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레테의 강(망각의 강)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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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레테의 강(망각의 강)이여
  • 김홍한
  • 승인 2015.12.16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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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한목사의 이야기 신학

헤라클레스가 사랑하는 처와 자식들을 무참히 학살했다. 그의 의지가 아니었다. 못된 여신 헤라가 헤라클레스에게 광기를 불어넣어서 그렇게 되었다. 광기 속에 그랬으니 차라리 그냥 그대로 미쳐버렸으면 좋을 것을 안타깝게도 헤라클레스는 제정신이 돌아왔다. 어찌해야 할까? 속죄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헤라클레스의 영웅적인 행적에 감탄을 하지만 사실 헤라클레스의 삶은 너무 비참하다.


헤라클레스의 삶보다 더욱 비참한 삶을 산 이가 오이디푸스이다. 오이디푸스에게 임한 델포이 신전의 신탁은 이러했다. “뼈를 준 아비를 죽이고 살을 준 어미로 짝을 삼는구나” 다른 경우의 신탁들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 들 뿐이건만 오이디푸스에게 임한 신탁은 어찌도 이렇게 구체적인지…

오이디푸스는 그 신탁대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아내로 삼아 여러 자녀를 두었다.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 현실이 된 것이다.
아! 신화는 너무도 가혹하게 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알고 그럴 수는 없다. 철저하게 몰랐다. 자신도 모르고 아버지도 모르고 어머니도 몰랐다. 그것을 알았을 때 오이디푸스는 그 고통을 견딜 수 없어서 자신의 두 눈을 찔러 버렸다. 그의 아내이며 어머니는 목매어 자살했다. 오이디푸스는 말한다.

“어디 있소? 내 어머니이자 내 아내인 이오카스테는 어디 있소? 내가 자란 밭, 내가 씨를 뿌린 밭은 어디 있소?”

속죄의 길을 떠나는 소경 오이디푸스의 뒤를 딸이면서 누이동생인 안티고네가 따른다. 소경을 돌보려면 마땅히 앞장서서 이끌어야 할 것인데 안티고네는 감히 앞서지 못하고 뒤를 따른다.

사랑이야기는 아름답다고? 사랑이야기가 아름다우려면 평범해야 한다. 그러하지 못할 때 사랑 이야기는 엄청난 비극이다. 신화의 이야기 뿐 아니다. 지나간 역사의 이야기만도 아니다. 현실 속에서 조차도 감당할 수 없는 비극의 이야기들이 너무 많다. 주변을 조금만 눈여겨보면 감추어 있는 비극들이 보인다. 애써 감추고 애써 외면해서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헤라클레스와 오이디푸스를 비롯해서 숫한 비극의 주인공들의 소망은 무엇일까? 잊는 것이다. 자신의 엄청난 죄악과 그로 인한 비극을 잊는 것, 제 스스로는 잊을 수 없다. 잊으려 해서 잊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도무지 잊을 수 없다. 방법은 없을까? 하나 있긴 있다. 죽어서 저승에 가면 거기에는 이승의 일들을 잊으라고 레테의 강물이 흐른다. 망각의 강물, 그 강물을 마시면 잊을 수 있다고 한다.

잔혹한 레테의 강(망각의 강)이여.

저승에는 4개의 강이 흐른다. 카론의 뱃사공이 바닥없는 소가죽배로 망령들을 실어 나르는 아케론강(비통)이 있다. 코퀴토스(시름)의 강, 플레케톤(불의 강), 그리고 레테(망각)의 강이 있다.

레테(망각)의 강, 어찌 생각해 보면 망각이야말로 커다란 소망일 수 있다. 온갖 슬픔과 괴로움, 얽히고설킨 악연의 그물들, 원한 등을 잊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커다란 위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망각의 강물을 마시고 망각의 강을 건넌다 하더라도 그 한이 너무도 깊은 이들은 그 한을 잊을 수 없는 모양이다.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숱한 망령들은 이승에서의 일을 잊기는커녕 그것으로 인하여 영원한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다.

