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생태기행(12)] 유목문화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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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생태기행(12)] 유목문화의 위기
  • 류기석
  • 승인 2009.10.06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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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초원을 그리워 하며...
지난여름, 짧지 않은 일정으로 가족들과 함께 몽골기행을 떠났다. 그중에서도 관광지나 문화유적지 보다는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만날 수 있는 초원과 그 속에 감추어진 야생의 들꽃들이었다. 온통 초원뿐인 몽은 자연그대로의 숲은 드물었지만 과거로부터 초원을 상대로 유목생활을 해온 삶의 문화가 젖어 있는 곳을 보고 듣고 느끼기 위해 무작정 서울이라는 도시를 떠나 몽골행 비행기에 몸을 싫었다.

그곳에서는 가급적 도시문화가 판을 치고 있는 울란바타르를 벗어나 초원과 기암괴석이 어울려 있는 테룰지 강변과 너른 초원에 야생화가 지천인 바트 숨베르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깨끗하다고 알려진 흡수굴 호수를 걸어보면서 생생하게 오래된 미래를 경험했다.

몽골은 과거의 용맹하고 진취적인 기상과 숭고한 정신적 가치보다는 물질적으로 대단히 치우쳐진 느낌을 받았다. 울란바타르 시내 곳곳은 자본의 횡포정도에 따라 수천수만 년에 걸쳐 이룩한 유목문명을 포기하고 모여든 가난한 유목민들이 노동자, 서비스업자로 전락하여 심각한 도시문제를 낳고 있었다. 대신 시내를 벗어난 곳곳의 농촌에서는 인구의 감소로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는 목축업으로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였던 유목민들의 경제가 심각하게 타격을 받고 있었다.

흔한 마요주는 전통농촌뿐만 아니라 도시의 몽골인들에게 빼놓을 수 없이 즐겨 찾았던 전통발효주로 건강에 좋고 집집마다 화목을 위해 대접하기도 했던 먹거리다. 보통 흰 말의 젖을 받아 하루 동안 발효시켜 마시게 되는데 안타깝게도 울란바타르에서는 이러한 마요주를 만들어 먹는 것은 고사하고 구하기도 힘들어졌다고 한다.

대대로 몽골의 유목민들은 양과 말, 소를 키우면서 경제적인 소득을 얻기 위해서 양을 팔거나 소나 말의 젖을 생산하고 판매하여 생필품을 얻어 생활한다고 한다. 6월초 염소에서 나오는 털로 캐시미어 원단을 뽑아 팔고, 7월에서 9월까지는 말을 돌보기 위해 마을전체가 인근에 휴양지를 만들어 캠프를 즐긴다고 한다. 이것이 유목민들의 일반적인 삶을 위한 최소한의 경제생활이며 여가생활이다.

얼마 전까지 몽골인들의 장래문화는 야생으로 자연스럽게 되돌려 보내는 조장방식의 장례문화가 보편화 되었으나 지금은 우리네와 같은 방식의 매장과 화장 문화가 그들만의 죽음을 대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정부 또한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한 조처로 유목민을 한 곳에 정착시키려는 계획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는 초지를 조성하여 자연스럽게 목축을 일구었던 과거의 전통생활에서 탈피하여 집단적 정주생활의 도시문화로 가기위한 변화로 유목문화의 인간적 지혜의 사상을 간과하고 일정한 공간을 가지고 경제성과 효율성을 추구하려는 움직임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사막화의 한 원인으로 꼽을 수 있는 유목민들이 벌이는 무분별한 초지조성과 벌목이 환경에 끼치는 영향이 심각하다는 입장에서 내린 결과들이지만 그 이면에는 몽골이 당면한 자본주의경제체제로의 전환에 따른 시장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측면도 있다. 이는 급속하게 번지고 있는 사막화를 막고 동시에 자본주의의 효율성을 중시한 경제성을 동시에 충족하려는 그들의 속마음인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계획들로 말미암아 유목민들에게 주어졌던 삶의 유익한 문화와 지혜로운 정신은 몽땅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특별히 이번여행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자연스러운 유목문화들이 하나씩 사라져가고 있는 징후들이 곳곳에서 감지됨에 안타까움이 들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도시문화는 현대적 소비문화를 지향하면서 비정한 기계적 개인주의성향을 추구하는 문명인으로 길들여져 왔다. 자본주의는 무엇보다 철저한 반인격적 폭력으로 인간을 상품화해 버렸다. 인간관계속에 존재하는 형제애나 공동의식 부드러운 감정 등을 부정하면서 겉으론 고상한척하며 저마다의 자유의지를 꺾었다. 겉으론 들어나지 않을 수많은 구속의 실타래들이 도시라는 거대한 시스템으로 얽혀 되돌려 세울 수 없는 낭떠러지기로 빠르게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여행 후 그동안 폄하하여왔던 이동식 문명에 대한 잘못된 시각들은 현대문명의 관점에서 바라보았던 시각이기에 하나하나 고쳐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충분한 논의와 실험을 거치지 않고 추구하는 현대문명은 유목민들에게 약보다는 독(毒)이 될 공산이 크다. 그러기에 이제부터라도 몽골은 자신의 정체성을 재발견한 뒤, 공동체 정신과 자연환경의 존중, 적절한 형태의 주거와 기술, 소박한 생활방식 등을 이루는 개발과 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룰 것을 이야기해주고 싶다.

