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것은 아름답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살아있는 것은 아름답다.
모든 들꽃과 꽃잎들과 진흙 속에 숨어사는
것들이라고 할지라도,
그것들은 살아있기 때문에 아름답고 신비하다.
바람도 없는 어느 한 여름날,
하늘을 가리우는 숲 그늘에 앉아 보라.
누구든지 나무들의 깊은 숨소리와 함께
무수한 초록잎들이 쉬지 않고
소곤거리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이미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이 순간에,
서 있거나 움직이거나 상관없이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오직 하나,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들은 무엇이나 눈물겹게 아름답다.
-양성우 <살아있는 것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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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 내외가 세 들어 살던 2층 집, 한 칸짜리 방 천정에 양성우, 신경림, 백석, 박노해, 이시영, 김남주 시인의 시를 사인펜으로 미농지에 베껴 덕지덕지 붙여 놓고 매일 소리내어 낭송하곤 했습니다. 그중에 양성우 시인의 시는 불안으로 가득한 실업자인 내게 큰 위로를 주었습니다.
그의 시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에서 살아있음이 던져주는 경이로움 앞에서, 가장 작은 곳에 있는, 가장 여리고 여린 것들 사이에 숨어 있는. 그 위대한 힘 앞에서 어렴풋이‘아, 나는 가난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양성우 시인의 시를 오랜만에 만나니 오래 헤어졌던 친구를 다시 만난 것처럼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그리고 1980년 중반, 위험천만한 철 계단을 조심스럽게 올라야만 했던 2층 신혼 단칸방, 막막하고 쓸쓸했던 그 시절이 생각납니다. 참으로 오래된 기억입니다. 오래된 기억은 다 아름답다고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