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법, 정치,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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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법, 정치, 종교
  • 김홍한
  • 승인 2015.11.16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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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과학적인 것이 미신인가?

교육, 법, 정치, 종교

가장 보수적인 집단이 교육자와 성직자, 법조인이다. 교육이란 진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그 시대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다. 그 시대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가르치고 거기에 복종하기를 가르치는 것이 교육이다. 때에 따라서는 그것마저도 무시하고 산업현장에서 필요한 기계부품 양성이 목적이다.

   

조선시대의 교육은 지배이데올로기로서의 유학교육이다. 임금에 대한 충성, 부모에 대한 효, 형제간에 우애, 벗에게는 신의, 남자에 대한 여자의 복종, 주인에 대한 복종, 이것이 전부였다.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소위 지식인들은 理(이)니 氣(기)니 하는 형이상학적인 탐구에 몰두했다.

일제 강점기, 교육은 당연히 일제의 천황제 국가이데올로기의 필요에 의해서 시행되었다. 오로지 황국신민을 양성하는 것이 교육의 처음이요 끝이었다.

해방 후에는 어떠한가? 일제에 의해 교육된 국가이데올로기가 바탕이 되어 유학의 지배이데올로기를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유학의 형이상학적인 내용들은 공리공론으로 폐기처분 되었다. 새롭게 들어온 서구사상으로서의 기독교는 종교의 역할보다는 자본주의 가치관을 심는 도구로서 이용되었다.

군부독재 하에서의 교육은 산업사회의 일꾼을 양성하는 것이었다. 쌀 한 톨도 생산하지 못하는 철학, 예술, 문학, 종교적 가르침들은 철저히 무시되었다. 그나마 국가주의가 허락하는 한에서 허용되었다.

法(법)은 어떠한가? 법은 정의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질서유지를 위해서 존재한다. 많은 경우 정의와 질서는 반대개념이다. 정의를 세우고자 하면 질서가 깨진다. “로마의 평화”는 힘으로 유지되는 질서로서의 평화다. 결코 정의로운 평화가 아니다. 로마가 만들어낸 불의와 억압에 항거한 이들은 로마법에 의하여 정죄되었다. 교육이 학문과 진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법은 정의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한문에서의 “法(법)”과 “治(치)”는 물이 둑을 넘지 못하게 하는 것을 표현한 글자다. 물이 둑을 넘지 못하게 통제하는 것처럼 사람을 통제하는 것이 法이다.

종교는 거의 언제나 세속권력의 통제 하에 있었다. 서양의 경우 고위 성직자 임명권을 세속권력이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그 증거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시대는 물론이요 불교국가라 해도 과언이 아닌 고려시대에도 권력에 저항하는 승려들에 대해서는 무자비한 학살이 자행되었다.
아주 드문 경우 종교의 힘이 세속권력을 압도한 적이 있기도 했다. 그것이 너무 특이한 사건이기에 역사적 사건이 되었다. 역사가 되었기에 후세인들은 그것이 보편적인 현상인 것처럼 착각한다. 종교가 세속권력의 통제 하에 있었기에 종교는 세속권력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세속권력에 협조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유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주장한 것은 정치가 아니라 종교였다.

종교가 간혹 세속권력의 비위를 상하게 하면 종교는 즉각 극심한 박해에 직면했다. 그래서 종교는 혁명을 말해도 감히 사회적 혁명을 말하지 못하고 인간 내적 혁명을 말할 뿐이었다. 어느덧 그러한 경험들이 그대로 종교의 처세술이 되었다. 그래서 종교인들의 대다수는 권력에 순종적이고 보수적이다.

