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다”고 대답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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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다”고 대답하더라
  • 김홍한
  • 승인 2016.01.04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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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한 겨울, 몇 달 후면 봄 온다

1년 전, 이야기신학 126호(2015.1.1.)에 주역의 괘를 펼쳐본 이야기를 썼었다. 그 때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을 보고 심상치 않다 생각하고 괘를 펼쳐보았었는데 山風蠱卦(산풍고괘)를 잡았다. 이 괘를 잡는 순간 섬뜩함을 느꼈었다. 그 내용과 해석은 이러했다.


“蠱(고)는 음식그릇에 벌레가 득시글거리는 모습이다. 썩을 대로 썩은 것이다. 공교롭게도 효사 6개중 4개의 내용이 “아버지의 잘못을 바로 잡는다”이고 하나는 “어머니의 잘못을 바로 잡는다”이다. 나머지 하나는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蠱卦의 내용으로 볼 것 같으면 박근혜 대통령의 과제는 아버지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의 잘못을 바로잡기는커녕 아버지의 잘못을 정당화하고 아버지의 전철을 밟고 있으니 문제다. 그러면 어찌될까? 백성들은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는다.”

“국민이 박근혜 정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박근혜 정권이 무너진다는 의미일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새롭게 시작하는 2016년은 어떨까? 또 괜한 짓으로 괘를 잡아볼까? 그리스 신화의 한 인물 알퀴오네의 한마디가 괘 잡는 것을 그만두게 했다.

알퀴오네는 남편 케이퀴스와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 케이퀴스는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이 마음에 걸렸는지 미래를 알고자 그는 델포이 신전으로 신탁을 받으러 갔다. 불길함을 느낀 알퀴오네가 아무리 애원하며 만류해도 케이퀴스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케이퀴스는 바다에 배를 띄웠다. 얼마간의 순항 뒤에 엄청난 폭풍이 몰아쳐서 배는 깨어져 침몰하고 케이퀴스도 죽고 말았다.
남편이 무사귀환하기만을 신들에게 기도하던 알퀴오네, 그의 간절한 기도가 안쓰러워 신들은 꿈에 그녀에게 사고소식을 알려준다. 다음날 아침 케이퀴스의 시신이 알퀴오네가 매일 나와서 바다를 바라보던 그 해변으로 밀려왔다 ……. 알퀴오네는 말한다.

“행복을 느낀다면 그냥 느끼면서 살면 될 것, 미래를 알고 싶어 안달한다면 그 마음자리에는 행복이 깃들 수 없다.”

미래를 알고 싶은가? 알려고 하지 말라. 그것이 정해진 운명이라면 알아도 바꿀 수 없고 바꿀 수 있는 미래라면 정해진 운명이 아니다. 정해진 운명이 아니니 미리 알 수 없다.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것은 “혹 불행이 닥치지나 않을까?”하는 불안함이 원인이다. 현재 행복하더라도 내 안에 불안이 있는 한 얼굴에는 문득 문득 그늘이 진다.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정해진 이치인데 그것을 미리 당겨서 근심하고 걱정하고 불안해 하니 행복이 행복일 수 없다.

굳이 알려하지 않아도 나는 미래를 안다. “지금은 한 겨울, 몇 달 후면 봄이 온다.”, “또 몇 달 후면 여름이 될 것이다.”, “2년 후면 박근혜 정권이 물러날 것이다.”, “지금 내 나이가 56세, 30~40년 후에 나는 ....”

이 정도 미래를 알면 되었지 얼마나 더 알아야 할까? 오늘을 사는 것도 힘에 버거운데 알 수 없는 미래까지도 끌어당겨 근심 걱정한다면 어리석은 삶이 아닐 수 없다.

요즈음 아내가 건강검진 받으라고 닦달한다. 나는 한 번 도 건강검진을 받은 적이 없다. “어디 아픈데 없나? 어디 아플 데 없나?”하고 건강검진 받는 것은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나의 생각을 사람들은 “똥고집”이라고 비웃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 길을 간다. 다시금 알퀴오네의 말이 생각난다. 그의 말을 조금 바꾸어 보았다.

“건강하면 그냥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면 될 것, 장차 아플 것을 염려하여 알고 싶어 한다면 그 마음은 늘 불안하여 건강과 행복이 깃들 수 없다.”

“죽고 싶다”고 대답하더라.