망각의 강이 더욱 야속한 것이 있다. 정말 잊어야 할 큰 한을 잊지 못하는 것도 그러하지만 잊어서는 안 될 것 들 조차도 잊어버리는 것이다. 아름다운 기억들, 사랑하는 사람들, 아련한 추억도 잊게 한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있었다. 너무도 사랑했기에 죽음도 그들의 사랑을 갈라놓을 수 없었다.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그들은 함께 죽음의 길을 택했다. 둘은 나란히 손잡고 저승으로 갔다. 그리고 누구나 마셔야 하는 레테의 강물을 한 모금씩 마셨다. 아! 그 순간 그들은 서로를 잊었다. 꼭 잡았던 두 손이 스르르 풀리고 무심한 두 눈은 서로를 바라보고는 이내 제갈 길로 갔다.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함께 하겠다고 택한 죽음의 길인데 야속한 레테의 강물은 비웃듯이 그 사랑을 무효로 만들었다.

도대체 망각이라는 것이 말이 되는가? 잊어야 할 것은 잊지 못하고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잊는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도대체 잊어야 할 것은 무엇이고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또 무엇인가?

이승에서의 죄악을 몽땅 잊어버렸다면 벌 줄 수 있을까? 벌을 준다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살아서 헤어지느니 차라리 죽어서라도 영원히 함께 하겠다고 죽었는데 그것이 영원한 이별이라니 어찌 그리 매정할 수 있단 말인가? .....

그래서 말인데 망각의 강 이야기는 바람일 뿐, 망각의 강은 존재하지 않는다. 저승에서는 이승에서의 기억들이 생생할 것이다. 오히려 점점 더 명확해 질 것이다. 이승에서 잊었던 기억 조차로 뚜렷하게 되살아 날 것이다. 단테는 <신곡>에서 베르길리우스의 입을 통하여 말한다.

“기쁨이든 고통이든 완전하면 할수록 뚜렷한 법이다.”

내가 모든 것을 잊고 남도 나를 잊을 때 나도 남도 사라지는 것. 죽음이 별것 아니다. 잊고 잊혀짐이 죽음이다. 존재의 소멸이 별것 아니다. 잊고 잊혀짐이 존재의 소멸이다. 無가 별것 아니다. 잊고 잊혀짐이 無다. 해탈이라는 것이 별것 아니다. 잊고 잊혀짐이 해탈이다.

일전에 나의 엉터리 한글 풀이 “있다(存在)”라는 말은 “잇다(관계)”에서 왔다고 했다. 존재라는 것은 실재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실재한다 하더라도 나와 관계가 없다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있음(존재)”의 지극함은 “잊음(無)”이다. 결국 “있다”, “잇다”, “잊다”는 매우 유사한 말이다.

과거의 기억 저장소 文字

잊지 않겠다고,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후세에 영원히 전하겠다고 인류가 발명한 것이 문자다. 소통하기 위해서 언어가 만들어 졌다면 잊지 않겠다고 만든 것이 문자다. 이 세상의 언어는 약 3천 여 개, 거의 모든 언어는 완벽하게 인간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한다. 그중 문자가 있는 언어는 80여개에 불과하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같은 민족이다. 혈통은 관계없다. 사는 지역도 관계없다. 세상의 뭇 민족들을 둘로 나눈다면 문자가 있는 민족과 문자가 없는 민족이다.
문자가 없는 민족은 그 문화가 축적되지 않는다. 인간의 기억력은 한계가 있다. 문화가 축적되지 않기에 문화민족이 될 수 없다.

우리 민족이 문화민족이 된 것은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이후부터 다. 그 전에도 우리 문화는 있었지만 잊혀졌다. 한문으로 기록되어 남아있지 않느냐 하겠지만 거기에 우리의 정서까지 담을 수는 없었다. 담았다 하더라도 한자를 아는 극소수, 극 상류층의 문화와 정서만 담고 대다수 민중들의 삶과 애환과 정서를 담을 수는 없었다.

