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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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홍한
  • 승인 2015.06.19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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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한목사의 이야기 신학 137호

거룩함

지독히도 아랫사람을 무시하고 못살게 구는 직장 상사가 있었다. 어느 날, 거리에서 그에게 가장 무시당하고 가장 구박당하는 부하직원을 만났다. 그 때 그 부하직원은 그의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있었다. 아내는 교양이 있어 보였고 자녀들은 반듯하게 자란 듯 했다. 남편을 대하는 아내의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웠고 아버지를 대하는 자녀들의 얼굴에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표정이 묻어났다. 그 모습을 본 직장 상사는 흠칫 놀랐다. 그가 너무 커 보였기 때문이다.

   

30년 전, 내가 신학공부를 할 때였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데 사감선생과 늦은 나이에 신학을 공부하는 학생 간에 다툼이 있었다. 사감선생은 “감히 학생이 선생에게 도전 하느냐?”고 권위로 누르려 하였고 학생은 지려하지 않았다. 다툼이 격해질 즈음 학생이 말했다. “나도 애가 둘이요.” 그 말에 다툼은 그냥 끝나고 말았다. 사감선생은 “그래요? 진작 말하지….”

다툼의 이유는 그냥 사라졌다. 나이의 많고 적음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자녀가 있다는 학생의 말에 사감선생은 그가 마땅히 존중 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남자들, 때로는 참 볼품없다. 찌질하고, 초라하고, 때로는 푼수 같고 때로는 한없이 졸렬하고 비열하기까지 한 남자들이다. 그런데 그에게 그를 바라보고 그에게 의지하는 처자식이 있음을 생각하면 그가 참 커 보인다. 무시할 수 없고 무시해서도 안 되는 사람이 된다. 식솔이 있다는 것은 큰 힘과 권위다.

사랑하는 처자식이 있기에 남자들은 거룩하다. 지극히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지극히 멸시와 천대를 당해도 거룩하다. 때로는 소신을 버리고 변절도 하며 비굴한 웃음을 흘려도 거룩하다. 아주 작은 이익에 연연해도 거룩하다. 그가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찌질함이고 비굴함이고 몇푼 안 되는 돈에 연연함이기에 그러하다.

인생의 짐이 너무 무겁다고, 제가 진 십자가가 너무 크고 무겁다고 한탄하지 마라. 그것이 삶의 이유가 되고 당신이 존중받을 이유가 된다.

사람의 무게는 그가 짊어진 짐의 무게에 비례한다. 그가 짊어진 십자가의 무게에 비례한다. 한없이 크고 무거운 인생의 짐을 짊어지고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이유가 그것이다. 대통령이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것은 그가 권력이 크고 커서가 아니라 그가 짊어진 짐이 그만큼 크고 무겁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권력을 행사하고 특권을 누리는 자로 인식될 때 국민들은 결코 그에게 머리 숙이지도 않는다.

자동차가 씽씽 지나가는 도로를 건너는 오리가족의 동영상을 보았다. 교통경찰이 오리가족이 안전하게 길을 건너도록 도와주는 모습이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 때 그 어미오리는 누구도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오리다. 새끼오리들에게 어미오리는 인간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위대한 존재다. 어미오리는 위대하다. 거룩하다. 오리임에도 불구하고 거룩하다. 그러고 보니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들이 다 거룩하다.

무능하고 초라하고 찌질한 남자, 그러나 아내가 있고 자녀가 있기 에 거룩한 남자, 문득 孟子가 말한 大丈夫(대장부)가 생각난다.

대장부란
천하라는 넓은 집에 거하며
천하의 올바른 자리에 거하며
천하의 대의를 행한다.

뜻을 얻으면 백성과 더불지만
뜻을 얻지 못하면 홀로 그 도를 행한다.
부귀해도 음란하지 않으며
빈천해도 절개를 변하지 않는다.
무력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는다.
이러한 이를 대장부라 한다.
-<孟子> 등문공 하 2장-

찌질한 남자와 대장부는 너무나 대비되는 말이다.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자식을 거느린 남자에게는 대장부라는 호칭을 붙여주고 싶다. 오히려 대장부보다 더 위대하다. 대장부는 차마 못하는 일도 가족을 부양하는 찌질이 남자는 할 수 있다. 비굴한 웃음도 웃을 수 있고, 안 나오는 눈물도 짤 수 있다.

