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단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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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단순해야
  • 김홍한
  • 승인 2015.10.19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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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구해야 할 이를 구하지 않은 죄

삶은 단순해야 한다. 삶이 단순할수록 마음과 생각에 여유가 생긴다. 삶이 단순하려면 살림살이가 단순해야 한다. 살림살이가 단순하면 집이 여유 있다. 집을 잡동사니도 가득 채우고는 좁다고 불평하는 이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더 이상 줄일 수 없을 만큼 줄였다면 갈무리를 잘 해야 한다. 아무리 적은 살림살이라도 늘어놓으면 복잡하다.

소위 지식인 이라는 이들은 책 욕심이 너무 많다. 책의 양과 지식의 양은 비례하지 않는다. 책은 소장하는 이의 것이 아니라 그 책에서 무엇인가를 얻고 자기 것으로 삼는 이의 것이다.

책을 구별해야 한다. 평생을 귀히 간직하면서 거듭거듭 보아야 할 책이 있는가 하면 한번 보면 족한 책도 있다. 어떤 책은 쓸모없는 책도 있다. 어떤 책은 가증스런 책도 있다. 그런 책들은 과감하게 폐기 처분해야 한다.

옷은 실용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유지비도 적게 들고 행동도 자유롭다. 몇 년 동안 입지 않은 옷은 없애야 한다.

버리는 것은 쉽지 않다. 필요 없다 하더라도 아직 쓸 만한 것을 버린다는 것은 꺼림직 하다. 후회할 것 같기도 하도 죄짓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 물건을 소유하고자 할 때는 버릴 것을 염두에 두고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꼭 필요한 것을 구입할 때는 좋은 것을 구입해야 한다. 그래야 고장도 없고 오래 쓸 수 있다. 살까말까 망설여 질 때는 사지 말아야 한다. 꼭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틀림없이 자리만 차지할 쓰레기가 된다. 비록 좋고 값비싼 물건이라 할지라도 필요하지 않은 것이라면 거저 주어도 사양해야 한다.

물건을 소비하는 것으로 삶의 재미를 느끼는 사람은 저급한 사람이다. 크고 좋은 집에 사는 것을 과시하는 이들은 속물적 인간이다. “나는 소비 한다 고로 존재 한다”는 식의 자본주의적 존재의식은 천박한 존재의식이다. 소비를 미덕으로 선전하는 사회는 엄청난 자원낭비와 그로인한 쓰레기양산으로 망할 수밖에 없다. 성현들은 그가 富 하건 貧 하건 근검절약했다.

삶이 단순하면 미처 생각지 못한 엄청난 것을 얻을 수 있는데 헛된 욕망이 줄어든다. 헛된 욕망이 줄어들면 정말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니 삶이 달라진다. 삶이 거룩해 지고 멋있어지고 행복해 진다.

<역사 이야기 1 > 마땅히 구해야 할 이를 구하지 않은 죄

조선 예종 때에 남이장군이 역모혐의를 쓰고 국문을 당하는데 그 자리에서 남이는 영의정 강순을 지목하면서 함께 역모를 했다고 진술했다. 26세의 남이가 80세 고령의 강순을 끌고 들어간 것이다. 이로 인하여 강순도 국문을 받고 남이와 함께 능지처참을 당했다. 처형장으로 끌려가면서 강순이 남이에게 말했다.

“남이야, 너는 나에게 무슨 원한이 있기에 나를 무함하느냐?”

“원통한 것은 너나 나나 마찬가지다. 네가 영의정으로 있으면서 내가 억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구해주지 않았으니 원통하게 죽어도 싸다. 나같이 젊은 놈도 죽음 앞에 태연한테 머리털이 허옇게 센 놈이 죽는 것은 더 마땅하다.”

남이가 왜 강순을 끌고 들어갔을까? 이시애의 난 때에 강순은 진북장군이고 남이는 그 휘하 장수로서 난을 진압했다. 역시 여진족 토벌에도 남이는 강순의 휘하장수로 출전하여 공을 세웠다. 이시애의 난 진압과 여진족 토벌의 공으로 강순은 영의정이 되었고 남이는 병조판서가 되었다. 강순은 상관으로서 남이와 전쟁을 함께 치렀으니 남이의 사람 됨됨이를 그 만큼 아는 이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강순이 남이가 억울한 역모혐의로 국문을 받는데 팔장만 끼고 보고 있다.

남이를 변호해줄 유일한 인물이 강순이다. “남이는 역모를 꾸밀 수 없다. 내가 있는데 어찌 감히 남이가 역모를 꾸밀 수 있는가?” 한다면 남이도 살리고 자신의 권위도 높일 수 있다. 그런데 강순은 침묵했다. 아마도 강순은 남이를 변호하다가는 자신도 엮일까 두려웠을 것이다. 그것이 죄다. 죄라기보다는 어리석음이다. 그의 사람 됨됨이가 그만큼 작아서다. 용케도 영의정의 자리에 까지 올랐지만 새파랗게 젊은 남이가 거침없이 “늙은 놈” 이라 할 만큼 소인배다.