노자는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이라 하며 言語에 매이지 말라 하고 불교는 “不立文字(불립문자)”라 하여 文字에 매이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어찌하랴? 문자를 폐하고 나면 문명이 없는 야만인이 되고 언어조차도 폐하고 나면 짐승의 상태가 될 것이다.

잊지 않겠다고 만든 것이 문자이고 그 문자로 인류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기록으로 남겨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그 축적된 기억들이 세상 다스리고 살아가는 축적된 경험을 전수해 주기도 하고 숫하게 많은 이들의 삶과 죽음의 기록으로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도 어렴풋이나마 가르쳐 주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아름다운 지혜를 주기도 한다.

내일의 소망

성서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래서 성스러운 책 聖書(성서)다. 그 성서에 예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말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 날에 겪는 것만으로 족하다.”(마 6장)

기억하기 위해 만든 것이 문자이고 문자로 쓰여진 성서이건만 성서는 기억만이 아니라 미래의 소망을 담고 있다.
과거는 기억으로 존재하지만 미래는 걱정으로 다가온다. 미래의 일은 희망이어야 하지만 사람들은 불안과 걱정에 시달린다. 키에르케고르는 그것을 “죽음에 이르는 병”으로 간주했다. 여기에서의 죽음은 육적 죽음이 아니라 영적 죽음을 의미한다. 육적 죽음과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와 걱정이 그대로 영적 죽음으로 이어진다.

아! 과거에 대한 기억에 시달리고 현재 삶의 고통에 시달리고 그것도 모자라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와 걱정에 시달리는 것이 인간인가? 그것을 극복한다고 하는 짓이 오로지 돈 모으는 일과 건강 챙기는 것이 전부란 말인가?

근심과 걱정과 불안과 공포의 원인은 욕망이다. 출세하겠다는 욕망, 지금의 안정을 계속 누리고자 하는 욕망, 죽지 않고 영원하겠다는 욕망이다.
인간 사회의 모든 문제의 열쇠가 욕망의 문제다. 개인은 물론이요 국가까지도 욕망의 문제가 관건이다. 이데올로기도 종교도 욕망의 문제가 관건이다.

공산주의가 망한 것은 욕망의 문제를 간과해서다. 자본주의가 크게 번성한 것은 욕망을 채우는 것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이제 한없이 커져버린 욕망을 어떻게 제어하느냐가 자본주의 사회가 그나마 지속될 수 있느냐 폭락하느냐의 관건이 될 것이다.

세상이 종교에 그나마 조금이라도 희망을 갖는 것은 종교인 중에 욕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을 보기 때문일 것이지만 동시에 욕망의 화신과도 같은 일부 종교인들의 모습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소망이 있는 이들이 누구인가? 한없이 커져있는 욕망을 통제 할 수 있는 이들이 소망이 있는 이들이다.
소망이 있는 사회가 어떤 사회인가? 역시 한없이 커져가는 인간들의 욕망을 효율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사회가 소망이 있는 사회다. 인간의 끝없을 욕망을 채우려 하다가는 욕망이라는 블랙홀에 빠져들어 멸망할 것이 뻔하다.

늙은이들이여, 당신은 욕망 극복의 계획을 가지고 있는가? “노후대책”, “건강관리”도 중요하지만 老慾(노욕)의 추함에서 벗어 날 수 있는 욕망 극복의 계획을 세워봄이 어떨는지….

역사

옛날에는 역사가 곧 이야기여서 문학과 가까웠다. 역사 이야기는 재밌는 교육이고 지식이고 교훈이며 긍지였다. 그러던 역사 이야기가 학문이 되고 과학적 연구의 대상이 되면서 재미없고 골치 아픈 학문이 되었다. 게다가 특정인들의 필요에 의해서 강조되는 바가 있고 외면되는 바가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사실관계가 뒤바뀌고 또 없는 사실이 만들어지고 있는 사실이 삭제되면서 역사는 많은 경우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되었다.

