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가족기행(9)] 바람난 변산반도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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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가족기행(9)] 바람난 변산반도 기행
  • 류기석
  • 승인 2009.10.08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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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역사적 가치가 사라진 변산!

▲ 래소사 사천왕문을 지나 경내에 들어서니 봉래루가 반긴다

부안군은 전라북도의 중서부에 위치해 있으며 동쪽은 정읍시, 서쪽은 서해, 남쪽은 곰소만, 북쪽은 김제시와 접하고 있는 493.64km2의 도시다. 부안 변산반도는 아름다운 해안선을 따라 수많은 절경들이 아기자기하게 이어진 국립공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변산을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하나는 바다를 끼고 도는 외변산과 또 하나는 남서부 산악지의 내변산으로 구분한다. 변산반도 내륙은 첩첩산중으로 최고봉인 의상봉(509m)을 중심으로 400m급 준봉들이 겹겹이 이어져 쌍선봉(459m), 옥녀봉, 관음봉(433m), 선인봉 등 기암봉들을 여럿 거느리고 있고, 직소폭포, 분옥담, 선녀당, 가마소, 와룡소, 내소사, 개암사, 우금산성, 울금바위 등이 조화롭게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부안의 변산반도가 인간과 자연, 문화가 어우러진 멋진 조화를 이루는 명소로 자연박물관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다고는 하지만 첫 느낌은 달랐다. 사회간접자본시설을 늘리기 위한 각종 도로공사와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는 콘크리트 위주의 건축물과 조립식 구조물들, 이것도 모자라 곳곳의 산과 들을 마구 파헤치는 육중한 포크레인들로 굉음에 마음이 상했다.

요즘 각 지자체마다 축제와 관광이 살길이다 하여 농업과 농촌을 일개 관광지나 이벤트장소와 공원시설로 전락시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런 것들이 진정한 농촌과 어촌의 주민들에게 평화로움과 웃음을 짓는 행복을 가져다줄지는 의문이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외형적이고 자극적인 갖가지 개발과 발전의 속임수로부터 진실을 찾아 스스로 겪고 깊이 느끼고 깨달아 지금 나부터 살아야 할 것이다.

자자손손 수천 년간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으로 이어져온 전통적, 역사적, 사회문화적 농촌과 농업은 조화로운 삶을 찾는 이들에게 향수와 귀농, 귀향의 근원으로 인식되어온 곳이다. 농촌을 단순한 자본으로 생각하여 생산성을 찾고 경쟁력만을 내세운다면 그 가치를 폄하하는 것이 되고 일부 도시민을 위한 관광휴양지나 위락단지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이와 때를 맞추어 정부도 이미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계기로 경제성장의 주역을 재벌로 인식, 재벌과 동거 동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농촌과 농업, 농민은 안중에도 없는 듯, 개방의 선두에 어김없이 정보통신(IT)산업과 자동차, 조선 등 몇 개 분야의 수출만을 앞세워 국민소득을 높이겠다고 떠들고 있다.

이에 앞으로 농민과 노동자, 중소상인들은 엄청난 어려움이 예상된다. 가진 자가 더욱 부하게 되는 사회양극화는 물론, 농촌과 농업의 붕괴로 농민은 설 자리를 잃게 되고, 비정규직의 양산, 사교육비 증가, 저출산과 고령화 등으로 국민들이 체감하는 행복지수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이는 미국과 FTA를 체결한 멕시코와 캐나다의 예를 보면 알 수 있다.

진정한 한미 FTA를 추진하려면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근본적이고 구조적 모순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농촌과 농업을 경제적으로만 보지 말고 자연으로부터 주어진 환경을 보전하고 역사와 전통문화를 지속적으로 유지시켜나가는 동력인 동시에 식량안보 차원에서의 안전판으로 생각하고 개발과 발전의 속도를 늦추었으면 하는 것이다.

산을 파헤치고, 길을 뚫으며, 댐을 만들기 보다는 선조들로부터 대대로 이어져온 아름다운 산과 강, 논과 밭, 물과 공기를 지키면서 국민들이 건강한 삶을 지속적으로 유지해 갈 수 있는 사회복지나 교육, 의료와 적정기술 등의 의식수준을 높일 수 있는 길을 찾자는 것이다.