정치는 중요하다. 정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흥망성쇠가 좌우된다. 그러니 정치를 하고자 하는 이는 역사, 종교, 철학, 경제, 과학기술, 생태학, 통계학, 등등 인간사회의 모든 일들을 통달한 이여야 한다. 학문뿐만 아니라 신중함과 결단력도 갖추어야 한다. 게다가 탁월한 지도력도 필수로 갖추어야 한다. 그 뿐인가? 온갖 비난에도 의연할 수 있어야 하고 온갖 환란도 극복해야 하며 정적의 중상모략에서도 살아남아야 하는 인품과 의지를 갖추어야 한다. 그래서 플라톤은 哲人政治를 이야기 했고 孟子는 王道政治를 이야기 했다. 어느 사회든지 그 사회의 최고 엘리트들이 정치를 한다.

정치인은 어떠한 정치 이데올로기를 금과옥조처럼 고수할 수 없다. 공자는 “군자는 세상사에 있어서 꼭 그래야만 한다는 것도 없고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도 없다. 의를 쫓을 뿐이다.”고 했다. 소인배 정치인들은 얄팍한 정치소신을 고수하다가 나라를 큰 위험에 빠뜨린다.

정치인은 종교편향적일 수 없다. 정치인도 특정종교를 신봉할 수 있지만 그의 정치행위도 종교적 이어서는 안 된다. 그의 깊은 신앙심으로 인하여 나라가 망할 수 있다.
정치인은 적어도 수 십 년 앞을 내다보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정치인들조차도 현실적인 문제에 집착한다면 과연 누가 그 사회의 미래를 설계할 것인가?

정치인은 대중을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 역시 대중의 비위를 맞추려고 해서도 안 된다. 대중은 돌보고 이끌어야 할 대상이지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다. 大學에 “여보적자(如保赤子)”라는 말이 있다. “갓난아기(赤子) 돌보듯 한다.”는 말인데 나라를 다스리는 이는 모름지기 백성을 갓난아이 돌보듯이 해야 한다. 철없는 젊은 엄마가 갓난아이를 키우는데 경험이 없어서 전전긍긍한다. 오직 하나 있다면 아기를 끔찍이 사랑하는 그 맘 하나가 있다. 그 맘으로 엄마는 아기를 키울 수 있다. 국민들에 대한 한없는 연민이 지도자의 가장 큰 덕목이다.

이스라엘 최고의 왕 다윗, 그의 어떤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서 그를 왕으로 세우셨을까? 다윗은 말한다.

“저는 아버지의 양 떼를 지켜 왔습니다. 사자나 곰이 양떼에 달려들어 한 마리라도 물어 가면, 저는 곧바로 뒤쫓아가서 그 놈을 쳐 죽이고, 그 입에서 양을 꺼내어 살려 내곤 하였습니다. 그 짐승이 저에게 덤벼들면, 그 턱수염을 붙잡고 때려 죽였습니다 ….” (왕상 17:34~ )
이렇게 다윗은 양떼를 목숨 걸고 지킬 수 있는 이였기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맡길 수 있으셨을 것이다.

宗敎의 역할

인간세상의 영원한 숙제가 욕망의 문제이다. 욕망은 아무리 경제가 발전해도,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도 채울 수 없는 원초적인 것이다. 욕망의 문제, 그것은 경제의 영역이 아니다. 정치의 영역도 아니고 교육의 영역도 아니다. 종교의 영역이다.

공산주의가 실패한 이유는 욕망의 문제를 간과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번창한 이유는 인간의 욕망에 충실했기 때문이겠지만 역시 몰락도 그로 인해서일 것이다.

서양인들은 욕망극복을 금욕으로 하려했는데 금욕은 고통이다.
조선 선비의 욕망 극복의 가치관은 좀 다르다. 근검과 절약, 절제와 청빈이었다. 남들이 다 그래도 나만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 선비의 자존심이다. 절제와 청빈은 고통이 아니라 삶의 영성이고 인품이다.

성인의 가르침은 욕망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을 주는 것, 성서의 가르침도 욕망의 억제를 말씀하신다. 혹자는 프로테스탄트 정신이 자본주의를 발전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트 정신도 근검과 절약, 절제와 청빈이다. 자본주의 발전은 그로 인한 산업발전으로 보아야지 욕망을 채우기 위한 천박한 의미의 자본주의 발전으로 이야기 하면 안 된다.