맹자는 말하기를 “공자께서 『春秋(춘추)』를 완성하시니 亂臣賊子(난신적자)들이 두려워하였다.” - 『맹자』 등문공 하 - 고 하였다. 역사는 이런 것이다. 인간 삶의 평가를 담고 있기에 역사 이야기는 - 권력자들에게는 - 두려운 것이다.

역사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확산되고 재생산되고 재해석 되고 재평가된다. 그래서 역사는 아무리 권력자라 하더라도 막을 수 없고 조작할 수 없다. 막으려 했고 조작하려 했다는 것 까지 드러나는 것이 역사다.

나는 “역사 교육”이라는 말에 유감이 있다. 이야기 신학 145호에 교육에 대해서 이렇게 썼다.

“교육이란 진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그 시대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다. 그 시대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가르치고 거기에 복종하기를 가르치는 것이 교육이다. 때에 따라서는 그것마저도 무시하고 산업현장에서 필요한 기계부품 양성이 목적이다.”

교육이 이런 것이라면 역사교육 또한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역사가 교육이 될 때 역사는 그 시대의 사회질서를 합리화 하고 권력의 정당성을 세워주는데 이용될 뿐이다.
<삼국사기>를 보면서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보았다. 내가 삼국사기를 직접 읽어 보기 전에는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 이야기들이다. 역사가 교육과목이 되면서 이런 저런 이유로 빠진 이야기들이다. 그중 하나를 소개한다.

신라 진평왕 9년 가을 7월, 대세와 구칠 두 사람이 배를 타고 바다의 어디론가 떠나갔다. 대세는 내물왕의 7대손이며, 이찬 동대의 아들이었다. 그는 자질이 뛰어나고 젊어서부터 세속을 떠나 외지로 나가려는 뜻을 품었었다. 그는 담수라는 중과 사귀면서 말했다. “신라 같은 산골에서 일생을 마친다는 것은, 연못의 고기가 산림의 크기를 모르고, 새장의 새가 바다의 넓음을 모르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나는 장차 뗏목을 타고 바다를 지나 오나라 월나라로 가서 스승을 찾을 것이며, 명산에서 도를 구할 것이다. 만약 속된 자세를 바꿀 수 있거나 신선이 되는 것을 배울 수 있다면, 표표하게 바람을 타고 허공을 날아다닐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천하의 신기한 노름이요, 장관일 것이다. 그대는 나를 따를 수 있겠는가?” 그러나 담수는 이에 따르지 않았다. 대세는 그를 버리고 다시 친구를 찾았다. 그는 마침 구칠이라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사람됨이 굳건하고 남다른 절개가 있었다. … 대세는 구칠 이야말로 같이 행동을 할 만한 사람임을 알고, 은근히 자신의 뜻을 말했다. 구칠은 “그것이 바로 내 소원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들은 마침내 서로 친구가 되어 배를 타고 남해를 떠났다. 그 후로 그들이 간 곳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4권

이 이야기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진취적인 기상을 담고 있으니 결코 제체 옹호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현실 사회에 필요한 인재 양성과도 거리가 멀다. 반체제적이고 비현실적이니 학생들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가르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부식이 이 글을 기록한 것은 아마도 우리 가운데 꿈틀대고 있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강한 호기심과 그것을 알기위해 목숨을 거는 인간들의 기상을 그냥 넘길 수 없어서일 것이다. 어쩌면 고려시대 최고의 권세를 누리고 최고의 학문을 자랑한 김부식이 해 보고 싶어도 하지 못한 것을 실행에 옮긴이들에 대한 부러움의 표현일 수도 있겠다. 김부식이 <삼국사기>에 남긴 이야기를 오늘날 진보입네 하는 자들까지도 이러한 이야기를 외면하고 있으니 김부식을 “보수주의자”, “사대주의자”라고 비난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그래서 말인데 역사는 학문의 틀을 벗어나서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역사가 이야기가 될 때 이러한 이야기들은 풍성하게 재생산 될 수 있다.