우리들은 지금 현대문명이 맹종하는 지식과 정보사회로부터는 거리를 두고 자연미와 인간미가 넘치는 지혜로운 사회를 가까이 하여야 한다. 이러한 가치에는 문화라고 하는 저마다의 자유의 생명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내 스스로가 꾸민 형식적인 외형이 아닌 몸과 마음, 정신이 어떠한 것에서도 거리낌 없는 자율의지를 가지고 “모든 살아있는 것들과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곧 벅찬 감동의 길인 것이다.

이번 몽골오지여행의 경험을 통하여 느낀 점이 있다면 지속적인 편안함을 찾아 한곳에 머무르는 관광보다는 끊임없이 열려진 삶을 찾아 불확실한 미래로 떠나는 유목민적인 생태기행이 내겐 더 매력인 것을 재차 확인했다. 몽골의 변화무상한 자연환경 속에서 하루하루에 대한 여행스케줄은 별 의미가 없다. 그저 자연적인 흐름 속에 내 육체와 마음을 맡기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다.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이 호텔 저 호텔을 전전하며 여행사의 스케줄에 맞춘 여행 이였다면 그들의 다양한 삶의 문화를 알기에는 어려웠을 것이다. 한 곳에 성을 쌓고 여행했던 것이 아닌, 오래된 길을 찾아 내 자유의지대로 남들이 가지 않았던 낯선 곳을 찾아 떠났기에 처절하게 고생도 되었지만 오래도록 몸과 마음속에 간직될 배움이었다.

몽골은 한 때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질러 문명의 대통합을 이룬 유목민족이다. 대륙적인 기질과 성을 쌓기 보다는 새로운 길을 닦으며 영토를 넓혀가는 것이 아닌 사상으로 세계를 호령하려했던 사실을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유목생활에서 생명처럼 여겼던 것은 길을 닦아야 된다는 필연적인 결과물들로 생존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들은 생활에 필요한 물품과 소지품을 되도록 간소화하고 정보수집에 열심이었으며 또한 속도를 중시하여 서로 접촉하고 소통하는 그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었다.

오늘날 이러한 길 떠남의 유목문명은 21세기 첨단을 향한 인류의 희망으로서 문명의 표상으로서 유목민을 주목하여 거론한다. 특히 서구 도시문명의 대안으로 유목문명을 인정하고 제대로 된 가치를 찾아 현실을 직시하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유목민의 이야기”라는 책을 보니 프랑스의 저명한 석학 자크 아탈리가 ‘부유한 사람들은 즐기기 위해 여행할 것이고 가난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이동해야 하므로 결국은 누구나 유목민이 될 수밖에 없음을 말했다.’라는 구절이 생각난다. 현대사회는 이미 자동차, 휴대폰, 노트북 컴퓨터 등의 사이버 유목세계가 여론을 주도하게 되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여기서 유목민들이 주로 이용했던 교통수단이 과거 말에서 자동차와 인터넷으로 대치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제 초원에서 목축을 하던 유목민들이 삶을 위해 끊임없는 이동하는 관점이 모든 인간의 잠재적 자세이며, 인간 존재의 기본적인 범주들 가운데 하나로 부상했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몽골유목민에 대한 관심이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로 향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또한 그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려고 오지를 찾아 그들과 함께 매일같이 먹고 자면서 그들만의 보배인 흡수굴 호수를 방문했다.

하트갈 여행 마지막 날, 패트병을 가져다가 흡수굴 호수의 물을 한 병 가득 담아 가져왔다. 그리고 물에 대한 이미지와 이온화 경향을 보았다. 물의 분석은 오랫동안 물의 이온화 경향에 대한 연구를 해온 박상운(39세)님이 도움으로 최근에서야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우선 몽골인들이 먹고 마시는 물방울 하나하나의 이온화 경향을 살펴보면 대체로 칼슘성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결정구조 또한 온화한 정육면체의 부드러운 각을 이루고 있다. 이는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연환경과 기후에 맞는 식생활의 주요수단으로 양과 염소, 말과 야크 등의 가축을 기르는 것과 연관이 있다. 칼슘은 동식물에게 필요한 영양분으로 기후만 맞는다면 목축이외의 농작물도 손쉽게 키울 수 있다.

