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의 역사는 어떻게 전해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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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역사는 어떻게 전해왔을까?
  • 이병화
  • 승인 2009.09.19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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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를 서술한 기록'

우리 민족의 역사가 원형 그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일제의 압박에서 벗어난지도 60여년이 넘었건만, 이러한 인식이 없어지지 않은 채 아직도 남아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도대체 우리 민족사는 어떻게 기술되어 전해졌길래 아직까지도 왜곡된 모습으로 전해지고 있단 말인가?

우리 민족사가 올바르게 전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과거사를 기록한 역사책이나 역사자료가 변조되었거나 아니면 왜곡되어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역사가가 역사를 서술할 때 과거사를 전하는 역사책이나 해당시기의 역사자료가 절대로 필요하다. 역사란 역사가와 역사자료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민족의 역사책이나 역사자료는 엄청난 수난을 겪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민족사서와 사료의 수난

668년 고려(고구려는 427년 국호를 고려로 바꾼다. 따라서 멸망시기의 국호는 고려였다.)가 멸망할 때 그 도읍지였던 장안성長安城(지금의 섬서성 서안시)이 당군唐軍에 의해 함락되면서 당시 장안성에 보관중이던 고려와 고구려 이전의 역사자료를 침략자들이 당의 도읍지였던 만년萬年(지금의 청해성 서녕시)으로 빼앗아 갔던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보다 앞서 660년 백제의 사비성泗沘城(지금의 산동성 제녕시)이 라․당연합군에 의해 함락되면서 백제의 역사책과 역사자료가 모두 불탔다고 한다. 이때 백제로 쳐들어간 신라의 도읍지는 신성新城(지금의 안휘성 봉양현)이었다.

1231년 몽고리의 침략으로 고려는 도읍지를 개경開京(지금의 하남성 등봉시)에서 강도江都(지금의 강소성 진강시)와 송도松都(지금의 강소성 남경시)로 옮기면서 39년간이나 항쟁을 지속하다가 1270년 원元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때를 계기로 고조선과 그 이전의 역사사실을 기록한 고려의 고사서와 고자료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고조선의 제후국이었던 몽고리가 과거사를 밝히기를 꺼렸기 때문이다.

고려를 복속시킨 원의 당시 도읍지는 대도大都(지금의 감숙성 란주시)와 상도上都(지금의 녕하자치구 은천시)였다.

몽고리의 압박을 받던 고려때만 해도 우리민족사를 기록한 사서와 사료는 일반에 비장되어 후대로 전해지고 있었다.

당이 고려의 사서를 탈취한 것이나, 라․당연합군이 백제의 사서를 모두 불태워버린 것이나, 또 원이 고려로 하여금 고조선과 그 이전의 역사를 공식적으로 전승하지 못하도록 압제한 것은 고려(고구려)와 백제의 역사를 당과 신라와 비교해 볼 때 국토의 넓이도 훨씬 방대했을 뿐 아니라 문화수준도 우월했기 때문이며, 비록 원의 군사력에 굴복했더라도 고려는 원보다 훨씬 오랜 역사 전통을 지녔고, 문화수준도 우위에 있었던 것이다. 고려 때에도 고려의 문화가 원으로 흘러들어가 맹위를 떨쳤었다.

고려를 이어 건국한 조선은 우리 민족사상 유례없는 위기를 맞게 된다. 당시 원을 북으로 몰아내고 새로운 군사강국으로 부상한 명明은 조선을 굴복시키고 원을 이은 달단과 그리고 이웃해 있던 여진과 전쟁을 치르면서 대륙에 있던 조선의 강토를 서와 북으로 유린하기 시작했다. 또 왜倭는 조선의 경상도 지역(지금의 복건성과 절강성)을 점령했다. 이때 명의 도읍지는 대도(감숙성 란주시)였고, 조선을 침략한 왜는 필리핀의 루손도가 중심이었다.

조선의 건국이전 고려는 명에게 과거 원 지배시대의 동녕부(평양, 섬서성 서안시)와 쌍성총관부(화주, 산서성 태원시)를 할애한 바 있었고, 조선의 건국후에는 명에게 서쪽으로는 개경(하남성 등봉시), 북쪽으로는 함주(북경시 동성구)를 빼앗겼다. 조선의 함주는 1421년 명의 새로운 도읍지가 된다.

건국당시 조선의 도읍지는 한양(산동성 제남시)과 송경松京(산동성 임청시)을 오고 갔다. 1426년 세종대에 이르러 조선은 서와 북으로 명의 압박과 남으로는 왜의 침략을 견디지 못하고 산동성 제남시에서 한반도 서울로 도읍을 옮긴다.

