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라린 삶의 역경 딪고 싹튼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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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라린 삶의 역경 딪고 싹튼 희망
  • 류기석
  • 승인 2009.10.06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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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의 자연과 역사 그리고 사람들

거제 장승포구에서 난지농업관까지

▲ 거제 장승포로 넘어 가기전 어느 마을 논밭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산과 바다를 향해 굽어보고 있었다.

해금강을 뒤로하고는 동백 숲이 우거진 거제14번 국도를 따라 학동과 수산, 구조라와 윤돌을 지나니 와현과 지세포, 소동이다. 이윽고 장승포 마전동 못미처 바닷가를 향해 우뚝 쓴 당산나무가 대견해서 논밭사이로 바닷가를 조망할 수 있는 풍경을 담고는 장승포시내로 들어섰다.

지나가다가 점심식사로 알맞은 유람선식당을 소개 받았으나 찾지 못하고 인근에서 붕어빵을 파시는 아줌마에게 물으니 시원시원하게 시골밥상을 소개시켜 주었다. 경상도 음식이라는 것이 잘 먹으면 본전인데 문제는 그곳에 있었다. 작고 초라한 시골밥상에서는 여유 있게 순두부와 된장찌개를 2인분씩 시키고는 먹는데 아무래도 요상한 냄새가 나서 순두부는 물리고 된장찌개로만 억지 식사를 마쳐야 했다.

이렇듯 장승포의 추억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포구를 바라다보는 거대한 장승포문화예술회관 아랫길로 장승포를 벗어나려는데 거제문화원이 눈앞에 나타났다. 여기서도 잠시 들러 향토사에 관련된 자료들을 얻고는 육중하고 역동적인 대우조선해양을 지나 활발한 도시발전을 이루고 있는 거제시청이 있다는 고현까지 단숨에 내달렸다.

고현에서 잠시 일을 보고는 잘 닦여진 8차선 도로를 따라 거제도를 빠져나오려다가 차를 사곡삼거리 동쪽에서 애초에 왔던 서쪽 거제면 쪽으로 이동시켰다. 인근에 있다는 포로수용소와 몇몇 관광지를 들르기보다는 거제향교나 반곡서원 등을 들러보고 가려고 했던 것이다.

▲ 온화한 난대식물을 키워내는 거제 난지농업관 전경

구불구불 산길을 내려와 둔덕으로 향하다가 중간에 아담하게 차려진 거제난지농업개발원부속 난지농업관이 있어 잠시 들렀다. 그곳에서 길을 묻고는 곧 떠날 채비를 하려는데 잘 정돈된 온실하며 각종 연구시설이 눈길을 끌었다. 야생화는 물론 허브식물과 각종 기능성식물들이 오밀조밀하게 구획되어 오가는 손님들을 반갑게 맞는 듯 했다.

▲ 난지식물들을 키워내는 온실의 풍경

 

▲ 난지농업관의 모든 유리 온실에는 태양열을 이용한 난방이 이용되고 있었다.
 

이곳의 거대한 온실들은 대부분 태양열 난방시설을 이용하여 운영되고 있었고, 년 중 많은 분들이 다녀간다고도 했다. 거제로 귀농할 분들이라면 이곳에서 농업정보를 얻어 난지농업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안정저긴 소득기반을 마련하면 좋을 듯싶다.

역사와 문화의 풋풋한 삶의 향취가 깃든 거제

거제시청이 있는 역동적인 고현과는 다르게 쓰라린 역사와 문화를 않고 살아가는 거제면 사람들은 힘겨운 농촌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듯 보였다. 간신히 역사와 문화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향교를 찾아 골목을 헤매다가 멀리는 산방산이 든든하게 떠받치고 있는 향교를 만났다.

▲ 찬란했던 조선유교의 산실, 거제향교의 모습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그저 수덕한 전통기와를 얹은 향교는 아늑한 계룡산에 안기어 남쪽을 향해 자리하고 있었다. 빛바랜 건물들과 주변 환경을 보니 시들해진 유교문화의 단면을 엿보는 듯하여 씁쓸했다. 다음으로 찾아보려고 했던 서원은 찾지 못하고 거제면 입구에 있는 기성관을 덤으로 만날 수 있었다.

▲ 과거 거제 역사의 중심에 섰던 기성관 전경

기성관은 거제 지역에 왜구의 침략이 잦았기에 조선 초기 방어를 위해 관청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이는 옥포, 조라, 가배, 장목 등 7곳에 군사 기지를 관장했고, 이후 성종원년(1470년)에 거제현이 부로 승격되며, 일반 행정과 함께 군사 업무를 총괄할 목적으로 고현성에 이 건물을 세웠다.

