더 살아야 할지 기약할 수 없는 상태에서 유리병 속에 들어가 살았다. 마치 박재처럼. 훗날, 어떤이가 말했다.

“쿠바이 땅에서 나는 유리병 속에 든 시빌레를 분명히 보았는데 아이들이 시빌레에게 ‘정말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고 물으니, 시빌레는 그리스 말로 ‘죽고 싶다’고 대답하더라.”

신비

성서는 “Mythos”가 아니고 “Logos”라는 것인데 그 구별이 모호하다. 성서 속에는 신화적인 요소들이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기를 신화와 종교를 구별하는 것으로 경전의 유무를 말한다. 신화에는 경전이 없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야기가 신화다. 기독교는 경전이 있다. 주후 70년 얌미야 종교회의에서 구약성경 39권이 정경으로 확정된 것을 받아들이고 주후 397년 카르타고 종교회의에서 신약성경 27권을 정경으로 확정했다. 이후로 기독교의 경전은 더 이상 늘어나지 않고 고정되었다. 더 늘어날 만도 한데 조금도 늘어나지 않았다. 성서는 그 때 이후로 조금도 보탤 수 없고 뺄 수 없는 절대적 진리가 되었다. 더 보텐 이들이 있다. 무함마드의 제자들이 신구약 성경에다가 <꾸란>을 추가했다. 그러자 기독교세계는 그들을 기독교와는 전혀 다른 종교로 분류했다. 몰몬교도 비슷한 이유에서 이단으로 취급되고 있다.

서양에서 신화의 시대가 끝난 것은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다. 그 많던 그리스·로마의 신들은 대량학살을 당했고 신화의 시대는 끝났다. 신화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은 신화가 더 이상 확대되고 재생산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양에서 신화의 시대가 끝난 것은 유교가 크게 역할을 하면서 부터이다. 유교는 현실성과 합리성의 가르침이다. 그 현실성과 합리성이 비현실적이고 비합리적인 신화를 거부했다. 신화만 거부한 것이 아니라 종교도 거부했다. 민간신앙과 무속은 물론 불교도 거부했다.

“Mythos(신화)”가 아닌 “Logos(말씀, 진리)”라고 신화와 차별화하고 시작한 기독교는 철저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논리적일까? 그럴 수 없다. 기독교는 신비다. 기독교뿐 아니라 모든 종교가 신비다. 종교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다 신비다.

가장 논리적이라 할 數學도 신비다. 수학은 도대체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는 “0”이란 숫자를 만들어 냈다. 그런데 “0”은 꼭 있어야 한다. “0” 뿐만이 아니다. 모든 숫자는 다 허구다. 사물이 존재하는 것이지 숫자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1”은 무엇인가? 자연수로서는 가장 작은 수가 “1”이다. 그러나 “1”은 전체를 말하기도 한다. 전체를 표현함에 “1”보다 적합한 수가 없다. “0”이 無極이라면 “1”은 太極이다. 이쯤 되면 수학은 철학을 넘어서 신비다.

-김홍한목사의 <이야기 신학 148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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