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씨 고운 사람들의 고향 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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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씨 고운 사람들의 고향 순천
  • 류기석
  • 승인 2009.10.08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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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결이 매끄러워지는 온천이 기다리고 있는 낙안읍성

긴긴 겨울, 일에 지치고 추위에 몸과 마음이 처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렇때 따스한 온천물에 온 몸과 마음을 담그어 보면 어떨까.

기행 둘 째날, 순천만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해룡면 선악리는 동쪽으로는 앵무산, 서쪽으로는 잘생긴 박산이 자리한 마을이다. 순천은 처가가 있어 해마다 들렸다 가는데 순천만과 인근의 자연계곡을 가족들과 함께 찾아 정을 나누곤 했었다. 이번 남도기행중 몇일을 이곳에서 보낼 작정으로 들러 몇일을 보냈다. 그러면서 이번 남도기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우리나라 최고의 온천수가 있는 낙안온천에서 별 볼일을 만들었다. 아내와 딸이 반대하고 아들이 적극적으로 찬성했던 온천욕을 감행한 것이다.

▲ 커다란 분지안에 자리한 낙안읍성을 굽어보다.

자초지정을 이야기하자면 순천시내 가까이에 있는 목욕탕을 외면하고 한 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에 위치해 있는 낙양온천으로 향한 것이 불씨가 되었다. 하지만 남도에서 즐기는 온천이기에 거리를 무릎쓰고 찾게 되었던 것이다. 온천은 사계절 가릴것 없이 찾게 되는데 겨울철에 더욱 간절하게 생각나는 법이다. 남도여행시 신선한 자연과 맑은 바다를 만나고 덤으로 남녀노소가 찾게 되는 곳이 있다면 단연 온천을 꼽게될 것이다. 남도 온천에서는 따스하고 건강한 겨울을 맞는데 지나침이 없을 것 같다.

순천에서 구불구불 이어진 국도를 따라 당당하게 낙안읍성 직전 삼거리에 도착해 보니 낙안온천 이정표가 읍성 앞에서 사라졌다. 여느 온천같지 않게 선전문구하나 제대로 보이질 않는다. 오래되어서 그렇겠거니 생각하고 한참을 헤메다가 주민들에게 물어 겨우 찾아간 곳이 금전산으로 오르는 길목 육중한 콘크리트 건물의 낙안온천이 나타났다.

온천탕 밖으로 함박눈이 소복소복 내리는 날이면 뜨근한 온천 후에 보글보글 끊는 정국장과 손두부, 알맞게 발효된 김장김치에 손수 빚은 동동주나 막걸리를 곁들이면 금상첨화 일 것을 생각하면서 순천에서 낙악읍성을 지나 금전산으로 오르는 길목 좌측에 위치한 낙안온천을 만날 수 있었다. 그 물이 좋기로 소문이나 최고의 수질을 찾는 사람이라면 한번 쯤 찾아 온다는 이곳, 아직은 시설이 낡아 동네 목욕탕 수준이지만 온천수 하나만은 수소이온의 높은 농도로 인해 매끄러우며 유황, 게르마늄, 칼슘 등 13가지 성분이 어우러져 무좀, 습진, 비듬, 아토피성 피부염 개선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순천에서 출발할 때는 억지로 끌려오다시피 했지만 갈 때는 그 효험을 인정했는지 군말이 없다. 만성적인 피로가 회복되고 관절과 신경계통 등 다양한 질병에도 좋단다. 낙안온천은 이미 온천 마니아에게는 소문이 났다는데 순천 해룡의 처가에는 그렇게 옹호적이지 못하다. 그도 그럴것이 시욕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아불사 아직 변변한 시설조차 갖추지 못한 것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다른 온천수는 일반 수돗물을 타고 한다는데 이곳 온천물은 미끌미끌 진정한 온천에 온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반드시 최고의 수질을 찾는 사람이라면 한번 쯤 들르기를 권한다. 참, 인근에 송광사와 선암사, 지천에 낙안읍성과 낙안향교 등이 있어 볼만하다.

▲ 순천시 낙안면에 위치한 낙안온천의 물은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온천수란다.

낙안온천을 나와 인근의 낙안읍성을 잠시 들러 보았다.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동내리(東內里)·서내리·남내리에 걸쳐 있는 조선시대 성곽 유적. 전통 한옥마을인 낙안읍성에는 100여채 남짓한 성안 마을이 온통 초가집을 덮여있다. 이곳에 특별한 문화가 있다하여 찾아 보았다.

그것은 다름아닌 작은 도서관이 하나 있다는 것이다. 낙안읍성 작은 도서관에 있는 사립문 밀치고 들어가면 대여섯 평 남짓한 아담한 초가집으로 꾸민 도서관이 있다.

이곳은 사적 제302호. 축조연대 미상. 둘레 1,384m, 높이 4m, 너비 3∼4m. 현재 성벽과 동 ·서 ·남 문지(門址), 옹성(壅城) 등이 남아 있다. 고려 후기에 왜구가 자주 침입하자, 1397년(태조 6) 절제사(節制使) 김빈길(金?吉)이 흙으로 읍성을 쌓았다.

《세종실록》에는 1424년 9월부터 토축의 읍성을 석축으로 쌓으면서 본래보다 넓혀서 쌓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 성 안에는 우물 2개 ·연못 2개가 있었으며, 해자(垓字)는 파지 않았고, 문의 보호시설인 옹성은 그 후에 설치하였다.

낮은 구릉을 포함한 평지에 동서 방향으로 긴 직사각형이며, 체성(體城)의 축조나 적대를 구비한 점에서 조선 전기의 양식이다. 동문에서 남문으로 이어지는 성곽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으며, 옹성은 남 ·서문터에서만 흔적을 볼 수 있다. 성곽은 커다란 자연석으로 쌓고, 돌과 돌 사이에는 작은돌로 쐐기박음을 했지만 아직도 견고하다. 남문터는 마을 안 골목길에 있는데, 네모진 바위를 3단으로 쌓아올린 성문벽이 길가에 그대로 남아 있다.

▲ 한가로운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만났던 낙안읍성

성 안에는 1536년(중종 31)에 지은 객사(客舍)가 온전히 남아 있고, 대성전(大成殿) 등 9채나 되는 향교가 보존되어 있다. 장군 임경업(林慶業)이 15세 때 하룻밤에 쌓았다는 전설이 있으나, 《여지승람(輿地勝覽)》에 낙안성에 관한 기록이 있는 것을 보아 임경업 축조설은 믿을 수 없다.

곧이어 오밀조밀 꾸며놓은 상업화된 읍성을 한바퀴 돌아 잘 보존된 향교에 들르니 문이 잠겨 들어설 수 없었다. 하는수 없이 차를 돌려 순천평야를 거쳐 처가 집으로 돌아왔다.

▲ 낙안읍성 서문에서 만난 풍경
▲ 낙안온천에서 바라다 본 금전산 겨울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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