여기서 매일 마시는 물이 대부분 칼슘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외형적으로 강인한 체력을 만들고 내적으로는 은근한 끈기를 길러 왔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물은 단순한 물(H2O) 이상의 사회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물은 그 지역사람들의 육체를 만들고 성품을 만들고 정신을 만든다는 것이다. 육체적으로 뼈가 튼튼하고 기골이 장대한 이유, 정신적으로 낙천적이며 여유로운 마음은 이런 연유에 기인된 것은 아닐까.

반면 한국에 있는 물은 어떠한가. 대략 한반도라는 지형에서의 물의 성분은 같다. 실제적인 분석을 위해 광릉 숲 동편에 있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철마산자락 아래의 지하수 물을 실험실로 가지고 가서 분석해 보았다. 우리들이 하루도 빼 놓을 수 없이 만지고 마시는 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칼륨성분으로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다. 칼륨성분이 많다는 것은 우리 땅 곳곳도 동식물들이 생활하기에는 좋은 곳임을 의미한다.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자연환경이 인간과 식물에 영양가 높은 물을 만들어내면서 쌀과 곡식, 채소류들이 넘쳐나 정주생활의 안정을 도모해 왔다. 우리민족은 청해성에 있는 마고성으로부터 시작하여 몽골인종의 근원지인 파밀고원을 떠나 끊임없이 떠돌아다녀야하는 유목생활을 접고 단군시대에서야 정주생활을 시작하여 농공(農工)을 짓게 됐다. 이는 당시로서는 대혁명적인 사건 이였을 것이다. 이후 정주를 따라 도시가 생기고 물질의 교환이 생겨 제도가 생겨나게 되면서 정신문화의 발달을 가져왔던 것이다. 여기서 정주에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 농작물에 꼭 필요한 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식물에게 반드시 필요한 질소, 인산, 칼륨 중에 한 성분인 칼륨이 이미 우리 땅 곳곳의 물속에서 충분히 존재하여 왔기에 조상대대로 정주농업을 일컬어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地大本)을 만들었다. 여기서 물속에 칼륨은 식물뿐만 아니라 인간의 육체를 유지시키는데 필요한 원소로서 마음과 정신까지도 관장한다.

우리물의 결정형태는 보석과 같이 날카로운 육각형태를 띄며 밖으로 표출하는 형상이다. 이로써 외형적인 육체뿐만 아니라 마음과 정신까지도 물이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물의 형상이 우리민족에게 뛰어난 예술 감각을 지니게 하고 창의적인 생각을 품게 하는 것이다. 아쉽게도 조금만 인내하고 참아내면 좋을 것을 그 뜻이 여물기도 전에 일찍 터뜨리는 것이 우리에게는 조급함과 쉽게 좌절하는 성격을 만들었던 것이다.

또한 자연생태계로부터 수천 년간 값없이 받아쓰고 먹으면서 안정적으로 살아왔던 우리들에게 최근 들어 심각한 재앙이 생태환경으로부터 불어오고 있다. 인간의 욕심에 의한 화학적 기계적 사용이 늘면서 자연의 균형이 깨진 것이다. 이렇듯 물은 우리생활에서 꼭 필요한 구성요소일 뿐만 아니라 한 나라의 풍토와 성품을 좌우하는 것임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결과로서 현재 몽골의 풍토와 우리의 풍토는 성질이 완연히 다르고 지역이 다르지만 여전히 닮은꼴이 존재하는 나라다.

이번여행으로 느낀 것은 이른 아침 겔에 누워 밖에서 들리는 그들의 말소리를 들어보면 영락없는 우리네 길 거리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소리임을 느낄 수 있다. 그동안 우리의 감추어진 강역의 역사를 연구해 오신 역사연구가 이병화(60세)님은 우리와 몽골의 원천적인 혈통과 문화는 같다고 했다. 생김새도 비슷하고 생활문화도 다르지 않으며 가구의 문양이 우리의 민화와 같고, 몽골의 귀족복장은 조선 초 궁중복식과 같다. 이밖에도 매 사냥 방식이나 활, 말의 장식 등에서 매우 유사한 점을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이렇듯 다름과 같음이 동시에 존재하는 몽골에서 유목문명의 위기를 느끼고 돌아온 것이다.

유목문명의 위기는 곧 현대문명의 위기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에서 끊임없이 축적을 위한 성을 쌓고 안주하려는 문명의 이기를 넘어 자기 것을 아낌없이 상대방에게 나누어 주는 새로운 문명의 길을 만들어야 함을 간절히 호소한다. 그리고 이제껏 자신의 채워짐을 이웃과 나누어 비우려하는 샘물 같은 순환의 원리로 돌아가야 됨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래야만 남에게 주었던 행복과 즐거움이 자신에게 끊임없이 새롭게 돌아오는 희망이 생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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