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길목, 섬들의 고향 고흥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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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길목, 섬들의 고향 고흥반도
  • 류기석
  • 승인 2009.10.08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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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개의 봉우리가 아름다운 팔영산과 능가사 그리고 남포미술관과 나로도, 하도(새우섬) 테미기행

처가가 있는 순천에서 머물던 날, 매일 힘겨운 농삿일과 허드렛 일에 치어 변변한 여행 한 번 못하시는 장인 어르신과 장모님을 모시고 온 가족이 봄이 오는 길목, 섬들의 고향이라는 고흥반도를 향해 떠나게 되었다.

하늘의 이치를 따른다는 순천, 처가가 있는 해룡에서 조금만 걷다보면 시원스레 펼쳐져있는 순천만의 바다를 볼수 있는데 바다 건너에는 벌교 땅이고, 잘 생긴 산이 하나 보이는데 그 산이 우산 같이 생겼다고 우산이란다. 순천에서 얼굴 자랑하지 말고, 벌교에서 주먹자랑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요즘은 어떤지 확인 해 볼 길이 없어 잘 모르겠다.

여기서 너른 순천평야와 순천만을 지나 벌교를 스치고 곧장 고흥으로 향했다. 고흥하면 코끝을 유혹하는 유자향의 고장이고, 섬과 섬을 잇는 수많은 다리와 방조제가 세워진 곳으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첨단우주산업 열풍에 힘입어 우주센터가 들어 선다는 나로도가 개발의 열풍에 힙싸이고 다도해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만나기 이전에 새로운 길들이 넓게 포장되는 현장과 외지인들의 별장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는 소문이다.

아무튼 순천에서 서쪽으로 잘 닦여진 2번 국도를 타고 달리면 벌교가 나오고 계속하여 직진하다가 팔영산과 남포미술관 이정표가 보이는 곳에서 15번 국도를 타고 달리면 남양이다. 과역에서 15번 국도에서 우측 길로 접어들면 팔영산으로 향하는 길에 붉은 황토를 만날 수 있는데 구불 구불한 시골길이 어느 농촌풍경 보다도 정겨워 보였다.

▲ 고흥 팔영산 능가사 천왕문 입구 전경, 이 절은 마을과 인접해 손쉽게 찾을 수 있었다.
 
▲ 아이들과 함께 현장감 넘치는 목조사천왕상(木造四天王像)을 지나 대웅전으로 향했다.

이윽고 장대한 여덟 봉우리가 펼쳐진 내륙의 명소 팔영산이 감싸 않은 능가사에 도착했다. 우선 팔영산은 고흥읍에서 동쪽으로 25Km 떨어진 소백산맥 맨 끝 자락에 위치한 산이고 해발 608m로 모두 여덟 개의 봉우리가 남쪽을 향해 일직선으로 솟아 멀리서도 정말 멋진 산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 능가사 대웅전에는 350여 년 전에 나무로 만든 뒤 개금한 불상 8위와 나무로 만든 뒤 도분한 불상 22위가 있다. 저 멀리 산수 수려한 여덟개의 팔영봉이 힘차 보인다.

'중국 위왕의 관수에 팔봉이 비쳐 이름이 지어졌다'는 팔영봉, 웅장한 산세와 고고한 자태를 뽑내고 있는 이 산은 산세가 험준하기로 이름이 나 있고 기암과 괴석이 변화무쌍하게 펼쳐진다. 정상에 오르면 멀리 대마도가 조망되는 등 다도해의 결정을 감상하는데 최고란다.

고흥반도의 여행은 팔영산을 중심으로 북쪽 능가사부터 시작하여 동쪽 팔영산자연휴양림과 남쪽 남포미술관, 서쪽 포두식당으로 이어지는 테마코스를 잡았다. 이윽고 오랜된 산사의 기운이 풍겨지는 능가사의 고즈넉한 분위기에 홀딱 반했다.

팔영산 북쪽 끝자락에 위치한 능가사는 신라 아도화상이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능가사 천왕문을 통과하면 그 옛날 40여개의 암자를 거느린 대찰의 자태가 고스란히 뿜어져 나온다. 정유재란 때 왜구에 의해 불에 탄 것을 최근에야 복원했다는 능가사의 역사는 한번 자세히 살펴 보아야 겠다.