부안군 보안면 진서리 곰소부근의 한 식당에서 푸근한 해물찌게로 점심상을 받고는 변산반도의 명소 래소사 천년고찰을 향해 떠났다.

▲ 번잡한 도시형 상가들을 뒤로하고 래소사 일주문 앞에 서다.

래소사(來蘇寺)는 전라북도 부안 변산반도 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소박하면서도 웅장한 전통사찰이다. 널 다란 유료주차장에 차를 세우고는 상인들이 줄지어 늘어놓은 각종 먹거리로 호객행위를 하는 주변거리의 문화는 내소사와는 사뭇 다른 문화적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 서정적인 전나무 숲 길에서 향내음에 한껏 취해있는 가족들 표정을 담았다.

일주문을 통해 경내에 들어서니 600m에 이루는 전나무 숲이 서정적으로 반긴다. 하늘을 향해 곧게 자란 침엽수림은 청아한 솔 향기를 발하며 속세에 찌든 때를 말끔히 씻어 주기에 충분했다.  

▲ 웅장한 관음봉 밑에 자리한 래소사는 오래된 당산나무의 자연과 어울려 있다.

 

▲ 힘찬 기상의 대웅보전은 자연스러움과 웅장함이 깃들여 있다.

래소사는 ‘여기에 들어오시는 분은 모든 일이 다 소생되게 하여 주십시오’ 라는 혜구두타스님의 원력에 의해 백제무왕34년(633)에 창건된 고찰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중건중수를 거듭해 오다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된 절을 조선 인조 때에 청민선사가 중창하였으며, 인조11년(1633)에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대웅보전을 중건하였다.

그 후 광무6년(1902) 관해선사와 만허선사가 증축했고, 래소사의 오늘을 있게 한 해안선사가 1932년 지금의 위치에 자리를 잡고 절 앞에 계명학원을 설립하여 무취학 아동들과 무학청년들을 대상으로 문맹퇴치운동을 벌이고 서래선림을 개원하여 호남불교의 선풍을 진작시켰다고 한다. 이후 혜산우암선사가 선풍을 이어 봉래선원을 신축하고 현재의 대가람을 이루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주문에서 피안교까지의 전나무 숲길에 이어 봄이 되면 내소사주변이 온통 벚꽃으로 뒤덮인다니 어서 봄이 오기를 재촉해야겠다. 사천왕문을 지나니 우람한 봉래루(蓬來褸)가 반갑게 반긴다. 봉래루의 빛바랜 기둥 아래에는 래소사 사무실이 다소곳이 자리했기에 리플랫을 얻었다.

▲ 날렵한 처마는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과학을 담고있다

봉래루를 나서니 대웅전 앞 석축단 앞에 수령이 950년쯤 됐다는 당산나무와 건축물들로 이루어진 그림 같은 풍경을 대하니 마음이 차분해 진다. 단청 없이 나무 결 그대로 자연스럽게 드러나 있는 대웅전은 화려하게 꾸미지는 않았으나 단정하면서도 청순한 멋을 풍긴다. 처마 끝 하중을 받치기 위해 복잡하게 짜맞춘 공포며 대웅전 안 천장의 들보는 아찔할 정도로 섬세하게 짜여 있었다.

대웅보전은 관음조(觀音鳥)가 단청을 했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멋진 관음봉과 세봉이 래소사를 포근히 감싸않고 있었다. 법당 안에 있는 후불벽화는 백의관음보살좌상으로서 국내 제일이란다. 무엇보다도 눈길을 끌었던 것은 연꽃과 수련으로 장식된 화사한 꽃 문살이다. 문살의 극치미를 자아내고 있어 부안 변산반도에 들리거든 꼭 한번 래소사 대웅보전의 꽃 문살을 보고 오시길 바란다.

자연과의 조화로움을 간직한 아름다운 도량 래소사를 돌아 나오며 조각이나 형태가 빼어난 고려동종, 삼층석탑, 설선당과 요사체가 수려한 뒷산의 능선과 어우러진 멋드러진 풍경을 뒤로하고는 전나무 숲길을 걸어 나왔다.