▲ 기성관과 함께 거제 행정, 수군업무를 담당했던 질청전경

따라서 기성관은 건립 당시부터 이 지역의 행정, 군사를 책임지는 거제부 관아의 중심 건물이었다. 그러나 선조 26년(1593년)에 한산도에 삼도수군통제영이 설치되면서 기성관은 객사로 그 쓰임새가 변경되었다고 한다. 기성관은 임진왜란 때 고현성이 함락되면서 불타버렸던 것을 현종4년(1663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 다시 지었다.

이 건물은 정면 9칸이고 측면 3칸으로 사방이 트인 마루를 갖춘 규모로 일반적인 누각과 같은 구조이다. 규모는 통영의 세병관과 진주의 촉석루, 밀양의 영남루와 더불어 경상남도의 4대 누각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건물은 배흘림의 둥근기둥 위에만 장식을 한 주심포 양식이다. 일반적인 객사지붕 형식에 특이한 것은 건물 지붕의 중앙을 맞배형식으로 약간 높게 하여 왕의 권위를 높이려 했다는 것이다. 주심포식 건물에 다포계 건물처럼 공포를 화려하게 처리한 점도 엿볼 수 있다.

그 옆으로 돌담을 따라 출입구를 찾으니 문이 굳게 잠긴 질청이 자리하고 있었다. 질청은 기성관과 함께 거제현 관청의 부속 건물로 쓰였다. 질청이란 지방 관청의 육방을 비롯한 하급 관리들이 머무는 사무실이나 서재로서 작청 또는 연청이라 한다.

거제현의 관청은 원래 조선 세종5년(1428년)에 고현성에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함락되면서 불어 타 현종4년(1663년)에 지금 위치로 옮겼다 한다. 한일합방 후 거제 관청이 없어지면서 이곳은 1962년부터 부산지방법원 거제등기소로 사용되다가 1982년 등기소가 고현으로 옮김에 따라 복원되었다고 한다.

볼래 'ㅁ' 형으로 지어진 건물이지만 현재는 'ㄷ'자 형으로 일제시기 후 도시화 과정에서 도로와 닿은 부분이 철거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재 남은 것만도 27칸칸이 넘는 대규모의 건물로 양측면에 주거용 방과 중앙부에 사무를 볼 수 있는 큰 대청을 두었다. 화려한 장식이나 섬세한 수법이 없는 그저 소박한 건물에 속하지만 굵은 배흘림기둥과 건물 안팎에 노출된 재료들의 굵은 형세로 보아서 검소하면서도 엄숙함을 느끼게 해 준다.

희망이 익어가는 거제광림교회

▲ 뜻밖에 머물게 된 거제광림교회 전경

거제 기성관(岐城館)옆에 있는 질청(秩廳)을 찾아 사진을 찍으려는데 출입문이 굳게 잠겨있어 담장을 따라 좁다란 골목길을 따라 들어서니 작은 교회 안마당이 나왔다. 교회마당에는 몇몇의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밖으로 나가다가 마주쳤다.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교회당 옆 사택으로 보이는 건물 옥상을 오르려고 목사님 뵙기를 청하니 아이들이 목사님을 소리쳐 불러주었다.

우선 목사님께 사정을 고하고 교회사택 옥상으로 올라가 질청건물을 사진에 담고 내려와서는 잠깐 동안의 여행일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교회가 행하는 사업장을 들러보게 되었다. 교회간판을 자세히 보니 기독교 대한감리회 거제광림교회다. 거제교회라 하면 될 것을 거제광림교회라 하여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아차 당당뉴스를 열심히 운영하시는 이필완 목사님이 생각나 넌지시 아느냐고 물으니 물론 잘 알고 있는 선배이며, 얼마 전에 이곳을 다녀가셨다고 한다.

차츰 거리가 좁혀질 무렵 거제를 따나려는 우리들을 위해 골목길을 나와 기성관에 주차된 자동차까지 배웅을 나와 주셨다. 그 인연으로 아내와 아이들이 인사를 나누고는 거제에서 순천으로 향하는 길을 안내받고 있는데 반드시 인근의 옥산성지를 꼭 한번 들러보고 가기를 권하셨다. 이윽고 옥산성지에 오르기 전 아내와 잠시 거제광림교회로 초대되어 차 한 잔을 나눌 수 시간을 가졌다.