儒家는 욕망의 절제를 말한다.
墨家(묵가)는 소비의 절제를 말한다.
老莊은 명예, 출세, 부의 절제를 말한다.
荀子(순자)는 욕망을 인정하지만 의가 먼저이고 욕망은 상벌로 통제해야 한다고 한다.

빵문제는 예수님 시대에는 물론 오늘날까지도 매우 심각한 문제다. 그러나 적어도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빵문제는 정말 빵문제가 아니라 욕망의 문제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풍요로운 삶을 구하는 것이고 출세하는 삶을 구하는 것이다. 남위에 군림하고, 더 좋은 자동차, 더 좋은 집, 더 좋은 직장, 더 많은 소득을 구하니 항상 불만족하다.

흔히 말하기를 “경제가 어렵다”고 한다. 내 기억에 “경제가 좋아졌다”는 말은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항상 “작년만 못하다”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전보다 더 좋은 옷, 더 좋은 자동차, 더 좋은 집에 살고, 외식도 자주하며 여가 생활도 더 많이 즐긴다.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경제성장이 우리의 욕망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위 크게 성공한 소수가 작게 성공한 다수를 빈곤감에 빠뜨린다.

대중의 끝없는 물질적 욕망을 채우기란 불가능하다. 그것을 채우려고 하다가는 인간세상 자체가 망하고 말 것이다. 그러니 대중의 욕망을 채우려 하기 보다는 부질없는 욕망을 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역할을 철학이 한다. 문학이 하고 예술이 한다. 그 무엇보다도 종교가 해야 한다.

迷信(미신)

비과학적인 것이 미신인가? 그렇다면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등 세상의 모든 종교가 다 미신이다. 성서 속에도 비과학적인 내용이 무수하다. 오늘날 성경이 과학적으로 참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어리석은 짓이다. 오히려 불신앙의 짓이다. 성경이 과학적이기 때문에 참이라면 성경보다 과학을 더 신뢰한다는 이야기다.

미신이란 비과학적, 비합리적인 것이 아니라 비인간적인 것이다. 사람은 마땅히 사람다워야 하는데 사람을 사람답지 못하게 하는 것이 미신이다.

예로부터 백성들은 먹거리를 하늘로 섬긴다. 먹거리를 하늘로 섬기는 것이 迷信이다. 迷자는 쌀(米)로 간다(之)의 합자다.

절대빈곤의 상황에서 오로지 먹을 것을 바라는 것을 미신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다. 어떤 심오한 신학적 고뇌도 절대빈곤의 상황에서는 사치일 수 있다. 오히려 신학은 그러한 상황을 방관하시는 신을 비판해야 할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간 세상에 절대빈곤의 때는 너무도 자주 있었다. 가뭄과 홍수로 인한 흉년, 전쟁으로 인한 흉년, 지력이 고갈되어 흉년 등등이 있다. 그런데 그러한 절대빈곤의 상황이 과연 신이 내리신 재앙일까?

조선 후기, 천주교가 조선에서 극심한 박해를 당할 때였다.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산속으로 숨어들어 화전을 일구고 옹기를 구워 삶의 방편으로 삼았다. 그 때는 조선의 많은 백성들이 가혹한 관리들의 가렴주구로 인하여 굶어 죽는 이들이 속출할 때였다. 그런데 그들보다 더 어려운 형편에 있었던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굶어 죽는 이들이 없었다. 이유는 나누어 먹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굶주리는 것은 식량이 없어서가 아니라 나눔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주시는 분 아니신가? 그러니 신을 탓할 것이 아니다. 나누지 않는 인간들의 이기심과 탐욕이 문제다. 먹을 것을 독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쌀(米)로 가는(之) 迷信이다. 내 이웃은 굶주리는데 나는 쌀을 감추어 두고 배불리 먹는 것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아는 것이 迷信이다. 남보다 잘 먹고 잘살게 해달라는 것이 迷信이다.
“平和”는 공평하게(平) 밥(禾) 먹는(口) 것이다. 미신은 나 혼자 먹겠다는 것이니 평화를 해치는 주범이다. 경제를 제일로 삼는 자본주의가 미신이다. 시장경제가 미신이다. 재벌경제, 제국주의 경제가 미신이다.