세상에서 가장 큰 죄가 살인죄다. 그에 못지않게 큰 죄가 죽음을 거부하는 죄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는 죽은 이를 살려냈다. 그래서 명계가 큰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명계를 다스리는 하데스가 크게 반발하여 그의 목숨을 요구하였고 제우스는 그를 벼락으로 죽였다. 시시포스는 그의 생명을 거두러 온 저승사자를 결박함으로 자신도 죽지 않고 남도 죽지 않게 했다. 역시 명계는 큰 혼란에 빠졌다. 전쟁의 신 아레스가 저승사자를 결박에서 풀어줄 때 까지 세상에는 죽는 이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저승사자에게 끌려가기 전에 아내에게 간곡히 부탁하기를 시체를 묻지도 말고 장례를 치르지도 말라고 당부했다. 저승에 간 시시포스는 장례를 치르지 않는 아내를 벌준다는 명분으로 다시금 이승으로 돌아와 오랫동안 살다가 저승으로 갔다. 죽음을 속이고 죽음을 거부한 죄 값으로 그는 산 정상으로 바위를 굴려 올린다. 정상에 오른 바위는 다시금 굴러 내리고 시시포스는 다시 그것을 굴려 올린다. 그 일은 영원히 계속된다.

나는 오늘날 의학에 불만이 있다. 의술은 크게 발달했는데 그에 비례해서 죽음에 대한 철학은 발달하지 못했다. 병 치유는 당연하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죽지 않게 하려한다는 것이 문제다. 마땅히 보내야 할 사람도 보내지 않고 생명을 연장시키고 있으니 문제다.

나는 종교인 에게도 불만이 있다. 종교야 말로 죽음과 친숙해야 하는데 영생을 말하고 천국을 말하면서도 죽음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살려주실 것이라고 한다. 종교인 자신의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께서 살려주실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이 더러 있다. 도대체 평생 무엇을 공부하고 무엇을 깨닫고 무엇을 설교했기에 죽음에 대한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지 한심할 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이 죽어서는 안 되는 이가 죽는 것이다. 역시 죽을 때가 되지 않은 이가 죽는 것이다. 도무지 죽음과는 관계가 없는 세월호의 어린 생명들이 죽었다. 늙은이들이 죽었더라면 그렇게 안타깝지 않았을 것을 죽어서는 안 되는 이들이 죽었기에 너무 안타깝다.
그에 못지않게 안타까운 것은 죽어야 할 이가 죽지 못하는 것이다. 죽음보다 더 큰 고통에 있으면서도 죽지 못하는 이들이다.

아폴론의 사랑을 받은 시빌레는 소원을 하나 들어주겠다는 아폴론에게 모래를 한웅큼 집어 들고는 모래알 수만큼 살게 해 달라고 했다. 아폴론은 시빌레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 시빌레는 늙고 또 늙었다. 그런데 죽지를 않는다. 살았으되 산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얼마를 더 살아야 할지 기약할 수 없는 상태에서 유리병 속에 들어가 살았다. 마치 박재처럼. 훗날, 어떤이가 말했다.

“쿠바이 땅에서 나는 유리병 속에 든 시빌레를 분명히 보았는데 아이들이 시빌레에게 ‘정말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고 물으니, 시빌레는 그리스 말로 ‘죽고 싶다’고 대답하더라.”

성서와 신화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요1:1)

“말씀”은 “Logos”의 번역이다. “Logos(말씀, 진리)”는 “Mythos(말, 이야기, 신화)”의 상대어다. 둘 다 “말”, “이야기”라는 뜻이지만 “Logos”는 합리적, 이성적, 논리적 이야기라는 것이다.

성서는 “Mythos”가 아니고 “Logos”라는 것인데 그 구별이 모호하다. 성서 속에는 신화적인 요소들이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나는 신학생 때 난처했던 경험이 있다. 수업도중 교수님이 “성서는 신화가 아니다.”고 말씀하시기에 묻기를 “성서와 신화가 어떻게 다릅니까?” 했더니 “다르지요” 하고는 그것을 설명하는데 진땀을 흘리며 중언부언 무슨 말인지 모르는 말을 늘어놓았다.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다. 보다 못한 한 학생이 “교수님, 해답 없는 이야기 그만 하시고 딴 이야기 하지요” 이 제안으로 교수님은 난감한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다.

흔히 말하기를 신화와 종교를 구별하는 것으로 경전의 유무를 말한다. 신화에는 경전이 없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야기가 신화다. 신화에 경전이 없는 것은 신화는 어떠한 고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독교는 경전이 있다. 주후 70년 얌미야 종교회의에서 구약성경 39권이 정경으로 확정된 것을 받아들이고 주후 397년 카르타고 종교회의에서 신약성경 27권을 정경으로 확정했다. 이후로 기독교의 경전은 더 이상 늘어나지 않고 고정되었다. 더 늘어날 만도 한데 조금도 늘어나지 않았다. 성서는 그 때 이후로 조금도 보탤 수 없고 뺄 수 없는 절대적 진리가 되었다. 더 보텐 이들이 있다. 무함마드의 제자들이 신구약 성경에다가 <꾸란>을 추가했다. 그러자 기독교세계는 그들을 기독교와는 전혀 다른 종교로 분류했다. 몰몬교도 비슷한 이유에서 이단으로 취급되고 있다.