단상 1

세상을 살아가며 처자식을 부양하려면 소득이 있어야 한다. 소득을 얻으려면 무엇인가를 팔아야 한다.

어떤 이는 웃음을 팔고, 몸을 팔고, 정조를 팔고, 지식을 팔고, 신념을 팔고, 기술을 팔고, 양심을 팔고, 신앙을 팔고, 젊음을 팔고…. 심지어 어떤 이는 처자식을 팔고, 나라까지도 팔아먹는다.

앞에서 말한 것들은 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팔아서도 안 된다. 팔 수 있는 것은 품(노동)과 시간이다. “지식인과 기술자은 지식과 기술을 파는 것이 아니냐?” 하겠지만 그것도 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팔면 줄어야 하는데 지식과 기술은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가 하니 파는 것이 아니다.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나의 노동과 시간을 파는 것이다.

노동과 시간은 삶이고 생명이다. 삶을 팔고 생명을 파는 것이기에 너무나도 소중하다. 하루 일당은 하루 생명 값이다. 한 달 월급은 한 달 생명 값이고 연봉은 일 년 생명 값이다.

아! 누구에게나 삶과 생명은 소중한데 그 값의 차이가 너무 크다.

단상 2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아 많이 가물다. 왜 비가 오지 않을까? 과학적 이유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하늘과 인간세상, 그리고 자연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그 영향을 주고받는다.

인간세상과 하늘, 자연은 서로 감응한다는 “천인감응”,
마음이 순하고 깨끗한 사람들은 그냥 그대로 받아들인다.
과학을 신봉하는 이들도 “그런 말은 미신이다”고 외면할 수만은 없다.
“天人感應(천인감응)” 사상의 가장 대표적인 글이 있다.
洪範(홍범)에 이르기를

“통치자가 엄숙하면 제때에 비가 내리고, 조화로우면 제때에 햇빛이 쏟아지고, 명석하면 제때에 따뜻하고, 신중하면 제때에 춥고, 슬기로우면 제때에 바람이 분다. 그러나 통치자가 광기가 있으면 폭우가 내리고 오만하면 가물고, 게으르면 늘 덥고, 조급하면 혹한이 찾아오고, 어리석으면 늘 바람이 분다.”고 하였다.

이 글을 쓴 이는 은나라의 대표적인 성인이라 할 箕子(기자)다. 우리에게는 箕子朝鮮(기자조선)으로 알려진 그 기자다.

비님께 기도해야겠다.

"비님이여 어서 오세요. 좀 섭섭한 일이 있더라도 용서하시고 어서 오세요. 만물이 비님을 간절히 기다려요. 사람은 밉더라도 산천초목도 미워하진 마세요. 비님, 어서 오세요 ... 아멘."

단상 3

매장에서 아주 실한 참깨가 담긴 페트병을 보았다. 가격도 저렴했다. 생산지를 살펴보니 아프리카 수단이다. 수단이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매우 가난하여 국민들이 굶주리는 나라이다. 그 나라 사람들이 자신들은 굶주리면서 나름대로 최고급 농산물을 생산하여 우리나라에 수출하고 있다. 아마도 그 수출대금으로 그 나라의 부자들은 우리나라의 전자제품이나 다른 고가품들을 수입해 갈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도 소수 부자들의 문화생활을 위해서 쌀, 콩 등의 농산물을 수출하고 그 대금으로 시계, 옷감, 화장품 등의 사치품들을 수입했다. 그만큼 국내의 농산물은 부족하게 되고 가난한 백성들은 굶주려야 했다.

가난한 나라로부터 들어오는 값싼 농산물을 홀대하지 마라. 그들은 자신들이 생산한 최고급농산물을 맛도 보지 못하고 우리나라에 수출하는 것이다.

단상 4

학교의 주인은 학생일 수 없다.
학교는 학생을 위해서 존재하지만 학생이 학교의 주인은 아니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일 수 없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서 존재하지만 국민이 국가의 주인은 아니다.
학교의 주인은 학문이다.
이 나라의 주인은 반만년 역사이고 자손만대 후손들이다.
만약 지금의 국민이 이 나라의 주인이라면 국민투표 해서 이 나라를 미국에 팔아먹어도 되고 일본에 팔아먹어도 된다는 이야기이다.
보이는 것은 본질이 아니다. 본질은 항상 형이상학적인 것이다.