강순은 높은 자리에 연연하다보니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몰랐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아무도 동정하지 않는다. 동정은커녕 기억하지도 않는다. 죽음도 자신의 죽음이 아니라 남이 죽음의 덤으로 죽었으니 너무 초라한 죽음이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영의정 지위에 있으면서도 억울한 이를 변호하지 않은 죄, 못한 것이 아니라 안한 것이다. 마땅히 구해야 할 이를 구하지 않은 죄, 역시 못한 것이 아니라 안한 것이다. 어쩌면 남이는 자신을 역모로 몬 유자광보다 강순이 더 미웠을 것이다. 

<역사 이야기 2> 을미사변

금년이 을미년이다. 지난 10월 8일은 명성황후가 시해 당한지 120년 되는 날이다.

무슨 공부든지 공부는 냉철한 이성적 작업이다. 역사 공부도 그러하다. 냉철해야 한다. 객관적이어야 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그 위에 반성을 하던지 분노를 하던지 자부심을 갖던지 해야 한다. 냉철하지도 객관적이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은 어설픈 역사지식을 가지고 분노하던지 자부심을 갖던지 하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청나라, 러시아, 일본 이 세 나라 중 일본이 상대적으로 악독해서 조선을 침략한 것이 아니다. 위 세 나라가 조선을 놓고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전쟁의 승자인 일본이 조선을 차지했다. 그리고 36년 후 태평양 전쟁의 승자인 미국이 한국을 점령했다.

우리가 일제의 식민지가 된 원인은 무엇일까? 그 1차 원인을 외부에서 찾을까? 일본이 청나라를 이기고 러시아도 이겨서 우리가 일제의 식민지가 된 것인가? 그러면 우리는 책임이 없다는 것인가? 우리의 운명을 외부에서 찾는다면 그것이야 말로 사대주의적 발상이다. 그러면 그러한 일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무슨 일이던지 그 1차 원인을 우리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

역사는 나를 돌아보는 거울이라는 의미로 鑑(감)자를 쓴다. 그런데 역사라는 거울을 통해 나를 보지 않고 남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니 역사 공부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우리가 일제의 식민지가 된 것은 그 무엇보다도 우리가 힘이 없어서다. 왜 우리는 힘이 없었을까? 개혁해야 할 때 개혁하지 못했다.

개혁이란 민초들을 살리는 것이다. 민초들이 죽으면 나라가 망한다. 그런데 조선은 민초들을 너무나 착취했다. 민초들이 너무 가난해서 나라를 지탱할 수가 없었다.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민초들을 마치 적군 대하듯이 했다. 마땅히 돌보고 살려야 할 민초들을 미개한 짐승처럼 대했고 살겠다고 일어선 민초들을 사냥감 대하듯 했다. 나라의 근본 바탕인 민초들이 빈사상태에 빠졌으니 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은 자신이 돌보아야 할 자가 있을 때 강하다. 봉양해야 할 노부모가 있는 이는 총을 맞아도 죽지 않는다. 젖먹이 아이가 딸린 여인은 아무리 굶어도 죽지 않는다. 부양해야 할 처자식이 있는 이는 중노동도 견디고 온갖 수모도 참을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 패전한 이유가 있다. 그들은 게르만족의 우수한 혈통을 지켜야 한다면서 자국의 장애인, 정신박약자등을 죽여 버렸다. 마땅히 돌보아야 할 자들을 돌보지 않았다. 돌보아야 할 이들이 없으니 싸워 이길 이유도 없다.

이제 120년 전 을미사변을 이야기 해 보자.

명성황후 시해의 모든 책임을 일본에 돌릴 수 없다. 을미사변은 유길준, 우범선, 이두황, 이주희, 윤석우, 박선, 구연수등 조선 내 급진 개화파 인사들과 다수의 조선군인들이 주동이 되어 일본 세력을 끌어들여 일어난 사건이다. 여기에 흥선 대원군도 깊이 관여했다. 그리고 을미사변 이전에 이미 박영효는 명성황후를 개혁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 시해하려고 동지를 모으던 중 발각되어 일본으로 망명을 떠났다.

일전에 5.18 광주의 책임을 미국에게 물을 수 없다고 했다.