서양에서 신화의 시대가 끝난 것은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다. 그 많던 그리스·로마의 신들은 대량학살을 당했고 신화의 시대는 끝났다. 신화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은 신화가 더 이상 확대되고 재생산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양에서 신화의 시대가 끝난 것은 유교가 크게 역할을 하면서 부터이다. 유교는 현실성과 합리성의 가르침이다. 그 현실성과 합리성이 비현실적이고 비합리적인 신화를 거부했다. 신화만 거부한 것이 아니라 종교도 거부했다. 민간신앙과 무속은 물론 불교도 거부했다.
인도에서는 그 많은 신화들이 그대로 힌두교라는 종교가 되었다. 힌두교는 특정종교가 아니다. 인도의 종교가 힌두교다.

“Mythos(신화)”가 아닌 “Logos(말씀, 진리)”라고 신화와 차별화하고 시작한 기독교는 철저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논리적일까? 그럴 수 없다. 기독교는 신비다. 기독교뿐 아니라 모든 종교가 신비다. 종교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다 신비다.
가장 논리적이라 할 數學도 신비다. 수학은 도대체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는 “0”이란 숫자를 만들어 냈다. 그런데 “0”은 꼭 있어야 한다. “0” 뿐만이 아니다. 모든 숫자는 다 허구다. 사물이 존재하는 것이지 숫자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1”은 무엇인가? 자연수로서는 가장 작은 수가 “1”이다. 그러나 “1”은 전체를 말하기도 한다. 전체를 표현함에 “1”보다 적합한 수가 없다. “0”이 無極이라면 “1”은 太極이다. 이쯤 되면 수학은 철학을 넘어서 신비다.

신비로운 인생

모든 것이 신비니 인생도 신비다. 내가 태어나고 내가 살아온 날이 신비고 살아갈 날도 신비다. 나와 인연 맺은 모든 이들이 다 신비다. 신비는 계산이 되지 않기에 신비다. 예측할 수 없기에 신비다.

아! 인생이여, 삶이 괴로운가? 인생이 괴로운 것은 신비로운 인생을 계산하려 하고 계획대로 살려 하고 예측하려 하고 바꾸려 하기 때문이다. 인위적으로 통제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신비로운 인생임을 알고 “앞으로 무슨 변화가 일어날까?”를 흥분과 기대 속에 맞이하면 어떨까? 혹 禍라 판단되는 일이 닥칠 수 있을 터인데 그 화라는 것이 무슨 근거로 화라 판단되는지 생각해 볼일이다. 많은 경우 화와 복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화속에 복이 깃들어 있고 복의 뒤에는 항상 화가 그림자처럼 붙어 있다. 노자는 말했다.

“화라고 생각되는 데서 복이 나오고 복이라고 생각되는 데 화가 숨어 있다. 누가 그 끝을 알 수 있겠는가?”
- 노자 58장 -

일전에 이야기 신학 66호에서 말하기를

“석가는 生·老·病·死를 ‘苦’라 하였는데, 그 말에 반감이 생긴다. 생노병사는 누구나 겪게 되는 자연현상인데, 너무나 당연한 자연현상이 어찌 괴로움일까? 오히려 사람이 늙지도 않고 병들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너무나 큰 근심과 걱정거리다. 생노병사는 누구나 겪는 자연이고 일상의 일이니 결코 걱정거리일 수 없다.

그러면 남들은 겪지 않는 나만의 괴로움은 무엇일까?

‘없다.’

남들은 하지 않는 나만의 괴로움, 나만의 근심과 걱정은 없다.”

논어 읽기

子張 17장  曾子曰: 「吾聞諸夫子: 人未有自致者也, 必也親喪乎! 」
(증자 왈 “내가 선생님께 들은 말로는 ‘평소에 자기의 참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사람이라도 친상을 당하여는 필히 그 진심이 드러난다.”)
* 致(치/ 진실 된 본성이 나타남)

태백 4장에서 증자는 “人之將死, 其言也善(사람이 죽음에 이르러서는 그 말이 선해 진다)”했는데 필자는 거기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신의 죽음 앞에서도 사람은 진실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물며 친상을 당했다고 진실해 지겠는가? 슬픔 자체는 진심이겠으나 오히려 다른 측면에서는 더 기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랜 병수발로 지쳐 있다가 해방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고 혹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을 것을 기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해방감과 재산상속의 기쁨은 꽁꽁 감추어두어 드러나지 않는다.