전라남도 고흥군 점암면 성기리 팔영산(八影山) 밑에 있는 신라의 고찰, 경내를 애워싸고 있는 돌담과 대웅전, 요사채와 산신각이 있는 뒤로는 천연의 숲이 굴참나무, 갈참나무, 고로쇠나무 등과 함께 야생의 동물들과 조류들을 불러 들이고 있었다. 요사채 앞에 있는 약수를 한잔 들이 키고는 산속이 아닌 마을 언저리에 자리한 산사의 고요함에 넋을 잃는다.

주지스님께 절의 역사적 사료를 물으니 최근에 정리된 것을 보여주신다. 대한불교조게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다. 신라 때인 420년(눌지왕 4)에 아도(阿道)가 창건하여 보현사(普賢寺)라 했다고 한다. 이 절은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탄 뒤 1644년(인조 22)에 벽천(碧川)이 중창하고 능가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뒤 1768년(영조 44)과 1863년(철종 14)에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정면 5칸, 측면 3칸에 팔각지붕을 한 능가대웅전(보물 1307)과 천왕문(天王門), 산신각, 요사채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350여 년 전에 나무로 만든 뒤 개금한 불상 8위와 나무로 만든 뒤 도분한 불상 22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된 범종(梵鐘), 목조사천왕상(木造四天王像) 및 귀부(龜趺) 위에 세워진 능가사사적비(전남유형문화재 70)가 있다. 이 중 사적비는 300여 년 전에 건립한 것으로 불교의 유래와 절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 우수한 작품이다.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된 범종(梵鐘), 1698년(숙종 24)에 주조된 것으로 이 종을 치면 인근 점암면 일대에 울려퍼질 정도였다는데...

특히 능가사 범종은 1698년(숙종 24)에 주조된 것으로 이 종을 치면 인근 점암면 일대에 울려퍼질 정도였는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탐을 내 헌병대까지 끌고 가 종을 쳐봤으나 소리가 나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밖에도 절의 경내에는 광조(廣照), 사영당(泗影堂), 추계당(秋溪堂) 등의 부도(浮屠) 8기가 있다.

영조 때 이중환(李重煥)의 기록에 따르면 일본 류큐[琉球]의 태자가 표류하다가 이곳에 이르렀는데, 이 절의 관세음보설의 도움으로 파도를 넘어갔다고 하며, 절의 승려들이 법당 벽에 그 모양을 그려 놓았던 것이 영조 때까지 남아 있었다고 한다. 부속 암자로는 만경암(萬景庵)과 사불암(四佛庵)이 있었다고 하나 현존하지 않는다.

▲ 능가사 경내에는 요사채 앞으로 샘물이 솟아나고, 뒤로는 추계당(秋溪堂)이 있어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 고요한 능가사 경내에는 숲이 있고, 건축물이 자연친화적이다.

신라 때 10대 사찰로 꼽혔다는 능가사는 현재 비구니들의 도량으로 이름이 높다. 사찰 주변에는 팔영산, 읍성, 마목성, 덕흥해수욕장과 조금 떨어진 곳에 소록도, 외나로도 등이 있어 꼭 한번 들러보기를 권한다.

숲으로 둘러진 고요한 산사의 문화를 깊이 음미하고는 너른 앞 마당의 앙증맞은 연못가와 정원을 가벼운 마음으로 걸어 나오며 능가사와 작별했다. 능가사에서 우측길을 따라 한적하게 드리워진 남영으로 향하는데 팔영산 자연휴양림 이정표가 있어 오르기 시작했다. 중턱 쯤 올랐을까 산 허리에 입장료를 받는매표소가 떡하니 버티고 서있다.

비롯 팔영산은 오르지 못할찌라도 해발 400m에 자리잡은 휴양림이라도 올라가 팔영산 서쪽 바다를 굽어볼 요량이었으나 생각지도 않은 하루치 요금을 내야 한단다. 안타깝게도 차는 더 이상 정상을 향해 오르지 못하고 바로 영남 쪽으로 향했다. 얼마를 가다가 영남면 바로 못미처 남포미술관 이정표가 있길래 폐교를 재활용한 이색적인 남포미술관으로 들어섰다.

▲ 전남 고흥군 영남면 양사리에 있는 남포미술관에서 곽형우 관장님을 만났다.

한적한 어촌마을에 위치한 남포미술관(www.nampoart.com, 061-832-0003)에는 곽형수 관장님이 환하게 웃으시며 미술관의 조명등을 켜주시고는 아이들을 맞아 주셨다. 곽형수님의 아버지(호 남포)가 세웠다는 시골학교가 폐교되자 아버지의 호를 따서 어촌미술관을 만들어 귀향했다. 이곳에 서양화와 동양화는 물론 수묵화, 서예화 등이 섹션별로 깔끔하게 전시되어 있어 보기 좋았다.

