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몸으로 시 써보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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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몸으로 시 써보려해
  • 박성율
  • 승인 2015.11.11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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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詩, 고요한 사랑을 받아라

속이 쓰려온다.
뱃속에 별하나 꿈하나 키우는 죄렸다.
아들이 詩를 쓰고 있는데
보여주질 않는다.
애비가 예전에 시를 썼다고 하니
표절할까봐 경계하는 모양이다.
걱정마라
이젠 시를 쓰지 못한다.
다만 싸움질만 할 뿐
손으로 시를 쓰진 못하지만
온 몸으로 써보려 하고 있다.
꿈이 용솟음 치니 속이 쓰릴 수 밖에

   

이성복의 시를 다시 읽어 본다.

아들아 詩를 쓰면서 나는 사랑을 배웠다 폭력이 없는 나라,
그곳에 조금씩 다가갔다 폭력이 없는 나라, 머리카락에
머리카락 눕듯 사람들 어울리는 곳, 아들아 네 마음 속이었다
아들아 詩를 쓰면서 나는 遲鈍(지둔)의 감칠맛을 알게 되었다
지겹고 지겨운 일이다 가슴이 콩콩 뛰어도 쥐새끼 한 마리
나타나지 않는다 지겹고 지겹고 무덥다 그러나 늦게 오는 사람이
안 온다는 보장은 없다 늦게 오는 사람이 드디어 오면
나는 그와 함께 네 마음 속에 入場할 것이다 발가락마다
싹이 돋을 것이다 손가락마다 이파리 돋을 것이다 다알리아 球根같은
내 아들아 네가 내 말을 믿으며 다알리아 꽃이 될 것이다
틀림없이 된다 믿음으로 세운 天國을 믿음으로 부술 수도 있다
믿음으로 안 되는 일은 없다 아들아 詩를 쓰면서 나는
내 나이 또래의 작부들과 작부들의 물수건과 속쓰림을 만끽하였다
詩로 쓰고 쓰고 쓰고서도 남는 작부들, 물수건, 속쓰림......
사랑은 응시하는 것이다 빈말이라도 따뜻이 말해 주는 것이다 아들아
빈말이 따뜻한 時代가 왔으니 만끽하여라 한 時代의 어리석음과
또 한 時代의 송구스러움을 마셔라 마음껏 마시고 나서 토하지 마라
아들아 詩를 쓰면서 나는 故鄕을 버렸다 꿈엔들 내 故鄕을 묻지 마라
생각지도 마라 지금은 故鄕 대신 물이 흐르고 故鄕 대신 재가 뿌려진다
우리는 누구나 性器 끝에서 왔고 칼 끝을 향해 간다
性器로 칼을 찌를 수는 없다 찌르기 전에 한 번 더 깊이 찔려라
찔리고 나서도 피를 부르지 마라 아들아 길게 찔리고 피 안 흘리는 순간,
고요한 詩, 고요한 사랑을 받아라 네게 준다 받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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