▲ 봄이성큼 다가온 변산반도는 어느새 붉은 낙조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곰소만 해안을 따라 만난 확 뚫린 바다가 시원스럽게 내려다보이는 천혜의 변산면 격포리 궁항을 찾았다. 이곳에는 세계 4대 해전사의 신화이자, 23전 23승 무패의 전설이 된 성웅 이순신, 전라좌수영 세트장이 장엄한 서해를 굽어보며 자리하고 있었다. 계단식 지형으로 이루어진 전체 세트장아래에는 바다가 마주했고, 먼 섬들 사이로 붉은 빛이 감돌았다.

▲ 망루사이로 서해바다 낙조풍경이 낭만적이다.
 
▲ 역사와 전통미를 살린 불멸의 이순신 찰영 세트장 전경만 화려했지 인근 길에는 쓰레기들로 지저분 했다. 제발 환경과 문화적으로 성숙된 관광지를 만들자.

조선시대 수군 통제영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좋았으나 오가는 길 주변이 온통 상인들의 가판대와 쓰레기로 어지러이 널려있어 실망했다. 변산 곳곳이 관광지라 제각기 만만치 않은 요금을 받고 있으면서도 문화콘텐츠는 수준이하라 또 다시 찾기에는 어려울 것 같다. 우선 외형적인 시설도 중요하지만 따스한 온정이 넘치는 내면의 변화와 자연과 문화에 대한 가치를 역사적으로 높이려는 성숙된 의식수준이 아쉽다.

▲ 선유장에서 채석강의 모래사장을 바라다 본 풍경

궁항을 나설 때 바다와 하늘을 물들이고자 하는 붉은 낙조가 보일 듯 말 듯 하더니 채석강에 다다르니 아예 먹구름에 가려졌다. 채석강의 낙조는 서해안 3대 낙조라나 하지만 날씨 탓에 실망이다. 채석강 앞에서도 주차요금을 내야한다기에 차를 격포 못 미쳐 선유장인근에 주차시키고는 인어공주조각상에 둘러 끝없는 서해를 바라보다가 곧장 암석절벽이 기기묘묘하게 쌓여있는 채석강으로 향했다.

▲ 수천 수만년간의 화산활동으로 이루어진 채석강은 자연미가 일품이다.

파식대, 해식애, 해안단구 및 화산암류, 습곡 등 다양한 해안지형을 관찰할 수 있는 채석강은 과거 화산활동연구의 야외학습장으로써 가치가 높다고 한다. 또한 자연미가 뛰어나 국가지정문화재 ‘채석범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 수천 수만년간의 화산활동으로 이루어진 채석강은 자연미가 일품이다.

파도에 깍여 수 만권의 책을 겹겹이 쌓아 놓은 모양의 채석강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진한 감동을 주었다. 썰물 때라 격포항 방파제까지 바닷길이 이어졌지만 우리가족은 바람이 차 채석강만을 한바퀴 돌아보고 나왔다. 맑은 날 저녁에 찾으면 서해바다를 홍차빛으로 물들이는 환상에 젖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곳은 중국 당나라 이태백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다 강물에 뜬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채석강과 흡사하다 하여 채석강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해가지는 저녁 변산공원의 산악 쪽 내변산을 거쳐 외변산을 돌아 나오면서 아쉬움은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변산의 문화라고는 찾아 볼 수 없고 오로지 저급한 먹고 마시는 문화만이 상존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움이 들었다.

더욱이 변산을 거쳐 나오는데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났는데 그것이 바로 새만금방조제란다. 이제는 운치 있는 변산의 포구들과 유서 깊은 유적지, 겨울바다의 정취, 신록, 염전, 갯벌, 어촌마을, 어민들의 행복한 웃음들이 하나씩 줄어드는 것 같아 씁쓸했다. 그것은 자본주의식 개발독재로부터 땅을 지켜내지 못한 안타까움이 들어서였을 것이다.

▲ 저멀리 격포항을 뒤로하고 채석강에 선 가족들은 이번여행에서 깊은 정을 나누고 돌아왔다.

이번 기행은 바쁜 일상에 쉼표를 찍고자 가족과 함께했던 기행으로 끈끈한 가족의 정을 돈독히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이제 봄을 맞이하시는 여러분도 사무실에만 있지말고 꼭 한번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기쁨과 행복을 나눌 수 있는 여행학교를 용기 내어 열어보시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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