사랑하는 아내가 죽었을 때 장자는 노래를 불렀다고 하고 원양은 어머니가 죽었을 때 관위에 앉아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장자와 원양인들 아내와 어머니의 상을 당하여 슬프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그들은 슬픔을 누르고 정 반대로 행동했다. 어쩌면 슬픈 눈물을 흘리면서 노래를 불렀을 수도 있겠고 파한대소 하면서 노래를 불렀을 수도 있겠으나 그러한 모습은 분명 자신의 사상과 인생관을 밝히 드러내기 위한 계획된 행동이었을 것이다.

18장  曾子曰: 「吾聞諸夫子: 孟莊子之孝也, 其他可能也; 其不改父之臣, 與父之政, 是難能也. 」
(증자 왈 “내가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말로 는 ‘맹장자의 효는 다른 것은 모방이 가능하나 그가 아버지의 신하들을 바꾸지 않은 것과 그 정책을 바꾸지 않은 것은 모방하기 어려운 일이다.’”)

학이 11장에서 공자는 “三年無改於父之道, 可謂孝矣 (3년 동안 아버지가 해오던 바를 바꾸지 않으면 효라 할 것이다.)”고 하였다. 맹장자가 그와 같이 했다는 것인데 필자의 생각으로는 효자라기보다는 현명한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비단 아버지가 해오던 일이 아니라 전임자의 일을 받아 함에도 명백한 오류가 아닌 한 당분간은 바꾸지 않고 그대로 시행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새로운 지도자가 됨에 무엇인가 달라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무리하게 정책을 바꾸고 무리하게 사람을 바꿈으로 인하여 혼란을 초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만일 아버지의 행하신 인사와 정책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꾸지 않았다면 그는 효자라 칭찬 받기는 고사하고 지극히 무능한 자라 지탄 받았을 것이다. 요즘말로 표현한다면 “무사안일”, “복지부동”이다.
맹장자가 아버지의 신하들을 바꾸지 않고 정책을 바꾸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아버지와 아들간에 충분한 교류가 있어서 이미 맹장자의 뜻과 이상이 인사와 정책에 충분히 반영되어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반대로 새로 대부가 된 맹장자에게 개혁을 할 수 있는 힘이 없었을 수도 있다. 모든 권력을 신하들이 쥐고 있어서 혹 맹장자는 허수아비와 같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19장  孟氏使陽膚爲士師, 問於曾子. 曾子曰: 「上失其道, 民散久矣. 如得其情, 則哀矜而勿喜. 」
(맹씨가 양부로 하여금 士師를 하게 하였다. 양부가 증자에게 자문하니 증자 왈 “윗사람이 도를 상실하여 백성이 흩어진지 오래 되었다. 이제 그 정황을 알았으니 슬퍼하고 불쌍히 여겨야지 기뻐해서는 안 된다.”)

증자의 제자 양부가 맹씨로부터 죄인다스리는 직책을 맡게 되자 스승인 증자에게 자문한 것에 대한 증자의 가르침이다.
공자는 안연 20장에서 “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 草上之風, 必偃 (군자의 덕이 바람이라면 소인의 덕은 풀과 같아서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필히 쓰러지기 마련이다.)”고 한 것처럼 백성들의 정황은 지도자들이 하기 나름이니 백성들의 죄의 근원도 사실은 지도자에게 있다. 백성들이 범죄 하면 마땅히 벌할 것이나 범인을 잡은 것, 죄를 밝혀낸 것을 기뻐할 것이 아니라 불쌍히 여겨야 할 것은 당연하다.

백성에게 지도자는 어버이요 지도자에게 백성은 자식과 같다. 그러니 마땅히 어버이 된 지도자는 자식 된 백성을 교육하여야 할 것인데 교육은 엄하게 할 것이되 혹시 죄를 범하거든 그 죄에 대하여는 되도록 관대해야 할 것이다. 어떤 어버이가 자식이 죄를 범한 것을 밝혀냈다고 기뻐할 수 있겠는가?

20장  子貢曰: 「紂之不善, 不如是之甚也. 是以君子惡居下流, 天下之惡皆歸焉. 」
(자공 왈 “주왕의 선하지 못함이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것이 군자가 하류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혐오해야 하는 것이다. 천하의 악함이 내 자신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자공은 은나라 마지막왕인 주왕이 우리가 흔히 아는 것처럼 그렇게 극악무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한다. 그가 그렇게 극악무도한 자로 매도되는 것은 그가 왕의 자리에 있음으로 모든 책임을 져야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소인배와 어울리게 되면 같은 무리로 취급되고 특히 지도자가 소인배와 어울리면 소인배의 괴수 취급을 당하게 되니 군자는 소인배들과 어울리는 것을 엄금해야 할 것이다.
일전에 모 국회의원이 조직폭력배와 술자리를 함께 한 적이 있었다. 그 일이 세상에 알려지자 그 동기나 내용에는 상관없이 그는 조직폭력배를 비호하는 인물로 비난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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