작고 소박한 사택에 들어가기에 앞서 해뜨는 바다의 10평 남짓한 생활 나눔 터를 구경했다. 교인들과 손수 실험삼아 지었다는 흙집은 제법 규모도 있고 튼실해 보였다. 사택에 들어서서는 이곳의 두레 일꾼 조영숙님을 만났다.

▲ 신나는 조합 "해뜨는 바다" 생활 나눔의 집 전경

달지도 시지도 않은 천연의 알로에 효소를 차로 마시며 거제광림교회의 희망과 비전에 대하여 듣게 되었다. 두레 일꾼이 운영하는 생산공동체 ‘해뜨는 바다’의 오리지널 멤버는 다섯 명의 여성조합원이란다. 남편들이 모두 고기잡이배를 타고 집을 떠나가면 그 자리를 지키며 살아온 여인들이 힘을 합쳐 알로에 효소를 개발하여 대체음료를 생산 판매하는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 역사의 질고 끝에 또 한번의 쇠락을 더해가고 있는 거제면 소재지의 장터 풍경

가난한 어촌마을에서 남편들의 보잘 것 없는 생활비에 안주인들이 팔을 걷어 부친 것이 사실 ‘해뜨는 바다’의 탄생이다. 이 탄생의 비밀에 정원기 목사와 그 부인인 조영숙님의 공이 컸을 것으로 생각된다. 마을이 어렵게 처한 상황에서 고단한 섬사람들의 생활을 알게 된 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자립적인 삶을 안겨준 것이다.

군말이 없는 목사님은 “많은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침묵으로 진실을 대면하려 기다리겠습니다. 많은 일을 찾지 않겠습니다. 다만 주어지는 일에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많은 시간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다만 살아있는 순간에 영원하겠습니다. 많은 사람을 그리워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가까이 있는 이에게 정성을 다하겠습니다.”라는 침묵의 메시지로 대신하셨다.

거제광림교회는 산과 바다가 아름다운 섬, 거제도에 자리 잡은 작은 교회다. 이곳에서 행복한 영성공동체를 꿈꾸며, 매주 성찬전례를 거행하며, 정기적 피정과 기도수련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완덕에 이르고자 힘쓰고 있는 이곳은 가난한 교우들을 중심으로 자활생산공동체인 "해뜨는 바다"를 운영하고 있었다. 난대농업의 한 부분인 알로에 효소를 생산, 가공, 발효시켜 생활의 자립도 도모하고 인근의 결손 가정 어린이들을 위하여 "해오름 공부방"도 운영한단다.

정원기님은 “최근에는 10평 남짓한 흙집을 교우들과 함께 지으며 장차 만들어질 수행공동체마을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로 꿈이 아닌 현실적인 공동체를 위하여 노력하고 있음을 눈으로 직접 확인시켰다. 구체적으로 알로에 효소는 수도공동체를 지향하는 거제광림교회의 공동체 자립기반으로 교우들과 목회자가 열심히 생산 판매하는 효자상품이다.

특별히 서울광림교회의 선교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거제광림교회는 1955년 돌로 건축된 이층 건물로 아직도 견고하게 서있었다. 교회 옆으로는 부속 건물로 아동복지관과 애찬실과 공동작업장 등이 있었다. 교회는 목사님 가족과 7가정의 성도님이 한 가족이 되어 예배와 생활을 함께하고 있다고 한다. 전 교인은 카리스마타수도회의 수행자적 신앙을 따르고자 힘쓰고 특히 전례와 성무일도에 힘쓰고 있단다.

또한 교회는 2003년 4월 생산 공동체 신나는 조합 “해뜨는 바다”를 창립, 알로에효소를 생산, 가난한 교인들의 자립을 추구하고 있으며, 2004년 3월 "해오름공부방"을 설립 결손가정 자녀 20명의 생활도 함께 돌보는 사명도 감당하고 있었다.

차로 마실 수 있는 알로에 발효음료는 초창기 신나는 조합으로부터 500만원을 대출받아 항아리 10개로 시작한 사업은 한 농촌교회의 적극적 도움으로 60여독의 발효장과 작업실을 갖춘 사업장으로 발전시켰다. 그 후 2년 반 만에 사업이 번창해 인정을 받고 2차 대출금 2천만 원으로 황토 발효장을 짓고 계속하여 기도와 노동을 통한 공동체의 건강과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다. 해뜨는 바다에서 하는 사업은 알로에 효능이 그대로 담긴 대체음료의 개발과 판매이다.