▲ 남포미술관장님은 문화소외 지역인 고흥의 농촌에서 친절한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 남포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 하나
 
▲ 남포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 둘
 
▲ 남포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 셋

이 미술관에는 남도화단의 작가들이 대거 참여하여 정열적인 예술혼을 불태운 흔적들이 역력하다. 서정적이고 격조 높은 회화작품들을 전시하는1종 미술관으로서 뿐만 아니라 부대시설로는 국악공연, 음악회, 무용공연, 영화감상이 가능한 다목적 공연장과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체험학습장도 갖추고 있었다.

앞으로 문화의 소외 지역인 고흥의 주민들을 위해 문화향수 기회를 제공하고 다각적으로 역할을 제공하려고도 한다니 본래의 쉽고, 즐겁고, 누구나 참여가 가능한 지역 문화센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곳 남포미술관의 관장님과 기획팀장님은 부부로서 고흥으로 귀향한지 5년도 채 되지 않는단다. 앞으로는 지역특성을 살리는 마을의 일들과 미술관이 연결되는 문화사업들을 기획하고 있어 함께 돕기로 했다.

잠시 차를 내주어 마시고는 선뜻 2006년에 치뤘다는 "남도문인화의 흐름을 찾아서" 전의 도록을 주시며 돌아가는 이에게 예로 마중해 주었다. 밖에는 어느새 굵은 빗방울이 세차게 내리고 있어 여행을 포기할 까도 생각했지만 서둘러 다음 행선지인 나로도로 향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나로도로 가는 길에는 끝없이 방파제로 쌓아 만든 논들이 즐비하게 도열하고 있어 그 길을 드라이브하는 느낌도 좋았다. 하지만 팔영산 주변으로는 맛집이 없어 고흥에서 나로도가는 길목인 포두면에 있는 포두식당에서 점심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곧장 가는 길을 멈추고 포두면으로 향하고는 포두식당을 찾아 멋드러진 한정식을 한상 차려보라고 큰 소리쳤다.

▲ 고흥군 포두면에 위치한 포두식당에서 맛난 점심을 먹었다.
 
▲ 점심식단으로는 주인장의 특선요리인 낙지전골을 얼큰하게 맛볼 수 있었다.

오랜만에 장인 장모님을 모시고 식사를 대접해 드리는 터라 특별히 맛있게 요리를 하는 포두식당(송신엽(55세))을 미리 염두에 두고 찾았다. 고흥에서 나로도로 가는 길목인 포두면에 위치한 포두식당(061-834-5555)은 한정식이 맛있기로 소문이 나 있다. 서글서글한 주인장께서 밑반찬도 잘 챙겨주시고 음식도 정갈하게 만들어 주셔서 이날 추천받은 특선요리로 낚지전골을 꽤나 괜찮게 먹었고 어른들께도 대접한 보람을 느꼈다.

비가 그칠무렵 밖으로 나와 나로도로의 기행은 계속됐다. 고흥반도의 비경은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나로도지구가 으뜸으로 꼽힌다고 한다는데 풍광은 물론 볼거리가 변변치 않아 실망했다. 조선시대 말 목장으로 쓰였다는 내나로도에는 파밭과 보리, 마늘밭이 초록으로 물들고 있었고, 노송이 아름다운 외나로도 해수욕장은 백사장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볼만 했다.

▲ 나로도로 향하던 길가에서 만난 앙증맞은 배가 정착된 포구는 아름다웠다.

나로도는 그냥 차를 몰고 15번 국도와 지방도, 해안도로를 따라 천천히 달리면서 주변의 경치를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했고, 외나로도는 각종 도로공사로 어수선했다. 특히 우주센터가 들어선다는 하반마을까지의 중간 중간의 도로는 건설차량과 공사장들이 뒤옹켜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이윽고 나로도를 나와 하도 일명 새우섬을 찾아 동몽과 같은 길을 달렸다. 하도에는 옛 지도를 복원하는 최현길님과 낙안읍성에서 한지공예 공방을 운영하시는 부인 전소연님이 알콩달콩 살아가는 터전이다. 처음 낙안읍성으로 내려온 최현길님은 "나, 여기서 살래"하고 첫 번째 귀향한 양평에서 초가집을 이을 이영을 얻을 목적으로 농사를 짓다가 아예 낙안읍성에 자리를 틀더니 이제는 고흥반도 하도섬(일명 새우섬)으로 거쳐를 옮겨 목적했던 우리 옛 지도의 아름다움을 재현하고 있었다.