사람들은 남보다 많이 갖는 상대적 부를 성공이고 행복으로 안다. 미신이란 상대적 부를 하나님이 주신 복이라 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것이 고등종교의 틀 안에 있더라도, 체계화된 경전과 교리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러하다. 이를 극복하고 더불어 행복하고자 하는 것이 바른 신앙일 것이다.
내 가족이 다 불행한데 나 혼자 행복할 수는 없다. 내 이웃이 다 불행한데 우리 가족만 행복할 수는 없다.

종교의 역할이 온갖 욕망, 특히 쌀로 가는 미신을 극복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평화의 세상을 만드는 것 일 텐데 소위 성직자라는 사람들 중에는 욕망을 극복하기는커녕 욕망의 덩어리인 자들이 있다. 物慾과 性慾을 극복하지 못함은 물론이거니와 거기에 名譽慾과 權力慾까지 더한 이들이 있으니 과연 욕망의 덩어리다. 그러면서도 시대의 스승노릇을 하려하니 한심한 노릇이다. 이것이 종교가 정치의 통제를 받는 가장 큰 이유다.

시대의 스승

무술의 상당한 경지에 오른 어떤 사람에게 제자가 되겠다고 찾아오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그는 제자가 되겠다고 온 이들을 보고 실망한다. “겨우 저런 녀석이 나에게 배우러 오는가?” 하고는 그를 쫓아낸다. 그러한 일이 여러 번 반복된다. 그러던 중 그 고수는 그 동안 자신에게 제자가 되고자 찾아왔던 이들이 자신이 가르치기에는 과분한 이들이었음을 깨닫는다. 그 때쯤 제자가 되겠다고 찾아오는 이가 있다. 그 때 그 사람은 그를 제자로 받아들일 수 있다. 받아들여서는 온 정성을 다 해서 지도한다. 생명까지도 줄 자세로 가르친다. 제자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스승은 제자의 한계를 봄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본다. 그래서 제자를 졸업시키고자 한다. “더 가르칠 것이 없다”고 한다. 제자는 그 말이 이해되지 않는다. 아직 그에게 스승은 까마득히 높은 분이다. 그러나 선생은 이미 그가 장차 스승만큼 성장했음을 안다. 스승이란 자신의 한계를 알고 제자의 가능성을 보기에 스승이다. 제자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니 스승이다. 때가 되면 졸업시켜 더 큰 세상에 내보낼 수 있으니 스승이다.

아! 선생이라는 자는 과연 이러한가? 선생다운 선생은 제자가 성장하여 자신을 능가하는 것을 더 없는 기쁨이요 보람으로 안다. 그러나 선생답지 못한 선생은 제자를 졸업시키지 않는다. 자신에게 복종만 강요한다. 제자가 일취월장하여 스승에 버금가게 되면 자신의 위치를 빼앗길까 두려워해서 시기하고 질투한다. 심지어 죽음으로 내몰기도 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최고의 장인 다이달로스, 그에게는 조카이면서 제자인 페르딕스가 있었다. 페르딕스는 생선가시를 보고 톱을 발명했고 컴퍼스를 발명해 낸 재주꾼이었다. 제자가 이렇게 출중하면 대견하고 자랑스러울 것인데 다이달로스는 제자를 질투했다. 제자가 자기보다 나을 것을 염려했다. 그래서 죽여 버렸다.