“1980년 5.18 광주 민주항쟁에 대한 미국의 책임은 크다. 그러나 미국에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나의 자존심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미국에게 책임을 물을 때 미국이 “한국의 점령국인 미국으로서 불행한 사태를 막지 못한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과한다….”면 만족할 것인가? 더 나아가서 미국이 5.18에 대한 책임을 진다면서 전두환 정권을 몰아내고 다른 정권을 세웠다면 만족할 것인가? 그렇다 30년 전의 우리나라 정서에서는 만족했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에 대해서 더욱 큰 신뢰를 보냈을 것이다.
30년 전에는 미국에 책임을 물을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오늘날에는 그럴 수 없다. 오늘날에도 그런다면 그것은 미국이 우리나라의 지배자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것이고 또한 지배자로서 역할을 하라는 것과 같다.

역사에서는 사실이라도 말하기 보다는 가슴에 묻어 두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이야기신학 82호 중에서-

을미사변의 경우도 같다. 명성황후 시해의 책임을 일본에 물을 수 없다. 혹 일본이 주동이 되어 명성황후를 시해했다 하더라도 그 책임을 일본에 묻는 것을 내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다.

나는 명성황후 시해의 주동세력들에 대해서 유감이 있다. 그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것에 대한 유감이 아니다. 일제를 끌어 들였다는 것에 대한 유감도 아니다. 그러한 일은 권력쟁취를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
그렇게 까지 해서 개혁을 하고자 했다면 성공을 했어야 했다. 그들이 하고자 했던 개혁의 내용은 상당부분 훌륭한 것이었다. 그런데 실패했다. 고종임금의 아관파천(1896.2.11.)으로 권력을 수구파들에게 빼앗기고 만 것이다. 그 수구파들은 자연히 러시아와 손잡은 친러파가 되었다. 그렇게 한동안 우리나라는 러시아의 영향력 하에 있었고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함(1905년)으로 우리나라는 일본의 전리품이 되었다.

역사를 보는 눈

일제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주입했다.

“너희들은 당파싸움 하느라 나라가 망했다. 너희들은 노예근성이 있다. 너희들은 게으르고 나태하다. 너희들은 누군가의 지배를 받지 않으면 안 될 나약한 민족이다....”

어떤 이들은 일제의 이러한 말을 진실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를 일본인들보다 더 비하한다. 그리고 그 말 대로 오로지 강대국들의 역학관계 속에서만 우리의 살길을 찾는다. 우리의 운명을 우리 스스로 만들지 못하고 밖에서만 찾는다.
반면 어떤이는 일제의 그 말에 강력히 반발한다. “우리는 이렇게 잘났다”고 한다. 과거 우리는 크고 강하고 찬란했다고 애써 미화한다. 또한 과거 우리의 비참한 역사는 물론 오늘날 우리의 비뚤어진 역사도 모두 우리의 책임이 아니라 저들이 나빠서 일어난 일로 몰아간다. 혹 우리가 못나서 그랬다고 하는 이가 있으면 식민사관에 물들어 그렇다고 비난을 퍼부어 댄다. 전자나 후자나 우리 스스로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거듭 말하거니와 역사의 1차 책임은 우리다. 1차 책임을 밖으로 돌린다면 그야말로 우리 스스로가 비참한 것이고 일제가 심어준 식민지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을미사변의 책임을 일본에 물을 수 없고 5.18 광주의 책임을 미국에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성서의 역사인식

구약성서의 상당부분이 이스라엘의 역사다. 그 중 다윗 왕과 솔로몬 왕이 다스리던 때를 제외하고는 온통 침략당한 역사다. 가장 비참한 대목이 열왕기하 24장, 25장의 내용이다. 바벨론이 침략해와서 왕을 비롯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포로로 끌어가고 성전의 모든 보물을 약탈해 갔다. 바벨론이 시드기야를 새로운 왕으로 세우고 돌아갔는데 그 왕이 반기를 들자 바벨론이 다시 쳐들어왔다. 왕이 보는 앞에서 왕자들을 처형했다. 시드기야 왕은 두 눈이 뽑히고 사슬에 묶여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성전을 비롯한 모든 건물들은 불태워지고 쓸 만한 사람들은 모두 포로로 끌려갔다. 그리고 백성들 중 가장 비천한 사람들만이 남았다.

성서기자는 이 사건을 그냥 담담하게 기록했다. 감정을 섞어서 분개하지도 않았고 애통해 하지도 않았다. 바벨론인들을 나쁘다고 하지 않았다. 잔인했다고 표현하지도 않았다. 그들을 원망하지도 않았다. 다만 예루살렘과 유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그렇게 되었다고 기록했다. 자신들이 그토록 처참한 꼴을 당하게 된 원인을 자신들에게서 찾았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들을 징벌한 분이 하나님이라고 한다. 바벨론은 그저 하나님이 들어 쓰신 도구로서의 채찍에 불과한 것으로 여겼다.

성서기자의 역사기록이 참으로 무섭다. 그 어떤 역사기록도 이렇게 강하고 당당하게 기록할 수는 없다. 그래서 성서다.