▲ 오래된 소나무 뒤로 모래사장으로 뒤덮인 나로도해수욕장 겨울풍경

이곳을 방문했던 이유는 고지도에 유난히 관심이 많은 아이들이 직접 옛 지도에 담긴 아름다움을 알게하고 고지도에 담긴 역사의 강역을 알아보기 위해 한번 찾아보고 싶어 찾았던 것이다. 그가 옛 지도 복원 작업을 시작한 건 우연히 본 동여의 아름다움 때문이란다. 한번 그림을 시작하면 그 뿌리를 보고서야 손을 내려 놓는다나 그래서 그는 요즘 지병인 당뇨로 몸이 허약해 질대로 허약해진 상태다. 어렵사리 찾아간 하도는 정말이지 섬마을 중에 섬마을이다. 다행히 다리가 놓여져 있어 차로 찾아가기는 쉬웠다.

▲ 나로도에서 만난 바닷가 몽돌들의 반란

작은 포구를 둘러싼 하도마을 중앙에는 하도슈퍼가 자리했고, 최현길님께서 사신다는 곳은 폐교가 아니라 포구 위 흙집이었다. 전화로 위치를 여쭙고는 아이들과 함께 맨 꼭대기 흙집을 찾았다. 돌담길을 지나 흙집을 찾으니 벌써 멀찍이서 최현길님이 마중을 나오신다. 자연친화적인 정원을 거쳐 흙집에 들어서니 손수 복원된 고지도들로 거실 벽면이 가득메워져 있는 모습이 편안했다.

거실에 딸린 부엌에서 손수 차와 아이들을 위해 우유를 내주신 손길이 따듯했다. "대동여지도는 가로 3m, 세로 7m의 거대한 지도로 한 장에 그려진 것이 아니라 22권의 분책으로 되어 각 층이 이어진 한 층의 긴 지도로 만들어져 있으며, 책으로 접어놓은 형식이다. 각 층의 지도를 순서대로 모두 맞추면 조선 전도가 된다"고 설명을 해주시고는 이어 "동여도는 필사본의 전국 채색 지도로, 모두 23첩으로 이루어져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판각하기 위해 만든 지도로 우리나라 고지도 가운데 가장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정밀한 전국 지도다"라며 설명해 주었다.

"옛날에는 각 현에서 제일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지도를 그렸기 때문에 지도마다 조금씩 분위기가 다르다"며 지도안에 담겨져 있는 재미를 아이들에게 설명도 해 주었다. 또한 재미있는 사실은 북한 지역을 그릴 때는 산악지대가 많아 지명이 별로 없어 진도가 빨랐는데 아래쪽 경상도와 전라도를 그리면서는 아주 힘들었다는 사실에 나도 각 지방을 여행할 때마다 느껴왔던 지역문화로 보아 조선을 이끌어 왔던 두 축이 경상도와 전라도라는 사실을 그이와 다르지 않게 느껴왔음이 새삼 생각이 들었다.

요즘 규장각에서도 이곳을 살피고 간다니 학계의 관심이 커졌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우리나라를 생각하는 이들은 진정 공무원보다는 이런 분들의 숨은 노력이 아니겠는가 느껴진다. 안방에 않아 차를 마시고는 대뜸 아이들을 위해 벽에 걸려진 옛 복원지도를 하나하나 살피시며 설명을 해주셨다. 그는 아이들에게 옛 지도를 공부하려면 지리공부는 물론 역사와 미술, 뜻글과 소리글, 문화와 사회, 철학과 종교 등 많은 공부가 뒷 바침 되어야함을 주지시켜 주었다.

그는 요즘 새우섬 작업실 근방에 폐교를 구입해 고지도박물관을 꾸밀 열망에 사로잡혀 있다고 한다. 그 열망이 현실로 반가이 이루어지기를 빌며, 이자리에서 최현길님께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이렇듯 하도라는 새우섬, 최현길님의 흙집은 새해들어 많은 이들에게 산 교육의 장소가 되었으면 한다. 아이들과 천천히 새우섬에서 재현한 우리 옛 지도의 아름다움을 가슴에 담고는 아쉬운 자리를 털고 흙집을 나섰다. 이 때 아내와 장인 장모님은 싱싱한 바닷 굴을 직접 사러 포구를 휘휘 돌아 만원어치를 샀는데 어찌나 량도 많고 싱싱하고 탐스럽던지 온 식구들이 저녁만찬으로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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