아쉽다, 너무도 아쉽다. 어찌하여 대세와 구칠 이야기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는가? 이 이야기가 대중 속에 이야기로 퍼져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대중에게 맡겼더라면 이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 못지않은 이야기로 확대 재생산 될 수 도 있었을 것이다.

- 논어 읽기 -

子張 15장 - 16장
  子游曰: 「吾友張也, 爲難能也. 然而未仁. 」
(자유 왈 “내 친구 자장은 어려운 일에 대해서는 능숙하게 처리하지만 아직 인하지는 못하다.”)

子張 16장  曾子曰: 「堂堂乎張也, 難與並爲仁矣. 」
(증자 왈 “당당하다 자장은, 그러나 함께 인자함을 실천하기에는 어렵다.”

자유와 증자가 자장의 인간됨을 말함에 아직 인자하지 못하다는 공통된 견해를 내놓는다. 어떤 근거에서 자유와 증자가 그러한 평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안연 20장의 내용 중 자장이 통달함에 대하여 말한 것이 자장의 인간됨을 보여준다. 자장은 통달이라는 것을 “나라에서도 이름이 나고 가정에서도 필히 이름이 나는 것입니다.” 했다가 공자로부터 잘못되었다고 책망을 받는다. 자장의 관심이 그의 말한바와 같이 온통 입신양명에 있었다면 그는 정치적 야망가 내지는 후세에 이름을 남기고자 하는 명예욕에 붙들린 사람으로 표정만 인하되 결코 인자한 사람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안연 20장의 내용은 이러하다.  
자장이 공자에게 묻기를 “선비는 어떻게 하면 가히 통달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 왈 “네가 말하는 통달이란 무엇이냐?” 자장 왈 “나라에서도 이름이 나고 가정에서도 필히 이름이 나는 것입니다.” 공자 왈 “그것은 이름나는 것이지 통달이 아니다. 통달한 사람은 그 본질이 곧고 의를 좋아하며 사람들의 말과 표정을 살피고 사려 깊고 겸손하여 나라에서 필히 통달하고 가정에서도 통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소위) 이름을 내고자 하는 자는 표정은 인하되 행동은 위배되고 그렇게 거하되 제 스스로도 의심이 없으니 나라에서 이름이 나고 가정에서도 이름이 난다.”

소위 진리를 추구하는 이들 조차도 쉽게 넘어가는 유혹이 이름을 남기는 것이다. 살아서 이름이 나기를 원하고 죽어서도 이름을 남긴다면 그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안다. 자장도 그렇게 생각했다. 자기 이름이 널리 알려지는 것을 통달이라고 생각할 정도이다. 참으로 입신양명이라는 덫에 걸려 넘어지는 속유들이다.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야 사람이다. 中庸(중용)에서도 “참되게 사는 것이 사람가는 길이라.(誠之者 人之道也)”했으니 사람은 마땅히 참되고자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다보면 이름은 날 수도 있고 안날 수도 있다. 이름이 난다는 것은 나와는 관계없다. 특히 죽은 후에 이름이 나서 후세 사람들이 내 이름을 기억해 준다는 것은 후손들에게 의미 있는 일일 수 있어도 나와는 관계가 없는 일이다. 공자께서는 죽음 이후의 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는데 후학들이 유독 죽은 후에 이름나는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독자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렇게 또 한해가 저물어 갑니다.
성탄과 새해를 맞이해서
귀 댁에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이 충만 하시기를 빕니다.

꾸벅 ~ 큰 절

2015년 12월 16일 147호 김홍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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