구약성서 최고의 인물 모세는 여호수아를 가르치고 돌보고 힘을 실어주어 자신의 후계자로 삼았지만 이스라엘 최초의 왕 사울은 그의 부하이며 아들 같은 다윗이 큰 공을 잇따라 세우자 심하게 질투했다. 자신의 지위가 위태로울까 두려웠다. 그래서 여러 번 다윗을 죽이려 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선생이 있다. 제자에게 아낌없이 모든 것을 주는 선생이 있고 반면 제자를 성장시키기는커녕 제자를 질투하고 그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선생이 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지도자가 있다. 인재를 등용하고 양성해서 지도자의 큰 짐을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넘겨주는 지도자가 있다. 반면 혹여 누가 자신을 능가하여 자신을 쫒아낼 것을 염려하여 훌륭한 인재를 경계하고 제거한다. 그에게 인재란 아첨꾼, 기회주의자가 인재다. 그에게 아첨하지 않고 복종하지 않는 인재는 적일뿐이다.

인류의 역사와 문화는 스승보다 나은 제자들이 있어서 발전한다. 제자들이 스승과 같던지 못하다면 어찌 인류의 문화가 발전할 수 있겠는가?

스승에게 제자는 영적, 정신적, 진리의 자식이다. 공자는 자신의 친아들이 죽었을 때는 담담했건만 안회가 죽었을 때는 “하늘이 나를 버렸다”고 통곡을 했다. 공자에게는 육신의 지식보다 진리의 자식 안회가 더 귀했을 지도 모르겠다.

석가는 아들 라훌라가 유산문제를 정리해 줄 것을 요구하자 아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주는 유산은 너를 괴롭히기만 할 뿐이다. 내가 줄 유산은 법 밖에 없다.” 라며 라훌라를 출가 시켰다. 라훌라는 석가의 10 제자중 하나가 되었다. 석가에게 육신의 아들은 의미가 없다. 이미 출가했으니 그럴 것이다. 육신의 아들을 불쌍히 여긴 석가는 육신의 아들을 영적 아들로 바꾼 것이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들이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께는 혈연으로서의 부모형제는 의미가 없다.

“교회세습”이라는 말이 있다. 모 교단에서는 “세습방지법”도 만들었다. 그런 말 자체가 있음이 안타깝다. 예수께서 하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들이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다”는 말씀이 생생한데 오늘날 한국 기독교는 영적인 것을 육적인 것으로 바꾸니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너무 동떨어졌다. 진리의 제자를 죽인 다이달로스와 다르지 않고 다윗을 죽이려한 사울과 다르지 않다.

- 논어읽기-
子張 14장  子游曰: 「喪致乎哀而止. 」
(자유 왈 “상사를 당하여서는 슬픔을 지극히 함으로 그쳐야 한다.”)

자유는 무성의 읍제로 있을 때 정치를 매우 잘하여 공자로부터 큰 칭찬을 들은 바 있는 인물이다.(양화 4장) 또한 담대멸명이라는 인재를 등용하는 안목과 덕이 있는 인물이었다.
자유는 위정7장에서 공자로부터 효에 대하여 듣기를 “오늘날 효라는 것은 잘 부양하는 것으로만 생각하는데 그것은 개나 말에게도 그렇게 한다. 공경하지 않으면 어찌 짐승을 사육하는 것과 부모를 봉양하는 것이 구별될 수 있겠는가?” 라는 가르침을 들었다. 효라는 것의 근본이 공경함이라면 상사의 근본은 애통함이다. 자유는 그것을 강조한다.

자유의 이 말에 비추어 유가의 삼년상을 생각해 본다. 공자는 삼년상을 이야기 했다. 그런데 삼년상이라 하면 삼년 시묘살이가 떠오른다. 시묘살이란 부모의 무덤가에 움막을 짓고 거기에서 삼년동안 살면서 부모의 묘를 돌보는 것이다. 공자의 삼년상이 삼년 시묘살이로 과장되었다. 아마도 공자의 생각도 자유의 생각과 같을 것이다. “상사를 당하여서는 슬픔을 지극히 함으로 그쳐야 한다.” 과연 애통함으로 그쳐야지 과도한 상례로서 3년 상을 치르면서 몸이 쇠하는 등 부작용이 있다면 오히려 불효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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