알로에의 약효는 변비증을 고쳐 위 장애 치료에 효과가 있으며, 알로인, 알로에, 에모딘 등의 유효성분이 입증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좋은 약초를 쉽게 음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우리 고유의 식품발효를 이용한 알로에 효소를 개발 대체음료로 생산 판매하고 있었다. 이는 취약한 농촌의 농가를 살리고 더욱이 거제지역의 무농약으로 재배된 4년생 이상의 알로에만을 사용, 항아리에서 6개월 이상 발효 숙성시켜 만든다니 자연히 자연 음료로 몸에 좋을 것이다.

알로에는 딱딱한 알로에 껍질을 벗기는 일에서 황설탕과 함께 넣어 6개월 이상 발효를 시키는데 뻑뻑한 겔 상태의 알로에를 젓는 과정까지 몹시 힘들고 고된 일이다.
근데 아직 물량이 적어 생협거래만을 꾸준히 거래해 오는 것 같다. 하지만 앞으로는 도시민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대안음료로 인기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가격은 원액 700ml(1병)에 1만 5천원이며, 2병 이상이면 전국어디든지 택배로 배달이 가능하단다. 주문은 인터넷(http://karimata.or.kr)과 교회(055-633-0574)로 연락주시면 이용할 수 있다.

이어 바쁜 거름으로 교회당을 빠져나오려는데 목사님 부인께서 알로에 효소 한 병을 건네주셨다. 거제면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야산 계룡산에 자리 잡은 옥산산성을 찾아 오르기 시작했다. 비포장 산길을 따라 5분쯤 올라가니 막다른 공터가 나와 차를 주차시키고는 옥산성지에 올랐다. 바위투성이를 조금 오르니 작은 연목에 물이 가득하고 버드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그곳에서 곧장 돌무더기를 밟으며 오르니 옥산성지 정산에 있는 정자를 만날 수 있었다.

이 성은 거제면 동쪽에 위치하는 계룡산의 수정봉 꼭대기 부분을 빙 둘러쌓은 테뫼식 산성으로 수정봉성이라 부르기도 한단다. 성문 밖에는 ‘옥산금성’이라 새겨진 큰 암벽이 있고, 성내 동쪽에는 이 성을 쌓은 내력을 전해주는 비석이 서 있다.

▲ 계룡산 옥산산성을 오르다 이 성의 내력을 알려주는 비석을 만났다.

비석에 내용에 의하면 이 성은 고종 10년(1873년)에 당시 거제부사였던 송희승이 읍성을 쌓을 것을 조정에 건의하였으나 백성의 부담이 너무 크다 하여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대신 수정봉에다 산성을 쌓기로 하고, 주민을 강제로 동원하여 돈을 거두어 8개월 만에 성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성을 쌓는 과정에서 주민들에게 무리한 부담을 주었다하여 부사 송희성은 파직 당하였다한다.

▲ 거제 시내를 한눈에 바라다 볼 수 있는 옥산산성을 나의 아들이 오르고 있다.
 
▲ 옥산산성을 오르다 보면 정상부 바로 아래 작은 연못이 정겹게 자리했다.

산성은 둘레 778m 높이 4.7m 폭 3m 직경 40cm~80cm 정도의 자연석을 다듬어 산 능선의 굴곡을 따라 타원형으로 쌓아 올렸다. 성안의 요소에 누각과 무기고, 연못 등을 만들었으며 동, 서 ,남, 북 네 곳에 성문을 만들었다. 그리고 적과 정면으로 마주치게 되는 남쪽과 서쪽의 성문은 입구를 ‘ㄱ' 자형의 또 다른 성으로 만들어 성문을 보호하였다. 옥산성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우리나라의 산성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고 한다.

▲ 계룡산 옥산산성에서 바라본 거제시내 전경
 
▲ 계룡산 옥산산성에서 바라본 거제의 너른 들녘
 
▲ 계룡산 정상부의 옥산산성에는 누각이 모진 세월을 견디며 서있다.

그곳에서 바라다보는 먼발치의 바다는 일본에서 출발한 배가 30분이며 닿을 수 있어 역사적인 질고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석양으로 지는 태양빛에 희미한 준봉들을 열 지어 서있다. 거제시내가 한눈에 바라다보이고 바다를 간척한 것으로 보이는 너른 경작지가 풍요로 왔던 옛 거제를 생각나게 해준다.

▲ 거제의 그림같은 해안길 700리를 빠져나오며 만난 일몰의 멋진 풍경

아직 오후의 햇살이 남아있기에 거제대교를 향해 가던 가족들은 일몰 직전의 멋들어진 장면을 거제 동부의 한 바닷가에서 맞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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