국토의 상실과 조작된 반도사관

대륙에서 반도로 그 중심을 옮긴 조선은 대륙의 강역을 명에게 완전히 빼앗긴다. 사대주의에 빠져 정권유지에 급급했던 조선은 강토를 다시 회복하려는 의지를 포기한 채 조선과 그 이전의 역사적 강역이 대륙이었다는 사실을 숨긴 채 역사를 왜곡했다. 우리 역사가 반도와 만주에서 이루어졌었다는 이른바 반도사관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민간에 비장되어 있던 우리민족의 과거사를 기록한 역사책을 거두어 없애버렸고 금서목록을 만들어 소장 자체를 금지했다.

우리 민족사가 치유되기 어려울 정도로 병들게 된 비극의 단초는 이 시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조선 초 세조로부터 예종을 거쳐 성종에 이르는(1455~1494) 40여년의 세월이었다. 고조선과 그 이전의 역사서가 자취를 감추었고, 이 시기의 역사는 신화의 시대로 치부해 연구와 교육 분야에서 제외했다.

가야사와 발해사가 민족사에서 배제되었고, 보전될 역사서로 삼국사기와 고려사를 다루었지만 그나마도 내용이 변조되었다.

조선왕조의 상고사 말살과 역사 왜곡 변조 정책은 일부 사림층과 민간의 거센 저항을 받게 된다.
가혹한 시련기를 겪으면서도 우리 조상들은 우리 민족사를 제대로 전하는 사서와 사료를 감추어두고 열람하면서 대대로 전해왔다.

상고사의 말살과 변조된 식민사관

그러던 중 1910년 대한제국을 강점한 일제는 군경을 동원해 그 당시 일반인이 소장하고 있던 우리민족의 고사서를 찾아내어 수거해 거의 다 불살랐고, 극히 일부를 그들의 황실사고에 아직까지도 보관하고 있다.

일제는 역사서와 사료의 말살에 그치지 않고 우리민족사를 식민사관으로 왜곡함으로써 제모습을 찾지 못하도록 일그러트려 놓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민족사를 제대로 복원하려는 민간인들의 노력은 끊이지 않았다. 조선초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사대주의를 기초로 변조된 제도권의 역사인식과 식민사관으로 일관한 일제의 역사조작에 항거하면서 우리민족의 온전한 역사를 지켜온 애국지사들의 활동은 계속 이어졌고 이분들을 지지해준 민중의 뒷받침도 꾿꾿했다.

일제에 항거했던 광복운동 시기에 환단고기, 신단민사, 신단실기가 발간되었고, 광복직후에 단기고사가 빛을 보았고, 1980년대에는 부도지와 환단고기의 해설서가 일반에 널리 보급되기에 이르렀다.

민족사는 복원될 수 있다

우리 민족사의 복원은 간악한 일제가 조작한 식민사관을 불식하고, 조선과 명이 변조해낸 허구의 반도사관에서 벗어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 작업은 조선왕조실록으로부터 시작해서, 고려사 그리고 삼국사기를 거쳐 환단고기로 마무리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조선왕조실록, 신증동국여지승람, 고려사, 삼국사기가 전해지고 있고, 환단고기, 부도지, 단기고사, 규원사화, 아방강역고, 신단민사, 신단실기 등의 정사서가 전해지고 있음은 실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리 민족사를 기술한 주요 사서는 다음과 같다. <표 1>, <표 2>, <표 3>, <조선이 지정한 금서 목록>

   

                         <표 1> 우리민족의 역사서
                         ⓒ www.naturei.net 2006-08-12 [ 이병화 ]

   

                          <표 1> 우리민족의 역사서 
                           ⓒ www.naturei.net 2006-08-12 [ 이병화 ]

   

                           <표 2> 조선의 역사
                           ⓒ www.naturei.net 2006-08-12 [ 이병화 ] 

   

                          <표 3> 대한제국 이후의 사서
                          ⓒ www.naturei.net 2006-08-12 [ 이병화 ]

조선이 지정한 금서 목록
檀君記, 神秘錄, 海東秘錄, 三人記錄, 海東古記, 修撰企所, 仙史, 古朝鮮秘詞, 古朝鮮秘記, 三韓古記, 磨虱錄, 新羅古事, 周南逸土記, 三聖密記, 道證記, 表訓天詞, 漢都讖記, 河沙良訓, 百濟新撰, 通天錄, 大辯說, 新羅古記, 表訓三聖秘記, 誌公記, 壼中錄, 動天錄, 地理聖母, 地華錄, 三韓拾遺記, 四聞錄, 會三經, 神里大全, 神事記, 三一神誥, 天符經

글: 이병화(역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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