단상 5

넝쿨장미가 화려하게 피었다.
차아아아~암~ 예쁘다.
예쁘다고 꽃 꺾지 마라.
보기만 해야 한다.
소유하려고 꺾으면 죽어 버린다.
아름다운 여인도 보기만 해야 한다.
품으면 아픔이 된다.
善도 감추어 두어야 한다.
드러내면 추해진다.
보물은 감추어 두고 멀리서 보는데 묘미가 있다.
-한국 현대사-

1987년 6월 항쟁

광주의 피로 권좌에 오른 전두환의 7년 임기가 끝나간다. 민주화 세력은 이번에야 말로 독재를 끝내고 민주주의를 수립해야 한다는 역사적 요청에 부응하기 위하여 점점 더 민주화 투쟁의 강도를 더해 갔다.

1986년 10월 28일 건국대학교에 전국 26개 대학 2,000여명의 학생들이 모여 반외세 반독재 시위를 벌였다. 이에 대하여 독재정권은 북한의 금강산댐의 위험을 대대적으로 발표하여 그동안 수없이 써먹어 왔던 전쟁위험의 카드를 또 사용하였다. 사상 유례가 없는 대규모 사기극을 펼치면서 국민을 협박하고, 그것을 빌미로 건국대학교에서의 시위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는 정권을 연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함에 처해있는 독재 권력과 이번이 민주화의 좋은 기회라고 판단한 민주진영의 양보할 수 없는 싸움이었다. 독재정권은 지속적으로 금강산댐의 위협을 과장 하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시국을 조성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사건이 발생하였으니 바로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이었다.

고문치사사건은 사실 당시로서는 엄청난 사건은 아니었다. 그동안 박종철 처럼 비명에 죽어간 이가 하나 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만 다른 것은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이 매우 높아져서 어떻게 해서든지 독재를 끝장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던 시기에 그 사건이 일어난 것이었다. 이번에는 비교적 기회주의적이고 나약한 전문 지식인들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박종철의 부검의(剖檢醫)였던 중앙대학교부속 용산병원 내과전문의 오연상(吳演相)씨가 박종철 군의 죽음이'고문치사일 가능성이 높다'는 증언을 한 것이다. 그리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 8과장 황적준(黃迪駿)씨의 부검소견서가 '외상없음'으로 조작되었다는 증언이 뒤따랐다. 역시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끈질기게 추적하고 보도한 언론이 있었다. 이들이 이렇게 용기를 내어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민주세력은 박종철 군의 죽음을 계기로 크게 힘을 모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집요하게 요구하였다.

그러던 차에 연세대학교 학생 이한열군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사경을 헤매게 되었다. 이제 이한열군의 중상을 더 이상 시대가 용납하지 않았다. 그가 최루탄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것을 그의 친구 이종창군이 부축하고 있는 모습이 정태권 기자의 카메라에 잡혔다. 그리고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하면서 그것을 신문에 게재한 이창성 사진부장이 있었다.

지식인들은 나약하고 비겁하다고 했던가? 그러나 나약하고 비겁한 지식인들이 용기를 냈다. 오연상, 황적준, 정태권, 이창성을 기억하자.

얼마나 기다렸던가? 국민들은 정말로 참고 기다렸었다. 바로 이때를 기다렸다. 그냥 기다리면 이때도 안 될 것 같으니까 열심히 투쟁했었다.

그동안 국가는 끔찍한 폭력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국가는 가공할 폭력기관이었다. 국가 폭력으로 그동안 참으로 많은 이들이 죽었다. 우선 5.18 광주에서 피의 학살이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국가정보원에서, 군 보안사에서, 경찰에서 죽어갔다.

국가는 그 누구보다도 큰 거짓말을 했다. 온갖 정보조작과 여론조작으로 국민을 속이고 선전 선동하였다. 언론인의 입에는 재갈이 물렸고, 정의의 양심은 반쯤은 도려내져 있었다. 조직화 되지 못한 농민들은 큰 손해가 나도 자신의 무능을 탓했고 노동자들은 생계의 위험에 침묵했었다.

전두환은 7년 단임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민주적으로 권력을 이양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군부 내에서 권력을 승계하겠다는 것이었다. 당시의 법대로 한다면 또 체육관에서 거수기들을 동원하여 거의 만장일치로 또 다른 독재자가 등장할 것은 뻔한 일 이었다. 그것만은 차단해야 했다.