단상

큰 그릇이라도 똥바가지가 있고 작은 그릇이라도 간장종지가 있다. 일전에 서울에서 작은 교회 박람회가 있었다. 간장종지 같은 교회들의 당당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큰 교회라고 해서 다 똥바가지가 아닌 것처럼 작은 교회라고 해서 다 간장종지가 아니다. 오로지 크고자만 하는 작은 교회는 똥바가지도 될 수 없다.

이제 대전에서도 작은 교회 박람회를 한다(11월 9일). 똥바가지들은 취급하지 않는다. 간장종지 같은 교회들의 멋진 잔치가 되기를 바란다. 

< 논어 읽기>
자장 7장 子夏曰: 「百工居肆以成其事, 君子學以致其道. 」
(자하왈 “모든 기술자들이 그들의 일터에서 그들의 일을 이루어내고, 군자는 학문을 함으로 그 도에 이르게 된다.”)
* 百工(백공/ 여러 가지 기술자), 肆(사/ 작업장),

운동경기에서는 선수들이 열심히 뛴다. 그 선수들로 인하여 경기는 진행되고 사람들은 그 선수들의 경기를 보고 열광한다. 그러나 그 선수들 뒤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으니 바로 감독이다. 아무리 선수들의 기량이 뛰어나다 한들 그들의 능력에 따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작전을 구사하는 감독이 없다면 경기는 아마추어 수준이 되고 말 것이다.

국가의 산업을 일으키는 이들은 백공이다. 그들이 일터에서 각자가 맡은 일들을 성실히 하여 일의 성과를 냄으로 국민의 생활이 윤택해 진다. 그러나 그들을 조절하고 부족한 면은 육성하고 너무 풍성한 부분은 억제함으로 전체적인 균형을 맞추는 이가 필요하니 바로 학문을 한 군자이다.

8장  子夏曰: 「小人之過也必文. 」
(자하 왈 “소인이 과오를 저지르면 필히 그럴듯하게 변명한다.”)

君子豹變(군자표변)이라 했다. 군자는 자신의 잘못을 깨달으면 즉각 고친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군자는 그 실수를 인정하고 반복하지 않는다. 반면 소인은 그 실수 자체를 인정하려 하지 않던지 남의 탓으로 돌리기 일쑤이니 실수가 반복되고 발전이 더디다.

9장  子夏曰: 「君子有三變: 望之儼然, 卽之也溫, 聽其言也厲. 」
(자하 왈 “군자에게는 세 가지 다른 모습이 있으니 그 멀리서 볼 때는 儼然(엄연)하여 장엄하고 가까이에서 보면 온화하고 그 말을 들어보면 확실하다.”)
*儼然(엄연/ 그 모습이 장엄함), 溫(온/ 그 안색이 온화함), 厲(려/ 그 말이 확실함)

그 모습이 장엄하면서도 온화하기는 어렵고 그 모습이 온화하면서도 그 말이 단호하고 확실하기는 어렵다.
10장  子夏曰: 「君子信而後勞其民, 未信則以爲厲己也; 信而後諫, 未信則以爲謗己也. 」
(자하 왈 “군자는 믿음이 형성된 이후에야 백성들에게 부역을 요구할 수 있다. 신뢰가 아직 없는데 그리하면 백성들은 자기들을 괴롭힌다고 여긴다. 또한 신뢰가 형성된 뒤에야 간할 수 있다. 신뢰가 아직 형성되지 않았는데 간하면 군주는 자기를 비방한다고 생각한다.”)
* 厲(려/ 괴롭히다.)

공자는 안연 7장에서 나라를 다스림에 중요한 세 가지를 말했는데 足食. 足兵. 民信 였다. 그중에서 결코 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信이라 하였다. 신뢰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강력한 끈이다. 그 신뢰의 끈이 끊어진다면 아무리 작은 지시에도 순종하지 않고 아무리 작은 충고도 충고가 될 수 없다.

11장  子夏曰: 「大德不踰閑, 小德出入可也. 」
(자하 왈 “대덕을 가로막지 않는다면 소덕은 들고 나는데 융통성이 있다”)
* 閑(한/ 막다, 가로막다),

10장에서 보았듯이 큰 신뢰가 형성되어 있다면 작은 오해들은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큰 신뢰는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작은 신뢰들이 쌓여서 큰 신뢰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큰 일 에는 큰 원칙이 있고 작은 일에는 작은 원칙이 있다. 작은 원칙이라고 무시한다면 큰일을 그르칠 수 있다. 작은 구멍 하나가 큰 댐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러니 큰 원칙을 세움에는 작은 원칙들을 바꿀 수 있는 명분이 있어야 하고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것이 대덕이다. 소덕이 순복할 수 있어야 대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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