1985년부터 정치권에서 대통령 직선제 개헌 논의가 시작되고 1986년부터 구체적인 개헌투쟁이 시작되었다.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재야는 재야대로,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생각이 있는 이들은 모두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열망했다. 그리고 나름대로 투쟁도 하고 항거도 하고 말도 했다. 분함과 원통함을 이길 수 없는 이들은 제 몸에 불을 질렀다. 살짝만 스쳐도 눈물과 콧물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지는 고성능 최루탄, 그 연기가 안개처럼 깔려있는 아스팔트 위에서 민주화의 전사들은 화염병을 날렸다.

1987년 연말에는 대통령을 새로 선출한다. 국민의 염원도 컷지만 살기위한 군부독재의 뜻도 강했다. 전두환은 1987년 4월 13일 호헌을 선언했고 이어서 1987년 6월 10일 민정당의 대통령 후보로 노태우를 선출하였다. 바로 그날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민은 전국적으로 봉기했다. 6월 항쟁의 최절정일인 6월 26일에는 33개시 4개 군과 읍에서 180만 명이 시위에 가담하였다. 드디어 독재정권은 6월 29일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국민은 이한열군의 장례식을 통해서 독재정권의 항복에 쇄기를 박았다.

독재 권력의 6.29선언, 그것에 대해서 혹자는 전두환의 작품이라 하고 혹자는 노태우의 작품이라 하고 혹자는 미국의 압력이라고 하지만 어림없는 말이다. 국민의 민주화 투쟁에 독재 권력과 그 배후 미국이 굴복한 것이다.

- 이야기 신학 59호 중에서 -

1987년 6월 항쟁은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민의 위대한 승리였다. 그 중 나약한 지식인들이라고 지탄받던 몇몇이 목숨 걸고 드러난 진실들이 6월 항쟁의 물꼬를 트는데 큰 역할을 했다.

30년 가까이 지난 오늘,

동강난 천안함의 진실은 아직도 물속에 있다. 천안함의 진실을 만천하에 공개할 군인은 없는가? 전시작전지휘권 환수를 목숨 걸고 반대한 얼빠진 장군들 중에 그런 이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영관급 장교들 중에서, 그도 안 되면 초급장교들 중에서라도 있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침몰당한 세월호에는 아직도 수습되지 않은 꽃들이 있다. 아! 세월호의 진실을 증언할 해경간부는 없는가?

대통령 부정선거는 체념가운데 잊혀지고 있다. 아! 그것을 증언할 국정원 직원은 없는가?

긴 시간이 지난 후에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하며 말하는 것은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지금 말해야 한다. 한국 현대사는 사건의 현장에 있던 이들, 사건의 핵심에 있던 이들 중에 용기 있는 자를 애타게 기다린다.

- 논어 읽기 -

陽貨 22장 : 「, , ! , . 」

(공자 왈 “종일토록 배불리 먹고 마음 쓸 데가 없다면 힘든 일이다. 바둑장기라도 있지 않은가? 그것이라도 하는 것이 오히려 현명할 것이다.”)

* 博弈(박혁/ 바둑)

재물이 넉넉하여 하루 종일 놀고먹어도 되는 이들이 있다.

   
그러한 이가 학문에 뜻이 있다면 큰 학문을 이룰 것이요 선행에 뜻이 있다면 많은 이를 구제할 수도 있겠으나 아무 뜻도 없다면 그의 인생은 참으로 심심해서 괴로울 것이다. 오늘날에는 기회가 많아서 그 재물로 사업을 벌여서 더 큰 재물을 얻을 수도 있고 반대로 재산을 다 날릴 수도 있다. 평생을 놀고먹는 심심함 보다는 차라리 사업하여 날리면서 겪는 괴로움이 더 낫기에 사람들은 그리하는가 보다. 그러나 공자시대에는 농사 외에는 마땅히 할 사업도 없으니 참으로 놀고먹는 괴로움이 컷을 것이다.

배고파서 못살겠다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심심해서 못살겠다는 것도 힘든 일이다. 배고픔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한 것이 마르크스 였다면 심심해서 못살겠다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한 이들이 있으니 독일의 프랑크푸르트학파(네오-막시즘)로 삶의 의미를 진지하게 고민한 사람들이다.

많은 재물을 가지고 심심해서 못살겠다는 이들, 그냥 놀고먹기만 해도 좋으련만 악한 일을 꾸민다면 그 피해가 많은 이들에게 미치니 불행한 일이다. 제발 바둑장기나 열심히 두어라. 도박도 괜찮다. 혹 도박으로 재물을 다 탕진한다면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수 있으니 오히려 바람직한 일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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